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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위안에서 법을 전하셨던 사부님을 회상(중)

[밍후이왕] (전편에 이어)

2. 리훙쯔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시는 기간의 기적

2월 21일 오후 1시 30분(일요일), 학습반을 개최하기 전날 사부님께서는 링강 문화궁에서 800여 명 수련생에게 공을 지니신[帶功] 보고회를 해주셨는데 2시간 반 동안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생에게 기공과 파룬따파의 법리를 설명해주시면서 공을 보내 수련생의 신체를 조절해주셔서 수련생들은 많은 혜택을 봤다. 보고회에서 많은 사람은 몸이 가벼워지고 정신상태가 좋아진 것을 느꼈다. 이것은 링강 학습반에 참가한 수련생들의 행운이었다.

파룬따파 학습반의 정식 개최는 2월 22일 제1강에서 시작해(저녁 6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2월 28일 저녁까지 제9강 설법이 모두 끝났는데 총 8일 동안이었다. 강단에 오르실 때 사부님께서는 다만 조그마한 종이 한 장만 갖고 설법을 시작하셨는데 먼저 수련생에게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시고 기공 이론과 파룬따파의 법리를 말씀해주셨다. 학습반에 참가한 대부분 수련생은 사부님의 심오한 법리, 박식한 지식에 감탄했고 수시로 박수갈채를 보냈다. 현장 모든 수련생은 각기 강렬한 에너지장을 느꼈다. 매번 설법이 끝난 후 사부님께서는 직접 수련생에게 파룬궁 동작을 가르쳐주셨는데 어떤 때 직접 강단에서 내려오셔서 수련생들이 다 배울 때까지 가르쳐주셨다. 이렇게 사부님께서는 학습반 개최 기간에 매일 10시 반 후에야 문화궁을 떠나셨고 호텔로 돌아오시면 또 수련생이 보낸 편지와 학습 심득을 보셨다.

링강의 학습반에서 사부님께서는 알아듣기 쉬운 말로 심오한 이치를 설명해주셨고 신기한 공력으로 수련생의 심신이 혜택을 받게 해주셨다. 수련생들은 당시 행복한 시간을 회상하면 지금까지도 흥분을 금할 수 없다. (주: 아래 문장의 ‘나’는 동일한 수련생이 아니다.)

1) 한번 만난 인연, 운전기사의 요통이 흔적 없이 사라지다

사부님을 마중해 링위안으로 오는 길에서 기사 차오(曹)씨는 “(노조) ○ 대표님, 제 요통은 몇 년이나 됐는데 몇 시간 운전하면 허리가 아프고 치료해봤지만 나아지지 않아요. 최근에 더 심해졌어요.”라고 했다. ○ 대표는 “그럼 따라서 기공을 배워봐요. 나아질지도 몰라요.”라고 했다. 차에 앉으셨던 사부님께서는 들으셨지만, 당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셨다. 차가 링강 호텔에 도착했을 때 차오 씨가 가려고 할 때 사부님께서는 “나았어요. 다시는 허리가 아프지 않을 겁니다(대의).”라고 하셨다. 차오 기사는 듣고 매우 놀랐고 연속 감사하고 했다.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다른 사람들도 기뻐했지만 그리 믿지는 않았다.

3일 후 사부님께서 링강 문화궁에서 학습반을 개최하실 때 차오 씨 부부는 아침 일찍부터 문화궁 앞에서 사부님을 기다렸고 그의 허리가 정말로 나았기 때문에 직접 리훙쯔 사부님께 감사드리려 여기로 왔다고 했다. 차오 씨의 요통은 모르는 사이에 정말 다 완치됐는데 사람들은 신기해했다.

2) 기공을 배울 수 없었던 세 사람

사부님께서는 학습반 참가자에 대한 요구가 매우 엄격하셨다. 모든 사람이 파룬궁을 연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사부님께서는 21일 오전을 이용해 모든 수련생의 신청서를 열심히 확인하시고 780여 개 신청서에서 링강 병원의 ○○, 공장의 류○○, 또 이름이 기억나지 못한 한 사람을 지목하신 후, 이 세 사람은 학습반에 참가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으니 학습반에 참가하지 말도록 링강 문화궁 책임자에게 통지하라고 하셨고 신청 비용을 돌려주라고 하셨다. 동시에 인내심을 갖고 세 사람에게 파룬궁을 연마하지 말고 가장 좋기는 다른 공법도 배우지 말라고 설득하라고 하셨으며 만약 그들이 기공을 배우려 고집을 부린다면 본인과 가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알려주라고 하셨다.

이후에 조사해서야 이 세 사람은 모두 기타 공법을 배운 적이 있고 일정한 정도로 정신과 신체적 장애가 있었으며 직장과 가정생활이 모두 비정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일은 링강노조 지도자와 학습반 개최에 참여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정말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했고 사부님께서 너무 대단하시다고 생각했다. 이 세 사람의 신청서는 다른 사람과 별 다르지 않았는데 사부님께서는 어떻게 이 세 사람이 기공을 배울 수 없는지 아셨고 또 그렇게 정확하게 아셨는지 신기했다!

3) 사부님께서 가져오신 수강증이 신청 인원과 똑같았다

대법학회에서는 사람마다 수강증이 있어야 하고 수강증을 들고 설법을 들어야 한다고 요구했고 수강증은 베이징 법회에서 준비했다. 주최자는 200명이 참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홍보한 후 신청자가 700여 명에 달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수강증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주최자는 매우 조급했다. 뜻밖에 사부님께서 오셔서 700여 개 수강증을 가져왔다고 하셨다. 마침 신청 인원과 똑같았다. 학습반 개최에 참여한 사람들은 정말 놀랐고 드디어 인연 있는 사람이 모두 법을 들을 수 있다고 기뻐했다.

4) 우리가 부딪힌 문제를 미리 알고 계셨던 사부님

사부님께서 제4강 설법 중 특히 불가공과 불교 등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링강 정치공작계 지도자는 좀 받아들일 수 없었고 파룬궁은 ‘봉건 미신’을 선전한다고 생각했다. 일부 지도자의 비평과 비난은 확실히 노조 지도자에게 매우 큰 압력을 가했다. 회사의 정치공작회의가 끝난 후 당시 전 노조 대표 두 사람은 리훙쯔 사부님을 뵈러 호텔에 갔다.

방문이 열린 후 사부님께서는 열정적으로 앉으라고 안내하셨다. 그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사부님께서는 먼저 (대의) “지금 벌써 제4강까지 설법했고 회사 지도자가 일부 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어 난처해지고 있지요? 우리 공법연구회 증서와 자격증을 한 번 보여줄 테니 복사해 등록할 수도 있고 회사 법률팀에게 한번 검토하라고 해도 되며 선전부도 여기에 와서 인터뷰할 수도 있어요.”라고 하셨다. 사부님 말씀은 그들을 매우 놀라게 했다! 금방 끝난 회의 내용을 어떻게 아신 것일까! 회의에 참가한 사람들은 그들 둘뿐이라 사부님께 말씀드릴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말하면서 사부님께서는 이미 준비해 놓은 몇 개 증서를 그들에게 건네주셨다. 증서 중 국가 민정부에서 발급한 ‘국가 사단법인 증서’, 중국 기공 연구회에서 발급한 ‘중국 기공 과학연구회 직속공파 증서’, ‘중국 기공 과학연구원 직속기공사 증서’, 베이징시 공상국에 등록 및 발급한 ‘전국 기공 학습반개최 영업 면허와 유료자격증’이 있었고 또 일부 자격증과 표창장도 있었다. 이 증서들을 본 후 그들의 마음의 압력은 단번에 사라졌고 또한 중국 파룬궁은 국가에 등록한 합법적인 사단 조직이고 파룬궁이 전국에서 학습반을 개최하는 것은 합법적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후에 링강 신문사에서는 사부님과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기자 후(胡) 씨는 ‘링강보’에 보도를 실었고 사진도 삽입했다. 잇따라 링강 노조, 링강 신문사, 링강 법무팀에서는 각기 파룬궁과 리훙쯔 사부님의 관련 증서, 자격증을 복사하고 등록하자 정치 공작계 지도자도 할 말이 없게 됐다.

5) 찍히지 않는 사진

사부님께서는 설법하실 때 수련생에게 먼저 집중해 들어야 하고 사부님을 향해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하셨다. 회의장에서 사진을 찍고 녹화하는 것은 링강 노조가 배치한 전문가만 할 수 있었고 다른 사람, 수련생을 포함해 설법 때 사진을 찍을 수 없으며 만약 찍어도 사진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특히 제1강 때 어떤 수련생은 사부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았고 믿지도 않았으며 매우 예절 없이 강단에서 설법하시는 사부님을 향해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 섬광과 사진 찍는 소리는 강의하시는 사부님과 귀를 기울여 듣는 수련생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럴 때마다 사부님께서는 보통 제지하셨고 이렇게 하면 수업질서에 영향을 준다고 지적하시며 허락 없이 회의장에서 사진을 찍으면 사진이 찍히지 않는다고 알려주셨다! 사부님의 비평에 대해 많은 사람은 처음에 믿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회의장에서 마음대로 찍은 사진은 아무런 영상도 얻지 못했다. 예를 들어 회의장의 세 번째 줄 중간에 앉았던 진저우(錦州)시에서 온 수련생은 말을 듣지 않고 회의장에서 사진을 몇 번 찍었지만, 이튿날 사진관에 가서 현상하자 필름에 아무런 영상이 없었다. 그는 이를 보고 사부님께 완전히 탄복했다.

6) 사부님께서 정확하게 홍산 여신상을 그려내시다

링강 학습반 기간, 사부님께서는 기본상 저녁에 설법하시고 공을 가르쳐주셨으며 낮에는 활동이 많지 않으셨다. 이 기간에 링강 노조에서는 온천에 가자고 여러 번 사부님을 초청했지만, 매번 완곡한 거절을 당했다. 그런데 링위안 우하량(牛河梁) 홍산(紅山) 문화 유적을 참관하자고 제안하자 사부님께서는 흔쾌히 응하셨다.

2월 25일 오전, 사부님께서는 홍산 문화 유적에 도착하셨다. 당시 문화 유적 전시관은 폐관 기간이라 산꼭대기에서 토단(土壇)과 제사단 밖에 볼 수 없었다. 간단하게 한 바퀴 돌고 누구도 사부님께 홍산 문화를 소개해 주지 않은 상황에서 사부님께서는 이 유적은 5,500년 전에 모계 사회가 남긴 것이라고 하셨고 쪼그리고 앉아 나뭇가지로 머리카락은 오른쪽으로 빗었고 눈이 매우 큰 한 여신상을 그려내셨다. 또 계단형 단상을 그리시고 우리에게 이곳 지형과 당시 인류의 복장, 경제 등 상황을 설명해주셨다. 이 모든 것은 링위안 홍산 문화부에서 전시한 홍산 여신의 사진과 홍산 유적의 구조, 형태와 매우 비슷했다.

사부님께서 밝혀내신 홍산 문화의 비밀과 그리신 여신상은 함께 참관하는 사람들을 매우 놀라게 했다.

7) 천고의 전설을 증명하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링위안 산속에 3천 년 넘게 수련한 수련인이 있지만, 그녀를 찾으려 하지 말고 또 찾지도 못할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우리는 듣고 매우 놀랐다. 이 전설은 줄곧 링위안의 이전 세대 사람들 속에서 널리 전해져왔지만, 중국공산당의 무신론 영향으로 사람들은 웃음거리로 생각했었는데 사부님 말씀은 이 천고의 전설의 진실성을 증명하셨다.

8) 말기 암 환자인 수련생 A가 구사일생

나는 올해 73세인데 어릴 때부터 체력이 약하고 병이 많았다. 커서 시집을 갔는데 식구가 많고 일이 힘들며 천대를 받아 많은 질병이 생겼다. 91년에 온몸이 나른하고 극도의 빈혈 증상을 보여 청더(承德)에 가서 건강검진을 했는데 의사는 엑스레이를 보고 깜짝 놀라면서 “이것, 너무 심해요. 유방암 2기 말기예요. 오른쪽 유방에 가득 자라있고 왼쪽은 이미 암으로 변했으며 큰 암은 큰 게처럼 가슴을 꽉 잡고 있으며 주위에 또 한 바퀴가 있어요.”라고 했다. 당시 청더 병원에서는 수술할 수 없어 선양에 가서 절제수술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의사는 가족에게 길어야 3년을 넘기지 못한다고 했다. 어느 날 영원히 세상을 떠날 것으로 생각하니 나는 극도로 낙담했다.

나는 94년 정월에 한번 시험 삼아 들어보겠다는 마음으로 링강 첫 파룬궁 학습반에 참가했다. 사부님께서 공을 지니시고 하신 보고회에서 사부님께서 너무 잘 말씀하셨다고 생각했고 들을수록 듣기 좋았으며 들을수록 편안했다. 당시 사부님에 대해 ‘기공사가 아니라 분명히 높은 곳에서 내려온 큰 부처님’이라고 생각했다. 회의장에서 나오자 온몸이 가벼웠고 기뻐서 어쩔 바 몰랐다. 제3강 때 가족이 데려다주지 않았는데 혼자서 갔다가 혼자서 돌아왔다.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사부님의 법리를 통해 병은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았고 사부님 말씀을 듣고 ‘진선인’대로 했으며 약도 버렸다. 사부님께서 설법을 너무 잘하셨기 때문에 더 듣고 싶었다. 가족의 지지 하에 나는 연속 사부님의 링위안, 진저우, 다롄, 하얼빈과 창춘 등 6개 학습반을 따라다녔다. 20여 년간 사부님의 보호 아래 나는 줄곧 수련의 길을 평온하게 걷고 있고 ‘진선인’대로 마음을 닦고 층차를 제고하고 있다.

9) 수련생 B “사부님의 한마디로 내 다리가 치료됐다”

사부님께서 곧 링강에 오셔서 설법하시려는 93년 12월 31일, 나는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다리가 부러졌고 온 다리가 부어 매우 조급했다. 94년 2월 21일 저녁, 나는 고통을 참고 호텔 문 앞에 와서 사부님을 맞이했다. 사부님 옆에 있던 제자 류씨가 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라고 물었다. 그래서 상황을 간단하게 소개했다. 류씨는 “조용히 있어봐요.”라고 했다. 좀 지나 머리부터 아래로 갑자기 매우 편안해진 것 같았고 다리를 움직여보자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설법하시는 셋째 날, 내가 절뚝거리는 것을 보시고 사부님께서는 어찌 된 일인지 물으셔서 또 한 번 상황을 말씀드렸다. 사부님께서는 “점프해요, 위로”라고 하셨다. 나는 사부님 말씀을 듣고 위로 점프했는데 점프할수록 구름을 탄 듯 편안했고 다리가 아프지도 절뚝거리지도 않아 매우 기뻤다.

사부님께서는 붙임성이 좋고 얼굴이 인자해 내게 깊은 인상을 주셨다. 사부님과 함께 식사할 때 사부님께서는 자주 우리에게 음식을 집어주셨고 또 매 사람에게 명함 한 장씩을 주셨는데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다.

10) 수련생 C “사부님 은혜 영원히 잊기 어려워“

우리 가족은 네 식구인데 아이 둘은 공부하고 있고 아내가 병이 있어 몇 년간 침대에 누워있었으며 어떤 때는 정신이 흐리멍덩하고 며칠 동안 밥을 먹지 않았다. 혼자서 출근하고 가정을 먹여 살려야 할 뿐만 아니라 아내에게 치료도 해줘야 했다. 사부님께서 링강에서 설법하러 오신다는 것을 듣고 희망을 품고 온 가족과 함께 법을 들으러 갔다. 제1강 후 사부님께서는 우리 앞에 오셔서 집이 어려우니 아내의 수강비를 돌려주지만, 아내를 데리고 와서 강의를 듣는 것을 허락해 주신다고 하셨고 제3강 때 꼭 오라고 거듭 당부해 우리는 크게 감동했다. 그러나 제3강 때 아내는 오지 못했다. 제4강이 끝난 후 아내를 자전거에 태우고 아이 둘이 부축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회의장 문 앞에 왔을 때 사부님께서 큰 걸음으로 우리를 향해 걸어오셨는데 우리 앞에 와서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고 아내의 눈만 두 차례 보셨다. 집에 돌아온 후 아내는 토하기 시작했는데 고름과 피를 토했다. 이튿날 아내는 밥을 좀 먹을 수 있었고 침대에만 누워있지 않았으며 뚜렷하게 신체가 좋아졌다.

설법이 끝날 때 우리는 사부님을 뵈러 갔다. 떠나려고 할 때 사부님께서는 좀 있다가라고 나를 불러놓고 방으로 돌아가 귤 하나를 가져오셔서 손에 좀 들고 있다가 건네주시면서 돌아가 아내에게 주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집에 돌아가 아내에게 귤을 줬더니 아내는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처럼 받아 쥐고 귤 껍질을 벗기지 않고 직접 입에 넣었다. 이후부터 아내는 정상적으로 밥을 먹었고 신체도 하루하루 건강해졌다. 우리 온 가족은 어떻게 사부님께 감사드려야 할지 모른다.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많은 이치를 알게 됐고 심성도 조금씩 제고됐다. 한번은 연공하고 있는데 아내가 뛰어와 나를 넘어뜨렸다. 이번에 나는 심성을 지키고 아내를 때리거나 욕하지도 않았고 거기에 누워서 ‘내가 당신 가슴을 너무 아프게 했구나. 지금 다 갚아줄게’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이때 사부님께서 가부좌하시고 오셔서 내 머리를 만져주고 가시는 것을 보았다. 또 한 번은 아내가 갑자기 신발 하나를 내던졌는데 나를 맞히지 못했고 몇 번이나 나를 때리려 했지만 때리지 못했다. 당시 나는 심성을 지키고 앉아서 움직이지 않았다. 갑자기 가슴 속에 달달한 감로가 아래로 이동했다. 또 한 번은 가부좌할 때 머리를 풀어헤친 한 사람이 나를 뒤쫓고 나는 위로 상승하고 매우 매우 높은 곳으로 상승하는 것을 봤다.

11) 수련생 D “사부님께서 내 몸의 부체를 떼어주셨다“

사부님께서 링강에 와서 설법하시기 전에 동료 집에 갔다 왔는데 몸이 매우 괴로웠고 밥이 내려가지 않았으며 잠도 잘 수 없었다. 가족은 나를 데리고 선양, 베이징 병원에 갔지만 치료하지 못했다. 점쟁이는 내게 부체(附體)가 있어 그 물건이 그런 것이라고 했다. 나는 매우 고통스러웠고 심지어 출근할 수 없었으며 사부님께서 링강에 오셔서 설법하기 전까지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 못했다. 제3강까지 들었을 때 많이 편안해진 것 같았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는데 언제부터인지 가슴이 ‘퉁퉁퉁’ 세게 3번 움직이는 바람에 깨어났다. 이때서야 자신이 잠이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가슴이 뛴 후 신체는 전례 없이 편했고 이후부터 밥을 먹을 수 있었고 잠을 잘 수 있게 됐다. 이후에 나는 또 연속 사부님의 4개 학습반을 따라 다녔고 신체도 점차 나아졌다.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사부님께서 내 몸에 있는 부체를 떼어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 온 가족은 목숨을 구해주신 사부님께 매우 감사드렸고 이 후로 확고하게 대법을 지금까지 수련해왔다.

12) 수련생 E, 고질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몇 년 간 기관지 확장증이 있어 기침하고 피를 토했다. 의사는 치료할 약이 없고 누가 치료해주면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했다. 약으로 치료하지 못하자 또 몇 가지 기공을 배워봤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이후에 파룬궁이 좋다는 것을 듣고 한 번 시험해보겠다는 마음을 갖고 표를 샀다. 제1강은 사부님의 공을 지니시고 한 보고회였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눈을 감고 자신의 한 가지 병을 생각하라고 하셔서 나는 기관지 확장증을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사부님의 큰 손이 내 가슴 가까이에서 한번 휘두르시는 것 같았다. 즉시 매우 편안해졌다. 이후에 나는 또 사부님의 설법 녹화를 두 번 봤는데 매번 자신의 병을 생각했을 때 여전히 사부님의 큰 손이 내 가슴 앞에서 휘두르시는 느낌이 들어 매우 편안했다. 이후로 기침도 하지 않고 피도 토하지 않았다. 한동안 지나 어느 날 출근하는데 갑자기 세게 아프더니 크게 기침하고 피를 토했다. 소업이고 사부님께서 신체를 청리해주신다는 것을 깨닫고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고 벽에 기대고 가만히 앉아있었더니 천천히 기침하지 않고 피도 토하지 않았다. 2시간 후 일어나려고 시험해봤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고 오히려 매우 편안해 큰 걸음으로 집으로 걸어갔다. 20여 년이 지났는데 기관지 확장증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13) 수련생 F, 손에 작은 파룬이 돌고 있는 것을 보다

무슨 영문인지 배꼽에서 언제나 밖으로 고름이 나왔는데 흘러나오면 매번 휴지 반 통을 사용해야 했다. 조금만 움직이면 온몸이 세게 아팠고 온몸에서 땀이 났다. 의사는 창자가 감염됐을 수 있다며 입원하여 치료하라고 했다. 당시 마침 사부님께서 링강에 설법하러 오셨는데 인연이 있는 나는 설법을 듣게 됐다. 사부님께서 공을 지니시고 한 보고회에서 사부님께서는 (대의) “여러분 모두 자신의 손을 봐요. 사람마다 손에 작은 파룬이 있어요.”라고 하셨다. 나는 정말 작은 파룬이 손에서 돌고 있는 것을 봤다. 사부님께서는 또 우리에게 자신의 병을 하나 생각하라고 하셨는데 나는 자신의 배꼽에서 고름이 나온다는 것을 잊고 가족의 병을 생각했다. 사부님 설법에 따라 배꼽의 고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아졌고 다시는 재발되지 않았다.

14) 한 차오양(朝陽) 수련생의 기억

사부님의 학습반에 참가하기 전에 나는 신체가 약하고 질병이 많은 노인이었고 10여 가지 질병이 있었다. 그 중 골다골증, 근육위축, 심장병, 류머티즘성 관절염, 백전풍, 다리 통증이 있었고 시력이 나빠 200여 도 돋보기를 끼고 봐도 신문 큰 제목 밖에 볼 수 없었다. 처음으로 사부님 학습반에 참가했는데 눈이 좋아졌고 기타 여러 질병이 다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1994년 정월 초여흘, 사부님께서는 초대를 받아 링강에서 학습반을 개최하셨다. 이번에 어린 손자와 함께 법을 들으러 갔다. 그는 그해 9살이었는데 비장이 좋지 않아 밥을 잘 먹지 못해 늘 약을 먹어야 했다. 학습반이 개최된 이튿날에 사부님께서는 그의 신체를 정화해주셨고 그 후부터 잘 먹고 잘 마실 수 있어 신체가 매우 좋아졌다.

이번에 링강에 와서 설법을 들을 때 한 60여 세 여성 수련생을 만났다. 그녀는 원래 교사였는데 문화혁명 기간에 시골에 내려와 소위 ‘노동개조’를 당했다. 어느 날 여러 묶음 수수를 차에 싣는데 이미 너무 높게 쌓아 더 올려놓기 힘들었는데 감독이 옆에서 음흉하게 웃으면서 억지로 더 실으라고 했다. 힘을 세게 쓰는 바람에 허리뼈가 심하게 휘어져 몇 년간 돈을 많이 썼지만 치료하지 못해 거의 마비상태에 있었다. 1993년에 그녀는 운 좋게 베이징 동방건강 박람회 학습반에 참가했는데 사부님께서는 그녀의 신체를 정화해주셨고 그 후 삐뚤어진 허리는 기적처럼 나았다. 사부님께서 링강에서 학습반을 개최하신다는 것을 듣고 그녀는 왔다고 했다.

(계속)

문장발표: 2015년 7월 29일
문장분류: 온고명금(溫故明今)>사부님의 은혜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7/29/3131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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