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 다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신수련생이자 노수련생이다. 노수련생이라고 하는 것은 1998년 5월 고모의 소개로 수련을 시작했지만 1999년 7월 박해 후에 두려운 마음 때문에 숨었고 대법과 멀어졌기 때문이다. 마음속으로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정정당당하게 수련하지 못했다.
어느덧 십여 년이 지나갔다.
2014년 4월,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 갑자기 배와 허리가 아팠으며 피가 멈추지 않아 잠도 잘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대체 인력을 찾아 나를 대신해 출근하게 한 후 나와 남편은 다칭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 자궁암이었는데 세 차례 검사했지만 모두 암이었고 병세가 급속도로 나빠졌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사람이 만약 암에 걸렸다면 생명이 끝난 것과 마찬가지인데 이미 사경에 처한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들과 딸이 각각 한 명 있는데 큰 아들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작은 딸은 이제 겨우 6살이어서 학교에 다니지도 않는다. 만약 어머니가 없다면 애들은 어찌하겠는가? 속으로 안절부절못했고 남편도 혼이 빠진 것 같았다. 수술을 한다 해도 목숨을 꼭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쩔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대법 사부님이 생각났다. 그래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 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기 시작했고 올케도 전화 와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라고 격려하면서 오직 사부님만이 나를 구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4월 8일, 나는 수술을 해서 자궁을 모두 적출했다. 한 달 동안 입원한 후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을 때 나는 집에 돌아가 대법을 배우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몸에 있던 소변 주머니도 떼어내지 못했다. 5월 13일, 나는 항암치료를 받았는데 두 번 치료에 머리카락이 모두 빠졌다.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대법을 배우기 시작했고 고모도 나를 보러 왔다. 고모는 대법을 수련하기 위해 수많은 고생을 했다. 사악한 공산당은 그녀를 박해해 두 번이나 감옥에 넣었지만 그녀는 모두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에게 “너는 반드시 대법으로 다시 돌아와야 해. 이 대법은 누구나 다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야”라고 말했다. 고모는 나와 많은 것을 얘기했고 나는 속으로 몰래 결심을 내렸다. ‘반드시 대법으로 돌아와 정정당당한 대법제자가 될 거야!’
2014년 8월 17일, 나는 연공하기 시작했고 예전에 소중히 간직했던 ‘전법륜’ 책을 다시 구했다. 한 번 또 한 번 책을 읽었고 매일 연공과 법학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고모는 나를 도와 동작을 바로잡아 주었고 나는 그 동안 사부님의 설법을 모두 찾아 한 번 읽었으며 사부님 법상도 청했다.
법학습과 연공을 통해 신체변화가 아주 컸다. 원래는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먹고 마실 수도 있었으며 머리카락도 다시 자랐다. 우리 병실에 있던 네 명은 모두 같은 병이었는데 오직 나만 빨리 나았다. 가족들은 시름이 놓이지 않아 기어이 나보고 하얼빈에 가서 재검을 받으라고 했다. 그러나 재검 후에도 아무 일도 없었고 나는 마치 사람이 변한 것처럼 병이 완쾌돼 가정에 온화함과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사부님께서 나를 구해주셨고두 번째 생명을 주셨다. 오로지 정진해야만 사존의 자비로우신 고도(苦度)에 보답할 수 있다. 나는 매일 법학습과 연공, 발정념을 하는 외에 나가서 대면해서 진상을 알렸다. 처음에는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내가 직접 겪은 경험으로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했다. 그 후 광장에 가서 말했는데 사람이 많은 곳에 가도 두렵지 않았고 그들에게 션윈 CD 등을 나눠주었다.
비록 나는 대법 속으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예전의 나처럼 두려움 때문에 수련을 포기한 수련생들을 도와 그들이 정법노정을 따라가고 조사정법하도록 도와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했으면 가서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예전에 알고 있었던, 탄압과 박해 때문에 수련을 포기한 수련생을 찾아갔다. 자전거를 타고 몇 킬로미터를 찾아가 그의 집에 도착한 후법에서 깨닫게 도와주었고 그도 다시 돌아왔다. 지금 그는 이미 80여 세이기에 나는 인내심을 갖고 그에게 동작을 가르쳐주고함께 법학습을 했다.
또한 나도 장쩌민 고소 열풍에 참여했다. 나는 최고인민검찰원에 장쩌민 고소장을 제출했고 답장을 받아 밍후이왕에도 올렸다. 비록 다른 수련생들처럼 박해는 받지 않았지만 대법의 한 입자로서 나도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함으로서 장장 16년에 달하는 이 사악한 박해를 종결하려 했다. 박해 원흉을 추궁해 거짓말에 속은 더욱 많은 중생들을 구도하고 사부님과 파룬따파의 결백을 되찾으며 우리의 수련환경을 돌려달라고 했다.
대법을 확고히 믿고 ‘진선인(眞善忍)’ 대법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했기에 나 자신의 개변은 가정에 극히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작은 딸도 대법을 얻었고 매일 나를 따라 법학습과 연공을 하면서 심성을 아주 잘 지키고 있다.
남편 역시 대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큰 아들은 예전에 말을 잘 듣지 않고 학교에서 공부도 하지 않아 선생님은 그에게 ‘골치 아픈 오빠’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즉 까탈 부리고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으며 제멋대로 한다는 것이다. 가끔 나는 화가 나서 울기도 했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이번에 아들은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했다. 남을 예절 바르게 대하고 싸움도 하지 않았으며 친구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집에서도 어른을 존경하고 동생한테 양보했다. 공부도 하기 시작해 선생님들 모두 이상하다고 하면서 ‘골치 아픈 오빠’가 이젠 힘들게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회사에서는내 병원의료비를 원래는 1만 얼마밖에 되돌려주지 않았고 그것도 연줄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 어떠한 연줄도 찾지 않았지만 나에게 3만 얼마를 되돌려주었는데 나는 정말 사부님께 감사를 드린다.
대법으로 돌아온 후 사부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문제에 부딪치면 안에서 찾았다. 원래 속인일 때 늘 시어머니가 애기를 봐주지 않아 매우 화가 났다. 법을 배운 후 안으로 찾아 시어머니에 대한 태도에도 큰 변화가 생겨 지금은 고부간의 관계가 아주 좋다.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도 다시 대법 속으로 돌아왔고 시아버지 집도 법학습 소조가 됐다. 시아버지는 아주 정진하는데 매일 진상을 알리신다.
매번 법에서 깨닫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수련생들과 교류하는데 제고가 아주 빨랐고 수련생들도 열심히 나를 도와주었다. 그러므로 나는 자신의 실제 행동과 진실한 마음으로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려고 한다.
나는 끊임없이 정진해 마지막 정법의 길을 잘 걸음으로서 정정당당하게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다.
문장발표: 2015년 8월 7일
문장분류: 톱기사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8/7/31374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