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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화대에서 처음으로 사부님을 뵌 정경을 회상

글/ 북미 칭화대 졸업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6년 1월 어느 날 파룬궁(法輪功) 수련생 자오밍(趙明)의 숙소에서 열린단체 법공부에 참가했다. 그런데 “주말에 ‘전법륜(轉法輪) 양장본 출판기념회’가 칭화(清華)대에서 개최되는데 칭화대 수련생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당일 우선 집에서 학교로 간 후 칭화대 남문에서 출판기념회에 참가하러 온 파룬궁수련생들을 행사장으로 안내했다. 행사가 시작될 무렵 나는 행사장인 칭화대 건축학과 신관 회의장으로 갔다. 그때 사부님께서 오셨다는 말을 듣고 나는 격동해 손이 떨렸다.

내가 회의장에 들어섰을 때 이미 사부님께서 강당에 앉아계셨다. 이어서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는데, 사부님의 녹화비디오를 볼 때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당시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을 지금까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의 정경이 아직까지 눈앞에 선하다. 당시 인상이 깊었던 것은 사부님께서 해답하실 때였다. 베이징 총책임자가 청중을 향해 “사부님께서 이미 오랜 시간 말씀하셨고 아직 하셔야할 다른 일도 있으니 여러분은 이제 그만 질문하세요”라고 발언했다. 그러자 사부님께서는 우리들, 청중을 향해 손을 흔드시며 (개의치 말고) 질문하라고 하셨다. 아주장 시간 해답해주셨다.

마지막에 베이다(北大)의 한 여학생이 일어나 “사부님과 기념사진을 찍고 싶어요”고 건의하면서 “이후 사진을 보면 확고하게 수련할 수 있어요”라고 했다. 이에 사부님께서는 부드럽게 여러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일반적으로 저는 수련생과 단독으로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 수련생에게 과시심이 생길까 봐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부님과 사진을 찍었다’고 하며 또 ‘어떠어떠하다’고 할까봐 입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이 학생과 한 장 찍을까요?”라고 우리들에게 물어보시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그러자 여학생이 곧바로 강당에 뛰어올라가 사부님 옆에 섰으며 이어서 몇몇 수련생들도 단상에 올라가 사부님 옆에 서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때 칭화대 보도원이 칭화대 수련생들에게 “모두 밖으로 나가라”고 했다. 나는 무슨 일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강당 밖에서 드디어 사부님과 사진촬영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는 먼저 줄을 섰다. 우리가 막 줄을 서자 사부님께서 강당에서 나오셨다. 사부님께서는 여러 사람들과 단체사진을 찍으셨다. 사부님께서는 통쾌하게 “저는 어디에 설까요?”라고하셨다.보도원이 사부님을 앞줄 정중앙으로 모셨다. 칭화대 수련생들은 단체사진을 찍고 나서 사부님을 에워싸고 몇가지 문제를 여쭈었다. 사부님께서는 이에 칭화대 수련생들을 위해 몇 가지 말씀을 해주셨다. 그때 사부님 말씀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당시 사부님께서 나에게 주신 느낌은 ‘사부님께서는 대단히 웅장하시다’였다. 왜냐하면 사부님은 동북사람이시고 키가 183센티미터로 훤칠하셨기 때문이다. 사부님에 대한 나의 느낌은 그렇게 웅장했다. 마치 모든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높으신 것 같았다. 이후에 박해가 시작된 이후 2000년 둥성 구치소에서 만난 뉴질랜드 수련생이 나에게 말했다. “사부님의 키는 고정적이지만 언제나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크신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들은 사부님을 건축학과 정문까지 배웅해드렸다. 승용차는 계단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방금 전 사부님과 사진을 찍은 여학생이 말씀드렸다. “사부님을 따라다니고 싶어요.” 사부님께서는 참을성 있고 상냥하게 말씀하셨다. “잘 수련하면 매일 저를 볼 수 있어요.” 당시 나는 비집고 들어가거나 사부님 앞쪽까지 가지 않았다. 다만 계단에 서서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조용히 사부님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여학생은 좀 뚱뚱해 그다지 귀여운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그 여학생에게 겸손하고 자애롭게 대하시면서 전혀 귀찮게 여기지 않으셨다. 법을 얻은 지 반 년밖에 되지 않아 당시 아직 속인 마음이 많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정말로 대단하시다. 그런 스타들과 전혀 다르시다. 스타들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계속해 사부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차에 오르시는 것을 보고 헤어졌다.

이것은 내가 처음 사부님을 뵌 정경이다. 나는 법을 얻은 초기에 아주 흥분했는데 사부님을 뵙고 싶었다. 비록 그때까지 나의 인생 행로는 순조로운 편이었다. 어려서부터 부모가 애지중지 키워줬으며 우수한 성적으로 유명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또 칭화대학에 입학했으며, 시험을 치르지 않고도 연구생으로 공부하게 됐다. 하지만 나는 명리정(名利情)을 위해 사는 것만 같아 재미가 없었다. 사람은 왜 사는지 알고 싶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싶었다. 책이나 잡지를 통해 불행을 경험했거나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보고 그들을 걱정하기도 했다. ‘어떻게 해야 이런 사람들을 절망에서 헤어 나올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1995년 6월 8일 당시 칭화대 동쪽 본관 계단을 내려올 때 칠판에 붙어 있는 파룬궁 소개를 보았다. 파룬궁의 8대 특징이 단번에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법을 얻은 후 대법이 나의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좋은 마음으로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파룬궁을 추천했다. 특히 신체가 좋지 않고 생활면에서 불행한 사람에게 추천해 주었다.내 가족과 친척도 잇따라 법을 얻었다.

중국 대륙에서 사부님을 뵌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일이다. 그 후에 나는 자주 사부님을 뵌 정경을 회상해 본다.

문장발표: 2015년 5월 2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온고명금(溫故明今)>사부님의 은혜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5/23/30974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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