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밍후이왕] 1996년에 운좋게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수련 후 가정에서의 가장 큰 수확은 시댁과의 18년 원한을 풀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얻게 된 것이다.
나와 남편은 1971년에 결혼했는데 결혼 후 회사의 공동재산인 원룸에서 살았고 딸 둘을 낳았다. 1974년 남편은 불행하게 악성 뇌종양에 걸려 3년을 거의 병원에서 보냈다. 그때 바삐 돌아다니느라 기진맥진했고 집의 빚이 산더미처럼 쌓였다(당시 남편의 임금은 29위안, 내 임금은 37위안 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정말로 시댁의 도움을 받길 원했는데 가령 나를 도와 하루 간호해준다거나 혹은 정신적으로 좀 위로해주며 가정을 지탱할 수 있게 해줬으면 했다. 그러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고 내가 얻은 것은 비난과 욕설뿐이었다. 1976년 남편이 위독해졌다. 당시 두 시동생은 아직 결혼하지 않았고 집은 원룸만 덜렁 있었을 뿐이었다. 시댁은 환자를 돌봐주겠다는 구실을 대며 집을 차지하려 했고 또 이혼을 설득하기도 했으며 큰딸을 키워주겠으니 그들에게 달라고도 했다. 나는 모두 거절했다.
시댁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자 트집을 잡으며 말썽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두 시동생은 음식을 가렸고 시어머니는 아이들을 때리고 어른을 욕하며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어떤 때 이상한 사람을 데려와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방법이 없어 직장, 파출소, 사무실, 주민위원회, 사법을 찾아가 해결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속수무책이었는데 이들은 내가 매를 맞을까 봐 아이를 데리고 먼저 잠시 떠나있으라고 했다. 파출소 지도원은 내가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을 보고 화를 내며 “선생이라면서 이 집안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몰라요? 누가 당신의 안전을 보호해줄 수 있어요? 언젠가 시체를 처리해야 할지도 몰라요”라고 했다.
이후 시댁은 큰 딸을 학교에서 납치해 외지로 보냈다. 나는 가슴이 저미는 듯 아팠고 그들을 극도로 증오했다! 집을 떠난 지 10여일 됐는데 남편 직장에서는 그가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주며 시댁에서 집을 차지할까 봐 집을 회수하기로 결정했고 장례비와 임금은 모두 시댁에서 받아갔다고 했다. 소식을 들은 나는 매우 슬펐다. 집에 도착했을 때 시신은 이미 화장됐고 집에는 단 두 개밖에 없던 이불을 영안실에 가져가 바닥을 닦았고 오줌을 싼 낡은 온돌용 이불밖에 남지 않았다. 분개와 슬픔 속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고 울다 쓰러졌다. 5살 막내딸만 울면서 엄마를 불렀다! 직장 사람들도 우리 모녀를 위해 눈물을 흘렸고 몹시 분개해했다!
시댁은 내 살길을 끊어버렸고 양식증(그때 양식을 사려면 양식증에 있어야 했다)마저 가져갔다.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그들은 직장까지 찾아와 ‘내가 남편을 학대했다. 벌써 바람을 피웠다. 둘째 딸도 남의 자식이다. 기어이 나를 때려 불구자로 만들어 형을 위해 복수하겠다’고 소란을 피웠다. 내막을 모르는 일부 사람들도 따라서 이러쿵저러쿵 마구 수군거렸다.
이 모든 것에 맞닥뜨려 나는 증오로 가득 차 복수할 마음이 저절로 생겼다. 그들에게 구천에 사무치는 원한을 갖게 됐고 홧김에 시댁을 고소했다. 소송은 2년 넘게 걸렸고 법원에서는 보기 드문 가정이라고 했다. 결국 승소하긴 했지만 병든 막내딸만을 데려올 수 있었다. 이후부터 시댁과 왕래를 단절했다. 매번 시어머니가 마구 욕하고 시동생이 내 친정집에 소란을 피우고 남편 앞에서 나를 때리고 등을 생각하면 쌓이고 쌓인 원한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결혼해서부터 큰 딸이 돌아올 때까지 9년 넘는 시간, 이 기나긴 시간에 나는 평생의 기력을 다 소모했다. 30여세 사람이 머리카락이 다 희어지고 노안이 됐으며 불면증, 현기증, 심계항진증(두근거림), 허혈성심장질환, 저혈당, 저혈압, 자궁근종, 요추디스크, 자율신경부조 등 10여 가지 질병에 시달린 나는 성격이 난폭하게 됐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 딸을 위해 어떻게라도 살아야 하고 아무리 어려워도 두 아이를 쓸모 있는 사람으로 키워 잘 사는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맹세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양의사와 한의사에게 가봤고 몇 가지 기공도 배웠으며 또 불교도 믿게 됐는데 병은 나아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부체(附體: 몸에 붙는 좋지 않는 영체-역주)까지 초래됐다.
기쁘게 대법을 얻어 원한을 선해(善解)
극히 낙담하고 있을 때 1996년 한 친구가 내게 ‘전법륜’을 선물하면서 이것은 수련하는 책인데 심성을 닦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체를 건강하게 할 수 있다고 알려줬다. 사존의 사진을 봤을 때 마치 길 잃은 아이가 단번에 가족 품으로 돌아온 느낌이었고 억울함인지 감동인지 모르지만 나는 참지 못해 대성통곡했다. 대법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줬고 원한, 억울함을 쫓아냈고 내 몸과 마음도 크게 변했으며 우울하던 데서 기뻐함으로 변했고 초췌하던 안색은 뽀얗기도 하면서 붉은 빛이 돌았으며 몸무게도 20kg이나 늘었고 모든 질병이 나도 모르게 없어졌다. 진정으로 병이 없는 온몸이 가벼운 느낌을 체득했다. 그런 즐거움은 오직 수련인만 체득할 수 있는 것이다.
대법을 통해 사람 됨됨이의 도리를 알게 됐고 시댁과의 깊은 원한은 업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사부님께서 “당신이 당신의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면 수련 성취할 수 없고 성불(成佛)할 수 없다.”[1]고 말씀하셨다. 사존의 말씀은 18년 동안의 시댁에 대한 원한을 풀어줬다.
그리하여 아이와 함께 시댁에 갔다. 이후부터 18년 동안 중단했던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아이들보고 가보라고 했다. 큰 시누이가 퇴직하고 외지에서 돌아온 후 병에 걸렸는데 돌볼 사람이 없었다. 딸들은 그녀를 요양원에 보내고 입원비를 감당했다. 어떤 때 나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아이들보고 그녀에게 갖다주라고 했고 옷이 부족할 때도 비교적 좋은 옷을 보내줬다.
막 50살을 넘긴 시동생은 암에 걸렸는데 내 딸들이 이리저리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간호했다. 딸들의 행동도 그들을 감동시켰다. 시동생은 이전에 자신이 한 일을 부끄러워했으며 우리 집에 나를 보러오기도 했다. 시동생의 당뇨병은 매우 심했고 집안의 경제사정이 어려워 집에는 테이블 하나도 없었다. 나는 새로 산 테이블을 그들에게 보내줬고 입을 옷도 가져다줬으며 명절 때마다 아이들에게 인사하러 가라고 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왕래를 끊지 않았다. 재작년에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시동생의 아이도 와서 이것저것 도와줬다. 그들의 행동도 완고한 친정어머니와 언니를 감동시켰고 동시에 사돈집에 대한 원한이 해소되게 했다.
평소 왕래할 때 그들에게 진상자료를 가져다주는 것을 잊지 않았고 수련한 후 신체의 변화와 대법의 신기함 및 왜 삼퇴하는지 말해줬다. 그들 각각을 삼퇴하도록 해줬고 그들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알려줬다.
사부님께서 “자비는 천지에 봄이 오게 한다”[2]라고 하셨다. 우리의 개변은 그들을 감동시켰다. 66세 생일 때 그들은 모두 왔는데 온 가족 20여명 식구가 모였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은 그들은 나를 위해 5kg되는 보기 드문 큰 케이크를 주문해줬다. 온 가족이 함께 모이고 화기애애했다.
마음속에 맺혔던 18년 매듭을 드디어 풀었고 모든 원한은 다 구름처럼 사라졌다. 이 모든 것은 대법 덕분이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대법에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휴스턴 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시가: ‘홍음2-법정건곤(法正乾坤)’
문장발표: 2015년 5월 1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신수련생마당>안으로 찾아 심성을 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5/17/3094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