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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핀 연꽃

글/ 중국대륙 대법제자 혜진(惠眞)

[밍후이왕] 1996년에 기쁘게 대법을 얻었고 그해 난 20여 살이었다. 마흔 살이 넘은 지금 나는 우주 대법에 대한 이 한 차례 피비린내 나는 사악한 박해 중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을 바싹 따라 14년의 반(反)박해, 중생을 구도하는 길을 걸어왔다. 신성한 ‘밍후이왕 제10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개최를 맞아 심사숙고한 후 자신이 직접 겪은 보기엔 평범하지만 마음을 크게 감동시켰던 몇 가지 법을 실증하는 사소한 이야기를 써내고 수련생 여러분과 교류하기로 드디어 결정했다.

나는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경건하게 부처님을 믿는 조상이 있었다. 평생 가장 큰 취미는 여러 가지 책을 많이 읽는 것이었다. 비록 무신론 교육을 받았지만 어릴 때부터 부처의 존재를 믿었다. 어릴 때부터 사고하기 좋아하고 독립적인 사상이 있었으며 매우 개성 있는 그런 아이였다. 교실에 앉아있었지만 ‘사람은 원숭이에서 진화해 온 것’이라는 설교를 믿은 적이 없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벌써 동서양 여러 가지 책을 봤고 미혹 속에서 줄곧 생명의 답안을 찾고 있었다. 생명의 의의는 도대체 무엇일까? 명리를 위해 분주히 다니는 세상 사람들을 보고 이렇게 한평생 인생을 중복하는 사람은 얼마나 지루할지 생각했다.

인생의 간난신고와 불평을 좀 겪은 후 인생에 대해 심지어 절망했을 때 가족의 소개 하에 기쁘게 대법을 얻었다. 대법을 얻은 후의 그런 즐거움은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때는 매일 틈만 있으면 법공부하지 않으면 연공했고 매일 저녁 늦게까지 가부좌하고야 잠을 잤다. 금방 법을 얻은 모든 수련생처럼 그때는 정말로 매우 정진했다. 그리하여 박해가 발생한 직후 걸어나가 현지, 각급 정부 부서에 가서 대법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했고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했다. 이로 인해 여러 번 수감됐고 수많은 수련생과 함께 그 먹구름이 가득 쌓인 어려운 세월을 보냈다.

1. 첫 번째 고험

1999년 ‘7.20’ 당시, 이렇게 위대한 불법이 이처럼 박해를 당하고 이렇게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이와 같은 광적인 비방, 모욕을 받는 것을 보고 정말로 앉으나 누우나 편안하지 못했고 나가서 억울함만 호소하고 싶었다. 한번은 일부 수련생과 연락해 어느 날 아침에 현지 중심광장에 가서 현수막을 걸고 단체 연공 방식으로 박해를 반대하기로 했다. 나는 먼저 페인트로 길이 2미터의 ‘파룬따파’ 현수막을 썼다. 지정한 시간에 광장 조각상 아래에서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오는 수련생이 없었다. 설령 한 사람이 있더라도 이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현수막을 테이프로 조각상에 붙이고 연공음악을 틀어놓고 연공하기 시작했다.

마침 아침 단련하는 시간이라 광장에 태극권을 연습하고 춤추는 사람이 100여 명 있었다. 즉시 누군가 경찰에게 고발했다. 경찰차 한 대가 오더니 두 경찰이 내려와 나를 미니버스에 실었다. 박해 초기 하늘을 뒤엎는 듯한 모욕 선전 중에서 이런 사회 조류에 역행하는 장면은 없었으므로 아침에 운동하는 사람들은 모두 경찰차 주위에 모여 구경했다. 나는 웃으면서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경찰은 또 앞에서 구경하는 50여세 남자도 차에 태우면서 억지로 나와 함께 온 사람이라고 했다. 그들은 나 혼자서는 이런 행동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몇 명 경찰은 나를 향해 “머리가 정상이야? 미치지 않았나? 죽고 싶어!”라고 외쳤다. 나는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 쓴 편지를 그들에게 전해줬다. 그들은 본 후 “보니까 정상이군요. 글이 아주 예쁘네요”라고 말하고 또 그 남자에게 캐물었다. 그 남자는 계속 나를 모르고 다만 구경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도 혼자서 왔고 그를 모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몇 명 경찰은 믿지 않았고 차를 몰고 파출소로 가려 했다. 당황해진 그는 건장한 사나이였지만 체면을 불구하고 엉엉 울기 시작했고 자신이 얼마나 정부를 옹호하고 법을 잘 지키는지 말했다. 경찰은 놀란 그의 모습을 보고 나와 함께 온 수련생이 아니라는 것을 믿고 차에서 내리게 했다.

사부님의 법이 생각났다. “수련하는 사람이 겪는 고험(考驗)은 속인으로서는 감당해 낼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역사적으로 수련 성취하여 원만(圓滿)한 사람은 너무나 적어 몇 사람에 불과하다.”[1] 더욱 가혹한 고험이 아직 뒤에 있다는 것을 안다. 이 극적인 한 장면은 내게 잊어버릴 수 없는 기억을 남겨줬다. 당시 불법적으로 15일 수감됐고 집으로 돌아온 후 베이징에 탄원하러 갔다.

2. 어려움 중 대법의 초범성이 나타나다

대법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적으로 3년 간 수감됐다가 마지막에 정념으로 소굴에서 걸어나왔다. 가족은 사악한 박해에 대한 증오와 두려움으로 외지로 이사했다.

외지에서 거의 모든 수련생과의 연락이 끊겼고 수련상태가 좋지 않았으며 또 일하려는 마음이 급했기 때문에 다른 공간의 사악에게 틈을 타게 해 사고 중 추락해 중상을 입었다. 골반, 다리 많은 곳이 골절됐고 의식을 잃었다. 깨어났을 때 이미 병원에 누워있었다. 병원에서는 수술이 성공하더라도 불구자가 되고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단호하게 퇴원하겠다고 했다. 재난 앞에서 오직 신사신법하는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매일 침대에 누워서 법공부하고 누워서 동공(動功) 중의 일부 동작을 하고 발정념했으며 아무런 치료도 하지 않았다. 한 달도 안됐는데 침대 곁을 잡고 걸을 수 있게 됐고 2개월 후 계단을 내려갈 수 있었다. 너무 심하게 다친 이유로 금방 걸을 때 좀 절뚝거렸지만 2년 후 정상을 회복했다. 이후에 다시 엑스레이를 찍어봤는데 끊어지고 다친 뼈가 완벽하게 회복된 것을 봤다.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이 모든 것을 해주셨다.

당시 체험은 주변 많은 친척과 친구들이 대법의 초범성을 목격하게 했고 사부님과 대법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3. 적막 속에서 굳건히 견지하다

신체 회복 단계에 나는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 아직 불편한 다리를 끌면서 큰 자료점 일을 했다. 그때 자료점은 아직 곳곳에서 꽃이 피는 정도가 아니었다. 나는 박해당해 두 다리에 중상을 입어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다른 한 수련생과 함께 자료점에서 합숙하며 매일 쉴 새 없이 돌아가는 10여대 설비를 지키고 있었다. 그때 밍후이왕에서는 곳곳에서 꽃을 피우길 이미 건의했다.

이 큰 자료점에 온 후 여기에 많은 문제와 안전 문제가 있는 것을 봤다. 수련생들과 교류하고 큰 자료점을 몇 개 작은 자료점으로 나누자고 건의했지만 아직 어려움이 많고 잠시 설비를 받아들이고 자료를 만들겠다는 수련생도 찾을 수 없다고 어떤 수련생은 동의하지 않았다. 교류 중 자신의 조급해하는 마음도 폭로됐고 한때 협조인과 의견 충돌이 생기기도 했다. 결국 곳곳에 꽃을 피우는 형식으로 자료점을 분산하지 못했고 나와 다른 한 나이 많은 협조인이 기계 몇 개를 들고 집으로 가져와 가정자료점을 설립했을 뿐이었다.

그 큰 자료점은 불행하게도 결국 반년 후 사악의 파괴를 당해 손실이 매우 컸다.

나는 독신이고 부모님과 함께 살았는데 부모님의 경제 조건은 매우 좋았다. 집에서 진상자료를 만들 때 길고 짧은 스티커 재료를 구할 수 있는 수련생을 만났다. 이것으로 진상 스티커를 만들면 자르는 시간을 절약할 뿐만 아니라 많은 경비를 절약할 수 있어 매우 좋았다. 그리하여 나는 이 일을 맡아했고 매 상자 안에 있는 스티커 규격에 따라 여러 규격과 내용의 진상 스티커를 만들었다. 이 일은 매우 큰 인내심이 필요했다. 일을 하기 시작하자 2년이 지났다. 이 기간에 다른 진상자료도 만들었다. 이 진상 스티커들은 현지 수련생에게 제공해줬을 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에도 보내줬다. 그때 ‘9평공산당’이 이미 출판됐고 사부님의 정법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기에 스티커 내용은 대부분 중국공산당의 사악한 본질을 폭로하는 것이었다. 수련생들은 이 스티커들을 곳곳에 붙여 줄곧 사당의 압제 하에 생활하던 민중을 매우 크게 감동시켰고 사악을 벌벌 떨게 했다. 사악은 매우 당황했고 스티커가 붙어 있는 주택 단지 집집마다 다니며 조사했지만 아무런 수확도 거두지 못했다.

이것도 잊히지 않는 세월이었다. 늘 혼자서 바닥에 앉아 한 장 한 장씩 출력했기 때문이다. 적막 속에서 ‘지금 중화대지에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수련생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른다. 마치 사당(邪黨)을 향해 쏘는 예리한 화살을 만드는 것처럼’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작은 자료점은 금방 설립돼 일손이 부족했다. 진상자료를 만들어놓으면 다만 몇 명 수련생이 현지와 주변 수련생의 수중으로 보내줬다. 이렇게 하면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오래되면 피로를 느낄 수도 있다. 이런 일은 안전 요소가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불러서 하라고 할 수 없어 줄곧 우리 몇 명 수련생이 책임지고 견지해왔다.

세월이 남겨준 기억은 적막과 청빈이었으나 마음속 확고한 신념은 끝없는 적막 속에서 스스로 굳건히 지켜내게 했다.

4. 소굴에서의 지혜와 자비

내가 읽었던 서적 중 가장 큰 감동을 준 것은 ‘밀레르빠 부처의 수련이야기’였다. 이후에 사존의 설법을 통해 역사상 많은 위대한 인물과 찬란한 업적은 이전에 사존께서 대법제자를 이끌고 함께 출연하고 개척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 역사의 한 장면을 회상할 때 이렇게 큰 감동이 있음을 알았다. 밀레르빠 이야기에서는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매우 많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그가 부처가 되기 전에 독약으로 그를 죽이려는 대죄인 차오푸와 그의 내연녀 두 사람을 자비하게 구도한 이야기였다. 이것은 각자(覺者)야말로 도달할 수 있는 흉금과 경지였다. 처음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 나도 모르게 ‘원래 생명은 이런 광활한 자비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구나, 이것이 부처의 경지로다! 나도 수련인이다. 이런 자비로운 흉금을 연마해 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후에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 갑자기 주변에 많은 ‘차오푸’, 즉 진상을 모르는 흉악한 경찰과 악인이 벌떼처럼 몰려드는 것을 발견했다. 이때가 바로 밀레르빠 부처의 그런 자비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지 없는지 고험하는 것이었다. 이 경찰과 악인들은 사당 중국공산당의 세뇌와 무신론의 주입 하에 지금 인류가 타락하고 사부님께서 우주 대법을 인간 세상에 전하신 것은 법을 바로 잡으시고 인류를 구하고 계시는 사부님의 비할 바 없는 위대한 자비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인식할 수 없었다. 그들은 조그마한 이익에 본성을 잃었고 인간 세상에 ‘인과응보’가 있다는 것을 승인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무의식중에 잔혹하게 수련인을 박해했다. 그들이야말로 가장 가련한 것이다. 그들이 잔혹하게 박해할 때 그들의 생명이 받는 상처는 내게 준 상처보다 더욱 깊은 것을 느꼈다. 그들이 나의 1만 위안 넘는 재물을 약탈한 것을 봤을 때 나는 속으로 그들을 가엽게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의 생명이 이 재물보다 몇 백 배 더 진귀하다는 것을 모르고 자신의 생명은 이미 파멸의 변두리에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이런 자비와 연민의 마음 때문인지 소굴에서 여러 악연을 화해했고 환경이 선한 방향으로 전환됐으며 다른 사람이 보기에 불가사의한 일이 많이 발생했다.

소굴에서 자신의 바른 믿음을 확고히 하고 동요하지 않는 외에 해야 할 일은 바로 교류를 통해 사오(邪悟)한 수련생이 깨어나게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통해 흉악한 경찰들이 진상에 명백하게 하며 사악한 박해를 저지해야 하는 것이다. 경찰은 “파룬궁수련생의 전향 여부는 한눈에 보아낼 수 있다. 기뻐하지 않는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은 전향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나는 늘 미소를 지었다. 왜? 어떤 마난을 겪든 아무것도 대법을 이길 수 없고 누구도 우리 마음속의 믿음을 가져갈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마음속이 비할 바 없이 위로가 되었기 때문에 언제나 미소를 짓고 다녔다.

나는 이전에 큰 호텔에서 근무한 적이 있어 사람에 대해 상대적으로 예민한 관찰력이 있고 가지각색 사람과 접촉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한번은 한 젊은 경찰이 내 앞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것을 보고 반 우스개로 “몸놀림이 꽤 좋네요. 범죄자를 잡는데 사용하면 정말 좋은데 벌레마저 죽이기 싫어하는 수련인 몸에 사용하면 좀 비겁해 보여요”라고 했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다른 사람의 존중과 감상을 받길 바라기에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는 내 선의의 충고를 느껴 태도가 즉시 변했다.

남의 선의를 함부로 거절하지 않는 것도 선량한 표현이다. 이전에 나를 박해했던 경찰들 중 어떤 사람이 이후에 내게 음식을 주면 나는 받았을 뿐만 아니라 감사를 표하고 그녀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어떤 때 나는 자발적으로 그녀들과 인사하기도 했다. 편지를 쓰고 기회를 찾아 그녀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통해 악당이 서로 대립되고 저촉하게 만든 것을 화해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는 그곳 일부 경찰들과 사적으로 친구 관계가 됐다.

환경이 느슨하게 됨에 따라 일부 사오한 사람과 자유로이 교류할 수 있게 됐고 일부 사람은 깨어났다. 그러나 처음에는 말하지 못하게 하거나 감시하고 방해하는 사람이 있었다.

가족은 면회하러 올 때마다 나를 만날 수 있었고 대장이 부재중에도 다른 교도관이 나를 데리고 가서 만나게 했다. 이전에 대법제자가 거기에서 흉악한 경찰이 사람을 때리고 기타 박해 행위를 저지할 때 형을 연장 당했으나 이후에 나를 박해했던 많은 교도관은 암암리에 나를 보호했고 내게 형을 가해주지 않았고 빨리 내가 나가길 바랐다.

내가 곧 그곳을 떠나려 할 때 많은 경찰들이 와서 작별 인사를 나눴고 내게 무사평안하고 여기는 대법제자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니 영원히 다시 들어오지 말길 바란다고 했다. 이 한 장면을 보면 당초 그녀들이 내 한쪽 귀를 들리지 않게 때렸고(이후에 회복했음), 잔혹한 전기봉으로 찔러 온 방에 사람 고기가 타는 냄새가 나게 했으며, 두 팔을 1년 넘게 물건을 들 수 없게 만들었거나, 심지어 나를 정신병원에 보내 가중 박해를 하려 했다는 등등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몇 년 후 다른 곳에서 거기의 한 교도관을 만났는데 그녀는 옆에 있는 사람에게 “이 사람은 제 친구에요”라고 소개했다. 이 말을 할 때도 그녀는 매우 즐거워했다. 사실 그곳 많은 경찰은 마음속으로 확고한 대법제자에게 매우 탄복한다. 한 수련생이 내게 여기 교도관 중 친척이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진선인(眞善忍)’ 대법의 자비만으로도 그런 소굴에서 이런 선한 인연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정법노정이 추진됨에 따라 갈수록 많은 박해자는 진상을 똑똑히 알게 됐고 어떤 사람은 몰래 대법제자를 보호하기 시작했다. 이런 일을 여러 번 만났다. 한 세뇌반 책임자가 있었는데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한 달 동안 접촉한 후 세뇌반을 떠나게 도와주겠다고 했다. 어떤 수련생의 가족은 수련생을 세뇌반에서 구해내려고 몇 만을 위안 썼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많은 사람은 이 한 차례 박해를 이용해 돈을 긁어모았다. 내가 ‘전향’을 거절했을 때 그 사람은 내가 직접 교도소로 끌려갈까 봐 안달이 났다. 그는 내게 돈 한 푼도 요구하지 않고 뭘 하라고 하지도 않는데 왜 거절하고 침묵을 지키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이것은 ‘진(眞)’과 ‘정정당당’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나보고 만난 대법제자 중 가장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내가 그의 아이와 같은 또래라 내가 교도소에 들어가는 것이 마치 그의 자식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여기에서 이 사람들은 아직 선량한 일면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마음속으로 생사를 내려놓는 대법제자에게 매우 탄복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후에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하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이 사람이 말하기를, 다른 사람에게 돈을 가져다주며 도와달라고 애걸하는데 자신이 나와 친척도 아니고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왜 고생스럽게 거듭 거절당하면서도 나를 위해 조급해하고 끊임없이 건의를 받아들이라고 설득했는지 자신마저 이상하다고 했다.

거기에서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하는 사람은 사실은 그들의 명백한 일면이 대법제자와 선한 인연을 맺으려는 것이고 죄를 보완하고 구도되길 바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 사람의 표면에서는 영문을 알 수 없다.

박해 초기에 현지의 40여세 한 남자 경찰이 구치소에 와서 나를 심문한 적이 있다. 그는 나를 보자 수갑을 풀어주며 사실 어떻게 생겼는지 보러 왔을 뿐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의논하는 것을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그는 내게 일부 문제를 물어본 후 매우 진지하게 “정말 신과 부처가 있어요?”라고 물었다. 나의 긍정적인 대답을 들은 후 그는 매우 진지하게 “당신 말을 믿어요. 만약 당신들이 부처로 연마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이 경찰들은 이후에 아마 지옥으로 갈 거예요. 만약 진짜 부처님이 계시다면 당신이 연마해낼 수 있다고 믿어요. 저의 이름은 ○○라고 해요. 그때 가서 저를 잊지 마세요”라고 했다. 그는 또 웃으며 몇 번 그를 잊지 말라고 반복했다.

박해 중 눈물을 흘린 적이 없지만 몇 년 후에 이 한 장면 한 장면을 회상할 때 나는 눈물을 흘렸다. 마치 궤도에서 벗어난 열차가 사람들을 향해 달려가 사상자가 무수히 생겨서 그 차량의 매 부서에 모두 죄가 있는 것과 같았다. 대법제자는 오직 사람을 구하는 몫 밖에 없다. 그 사악한 몇 명 우두머리 외에 내 앞에 서 있는 어느 악인을 소멸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고 진상을 알리는 것을 포기한 적이 없다. 그들에게 어떻게 박해받았든 그들을 증오한 적이 없다. 죄악의 국가기계가 돌아가는 이 안의 매 경찰이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지 말고 구도 받을 수 없는 정도로 죄를 짓지 말길 바란다. 그들이 진상을 명백하게 알고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불법을 박해했던 죄를 보완하길 바란다. 나는 줄곧 이런 바람이었다.

당초 수많은 대법제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걸어나와 여러 방식으로 대법과 사부님의 존엄을 보위할 때 사악의 광적인 박해를 대면하고 누구도 살아서 집으로 올 수 있는지 없는지 마음에 두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걸어지나 왔다. 그때 대법제자들은 뜨거운 불에서 순금을 정련하는 듯한 생사 고험을 대면했다! 바야흐로 활활 타오른 불길 속에서 핀 연꽃이었다.

14년의 비바람도 가로막지 못했고 조사정법의 발걸음으로 오늘까지 걸어왔다. 우주대법의 큰 무대의 마지막 한 막이다. 비할 바 없는 위대하고 자비로우신 사존의 가르침 하에 나와 수련생들은 다시 한 번 함께 이 우주 중 전례가 없었던 아름다운 찬란함을 개척하고 있다. 사악은 곧 전부 소멸될 것이다. 여기에서 함께 걸어온 수련생들과 서로 격려하겠다. 인연을 소중히 아끼고 사명을 소중히 아끼며 함께 걸어온 간난신고의 길을 소중히 아끼고 최후의 길에서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하고 천만 년 간 우리의 큰 소원을 완성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자.

허스(합장)!

주)

[1]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2-위치’

(밍후이왕 제10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3년 11월 1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10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19/281635.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3/12/2/1434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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