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마음속에 중생을 두고 착실하게 사람을 구하다

글/ 간쑤(甘肅) 대법제자 천위

[밍후이왕] 나는 97년에 법을 얻은 노제자로 올해 48세이다. 예전에 뼈 결핵에 걸려 90도로 허리를 숙이고 1년간 걸어 다니다 후에는 거의 걷지 못하고 소파 한쪽에 베개를 두고 비스듬히 누워있어야 했다. 매일 대량의 진통제를 먹어 고통을 완화했는데, ‘전법륜’을 한번 본 후 사부님께서 파룬을 보내 나의 신체를 정화해주셨다. 그 후부터 나는 병이 없는 가벼운 몸이 되었다. 친척과 친구들이 내 몸의 변화를 보고 수련의 대열에 들어섰다. 수련을 10여 년 했기에 나는 사부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모두 믿는다. 사부님의 법에 확고하며 의혹이 없다.

수련인은 적이 없다

작은딸이 출생하기 전부터 남편에게 정부가 있어서 집에 자주 오지 않았다. 당시 나는 직장에서 퇴직당하고 두 딸이 있는데도 남편은 생활비를 주지 않았다. 2년 후 남편과 이혼을 했는데, 남편은 또 새살림을 차리고는 나를 고소했다. 법원은 일방적으로 나에게 10만 위안(약 1,786만원)의 채무를 갚으라고 판결했다. 대법이 박해당하던 초기에 나는 사당의 시달림을 피해 떠돌이생활을 했다. 당시 7살이던 큰딸은 친정엄마가 키워줬고, 장애인 작은딸은 남편에게 양육판결이 났다. 남편은 재혼 후 아이가 없었는데도 10여 년간 한 푼도 아이에게 주지 않았다. 수련인은 적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매년 고향에 갈 때마다 옷과 선물을 사서 남편과 남편가족, 할머니를 뵈러 갔다. 처음에 남편가족은 나를 무시하며 물 한잔도 주지 않았다. 친구는 불평했지만 나는 웃으며 “단지 그들이 진상을 알고 좋은 미래가 있으면 만족한다. 나는 따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가 그들에게 진심으로 대하고 고모와 고모부에게도 내가 생활비를 가지러 온 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이 잘 살면 기쁘다고 말했다. 매번 갈 때마다 할머니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다)”를 기억하라고 말했다. 할머니가 신체가 건강하면 나는 마음이 놓인다. 할머니는 기뻐하며 기억했다고 했다. 악한 인연과 선한 인연은 모두 풀어야 하며 그들이 대법의 진상을 요해하게 하는 것이 가장 큰 선해이다.

중생을 마음에 두다

내가 아는 사람, 혹은 나와 인연이 있는 중생에게 나는 열심히 진상을 알린다. 나는 18살 때부터 직장 생활을 했고 10여 개 단위로 순환했으며 몇 년간 옷 장사를 했다. 예전의 단위 동료와 친구를 생각하면 그들을 구하고 싶어서 마음이 급하다. 머릿속에 누구를 구하겠다고 생각하면 얼마 후 그 사람의 이름과 주소가 생각났다. 만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편지를 썼다. 아버지 친구, 동생 친구, 동창, 여동생 친구, 동창, 내가 만났던 사람이 생각나면 진상 자료를 주었다.

나는 매일 2살 된 장애인 딸을 안고 진상자료를 배포했는데, 외향적인 성격이라 활달해서 사람만 만나면 가까워질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내가 진상을 알리는데 기초를 닦아 놓은 것이다. 한 수련생이 내가 아이를 안고 자료까지 등에 지니까 불편해 보였는지, 나에게 중고 자전거를 사주었다. 그래서 지금은 자료를 배포할 때 아이를 자전거 광주리에 앉히고 아이에게 조용히 타이른다. “엄마는 자료를 배포하여 사람을 구해야 하니까 여기에 잘 앉아 있고 움직이면 안 돼.”

10여 년간 6번 이사를 했다. 내가 살았던 그 지방의 큰길이나 골목마다, 상점, 매점 등 모두 배포했다. 내 주변의 사람은 모두 나와 인연 있는 사람인 것이다.

매년 명절이 되면 친척과 친구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한다. 명절에는 대부분 사람들이 집에 있다. 우리는 80여 명이나 되는 대가족인데 기본적으로 진상을 알고 삼퇴를 했다. 둘째 삼촌네 일가가 탈당하지 않았다. 둘째 삼촌 일가족이 삼퇴하지 못한 게 마음의 병일 정도다. 그들은 비교적 경제사정이 좋고 아들, 딸, 사위 모두가 공, 검, 법에서 일하고 있다. 모두들 당원인데, 둘째 사위는 국가안보처장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사이가 좋았지만, 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들도 많이 변했다.

2012년 1월 6일, 나는 둘째 여동생 집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려 했다. 둘째 매부는 국가안보처장이다. 정념으로 전화를 걸자 둘째 여동생은 저녁에 일이 있다며 내일 친구를 초대하니 학교 모모 식당에 밥 먹으러 오라고 했다. 뒷날 나는 기쁘게 식당에 갔는데 기회를 빌려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몇 개 테이블에 사람이 많아서 기회가 되지 않아 알리지 못했다. 밥을 먹고 난 뒤 친척과 친구를 초청해 셋째 여동생 집에 가서 카드를 치자고 했다. 그들 모두 차량이 있어서 차를 타고 가면서도 아무도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없었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기에 홀로 묵묵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당시 나는 크게 자존심이 상했는데, 10여 년이나 수련하면서 무수한 고생을 겪어도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는데도 당시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고모가 마지막에 차를 타다가 내가 홀로 묵묵히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차에서 내려 “우리 택시 타고 큰고모 집에 가자.”라고 했다. 길에서 나는 마음이 괴로웠다. ‘그들을 구하지 않고 내일 집에 가야지’ 하지만 마음은 아팠다. 큰고모 집에 갔더니 작은고모가 “우리 셋째네 집에 가지 말자”고 했다. 작은고모도 내 마음이 좋지 않다는 것을 보았다.

나는 시간을 내어 수련생에게 전화를 걸었고 흐느끼며 방금 발생한 일에 대해 말했다. 수련생은 격려해주면서 구세력이 그들을 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속임수에 넘어갔다고 말했다. 전화를 끊은 뒤 사존님께서 말씀하신 “행각은 무척 고생스러운 것으로, 사회에 다니며 동냥을 해야 하는데, 각종 사람과 마주치게 된다. 그를 비웃고, 그에게 욕설을 퍼붓고, 그를 우롱하는데, 어떤 일에든 모두 부딪힐 수 있다.”[1]가 생각났다. 나는 그들이 오라고 하지 않아도 가야 한다. 나는 고모에게 셋째 여동생 집에 가야 한다면서, 내가 1년 내내 외지에 있고 명절에만 한번 집에 온다고 했다. 나는 셋째 여동생 집에 갔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나는 주방에 들어가 일을 도왔다. 셋째 여동생은 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자격지심과 체면을 중히 여기는 마음을 내려놓고 채소를 씻고 썰었다. 여동생과 일상생활을 이야기 하고 어린 시절도 이야기 하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완화했다. 얼마 후 여동생은 “언니는 무엇을 하든지 다 잘해요.” 순간 나와 여동생이 가까워졌기에 곧장 여동생에게 말했다. “1년 내내 나는 집에 있지 않아, 네가 진상을 알고 좋은 미래가 있길 바란다.” 여동생은 흔쾌히 받아들이고 삼퇴를 했다.

작년에는 고향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둘째 삼촌 일가족이 아직 삼퇴를 하지 않아서 고향에 가기로 했다. 나에게 이런 소원이 있으면 사부님께서 기회를 배치해 주신다. 몇 번의 가족모임에서 몇몇 여동생과 언니, 형부가 내 옆에 앉았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에게 삼퇴를 권했더니 모두 삼퇴 하겠노라고 했다. 나는 깨달았다. 상대방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에게 싫은 말을 듣기 싫어하는 마음이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었다. 법에 대한 이성적 인식이 또 승화되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동료와 친구들은 거의 삼퇴를 했다. 나는 대법의 신기함에 깜짝 놀랐다. 사존께서 말씀하신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1]가 생각났다.

사존께서 나에게 원한의 연(冤緣)을 풀어주시다

2013년 9월 28일은 내가 10여 년간 수련하면서 각골명심인 하루다. 나와 수련생이 한 남자에게 진상을 알렸다. 당시 남자는 흉악해 보였다. 수련생이 진상을 말할 때 나는 발정념을 했다. 처음에 남자는 대법에 불경한 말을 몇 마디 했지만 나는 모두 정념으로 제지했다. 수련생이 한참을 말해도 남자가 알아듣지 못하고 도리어 업을 짓는 말을 해서 수련생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 내가 그 남자 앞에 앉아서 말했다. “오빠, 사람이 만나는 것은 모두 인연이에요.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어요. 단지 당신이 진상을 알고 좋은 미래가 있기를 바란답니다.” 나는 제삼자처럼 내가 대법을 수련한 후의 변화를 말했다. 분명히 남자는 그렇게 흉악하지 않았는데, 나는 그의 눈을 보고 정념으로 제지했다. 후에 그는 대법에 대한 불경의 말을 하지 않았다. 당시 우리는 그를 우연히 만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만약 진상을 잘 알리지 못하면 기연은 더는 없다. 그러므로 그에게 많은 진상과 삼퇴에 대해 말한 것이다.

뒷날 내가 출근할 때 10시쯤 배가 살살 아팠다. 나는 급히 심성에서 어떤 누락이 있는지 찾았으나 큰 문제는 찾지 못했다. 11시쯤에는 아파서 허리도 펴지 못할 정도라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갔다. 어머니가 발정념을 해 주어도 소용없이 설사하고 토하며 마지막에 흰 거품 같은 것을 토했다. 창자가 꼬이듯 아픈 게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아픈 강도가 여전했다. 앉아 있을 수도 없어서 나는 누워서 발정념을 했고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다. 오후 6시쯤 나와 함께 출근하는 수련생이 다른 두 수련생에게 알렸다. 그들은 우리 집으로 와서 새벽 1시까지 발정념을 했다. 아픔은 좀 감소했지만, 신체의 근육이 썩어가는 느낌이었다.

그 후 며칠 동안 낮에 매일 근육이 아파서 3일간 물만 먹고 죽만 먹었는데 발은 아프지 않고 온몸이 아팠다. 사악이 나의 육신을 박해하는 것이었지만 대법에 대한 나의 정념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일체는 사부님께서만 결정하신다. 일주일 후 나는 기본적으로 앉을 수 있었다. 나는 앉아서 발정념을 하고 휴식한 뒤 연공을 했다. 20여 일간 안을 향해 찾았는데 쟁투심, 원망심을 찾았다. 나에게 누락이 있어도 사악의 고험에는 협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부님께서만 관여해 주신다. 며칠동안 힘이 없어서 한마디도 말하지 못했다. 입으로는 숨만 쉬고 입술이 갈라지고 여위었고 식은땀이 났다. 몇몇 수련생이 돌아가며 나를 위해 발정념을 했다. 한 달이 되어 나는 사악의 박해를 부정하고 출근했지만, 몸이 약해서 말하고 숨쉬기조차 힘겨웠다. 하지만 한 달 후 신체건강을 회복했다.

어느 날 밤, 발정념을 하고 꿈에 사부님께서 그 일의 인과관계를 알려주셨다. 어느 한 세에 나는 한 생명을 해치면서 쇠막대기로 그의 몸을 때렸다. 그의 몸은 성한 곳이 없었는데, 이생에 나에게 받으러 온 것이었다. 그 난을 넘기면서도 나는 사부님의 법에 대해서는 확고했다. 사부님께서는 확고한 나의 마음을 보시고 나를 도와 원한의 연을 풀어 주신 것이다. 사부님께 다시 한 번 생명을 구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후 진상 알림을 일과 생활에 용해하여 사람을 많이 구하여 나의 사전의 서약을 실행하고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원용할 것이다. 다시 한 번 제자에 대한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정진하는 것으로 사부님의 은혜를 갚겠습니다.

주: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문장발표: 2015년 6월 1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6/14/310674.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