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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륙 법관의 수련 과정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중국대륙 연해지역의 한 판사인데 1997년에 운 좋게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그때 나는 몇 개 향진의 민사 사건을 재판할 권리가 있는 하급 법원의 재판장이었다. 각양각색의 소송 안건의 당사자와 지도자, 동료, 친구 등 사회 환경의 영향으로 자신의 수양에 힘쓰기 어려웠으며 명리정(名利情)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온몸에 업을 지었다. 젊은 나이에 간, 담, 비, 위, 심장할 것 없이 온몸에 병이 없는 곳이 없었다. 또 만성 장염과 심한 만성 비염이 있었다. 비염이 발작할 때면 저녁에 잠자다가도 코가 막혀 깨곤 했다.

득법과 홍법(洪法)

법을 얻어 수련한 후 나는 ‘진선인(眞ㆍ善ㆍ忍)’의 표준으로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했다. 대법을 배우면서 모순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았고 자신을 보았으며 좋지 않은 일사일념을 닦아 심성이 끊임없이 승화됐다. 나는 이런 수련 속에서 끊임없이 대법에 동화됐으며 끊임없이 승화되고 경지도 제고됐다. 신체도 질병이 없이 온몸이 가벼운 상태에 도달해 더 많은 힘을 직장 업무에 투입했다. 내 병이 나아 온몸이 가벼운 상태를 보고 가족도 더없이 기뻐하며 내 대법 수련을 지지했다.

수련 과정에 나는 점차 속인의 나쁜 습관을 끊임없이 고쳤다. 예를 들면 소송인의 식사 초대, 선물 등을 받지 않았으며 소송인이 나에 대한 태도가 어떻든지 모두 공평하고 공정하게 사건을 처리해 권선징악의 작용을 일으켰다. 본 법정의 다른 판사들에게도 권력을 이용해 개인 이득을 취하는 일에 주의하라고 했다. 그들에게 입장을 바꾸어서 자신이 판사가 아닌 피고인이라면 어떤 판사를 만나길 바라겠는지 생각하게 했으며, 그들에게 법을 전하고 ‘진선인’의 아름다움과 인과응보의 이치를 알려주어 그들도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판사가 되게 했다. 나는 또 법원 지도자, 중층 지도자와 다른 판사 및 인원에게 법을 전하고 ‘전법륜’을 보라고 했다. 그들도 파룬궁을 아주 인정했고 ‘진선인’을 인정했다. 그래서 우리 법원의 풍기는 아주 좋았으며 연속 몇 년간 중급 법원의 표창을 받았다.

박해가 갑자기 일어나다

1999년 7월 20일, 사악한 장쩌민 집단은 중국공산당 사당을 이용해 파룬궁에 대한 황당한 박해를 전면적으로 개시했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고 참혹한 박해가 온 천지를 뒤덮었다.

그때 직장 지도자와 동료들은 사당의 압력과 해독으로 더 이상 파룬궁을 인정하지 않았고 ‘진선인’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박해자 편에 섰다. 이는 나를 아주 고통스럽게 했지만 나는 파룬궁은 잘못이 없다는 것을 굳게 믿었고 끝까지 수련하리라 마음먹었다!

나는 가족, 동료, 지도자에게 진상을 알렸다. 파룬궁은 사람에게 도덕이 고상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 것이라고 했다. 가정에 도덕이 고상한 사람이 필요하고, 직장에 도덕이 고상한 사람이 필요하며, 사회에 도덕이 고상한 사람이 필요한데 파룬궁은 이렇게 했다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제자들에게 도덕이 고상한 좋은 사람, 더욱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으며 제자들 수련을 지도했을 뿐 아무 정치적 목적이 없는데 이는 전 사회에 다 좋은 일이 아닌가?

한 번은 법원장이 나를 찾아와 얘기를 나눌 때 그는 나에게 파룬궁과 경계선을 그으라고 요구했다. 나는 그에게 알려주었다. “제가 파룬궁을 연마해 도덕성이 높아지고 건강이 좋아진 것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사부님께서 제게 두 번째 생명을 주셨는데 제가 어찌 외면하고 사부님을 모른 척하면서 적발하고 비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원장님이 어떤 사람을 재판장이나 부원장으로 승진시켰는데, 이후 원장님이 억울함을 당하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승진시켜준 사람이 거꾸로 원장님을 적발하고 비판한다면 마음이 어떠시겠습니까? 원장님을 적발하고 비판한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법원장은 말문이 막혔다.

이렇게 누가 나를 찾아와 얘기를 하면 나는 그에게 진상을 알렸더니 그들은 말했다. “당신을 ‘전향’시키지 못하고 거꾸로 당신에게 전향됐네요.” 이후에 진상을 알리는 과정이 바로 악을 제거하는 과정이고 사람을 구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베이징에 세 번 가다

1999년 7월 21일 나는 하던 일을 중단하고 베이징에 탄원하러 갔다. 2000년 나는 또 두 번 베이징에 법을 실증하러 갔다. 세 번째로 천안문광장에 갔을 때 나는 5장 공법을 연마하다 경찰에게 천안문 공안분국에 납치됐다. 경찰은 내 신분증을 등록하려 했다. 그때 나는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정정당당하게 대법을 실증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등록하려면 등록하라고 그에게 신분증을 주면서 나는 판사이며 재판장인데 대법을 수련해 직무에서 해임됐다고 알려주었다. 등록을 다 하고 나는 몸을 돌려 방안에서 걸어 나왔다. 복도 양측에는 7, 8미터 거리를 두고 경찰 한 명이 서 있었다. 나는 옆을 바라보지 않고 천안문 공안분국 대문을 나갔다. 문을 나서자마자 빈 택시 한 대가 가로 질러 나를 향해 왔다. 내가 손을 들자 멈췄다. 기사는 나를 태우고 바로 기차역으로 갔다.

이후에야 나는 천안문 공안분국에 협조해 신분증을 등록한 것은 잘못된 것임을 인식했고 이후에 박해를 심하게 받았다.

베이징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자고 싶었지만 아내는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나를 자지 못하게 하면서 기어이 이혼하려 했다. 나는 속으로 ‘이혼해서는 안 된다. 이혼하면 어떻게 당신을 구도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했다. 이 일념이 있었기 때문에 구세력이 아내를 이용해 나를 교란하려 한 것을 타파하고 이후에 아내가 법을 얻어 수련할 수 있는 기초를 다졌다. 나는 “먼저 잠을 자고 오후에 내가 출근하고 돌아오면 다시 말해요”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오후에 출근하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어!’라고 생각했다. 이 일념이 구세력에게 꼬투리를 잡혔다.

내가 베이징에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을 때 베이징에서는 성 정법위원회에 전화를 했으며, 성에서 시 정법위원회로, 시 정법위원회 서기는 현급 시 정법위원회 서기에게 엄숙하게 내 문제를 처리하라고 요구했다. 정법위원회는 법원장에게 통지해 법원장은 하루 사이에 정법위에 3, 4번 갔다 왔으며 이 문제 때문에 원장은 서면 조사까지 받았다. 이를 통해 중국공산당 사당의 연좌 정책을 짐작할 수 있다.

법원지도자는 면담이라는 명목으로 나를 사무실에 연금시키고 관할구역 파출소로 납치했다. 나는 파출소에 불법적으로 이틀간 구금됐으며 경찰은 나를 불법 노동교양을 시키려 했다. 구금 이튿날 저녁 나는 파출소 경찰을 찾아가 말했다. “당신들 구금은 불법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당신들이 모든 책임을 져야합니다!” 나는 박해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타파하기로 했다! 저녁에 그들이 주의하지 않은 틈을 타 나는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렸는데 그때 허리 부위를 다친 것 같았다. 땅에 누웠는데 허리부위가 너무 아팠지만 나는 대법제자로서 사부님께서 보호해 주시기에 괜찮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일어나 외투를 입고 천천히 집으로 걸어가다가 결국 길에서 또 경찰에게 납치돼 파출소로 끌려왔다.

이튿날 법원에서 사람을 파견해 나를 한 모텔에 연금시켰다. 판사가 노동교양을 받았다면 정법위원회 계통 이미지에 영향을 준다며 상사가 노동교양을 비준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은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신 것이다. 사람이 어찌 결정권이 있겠는가?

직장의 사법경찰 등이 번갈아 가며 나를 지켰다. 아내는 곳곳에 다니며 내 소식을 알아봤다. 이후에 선량한 동료가 몰래 아내에게 장소를 알려주었다. 아내가 나를 보러 왔을 때 나의 허리는 아파서 굽힐 수 없었고 앉을 수도 없었다. 아내는 병원에 가서 검사하자고 요구했다. 검사한 결과 척추가 골절됐다. 나는 대법제자기 때문에 괜찮다는 것을 굳게 믿고 연공을 견지했더니 아주 빨리 정상으로 회복되어 나를 지키던 사람들은 모두 신기해했다.

나는 즉시 집으로 가겠다고 요구했지만 원장은 사악의 압력 때문에 내 가족을 속이고 몰래 나를 정신병원으로 보냈다.

정신병원

그때 우리 이 현급 시의 40-50여 명 파룬궁수련생이 불법적으로 이 정신병원에서 박해를 받았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매일 강제로 주사를 놓고 약을 먹였다. 이후에 작은 흰 알약을 추가했는데 먹은 후면 몽롱하게 잠이 들었고 기억력이 감퇴됐으며 심지어 일부 기억력을 상실하고 간을 심하게 손상시켰는데 인체에 아주 큰 해를 끼쳤다.

처음에 나는 간호사의 검사를 피해 남몰래 약을 뱉어내고 의사 앞에서 일어나지 않고 자는 척하고 정신이 나지 않은 척했다. 그러자 그들은 약을 더 추가하지 않았다. 나는 이는 어쨌든 사람의 방법이지 대법제자의 정정당당한 수련 원칙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밥 먹을 때 같은 층에 있던 수련생 6명과 어떻게 이런 사악한 박해를 타파할 것인지 상의했다. 우린 저녁밥을 먹고 단체 연공을 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엔 양심이 아직 남아있는 당직 의료인이 관계하지 않아 우린 아주 기뻤다. 아마 환희심이 나온 것 같았다. 어느 날 저녁 우리가 연공하고 있는데 장씨 성을 가진 과주임(이미 파룬궁박해국제추적조사 기구로부터 추적 대상으로 열거됐음)이 발견하고 마성이 크게 폭발해 우리 몇 사람을 발로 차고 마구 때렸다. 내 눈 부위는 그의 주먹에 맞아 부었다. 이튿날 그는 우리 대법제자 6명을 홀에 불러놓고 하나씩 밥상에 묶어두었다. 두 남자 간호사가 각각 두 손으로 내 어깨를 붙잡아 나를 의자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장씨 악인이 헝겊 띠로 내 두 팔과 손을 밥상에 묶고 전기침으로 내 두 손가락 엄지와 식지 사이 부위를 찔렀다. 전기침은 변압기에 연결되어 있었는데 기기 전원을 켜고 장씨는 전압을 올렸다. 두 팔이 갑자기 저리고 아팠다. 처음엔 나는 대법제자이기 때문에 사악 앞에서 고통스러운 표현을 지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견지했지만 그 고통은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질식시켜 저도 모르게 입을 크게 벌리고 “아-!”하고 길게 외쳤다. 전압이 높을수록 외치는 소리가 더 길고 높아졌다. 이 고문을 목격한 진짜 정신병 환자들은 모두 놀라서 벽 모퉁이에 숨어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그러나 고문은 우리를 위축시키지 못했다. 어느 날 저녁 우리 몇 사람은 연구 토론해 정정당당하게 박해를 반대하며 약 먹는 것을 거절하고 단식으로 집에 가겠다고 요구하자고 했다. 이튿날 우린 동시에 약을 거절하고 단식했다. 첫날 병원 측은 개의치 않아했는데 이틀, 사흘, 나흘째가 되자 병원 의료인은 우리에게 강제로 코로 음식물을 넣었다. 몇 사람이 나를 침대에 눌러놓고 한 여 간호사가 콧구멍으로 관을 넣었다. 그녀는 고의로 힘껏 아래로 넣고 다시 뽑아내고 또 힘껏 넣고 또 뽑아내면서 위벽을 반복해 자극했다. 나는 구역질이 나고 토하고 숨을 쉬지 못하고 말할 수 없었다. 콧구멍으로 정체불명 약물을 넣었는데 매번 주입당한 후 온몸에 열이 나고 조급하고 정신이 안정되지 않았으며 몽롱하게 잠이 들곤 했다.

현지 정치법률위원회는 이에 아주 긴장해 하며 여러 번 병원에 왜 단식했으며 누가 조직했는지 물었다고 한다. 그들은 우리가 조직적이고 통일적으로 행동했다고 여겼다. 열흘 째 되는 날, 세뇌반에 갇혔던 수련생들이 정신병원으로 보내지고 우리는 세뇌반으로 대신 보내졌다. 나는 세뇌반에서 불법적으로 2개월 갇혀 있었는데 정신병원에 불법적으로 갇혀 있은 시간 2개월을 합하면 중국공산당 사당은 불법적으로 나를 총 4개월 감금했다.

당시 단식 후 내 위장 건강은 강철처럼 좋아졌다. 과거에 굶으면 배가 아프고 많이 먹어도 아팠는데 지금은 많이 먹든 적게 먹는 아무런 불편한 감이 없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의 신체를 정화해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해 해체

2007년 법원에 새로 젊은 원장이 왔다.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고 또 진상을 알린다는 사실을 듣고 내 재판관 직무를 해임하려 했다. 몇 명 부원장이 단체로 나와 면담했다. “우린 원장님의 위탁을 받고 당신을 찾아와 면담하는 겁니다. 첫째 연공을 하지 않겠다는 서면 보증을 써야 하고 선전하지 말아야합니다. 둘째 당신의 직무를 해임할 것입니다. 인대(인민대표) 상무위원회 자료도 다 준비했습니다. 당신의 선택을 기다릴 뿐입니다.” 나는 말했다. “제가 파룬궁을 연마하는 것은 잘못이 없습니다. 제 직무는 당신들이 결정권이 없습니다.” 그는 말했다. “누가 결정권이 있지요?” 나는 그에게 대답하지 않고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 사부님에게 결정권이 있다!’

그 후 나는 안으로 찾아보았다. 나에게 아직도 두려운 마음이 있었고 이익에 대한 마음이 있어 이익을 잃을까 두려워했던 것이다. 나에게 집착이 있어도 절대로 구세력의 박해를 승인해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하지 않으시는데 제자도 승인해서는 안 된다. 대법에서 법공부 수련을 통해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고 대법에서 승화할 수 있다. 구세력은 존재하지 말아야 하며 그의 배치도 마땅히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

나와 아내(아내와 아이도 이미 법을 얻어 수련한지 몇 년이 됨)는 함께 발정념하여 모든 사악한 요소를 제거하고 또 실명으로 진상 편지를 써서 여러 부 복사해 각기 인대 상무위원회 주임, 부주임과 내가 이름을 아는 위원에게 보냈다. 내용은 파룬궁 진상을 알리는 이외 법원에서 인대 기치를 걸고 나를 박해한 상황을 폭로했다. 이후에 해임 문제는 법원에서 철회했다.

2014년 2월 어느 토요일 오전, 나와 아내가 션윈 CD를 갖고 거리에 있는 상가에 들어가 배포했는데 악인이 고발해 경찰에게 파출소로 납치됐다. 우리는 진술하지 않고 어떤 글도 서명하지 않았으며 진상을 알리고 발정념을 하면서 협조하지 않았는데 사부님의 보호로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속인 이쪽에서 보면 구치소에서 우리 두 사람의 신체가 합격되지 않아 받지 않아 경찰은 법원에 통지해 나를 데리러 오게 한 것이다.

월요일 출근하자 법원장, 기율검사 조장이 나를 찾아와 면담했다. 나에게 파룬궁을 선전하지 말고 법원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보증하라고 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사퇴시키거나 스스로 사퇴하라고 했다. 나는 그들이 업을 지어서는 안 되므로 반드시 정정당당하게 그들에게 대법제자의 수련, 직업과 가정생활은 사부님만이 결정해주신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말했다. “어떤 보증도 쓰지 않을 것입니다. 대법제자는 사부님에게만 보증을 하지 어찌 사람에게 무슨 보증을 합니까? 법원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말라고 하는데 이것은 문제될 것 없습니다. 대법제자는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인데 좋은 영향만 있을 뿐, 법원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까? 사퇴시키거나 사직에 대해 사람은 결정권이 없습니다. 사람의 일생에 무엇을 하고 복을 얼마나 누리는가 하는 것은 하늘이 배치한 것입니다. 사람이 어찌 결정권이 있습니까? 대법제자의 직장 일, 생활은 사부님만이 결정권이 있습니다!”

이후 나와 아내는 바로 안으로 찾았다. 환경이 느슨해지자 환희심이 생겨 안전에 주의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거리에서 션윈 CD를 배포해 사악이 틈을 탄 것이었다. 나는 아직도 무신론 요소를 깨끗이 제거하지 못했고 신사신법에 여지를 남겨서 법원의 박해가 나타난 것이다.

사람 구도하는 것을 잊지 않다

근무 장소가 바로 내가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장소다. 나는 이런 기회를 이용해 그들에게 삼퇴를 권할 때까지 진상을 알린다. 파룬궁은 억울하며 천안문 분신자살은 장쩌민 집단이 계획한 것이고 공산당은 사악한 조직이며 사교 조직이다, 탈퇴하면 평안을 보존하고 재난을 피할 수 있다고 사람들에게 알려준 다음 밍후이왕 보도를 사례로 그들에게 대법 박해에 참여하여 업보를 당한 사실을 알려주면서 현지 사람들이 잘 아는 사람과 사례를 들었다. 그들 대부분은 동의하고 인정하면서 가명으로 삼퇴하는데(탈당, 탈단, 소선대 탈퇴) 동의했다.

안건을 처리하는 재판을 하기 전에 나는 먼저 소송 쌍방의 기본 상황을 알아보고 재판하기 전에 화해를 시킨다. 화해 과정에서 진상을 섞어 말한다. 이지적이고 지혜롭게 당사자의 접수 능력에 따라 다시 삼퇴를 시켰는데 이후에 많은 사람이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을 알고 내가 안건을 심리하길 바랐다. 그들은 파룬궁은 선물을 받지 않고 뇌물을 받지 않으며 일처리를 공정하게 해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판사는 늘 변호사와 접촉하는데 나는 변호사와 접촉하는 기회를 이용해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다. 몇 년 전 추석, 새해 등 명절이 되면 어떤 변호사와 직장의 소송을 관리하는 사람은 선물, 심지어 상품권을 나에게 주는데 나는 모두 그들에게 나는 대법제자이기 때문에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어야하므로 다른 사람의 물건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이는 대법제자의 원칙이라고 알려주었다. 처음에 그들은 견지하다가 내가 “나는 대법제자(大法弟子)”라고 말하면 더 견지하지 않았다. 이는 대법의 위력이라고 나는 깨달았다. 지금 본시의 현지 변호사는 거의 모두 삼퇴했으며 일부 최근 2년은 새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된 사람들이 아직 삼퇴하지 않았는데 해마다 그들에게 션윈 CD를 증정하고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면 이런 변호사에게 일부 진상 소책자를 준다.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에 대해 법공부하면서 깨달았다. 직장 동료는 늘 만나는 사람이고 심지어 날마다 만나 함께 일하는 사람인데 그들은 아마도 나의 전생의 가족이거나 다른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고 깨닫고 ‘이렇게 큰 연분이 있는 사람을 어찌 구하지 않는가?’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일을 했고 어떤 사람은 대법제자를 불법적으로 판결했지만 그것은 구세력의 배치이지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이 아니다. 사부님께서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하지 않으시는데 대법제자도 승인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이런 일념으로 계획 있고 절차에 따라 진상을 알렸다. 어떤 사람에게는 직접 말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먼저 션윈을 보여주고 다시 그에게 진상 CD를 보여준 다음 삼퇴를 권했다. 한번 말해서 통하지 않으면 나쁜 생각을 하지 않고 스스로 내 심태가 바르지 않은지 안으로 찾았다. 처음에 다른 사람이 진상을 듣지 않으면 화가 나거나 심지어 “큰 난이 올 때 목숨을 잃게 되면 나를 탓하지 마시오!”라고 말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법원 재판장은 평소에 입으로는 파룬궁을 반대하지 않지만, 그의 말로 한다면 그는 파룬궁을 믿지 않는다. 평소 나는 그를 만나면 그에게 몇 마디 말했다. 션윈도 보았고 진상자료도 보았지만 믿지 않았고 삼퇴도 하지 않았다. 간간히 줄곧 2007년까지 3년 넘게 삼퇴를 권했다. 나는 조금 상심해하며 말했다. “저는 이후에 다시는 당신을 찾아가 말하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어느 때 때가 됐다고 생각하면 저를 찾아와 삼퇴 하십시오. 우리 다시 얘기 나눕시다. 혹은 당신이 스스로 삼퇴 성명을 종이에 써 붙여도 됩니다.” 2008년 쓰촨성 원촨 지진 후 나는 또 그를 만났다. 나는 “지금 시기가 됐다고 생각합니까?”고 물었더니 그는 “시기가 된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와 헤어졌다. 결국 그해 10월 1일 휴가기간 그가 갑자기 죽어 오랫동안 나는 자책에 빠졌다. 그 후부터 진상을 듣지 않는 사람에게 나는 다시는 악한 말로 대하지 않았고 좋지 않은 악념을 움직이지 않았다. 오늘 듣지 않으면 다음 기회가 있을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이 듣지 않는 것은 내 심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고, 내가 법공부를 많이 해서 자비심이 나오면 그가 듣고 탈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형사 법원의 부재판장은 대법제자를 불법적으로 판결하는데 참여했기 때문에 2008년부터 그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으며 줄곧 간간히 2013년 여름까지 말해서야 그는 사당을 탈퇴하는데 동의했다. 지금 법원 법관 및 다른 인원은 일부 부원장을 포함해 이미 60퍼센트 이상이 삼퇴 했다.

수련에서 곤두박질하면서 지금까지 걸어왔고 그 사이 오점도 있었지만 더 노력해 씻어내고 있다. 수련의 길에서 사부님의 보호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걸어왔다. 매번 안으로 찾으면 모두 많은 집착을 찾을 수 있었고 자신에게 명리정이 아직도 존재함을 발견했다. 앞으로 3가지 일을 잘하고 더 많은 중생을 구하기에 노력하겠다.

이상은 나의 천박한 체험이니 수련생 여러분께서 많이 가르쳐주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5년 4월 1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새롭게 수련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4/15/30739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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