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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신선의 눈으로 본 대법제자(하)

글/ 선연(善緣)

[밍후이왕] 작가 머리말: 이 글은 수련생들에게 참고로 제공할 뿐 법을 스승으로 삼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법을 실증하고 좋은 일을 하는 것을 우리는 거절하지 않는다. 또 다른 사람들이 대법제자의 부족함을 지적하면 우리는 마땅히 각 방면에서 법으로 대조하고 안으로 찾으며 자신을 바르게 수련해야 한다.

* * *

(앞 문장에 이어) 또 하나 줄곧 걱정하는 문제가 있어 이 도인과 교류해봤다. “천목이 열린 수련생이 아래로 떨어지고 훼멸된 것이 너무 많아요. 왜 이럴 수 있지요? 저도 걱정됩니다……”

그가 말한 대의는 이렇다. “정말로 전심으로 신사신법(信師信法)한다면 어찌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최초 근본 상에서부터 법에 대해 의혹이 있고, 기초가 탄탄하지 않으며, 문제가 나타난 후에도 법으로 자신을 바로 잡지 않았기 때문에 점차 환상을 믿고 법을 믿지 않게 됩니다. 적지 않는 사람이 스스로를 역사상 명인(名人)으로 여기고 자신을 총명하다고 생각해 잘난 체합니다. 사실 본 것은 종종 옳지 않는 것입니다. 지혜는 정법 수련에서 온 것이지 역사 인물에서 온 것이 아니고, 더욱이 마경(魔境) 환상 속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마음속으로 득의양양 하는 마음이 생기기만 하면 큰 번거로움을 초래합니다. 마지막에는 자심생마(自心生魔)해서 일이 갈수록 더욱 심각해지고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은 그의 말을 빌어 우리의 부족함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당초 나는 정말로 법에 대해 완전히 믿지 않았으나 공능이 좀 생겼다. 다시 말해서 공능이 좀 나와서야 신사신법할 수 있고 정과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공능이 없어도 확고한 마음과 깨달음으로도 원만할 수 있는 수련생의 경우와 비교하면 신사신법하는 기초부터 격차가 매우 크다. 정말로 기뻐할 일이 아니고 더욱이 자아가 팽창해서는 안 된다. 내가 처음의 호기심, 환희심을 없애고 대법을 확고하게 믿었기에 비로소 많은 가상의 유혹을 넘기고 계속 천목으로 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나는 천목이 열린 어떤 수련생에게서 환희심이 조금 남아있기만 하면 환상이 사라지지 않는 것을 보았다. 어떤 수련생은 보게 된 역사적 사건을 써 냈는데 소설의 허구적인 줄거리에 맞고 현실 역사와는 상반됐는데 사실 이것은 위험한 것이다. 이런 자심생마의 요소를 가진 문장은 독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은가? 누가 기뻐할 것인가? 만약 스스로 기뻐하고 만족한다면 마침 교란하는 마귀가 기뻐하는 것이다. 어떤 수련생은 본 광경에서 대법으로 진위(眞僞)를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벗어난 환상을 믿고 마지막에 대법을 믿지 않게 됐다. 자아팽창은 조금씩 마귀에 의해 추켜올려진 것이고 다른 사람을 추켜올리는 사람 자체도 문제가 있다. 호기심, 환희심, 자아의 마음을 꼭 없애야 한다.

사부님께서 “자신이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하는 이것은 바로 불교 중에서도 아주 꺼리는 것이다.”[1]라고 말씀하셨다. 이 한 단락 법을 꼭 깊게 배우고 해내야 된다.

그는 말했다.(대의) “어떤 사람들은 대법의 일부분만 믿습니다. 어느 부분을 믿지 않을까요? 자신이 해낼 수 없는 부분은 믿지 않습니다. 대법을 믿어도 자기중심으로 합니다. 대다수 ‘병(病)’ 이 부분을 믿지 않는다면, 법은 이 부분에서 그에게 위력을 보여주지 않을 것이고 그는 더욱 믿지 않게 됩니다. 이 사람들은 다수가 속인 중의 강자인데 사실은 수행(修行) 중의 깨달음이 매우 좋지 않지만 여전히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직하고 일하는데 어떻게 강하고 어떻게 정진하고 확고하게, 심지어 바빠서 법공부하고 연공할 수 없을 정도로 표현되지만, 사람이 없을 때는 시간이 있어도 착실하게 연마하지 않고 속인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말하지도 건드리지도 못하게 하는데 자신의 그런 치명적인 집착을 보호하는 수련생은 신(神)에게 매우 업신여김을 당합니다.”

이로부터 ‘정진요지’ 중 ‘시간과의 대화(和時間的對話)’ 중 “신: 그들 중에는 또 그들 자신이 좋다고 여기는 법의 일면을 찾으러 온 사람이 있는데 오히려 그들 자신이 법을 전부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다른 일면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습니다.”[2]라는 법을 생각했다. 이전에 배웠지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알고 보니 여기에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이후에 또 밀레르빠의 수련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는 의혹이 있었지만 사부님을 의심한 적은 없었다. 즉 그의 사부가 끊임없이 그를 괴롭혀도 그는 사부에 대해, 법에 대해 추호도 사악한 생각이 없었고 오로지 자신의 어디가 아직 사부님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했는지만 찾았고 기껏해야 자신이 안 된다고만 의심했는데 이런 신사신법이야말로 그가 일세에 부처로 될 수 있는 보증이었다.

그러나 어떤 수련생들은 자기중심적이고 문제에 부딪히기만 하면 대법을 의심했다. 매우 이름 있는 한 수련생이 있는데 마지막에 병업관을 넘기지 못했다. 그는 병원에서 몰래 “이 법이 진짜인가 가짜인지 줄곧 의심했는데 지금 봐서 정말 안 되네요?”라고 말했다. 대법이 이미 그에게 생명을 연장해준 것을 봤는데 지금 그의 마음속에 충만된 의심도 참지 못하고 말해버렸다. 이어서 무엇을 말해도 그는 듣지 않았다. 그는 대법을 위해 너무 많은 고생을 했고 매우 많이 지불했으므로 사부님께서 마땅히 파격적으로 그를 관할하고 그가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아도 병을 제거해주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사부님과 거래하는 것이고 연마하지 않고 특별대우를 받으려 하는 것이다. 속인의 집착과 의혹을 놓지 않고 한 방면에서는 다른 수련생에게 발정념을 해달라고 도움을 청하고, 다시 시험 삼아 다른 방면에서는 병원에 가서 목숨을 부지했는데 결국 이튿날 세상을 떠났다. 무릇 병원에 가보겠다는 것이 설령 조그마한 일념이라도 모두 속인의 것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속인 이 층차 법(法)의 제약을 받아야 한다.

그는 또 다른 정황을 말했다. 대략 일부 대법제자는 매우 확고하게 믿고 있고 정말로 서약을 실행하고 있으며 대법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바치고 있지만, 사람의 방법으로 필사적으로 소모하고 있고 법공부도 연공도 고려하지 않으며 무턱대고 지불하고 있는데 사실상 법공부하면 그에게 지혜를 주고 착실하게 수련하면 굽은 길을 적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단순히 사람의 방식으로 일하면서 사람의 이 한 층의 법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면 늙기도 전에 쇠약해지고 과로사 등 사람 중의 규칙이 그를 제약하게 된다. 또 어떤 사람은 대법 일을 하면 보험에 가입한 것과 마찬가지이고 사부님께서 그를 도와 관(關)을 넘겨줄 것이라고 확고히 믿지만, 오히려 오랫동안 자신을 수련하지 않는데 위험한가 위험하지 않은가? 누구나 결말을 다 알 것이다.

내 주변에 바로 이렇게 확고하고 전력으로 지불하는 수련생이 있다. 지금 자신에게도 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스스로 법에서 확고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직 많은 격차가 있고 적어도 완전히 믿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사실 나는 줄곧 말했다. 수련은 대법 일을 하는 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반드시 그렇다. 왜냐하면, 연공은 피로를 가장 잘 제거하여 신체를 빨리 회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3]라고 말씀하셨다.

예를 들어 대법 일을 하다가 힘들면 게으름을 피우고 연공하지 않고 늘 잠자는 것으로 체력을 회복시키는데, 자신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 대법이 이 방면에서 자신에게 위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그다지 믿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 않는다면 이 방면을 수련하지 않는 것과 같으며 결과적으로 속인의 피곤하고 힘든 상태가 나타나게 된다. 사실 연공을 견지하기만 하면 정말로 피곤하지 않다. 그러나 반성하지 않고 원인을 깊이 파지 않는데 그 근원은 바로 이 한 단락 법을 투철하게 배우지 못했고 이 한 단락 법을 확고하게 믿지 않기 때문이다.

두 수련생이 있는데 출소할 때 박해를 받아 둘 다 병업이 매우 심했지만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런데 둘의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한 수련생은 암 말기 초읽기에 들어갔고 교도소 관리부서에서도 가족에게 배상을 해주면서 그들을 고발하지 말라고 빌었다. 그러나 이 수련생은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해 한 달 만에 건강을 회복했고 몇 년 동안 줄곧 좋았으며 정정당당하게 3가지 일을 했다. 교도소 관리부서도 이 기적을 보고 다시는 감히 박해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한 수련생도 병업 상태를 마음에 두지 않고 견지해 진상을 알렸지만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것을 매우 적게 했다. 그는 연공에 신심이 좀 부족했고 진상을 알리는 일을 하면 사부님께서 그를 더욱 보호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상 아직 조금의 병업에 있지만 이렇게 ‘정진’하는 것으로 병업을 없애달라고 사부님께 요청하려는 생각이 있었다. 성격도 줄곧 매우 좋지 않았고 수련생이 여러 번 “자꾸 마성에 통제되면 안 된다”고 일깨워줬는데도 그는 덮어 감췄다. 결국 3년을 끌다가 세상을 떠났다. ‘큰병 중증’을 치료하지 않고 3년 연장된 것도 이미 기적이다. 그러나 그는 그 3년 동안 자신을 바로 잡지 못해 매우 안타깝게 떠났다.

사부님께서는 “역사상에서 어떤 약속을 체결했더라도 당신이 오늘 정념(正念)이 충족해,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가지지 않으면, 당신은 바로 그것을 부정할 수 있다. 그러나 무릇 이런 것들은 하기가 좀 어렵다. 어려움은 바로 구세력이 당신에 대해 쉽게 손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것은 당신의 빈틈을 뚫고자 하는데, 당신에게 조그만 소홀함이라도 있으면 그것은 곧 뚫고 들어온다.”[4]라고 말씀하셨다.

만약 이 한 단락 법을 투철하게 배우지 못하고 수련의 엄숙함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자신을 연마하지 않아도 언제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될 것이다. 마에게 틈을 타게 하고 화를 내는 것이 바로 전형적인데 스스로 위험성을 모른다면 이미 위험에 처해있는 것이다.

마지막에 도인은 또 말했다.(대략적인 뜻) “그런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들이 만약 나에게 하나만 있었더라도 1,700년 전에 이미 죽었을 것입니다. 또 만약 오랜 세월동안 비슷한 마음이 하나만 생겼더라도 벌써 수련에서 떨어지고 죽었을 것입니다. 이런 것은 말만해도 오염되는 것이니 함부로 듣지도 말아야 합니다.”

병업관을 넘지 못해 병원에 목숨을 부지하러 갔고 결국 모두 목숨을 구하지 못한 수련생을 적지 않게 봤다. 속인의 생사, 수명은 모두 정해진 운명이므로 불치병 병업 현상이 타나났을 때는 아마 속인의 수명이 다 됐다는 것인데 이때 병원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주변에 적지 않은 수련생들은 장기적으로 법공부하지 않고 연공을 형식적으로 하며 진정으로 자신을 개변하지 않는다. 또 법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대법으로 마음의 매듭을 풀지 않고, 속인 중의 과거 일이나 사소한 일들을 마음속에 계속 묻어둔다. 때문에 일에 부딪히면 표현되는데 법으로 해결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 마음으로 강화한다. 자신을 찾을 때도 표면에서만 찾고 억지로 참으면서 덮고 넘겨서 겉만 수련한다. 법공부도 법공부할 때는 심태가 좋지만 책만 내려놓으면 언행 속에 속인의 집착이 넘치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보게 되면 자신의 문제를 깊이 파야 한다. 때문에 나는 다음과 같은 것을 깨달았다. 매 하나의 집착은 사실 모두 수련인의 생명을 해치고 있다. 대법의 표준으로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할 수 없고 집착을 하나하나 빨리 없애지 못하면 갈수록 쌓여 생사관을 넘기기 어렵게 된다.

사실 많은 손실은 회피할 수 있었고 많은 수련생의 생명은 원래 만회할 수 있었다. 수련 중 의문이 있는 것은 정상이므로 마지막까지 쌓아놓지 말고 교류 중 꼭 제고할 수 있기에 수련 중 마음을 열어야 하고 꼭 법 중에서 의문을 해결해야 한다. 집착하는 자아를 내려놓아야 선천적인 진정한 자아에 가까운 것인데 그 자아의 본성 경지는 무사무아(無私無我)한 것이다.

이상은 개인의 심득이고 정확하지 않는 곳은 여러분께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여기에서 천목이 열린 수련생들에게도 일깨워준다. 만약 입정할 때 무슨 지상도(地上道), 지상 신선을 보면 절대 호기심, 환희심을 일으키지 말고 꼭 대법의 요구대로 하고 절대 응대하지 말라. 궁금해 하고 응대하기만 하면 교란을 받고 공이 난잡하게 된다. 만약 현실 생활 중 이 지상도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도 그가 말한 그 어떤 말도 마음에 두지 않았을 것이다. 부디 불이법문(不二法門)의 엄숙성을 기억해야 한다. 모든 것은 대법 중에서 바로 잡아야만 미래가 있다.

(끝)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시간과의 대화(和時間的對話)’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 4-2003년 애틀란타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 2-2002년 미국필라델피아법회 설법’

문장발표: 2015년 4월 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4/8/3071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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