글/ 연변 대법제자
[밍후이왕] 연변(延邊) 조선족자치주는 지린성이 관할하는 한 소수민족 자치주며 간단히 연변주(州) 혹은 연변이라고 칭한다. 연변은 지린성 동부의 중국과 북한 변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중국에서 가장 큰 조선족의 집결지다. 관할구역 면적은 약 4,300㎢이며 인구는 200만이 넘는다. 연변 자치주 정부 소재지는 연길시이고 이외 용정시, 화룡시, 돈화시, 안도현, 왕청현, 훈춘시, 도문시 등의 관할 구역이 있다.
이미 발굴한 신석기 시대 출토 문물 및 2천 년 전 역사 기록에 근거하면 신석기 시대부터 조선족은 이 땅에서 번영했다. 연변이 좋은 곳이라 인식된 것은 그 유구한 역사뿐만 아니라 또 지역, 기후의 우세 및 풍부한 자원이 있고 또 가장 중요한 것은 이곳에 만고부터 유전된 신성한 인연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999년 한국 청계사에 전설 중의 3천 년에 한 번 나타나는 신기한 꽃 ‘우담바라’가 최초로 나타났다. 또 그 후 몇 년 동안 한국의 여러 절에 우담바라가 피는 현상이 나타났다. 불경의 기재에 따르면 우담바라는 매 3천 년에 한 번씩피며 이 꽃의 출현은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인간 세상에 와 법을 전하고 사람을 구도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10여 년 동안 이 불국(佛國)의 성스러운 꽃은 세계 각지에서 앞 다투어 피어났다.
연변 지역에도 여러 차례 우담바라가 나타났다. 꽃줄기는 가늘기로 머리카락 같고 꽃잎은 희디흰 눈과 같았다. 많은 사람은 이 기이한 꽃을 직접 목격했다. 2010년 8월 중순, 연길시에 우담바라 꽃이 만발했다. 어떤 우담바라는 시멘트 바닥에 폈고 어떤 우담바라는 강철 파이프 위, 철사 위에 폈고 또 어떤 우담바라는 토마토, 오이에 폈다.(아래 사진 참조).
성결한 우담바라가 연길시에 피어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시간을 거슬러 1994년 8월 20~27일 파룬궁 창시자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은 직접 연변 조선족 자치주 정부 소재지인 연길시에 오셔서 8일간(10회 강의) ‘연길전수반’을 개최하셨고 이때부터 우주대법을 연변 중생에게 가져다 주셨다. 요 몇 해 동안 연변 대지에 우담바라가 핀 현상으로 ‘신이 곧 돌아온다’는 전설이 이미 더는 낯설지 않게 됐다.
사존께서 직접 오셔서 대법을 전하다
파룬궁은 파룬따파(法輪大法)라고도 부르며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이 1992년 5월에 전한 불가상승(佛家上乘) 수련대법이다. 우주의 가장 높은 특성 ‘진선인(眞善忍)을 근본 지도로 하고 우주의 연화원리(演化原理)에 따라 수련한다. 1억 명의 수련 실천 경험을 통해 리훙쯔 선생님이 전하신 파룬따파는 대법대도(大法大道)이며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을 고층차로 이끄는 동시에 사회 안정, 사람의 신체소질과 도덕수준을 제고하는데 예측할 수 없는 긍정적인 작용을 일으켰다.
파룬따파는 중국에서 일찍이 많은 표창과 칭찬을 받았다. 1993년 베이징 동방건강박람회에서 리훙쯔 선생님은 박람회 최고상 ‘볜위안(邊緣) 과학진보상’과 대회 ‘특별금상’ 및 ‘군중에게 환영받는 기공사’ 칭호를 받으셨다. 여러 해 동안 리훙쯔 선생님과 파룬따파는 인류의 심신과 건강에 뛰어난 공헌을 해 각국의 표창, 지지 편지를 3천여 통 받았다. 파룬따파는 오늘까지 이미 세계 100여개 국가와 지역에 널리 전해지고 세계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파룬궁 서적은 40여종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서 발행되고 있다.
전수반이 끝난 후 사존께서 직접 연길 각 연공장에 수여하신 파룬(法輪)기
파룬따파 연길 전수반은 1994년 8월 20일 연길 체육관에서 문을 열었다. 참가자는 4천여 명이다. 수련생은 전국 각지에서 왔다. 어떤 이는 아주 먼 광저우(廣州)에서 오고 심지어 신장(新疆)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 어떤 수련생은 여러 학습반을 따라다녔다. 그 중 가장 어린 사람은 갓 돌이 지나고 가장 많은 사람은 70여세였다. 사존께서 설법하실 때 회의장은 바늘 하나 떨어져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조용했다. 사존께서 그 자리에만 있으시면 질서를 유지할 필요 없이 전부 쥐죽은 듯 조용했다. 8월 연길은 여전히 무더웠다. 며칠 동안 강의하면서 사존께서는 물 한 방울 드시지 않고 땀 한 번 닦지 않으셨다. 매번 강의를 마치고 사존께서 직접 연공동작을 가르치고 동작 시범을 보여주셨다. 마지막 시간에 사존께서는 전적으로 수련생들의 질문에 해답해주셨다.
사존의 설법 전수반 비용은 전국 기공 문파 중 가장 낮았다. 10강의에 겨우 43위안(약 8천원)이었고 노수련생은 절반만 받았다. 기타 기공사는 10일 정도에 80~200위안(약 1만5천원~3만7천원)을 받았고 심지어 더욱 높은 비용도 있다. 수강할 때 세심하지 못한 수련생은 금반지, 금목걸이, 심지어 현금을 잃어버리기도 했지만 정말 잃어버린 사람은 없었다. 수련생들은 주워서 사존께서 계시는 곳에 제출해 분실자가 찾아가게 했다.
법을 전하는 기간, 사존께서는 연길시 연공장에 직접 오셔서 제자들에게 녹음기를 사주셨다. 전수반을 마친 후 자비로운 사존께서는 이번 학습반 수입 7천 위안(약 130만원)을 연변 적십자회에 기증하셨다. 그 해 여름 연길이 수해를 입었기에 사존께서는 생활비가 빠듯한 상황에서 모든 수입을연길 수재민에게 기증하셨다. 설법이 끝난 후 전국 각지 대법제자는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께 꽃바구니와 우승기를 삼가 바쳤다. 조선족 수련생은 산뜻하고 아름다운 한복을 입고 가장 정중하게 사존의 은혜에 감사드렸다. 사존께서는 시종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자비롭게 수련생을 바라보셨다. 그 장면은 열정적이고 격동적이었다.
운 좋게 연길 전수반에 참가한 수련생은 비할 바 없는 행복에 잠겨 회상하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했다. 그 하나하나 감동적인 사례 중에서 우리 사존의 박대한 흉금 및 겸허함과 온화함 및 중생에 대한 자비를 볼 수 있다.
“저는 파룬따파 학습반에 참가하기 전 다른 기공 학습반에 참가하지 않아 부처, 도(道), 신에 대해 아는 것이 적었고 천목도 반응이 없었어요. 그러나 매번 사존께서 학습반에 들어오시기만 하면 사방에서 빛이 나는 것을 느꼈어요. 사존은 체격이 크고 훤칠하며 미소를 짓고 그곳에 앉아 계셨어요. 마치 큰 부처님 같았어요. 사존께서는 매일 강의하실 때원고가 없으셨고 주머니에서 카드 같은 종이를 꺼내 한 번 보시고 강의를 하시기만 하면 그대로 문장이 됐어요. 얕은 뜻으로부터 심오한 뜻으로 심화되면서 흥미진진하게 강의를 하셨어요. 그렇게 깊고 넓은 법리를 하나하나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해주셨어요. 이때부터 이 사람들의 심신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어요. 마지막 설법 질의응답에서 한 사람이 제출한 문제는 비교적 간사했어요. 저는 이것은 사존을 난처하게 만들려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우리 사존께서는 대각자(大覺者)의 풍모와 도량으로 참을성 있고 진지하게 문제를 해답하셨고 아무리 물어도 싫증을 내지 않으셨어요. 사존께서는 우주 중의 모든 일체를 말씀하실 수 있고 또 매 한 마디는 모두 마음에 새길 수 있었어요. 사존의 인품이 자애로운 아버지와 같아 마음속으로 탄복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어요.” -‘사존의 연변 전수반에 참가한 약간의 기억’
“그 해 여름 연길은 특별히 더웠다. 4천여 명이 앉아 있는 밀폐된 체육관에서 오직 서쪽에 있는 창문 몇 개만 열려 있었다. 수업 받을 때 어떤 사람이 힘껏 부채질을 했다. 사존께서는 여러 사람에게 ‘부채를 내려놓으세요. 부채질을 할수록 더 더울 겁니다. 연공인이 요만한 고생도 겪지 못합니까?’라고 말씀하셨다. 사존께서 말씀한지 얼마 되지 않아 서늘한 바람이 얼굴을 향해 불어왔다. 나는 너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더욱 신기한 것은, 나는 사존의 강의가 이렇게 좋은데 종이와 펜을 가져오지 않아 기록하지 못했다고 후회하고 있었는데 사존께서는 내 마음을 아시고 ‘필기하지 마세요, 그러면 알아듣지 못하고 또 전부 기록하지도 못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또 다른 기공사의 강의를 들었던 생각이 났을 때 사존께서는 또 아시고 수련은 전일해야 한다는 문제를 말씀하셨다. 매번 당시 일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부끄럽다. 그때는 오성이 정말 부족했다!”-‘연변 대법제자가 사부님의 은혜를 기억하다’
“8월 21일은 일요일이고 두 시간 강의가 있었다. 점심 12시 40분경, 연길시는 갑자기 우레가 울고 소나기가 내렸다. 큰 바람에 비가 세차게 내렸고 심한 천둥까지 울렸다. 많은 차가 고장이 나 멈추고 일부 나무는 쪼개져 넘어졌으며 또 어떤 나무는 뿌리까지 뽑혔다. 비가 멎고 날이 갠 후 하늘에 무지개가 나타났다. 나는 체육관으로 가는 길에서 쥐즈(局子)도로 큰길에 쓰러진 나무 중심이 핏빛인 것을 보고 매우 이상하게 느꼈다. 이날 오후 연변대학 동아리 건물에서 OO 가짜 기공사의 보고회가 있었다. 며칠 지난 후 사존께서 말씀하신 가짜 기공과 부체에 관한 상황을 듣고 나는 사존께서 연길 공간장을 청리하신 것을 알았다. 지금 회상해도 여전히 사존께서 그 해 법을 전하실 때의 간난신고를 느낄 수 있다. 그 중에는 우리들이 아는 것이 있고 또 우리들이 모르는 많은 것이 있다.”-‘조선족 제자가 사존께서 연길에 법을 전하신 날을 회상’
“사존께서 연길 변경 도시에 오셔서 법을 전한 것은 매우 얻기 어려운 기연이다. 듣자니 당시 각지에 온 초대장이 매우 많았다고 한다. 사존께서 연변을 선택하신 것은 연변지역의 행운이다. 이번 전수반은 연길 체육관에서 개최됐다. 수련생의 근무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모두 저녁에 강의를 하셨다. 당시 비용은 전국 기공계에서 가장 낮았다. 신수련생은 50위안(약 9천원)을 받으셨다. 강의하는 기간에 일요일이 있었기에 사존께서는 시간을 다그치기 위해, 또 주변 현, 시와 외지에서 온 수강생이 고생을 하루라도 적게 하고 비용을 절약하게 하기 위해, 하루에 이틀 강의 내용을 강의하셔서 원래 계획보다 하루 앞당겨 마쳤다. 또개인마다 7위안(약 1,300원)을 되돌려 주셨다. 이치대로 말하면 내용을 이미 전부 강의하고 강의 시간도 보증했기에 이 돈은 돌려주지 않아도 됐다. 사존은 또 이번 강의수입 7천 위안(약 130만원)을 ‘연변 적십자회’에 기부하셨다. 이 두 가지 일에서 나는 사존의 고상한 도덕과 넓은 흉금을 보았다.”-‘잊기 어려운 연길 파룬궁 학습반’
연변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족은 매우 영광스럽고 복 많은 민족이다. 사존께서 중국대륙에 2년 정도 법을 전하셨다. 연길시는 사존께서 직접 법을 전하신 소수민족 거주지다. 장백산 아래에서 나서 자란 연변 조선족은 한족 외에 가장 일찍 법을 얻은 민족이다. 지금 한국에 많은 사람이 대법을 수련하고 있고 북한에도 수련하는 사람이 있다. 창춘 대법제자는 또 연변 제자에게 사존께서는 연변 제자의 수련 상황을 매우 관심을 갖고 지켜보신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여러 사람에게 “여러분과 사부님의 인연은 매우 큽니다. 사부님의 기대를 헛되게 하지 마세요.”라고 알려주었다! 20년이 지났다. 그때 사존께서 일찍 우리 고향에 오셔서 법을 전하고 사람을 구도한 것을 생각하면 모두 특별한 행운과 행복을 느낀다!
“크게 깨달아 마음 더욱 밝나니 법을 얻어 세간에서 행하도다. 유유한 수천 년 인연 닿자 법은 곧 이뤄지는도다”(홍음-인연). 이 시는 1994년 8월 27일 사존께서 연길 전수반 기간에 쓰신 것이다. 이 성스러운 인연은 천고까지 유전할 것이며 지금까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주의 영원불멸한 역사 속에 남겨질 것이다! 모든 연변 대법제자는 반드시 이 만고에 만나기 어려운 수련의 기연을 아껴 반드시 조사정법, 구도중생 노정에서 최후의 길을 잘 걷자!
(계속)
문장발표: 2015년 7월 2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온고명금(溫故明今)>사부님의 은혜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7/25/31151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