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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공(神功)의 특효 증명 ‘파룬따파는 좋다!’(6)

고목에 봄이 오고 소철에 꽃이 피다

[밍후이왕] (전편에 이어)

5. 고목에 봄이 오고 소철에 꽃이 피다

‘고목에 봄이 온다(枯木逢春)’는 것은 일반적으로 말라서 죽게 된 나무가 따뜻한 봄을 맞아서 기적적으로 되살아난 것을 말한다. 위독한 병자나 사물이 새로운 활력을 얻음에 비유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을 말한다.

소철(蘇鐵)은 상록수로서 나무줄기가 쇠처럼 단단하고 철 성분을 함유한 비료를 좋아해 얻은 이름이다. 비록 십여 년 수령의 소철은 해마다 꽃을 피울 능력이 있지만 추위를 매우 타기 때문에 기후가 조금만 맞지 않으면 몇 년이라도 꽃이 피지 않는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소철에 꽃이 피는 것을 매우 보기 드물거나 실현하기 어려운 일에 비유한다. 속담에 ‘소철에 꽃이 피고 벙어리가 말을 한다’고 하는데 소철에 꽃이 피는 일이 매우 드문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파룬궁수련생들은 수련 전에 ‘낫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며 편히 살 수도 없는’ 질병에 걸려 살기가 죽기만 못한 힘든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들은 파룬궁을 수련한 후 신체가 건강해졌는데 마치 긴 가뭄 끝에 행운의 단비를 만난 것 같았다. 고목에 봄이 오고 소철에 꽃이 핀다는 말로 형용해도 조금도 과장되지 않다. 이 시리즈는 바로 이런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실명한 소녀 이야기

소녀는 전신이 마비되고 두 눈을 실명해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 쉬파링(徐發領)은 소녀에게 정념을 확고히 하고 대법을 진심으로 수련하라고 격려했으며 항상 그녀와 함께 법공부하고 교류하고 생할 면에서 관심하고 보살펴주었다. 소녀의 심성(心性)은 아주 빨리 제고됐는바 병세도 뚜렷이 호전됐다. 이후에 기적처럼 일어섰고 게다가 다른 사람의 부축으로 걸을 수 있었다. 그 후 쉬파링은 의연히 소녀와 부부의 연을 맺었고 1년 반 후 건강하고 총명한 딸을 낳았다.

쉬파링(남, 40여 세)은 1994년 허난 의과대학 임상의학부를 졸업해 의학원 제2부속병원 의사다.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꼼꼼하며 환자에게 진지하고 책임감이 있다. 환자들의 뇌물과 뒷돈을 받지 않아 사람들이 공인하는 좋은 의사였다. 쉬파링은 1996년에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해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 앓고 있던 류머티즘 관절염과 우울증이 철저히 완쾌됐다. 그는 모든 곳에서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어떤 장소에서든 사람들을 배려하는 더욱 좋은 사람이 됐으며 이로 인해 전처와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1997년, 쉬파링은 두 눈이 실명되고 휠체어에 앉아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소녀를 알게 됐다. 그녀는 ‘시신경척수염(視神經脊髓炎)’을 앓고 있었다. 부모와 함께 전국에 다니면서 치료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이후에 전신 마비에 두 눈은 실명으로 발전해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 이후에 누가 파룬궁이 좋다고 소개해 가족들은 한번 시험해 보자는 생각으로 휠체어를 밀고 연공장에 가서 법을 배웠다. 쉬파링은 소녀에게 정념을 확고히 하고 대법을 진심으로 수련하라고 격려했으며 항상 그녀와 함께 법을 배우고 교류하고 생활면에서 관심하고 보살펴 주었다. 소녀는 심성이 아주 빨리 제고됐고 병세도 뚜렷이 호전됐다. 이후에 기적처럼 일어섰고 게다가 다른 사람의 부축 하에 걸을 수 있었다. 그 후 쉬파링은 가족과 친척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의연히 소녀와 부부의 연을 맺었으며 1년 반 후 건강하고 총명한 딸을 낳았다. 이는 의사에게 ‘사형선고를 받은’ 병례 중에서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이것이 바로 대법이 가져온 기적이다.

당시 그들의 일은 지방 및 전국을 들썩이게 했다. 많은 언론 매체에서 보도했고 현지 TV방송국에서도 생방송을 하고 기자들이 끊임없이 방문해 인터뷰를 했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이 1999년 7월 파룬궁에 대해 잔혹한 박해를 시작한 후 쉬파링은 자주 박해를 받았다. 그는 2003년, 2006년 두 차례나 불법적인 노동교양을 3년이나 받았다. 직장에서도 그가 종사하는 의료업 자격을 박탈하고 그를 세탁소에 보내 육체노동을 하도록 핍박했다. 쉬파링의 전처는 사당의 공포적인 압력 하에 수련 환경을 잃고 파룬궁 수련을 감히 하지 못하는 바람에 이후 두 살 된 딸을 남겨둔 채로 질병으로 사망했다.

아들을 얻은 자즈장

농촌 출신인 자즈장(賈志江)은 만약 아이가 없었다면 현지에서 머리를 들고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자즈장은 불임증으로 한동안 절망에 빠졌다. 이후 매일 연공하고 법공부를 해서 파룬따파의 순정한 마당에 용련 되는 느낌이 들었고 사는 것이 홀가분해졌다. 마음은 넓어지고 온 몸은 가벼워 졌으며 자신의 병도 차츰 잊었다.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 리룽메이(李榮梅)는 임신했다. 자즈장은 대법의 혜택을 입은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불임증은 부지불식간에 스스로 나았다.

1994년에 젊은 자즈장은 뜻밖에 생식기 장애 진단을 받아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거운 큰 짐이 됐다. 그는 힘들게 벌어온 월급을 전부 치료에 썼다. 많은 병원에 가보았는데 전문의는 그에게 임신 능력이 없다고 확진했다. 의료수단은 기껏해야 더 심각한 쪽으로 발전하지 않게 해줄 뿐이었다. 농촌 출신인 자즈장은 만약 아이가 없었다면 현지에서 머리를 들고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자즈장은 한동안 절망에 빠졌다.

1996년 자즈장은 우연한 기회에 파룬궁을 접촉했다. ‘진선인(眞善忍)’이 너무 좋다고 생각해 파룬따파 수련에 들어왔다. 이전에는 계산적인 것, 쟁투에서 손해를 보면 마음이 편하지 않았고 어떤 때는 앙갚음할 생각도 들곤 했다. 수련한 후 자즈장은 사람이 되는 높은 표준을 알게 됐으며 그런 좋지 못한 생각들은 모두 없어졌다. 매일 연공하고 법공부하면서 파룬따파의 순정한 마당에 용련 되는 느낌이 들어 사는 것이 홀가분해졌다. 마음이 많이 넓어졌고 온 몸이 홀가분해졌으며 자신의 병도 차츰 잊었다.

1996년 자즈장이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 리룽메이는 임신했다. 자즈장은 대법의 혜택을 입었음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의 병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완쾌됐던 것이다. 동시에 그의 치통, 편두통 등 질환도 완쾌됐다.

얼마 후 그들의 아들이 태어났다. 용모는 자즈장과 리룽메이의 장점을 닮아 아주 귀엽고 철이 들었으며, 건강해서 어려서부터 클 때까지 병원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아내 리룽메이도 온 집안이 대법의 혜택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고 잇따라 수련으로 들어왔다.

자즈장은 언사에 능숙하지 못했다. 수련한 후에도 자신의 병을 더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결혼 후 자즈장은 리룽메이에게 자신의 병을 얘기하지 않았다. 리룽메이가 임신한 후에도 자즈장은 어떻게 그녀에게 얘기해야 되는지 몰라 이 일을 제쳐두었다. 단지 리룽메이가 임신 부종이 왔을 때 그녀에게 파룬궁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들려줬다. 막 1강을 들었는데 리룽메이의 발은 붓기가 빠졌다. 리룽메이는 파룬궁이 아주 좋다고 생각했다.

1999년 중국공산당이 불합리하게 파룬궁을 박해한 후 압력에 의해 리룽메이는 자즈장을 더 이상 수련하지 못하게 했다. 장모도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파룬궁을 모함한 거짓말)’을 듣고 사위를 수련하지 못하게 했지만 모두 자즈장을 설득하지 못했다. 리룽메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때서야 자즈장은 리룽메이에게 자신은 본래 임신 능력이 없었는데 아들은 대법이 내려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실에 리룽메이는 매우 놀랐고 자즈장을 저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파룬따파의 수련에 들어섰다.

그들의 아들 자숴(賈碩)는 아주 사랑스러웠다. 강보에 싸여 있을 때 작은 손을 내밀면 연화지(蓮花指)였는데 연공할 때 손 모양과 똑같았다. 아들의 외모는 자즈장과 리룽메이의 장점만 닮았고 매우 똑똑하고 건강했다. 어려서 부터 클 때까지 병원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심지어 약 한 알 먹지 않았다. 어쩌다 머리가 아프고 열이 나면 대법 설법녹음을 들으면 아주 빨리 나았다. 자즈장은 “수련한 후 사부님께서 나에게 아이를 하사해 주셨어요”라고 말했다.

곱사등이 펴지다

마르고 허약하여 체중이 35Kg에 불과했으며 허리 부분이 변형됐고 등이 굽었기에 사람이 전체적으로 늙고 동작이 굼떠보였으며 50여 세인데 70여 세로 보였다. 괴로움이 극에 달해 사는 것이 죽기만 못했다. 클 대(大)자도 모르는 까막눈이었지만 파룬궁을 수련한지 일주일도 안 되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윈난성 루펑(祿豐)현의 류전(劉珍)이 2013년 5월에 진술한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는 류전이라고 한다. 금년에 77세이며 윈난성 루펑현 축산국 직원 숙소에 살고 있는데 퇴직노동자다. 1997년 6월에 기쁘게 파룬따파를 얻었다. 대법을 배우기 전에 나는 온 몸이 병투성이였다. 마르고 허약해 체중이 35Kg에 불과했으며 허리부분이 변형됐고 등이 굽어 사람이 전체적으로 늙어서 동작이 굼떠보였으며 50여 세인데 70여 세로 보였다. 항상 직장 동료와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아 괴로움이 극에 달했으며 사는 것이 죽기만도 못했다.

파룬궁을 수련한지 일주일도 안 되어 나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허리도 안 아프고 등도 펴졌는데 수십 년 곱사등이 뜻밖에 펴졌다! 사람도 희고 통통해졌으며 피부는 희고 불그레하고 체중은 20여 킬로그램이나 늘었다. 곱사등이 펴지자 키도 커졌고 사람도 단번에 10여 세나 젊어 보여 기분도 좋아지고 성격도 좋아졌다. 온 가족이 파룬따파의 법광 속에서 빛과 웃음으로 가득했다.

나는 학교에 가본 적이 없어 큰 대(大)자도 모르는 까막눈이다. 수련생들의 단체 법공부 팀에 참가해 두 손으로 ‘전법륜’을 받들고 다른 수련생들이 읽는 것을 한 글자 한 글자 들었다. 점차 나도 스스로 ‘전법륜’ 책을 통독할 수 있게 됐다! 나는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린 그녀의 이야기

심한 골다공증에 걸려 매일 침대에 누워만 있으면서 병마의 시달림 속에서 죽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몸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움직일 수 없었고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것은 모두 누군가 도와줘야 했다. 그리하여 이후에 현지에서 열린 4천5백 명이 참가한 교류회에서 왕신펑(王欣風)은 수련의 혜택을 입은 경험을 발표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감동해 눈물을 흘렸다.

왕신펑은 산둥성 라이시(萊西)시 르좡(日莊)진 바오거좡(鮑格莊)촌 사람이다. 1997년 봄에 운 좋게 사부님의 고덕(高德) 대법을 얻었다. 그녀가 법을 얻기 전에 불치병인 심한 골다공증에 걸렸다. 큰 병원 몇 곳에 가서 치료했지만 돈을 수 없이 쓰고도 고칠 수 없었다. 매일 침대에 누워서 병마의 시달림 속에서 죽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몸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움직일 수 없었고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것은 모두 남편이 도와줘야 했다. 남편은 매일 무거운 육체노동을 하고 또 병든 아내를 돌봐야 했다. 어느 날 그녀 남편은 밭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와 침대에 누워있는 아내를 보고 힘들고 지치며 걱정하고 고민했지만 속수무책인지라 자살로 세상을 떠나고 싶었다. 중병에 걸린 아내를 보고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 한바탕 마음속 투쟁 끝에 자살할 생각을 내려놓고 다시 가정의 무거운 짐을 짊어졌다.

어느 우연한 기회에 왕신펑은 운 좋게 만년에도 만날 수 없는 대법을 얻었다. 몸은 움직일 수 없던 데로부터 뒤척일 수 있었고 천천히 앉을 수 있었다. 몇 개월 후 신체는 기적처럼 정상을 회복해 건강한 사람이 됐고 삼륜차를 타고 나가서 대법을 알릴 수 있게 됐으며 자신의 목숨은 파룬따파 사부님께서 구해 주신 것이라고 세인들에게 알려주었다. 1998년, 현지에서 열린 4천5백 명 교류회에서 왕신펑의 교류로 많은 사람들이 감동해 눈물을 흘렸다.

병이 고황에 든 가오제가 되살아나다

B형 간염, 위하수, 만성 장염, 비염, 기침, 감기에 쉽게 걸리고, 어지럽고, 장기적인 불면증, 척추와 발뒤꿈치 끝에 골극, 치질 등 이런 질환들이 모두 한 사람 몸에 있다면 일반인들은 그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가오제(高婕, 여, 2001년에 58세), 충칭(重慶)시 허촨구 윈먼진 솽옌 소학교 교사다. 각종 질병을 앓고 있어 몇 년간 치료했지만 가망이 없어 1996년 5월 사경에서 헤맬 때 그녀는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진선인을 표준으로 내심 좋은 사람이 되려 했다. 몇 개월 수련을 통해 그녀는 새 생명을 얻었다. 온 몸의 질병은 모두 신기하게 완쾌됐다. 걸음걸이에 힘이 있고 성격이 명랑하며 에너지가 넘치고 업무에 성실하며 책임감이 있어 교사와 학생, 학부모들의 호평을 받는 교육자가 됐다.

가오제는 33세 때부터 질병이 시작됐는데 매년 병명과 증세가 가중됐다. B형 간염은 거의 모두 양성 반응으로 나타났고, 위장은 8-9cm 하수했지만 수술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가오제의 혈소판이 심하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만성 장염(장기적으로 변이 묽다), 비염(감기에 걸리기만 하면 코가 막혀 입으로 숨을 쉬어야 함), 기침(감기에 걸리면 기침이 멎지 않고 몇 주 동안 지속됨), 쉽게 감기에 걸리며(매달 한두 번 감기에 걸린다), 어지럽고(기온이 높을수록 심함), 불면증이 갈수록 심해져 밤낮 잠을 이루지 못한다. 마지막에 하루 종일 겨우 두 세 시간 흐리멍덩하게 잠을 잘 수 있거나 심지어 연속 2, 3일 동안 한 숨도 못 잤다. 척추와 발뒤꿈치 골곡과 치질도 아주 심했다.

여러 해 동안 크고 작은 병원, 한의원, 양의원, 민간요법 등 다양한 방법을 써 보았지만 어느 한 가지 방법도 질병의 발전을 막을 수 없었다. 간이 아플 때는 통증을 다스릴 약이 없었고 소화 기능, 배설 기능과 흡수 기능도 모두 장애가 왔다. 특히 심각한 것은 아침에 먹은 계란과 야채 잎이 한 두 시간 지나면 색상도 변하지 않고 배설되는 것이었다. 마지막에는 먹지도 못하고 속에서 물도 받지 않았다. 8, 9년 동안 병마에 시달리는 바람에 가오제의 대부분 시간은 다른 사람이 대신 강의해 주었다. 집에 있던 돈은 모든 채권(국채를 포함)과 함께 병원에 밀어 넣었다. 학생들의 손실도 매우 컸다. 이러한 관점에서 학교에서는 가오제에게 요양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매달 퇴직금 120위안을 주겠다고 했지만 가오제는 동의하지 않았다.

가오제가 병석에 누워 고통스럽게 사신의 강림을 기다릴 때, 가오제의 어머니가 대법의 복음 ‘파룬궁’을 전해주었다. 가오제는 ‘전법륜’을 반복적으로 읽고 나서 이는 사람들에게 선을 향하고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는지 가르치는 귀중한 책이며, 사람들에게 고층차 수련을 지도하는 고덕 대법이라는 것을 알고 동작을 배우고 연공했다. 몇 주간 마음을 들여 연공하고 법공부를 깊이 하자 가오제는 파룬궁, 즉 파룬따파는 정법이며 사람들에게 마음을 닦고 선을 향하게 하며 도덕을 되돌아오게 하고 우주 특성 ‘진선인’에 따라 자신을 엄격히 요구해 진정한 좋은 사람이 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부님께서는 가오제의 신체를 정화해주시기 시작했고 끊임없이 정화해 주셨다.

몇 주 후 가오제는 살아났다. 사부님께서 사신의 손에서 가오제를 빼앗아 오신 것이다. 그리고 신속히 건강을 회복하고 질병이 없고 온 몸이 가뿐한 상태에 도달하게 하셨다. 가오제는 그때부터 넘치는 에너지로 자신의 업무를 성실하게 잘했으며 시간을 다그쳐 학생들에게 끼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노력해서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찬사를 받았다. 가오제는 리훙쯔 사부님의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감사드리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렸다.

중증근무력증 환자가 1년 만에 건강 회복

중증근무력증 증세는 눈꺼풀이 처지고, 시야도 흐리며, 사물이 두 개로 보이고, 사시에 안구가 잘 움직이지 못하며, 표정이 냉담하고 쓴 웃음을 짓는 표정에, 말할 때 혀가 잘 돌지 않아 발음 장애가 생기고 콧소리도 함께 난다. 또 씹을 힘이 없고, 물을 마시면 기침을 하며, 음식물 삼키기가 곤란하고, 목에 힘이 없어 머리를 들기 힘들며, 목을 돌리거나 어깨를 으쓱하기 어렵고, 팔을 들거나 머리를 빗거나 계단 오르기, 쪼그리고 앉기, 차에 타기가 힘들다. 말하자면 중증근무력증 증세는 전신에 힘이 없고 심한 사람은 눈도 뜨지 못한다.

무단장(牡丹江)시 양밍구(陽明區) 복지원의 회계원 차오잉춘(曹迎春)은 1992년 질병으로 부득이하게 사직했다. 그해 37세였던 그녀는 전신이 무기력하고 말을 하지 못했으며 젓가락을 잡는 것도 어려웠다. 하얼빈, 베이징, 친황다오(秦皇島)시, 다롄시, 칭다오시, 스자좡(石家莊)시의 큰 병원에서 ‘중증근무력증’ 확진을 받았다. 가족들은 그녀를 데리고 곳곳에 다녔지만 각종 치료는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때 그녀는 정말이지 살고 싶지 않았다. 매일 침대에 누워 사면 벽과 마주하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할 수 없어 묵묵히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강아지 한마리가 그녀 손에 떨어진 눈물을 핥고 있었다.

1998년 초, 차오잉춘은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침대에서 다만 7일간 법공부를 했는데 설 수 있고 걸을 수 있게 됐다. 가족들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었는데 딸은 기뻐서 껑충 뛰어 올랐는데 침대보다도 높게 뛰어 올랐다. 그런 심정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차오잉춘은 파룬궁 수련을 통해 1년도 안 되어 완전히 건강을 회복했다. 50Kg 가스통을 혼자서 위층으로 들고 올라갈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마치 만장 깊은 심연 속에서 올라온 것 같았다. 대법을 수련하는 기쁨을 말로 표현할 수 없어 마음속으로 외쳤다. “파룬따파 하오(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이것은 의학 역사상 기적이다! 6년 동안 차오잉춘은 치료에 10여만 위안을 썼다. 그녀가 법을 얻은 후 심신의 거대한 변화를 보고 친척과 친구들 중 대법의 신기함과 아름다움을 찬양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차오잉춘은 정말로 생명의 봄을 맞이했다.

전신마비 여성의 놀라운 일

그녀는 20세 때 전신마비로 쓰러져 손도 움직일 수 없었으며 말라서 뼈만 앙상했다. 대소변은 모두 누운 자리에서 보았는데 등이 썩어서 뼈가 보이고 구더기가 생겼다. 간신히 붙어 있는 숨만 넘어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자살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이는 샤융팡(夏永芳)이 대법을 수련하기 전의 실제 상황이었다.

샤융팡(여, 2003년에 36세)은 지린성 지안(集安)시 화뎬(花甸)진 화롄촌에 살고 있는 전신마비 농촌 여성이었다. 샤융팡의 부모도 모두 70여 세인데 역시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었다. 게다가 온종일 밭에서 일을 해야 했다. 부모는 딸의 병을 고쳐주기 위해 많은 빚을 졌다. 13년 동안 병마에 시달려 온 식구들은 이미 계속 살아갈 용기도 잃어버렸다.

바로 이 일가족 세 식구가 살아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1997년 파룬따파가 그들의 집에 전해졌다. 샤융팡은 ‘전법륜’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드디어 삶의 희망을 본 것이다.

처음에 샤융팡은 다른 사람이 책을 들고 보던 데로부터 이후에는 자신의 팔이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스스로 책을 들고 읽었다. 전신이 움직이지 못하던 데로부터 몸을 돌려 누워 볼 수 있었고 이후에는 앉아서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앉을 수 있게 되자 정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잇따라 신기한 변화가 끊임없이 나타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스스로 땅에 내려올 수 있었고 일상에서 자신을 돌볼 수 있게 됐으며 일부 가사도 할 수 있었다. 그녀의 부모도 모든 병이 모두 사라졌다. 온 가족들은 대법에 감격해마지 않았다.

그녀는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헤이룽장 하얼빈시 아청구(阿城區)의 판궈샤(範國霞)는 선량하고 정직한 좋은 사람이다. 그녀는 보기에 연약하고 평범한 여성 같지만 그녀 몸에 발생한 신기한 일은 적지 않다.

판궈샤는 선천적으로 체내에 칼슘이 없어 울 때 눈물이 나지 않았다. 태어나서부터 36세에 파룬따파를 배울 때까지 36년간 끊임없이 칼슘을 보충했다. 6,7세 때에야 걸을 수 있었고 줄곧 칼슘제와 어간유(魚肝油)를 먹으면서 살아 왔다. 한번은 보름동안 약을 먹지 않았더니 침대에 쓰러져 사지를 움직일 수 없었고 밥은 남편이 먹여주어야 했다. 한 번 움직이면 사지가 칼로 자르는 것처럼 아파 소리를 질렀고 손가락도 움직이기만 하면 아파서 참을 수 없었다. 남편이 자전거에 태워서 아청(阿城) 남쪽의 크고 작은 모든 진료소를 다 다녔지만 모두 이런 병을 본 적이 없다며 고칠 수 없다고 했다. 이후에 류머티즘 파스를 붙여 보았는데 점점 심해졌다. 이후에 큰 병원에 가서 검사하니 칼슘부족이라고 했다. 그 후부터 칼슘과 어간유를 매일 먹었고 해마다 칼슘 링거를 한 번씩 맞았다.

칼슘 부족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 있다. 11년 동안 잠이 들지 않았다. 판궈샤는 대략 20여 세 때부터 불면증이 있었다. 낮에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밤만 되면 머릿속은 마치 낡아 빠진 디젤 엔진처럼 퉁퉁퉁 소리가 끊임없었다. 머리는 마치 터져버릴 것처럼 아프고 자려고 해도 잘 수 없었다. 눈은 고정되어 움직이지도 않고 11년 동안 잠이 오지 않았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효과가 없었고 머리가 아파서 벽에 찧었다. 판궈샤는 9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의 슬하에서 자라면서 어머니의 사랑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만약 아이만 아니었다면 그녀는 아마 이미 자살했을 것이다.

아이가 약 5, 6세쯤 됐을 때, 어느 날 판궈샤는 자신의 양측 유방에 덩어리가 생긴 것을 발견했는데 짜니 피가 나고 양쪽 겨드랑이에도 있었다. 생리가 오면 덩어리가 딱딱해졌다. 선량한 판궈샤는 검사비가 아주 비싼데다가 설사 검사결과가 나온다 해도 치료하지 못할 바에는 언제 죽으면 언제 끝이니 돈을 아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후에 종양은 점점 커졌고 특히 두 겨드랑이의 종양은 계란만큼 커져 두 팔을 내릴 수 없었다. 두 눈은 밖으로 불거져 나오듯이 아팠고 사물이 희미하게 보였으며 저녁에 자리에 누우면 몸이 침대를 눌러 반 쯤 내려가는 듯 했다. 속담에도 있듯이 죽은 몸처럼 무거웠다. 몇 십kg밖에 되지 않는 몸이 왜 이렇게 무거울까? 그녀는 자신이 불치병에 걸렸다고 단정했다. 게다가 얼마 못 살 것이라고 생각해 후사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부부가 허드렛일을 해서 돈을 좀 저축했는데 이 돈을 모으기가 너무 쉽지 않았다. ‘이 돈을 아이에게 남겨 주어야겠다. 남편은 아직 젊으니까 이후에 재혼하지 않겠는가? 그럼 이 돈으로 아이를 키우면 되겠다.’ 선량한 판궈샤는 남편이 걱정하고 슬퍼할까 봐 그의 앞에서는 억지로 버텼다. 이후에는 일은 고사하고 다리를 올리는 것도 매우 힘겨웠다.

어느 날 이웃 아줌마가 판궈샤의 건강이 하루하루 나빠지는 것을 보고 그녀에게 파룬궁을 연마해 보라고 권했다. 이 공법은 질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데 신기한 효과가 있으니 한 번 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 판궈샤는 자신에게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죽으면 남편이 좋아도 데리고 갈 수 없고, 집이 좋아도 갖고 갈 수 없는데 이 공은 가지고 갈 수 있을지도 몰라. 얼마 연마하면 그만큼 얻겠지. 하루를 더 살면 더 사는 것이지.’ 판궈샤는 흔쾌히 대답했다. 첫날 판궈샤는 연공장에서 동공만 연마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다리가 매우 가벼운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이 구원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파룬궁은 명불허전이었다, 과연 보름도 안 되어 모든 증세가 사라졌다. 판궈샤는 한손에 물통 하나를 들고 자유롭게 걸었다. 그녀의 남편(미장공)은 말했다. “내가 보니 당신은 다 나았구만. 아예 날 따라와 건설 현장에 가서 막노동을 합시다.” 그녀는 갔다. 그녀의 빠른 변화와 좋은 효과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말한다. “판궈샤가 만약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몇 년 전에 벌써 죽었을 거예요.” 판궈샤 집 근처에 진료소가 하나 있는데 그녀는 아프기만 하면 거기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았다. 그 의사는 말했다. “판궈샤의 변화는 파룬궁이 너무 신기하고 명불허전이라는 것을 설명합니다! 보아하니 저도 파룬궁을 좀 알아봐야겠네요.”

새로운 삶

류머티즘 관절염, 비염으로 고름과 피가 나오고 후각을 잃었다. 혈관성 편두통으로 눈알이 당장 튀어 나올 것처럼 아팠고, 눈에는 눈물이 나지 않아 깔깔하고 메말라 찌르는듯 아팠다. 위장병, 장염, 만성 인후염, 찬 것 더운 것을 먹지 못하고 짜고 신 것, 매운 것을 먹지도 못하며, 심근 허혈, 치질, 자궁 종양, 만성 맹장염, 알러지성 체질(바람, 화분, 자외선 알러지 등), 혈소판 감소증, 헤모글로빈 수치 저하 등이 있었다. 이 병들이 누구 몸에 있어도 하루가 일 년 같을 것이다.

리환전(李煥珍, 여, 2013년에 57세)은 쿤밍시 환청서로(環城西路) 551호에 살고 있는데 쿤밍 방직공장의 퇴직 노동자다. 그녀는 지식청년(知青)이 됐다가 이후에 방직공장에 취직해 일하면서 류머티즘 관절염을 얻었다. 한동안 걷지도 못했는데 발과 손 관절은 통증을 참기 어려웠다. 가장 심할 때는 찬물, 더운 물을 만지지 못했는데 만지기만 하면 가슴을 에는 듯 아팠다. 이 외에 비염으로 고름이 나고 피가 나며 후각을 잃었다. 혈관성 편두통은 눈알이 당장 튀어 나올 것처럼 아프고 이후에 발전하여 눈물이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깔깔하고 메말라서 찌르는 듯이 아파서 하루에 수없이 안약을 넣어야 했다. 위장병, 장염, 만성 인후염, 찬 것과 더운 것, 짜고 신 것과 매운 것도 먹지 못했다. 심근 허혈, 치질, 자궁 종양, 만성 맹장염, 알러지성 체질(바람, 화분, 자외선 알러지 등), 혈소판 감소증이 있었고 헤모글로빈 수치가 한동안 6g 밖에 안 됐다(정상인은 12에서 13g이다). 그녀는 하루가 일년 같았다. 일년 중 절반은 모두 병원에서 보냈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 가정을 위해 리환전은 살아야 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끊임없이 여러 큰 병원들을 전전하고 조상에서 전해 내려온 명의를 찾고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처방을 구하며 각종 기공 학습반에 참가해 태극권, 태극검 등을 배웠지만 모두 효과가 없었고 모두 그녀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했다. 그녀는 병마를 떨쳐버리지 못했다.

1998년 리환전의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뜨고 집에는 70세 시어머니와 딸만 남았다. 이 가정을 위해 그녀는 반드시 살아야 했다. 1999년 2월 어느 날, 리환전은 시어머니에게 앉아서 하는 공법이 있는데 연마하고 싶다고 말했다. 집 근처 발전 은행 문 앞에 있다고 했다. 리환전은 거기에서 따뜻함과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따라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파룬궁수련생이 그녀에게 ‘전법륜’ 한 권을 주면서 연공할 뿐만 아니라 책도 봐야 한다고 알려주면서 만약 연마하지 않으면 책을 돌려달라고 했다. 그녀는 이 책이 매우 귀중하다고 느꼈으며 꼭 소중히 여기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 그녀가 단숨에 책을 다 읽고 보니 새벽 3시가 넘었다. 하지만 그녀는 졸리지 않았고 동시에 이 책이 바로 그녀가 오랫동안 찾던 책임을 알았다. 인생에서 알지 못하는 많은 문제의 답이 책속에 다 있었다. 그리고 진선인의 요구에 따라 좋은 사람, 더욱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음 3개월에 리환전이 책을 보고 연공만 하면 기침과 가래가 생겼는데 석달 후 편두통, 비염과 다른 질병들이 모두 없어졌다. 동시에 식구들과 쟁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심신이 승화를 가져왔다. 충실하고 즐겁고 행복했는데 정말 기분이 좋았다.

비참한 날들과 이별

예전에 심각한 우피선(牛皮癬)을 앓아 온 몸에 두껍고 건조한 피부로 덮여 피부가 딱딱하고 광택이 없었다. 어떤 때는 손발을 구부리기조차 어려웠다. 날씨가 더워도 짧은 소매를 감히 입지 못한다. 사람들이 이상해 하는 눈길이 두려워서다. 정말 그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60여 세의 댜오카이윈(刁開雲)은 쓰촨성 스팡(什邡)시 융싱진(永興鎭)의 한 평범한 농촌 여성이다. 그녀는 예전에 온 몸에 병이었는데 파룬궁을 수련한 후 온 몸의 병이 신기하게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녀는 예전에 심한 우피선을 앓아 온 몸에 두껍고 건조한 피부로 덮여 딱딱하고 광택이 없었다. 어떤 때는 손발을 구부리기조차 어려웠다. 날씨가 더우면 짧은 소매도 감히 입지 못한다. 사람들의 이상해 하는 눈길이 두려워서다. 이 병 때문에 댜오카이윈은 매일 1백여 위안을 내고 치료도 해 보았지만 효과가 분명하지 않았고 어떤 때는 증세를 완화시킬 수는 있었지만 한 동안 지나면 다시 재발해 근치하기 어려웠다. 의사도 수차례 머리를 저었다. “치료할 수 없습니다.” 정말 그 고통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몇 년 동안 건선이라는 중압감 하에 댜오카이윈은 또 연이어 빈혈, 심장병, 구강염 등 여러 질병을 앓았다. 구강염이 발작할 때는 얼굴 반쪽이 전부 부어 물도 마시기 어려웠다. 거대한 약값 지출과 병고의 시달림에 노인은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고 살아나갈 용기가 거의 없었다.

이후에 무의식중에 댜오카이윈은 좋은 사람을 만나서 파룬궁 수련에 들어가게 됐다. 당시 댜오카이윈은 ‘죽은 말(馬)을 산 말로 삼아 치료해보자’는 마음으로 시험 삼아 연공을 해보았다. 의외의 일이 일어났다. 몸의 마른 피부가 점차 탈락하면서 새롭게 광택이 나는 피부가 돋아난 것이다. 신체의 모든 증상이 모두 감소됐다. 이런 변화에 댜오카이윈은 매우 격동해 연공할 결심을 더욱 확고히 했다. 몇 달 후 그녀 몸 모든 병이 다 나았다! 가장 고치기 어려운 건선도 철저히 완쾌됐다!

댜오카이윈이 파룬궁 리훙쯔(李洪志) 대사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파룬궁이 그녀에게 새로 살아나갈 희망을 주었고 그녀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신 것이다! 그녀는 주위 사람들에게 이 모든 진실한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고 아직도 병마의 고통 속에서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왜냐하면 리(李) 대사님께서 그녀에게 가르치신 것은 다른 사람을 선하게 대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많이 생각하며, 거짓말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직접 겪은 고통 속에서 벗어난 진실한 사례를 어떻게 아직도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않는단 말인가?!

한 포대에 50kg 되는 시멘트를 메고 7층까지 올라간 여인

우차이롄(吳才蓮)은 한 포대에 50kg 나가는 시멘트를 메고 바닥에서 7층까지 올라갈 수 있다. 10년 전에는 평지든 오르막이든 두 다리가 전부 떨려서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2008년, 량산저우(涼山州) 시창(西昌)시에 살고 있는 42세의 우차이롄은 어려서부터 잔병치레가 많았다. 더운 물을 한 모금만 마셔도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 수건으로 늘 닦아야 했다. 그녀는 심장 박동이 너무 빠른 문제도 있었는데 평지를 걷든 언덕을 오르든 두 다리가 모두 떨렸다. 의사는 심장병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또 위장병이 있었는데 가슴에서부터 위장 부분까지 아프면 칼로 에이는 듯 했고 무슨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었다. 그녀는 또 뇌전증도 앓고 있었는데 한 달에 한 번씩 발작했다. 이 외에 또 요통, 생리가 일정하지 않았고 류머티즘으로 인해 전신이 아픈 등등이었다. 집이 가난해서 반드시 일을 해야 했는데 통증이 올 때면 발작한 장소에 계속 누워 있어야 했다.

1998년 우차이롄은 갑자기 한 달 동안 배변하지 못했다. 수액하고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었다. 마지막에 대황(大黃)을 두 첩 먹었는데도 효과가 없었다. 의사는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 병은 고칠 수 없어요. 듣기로는 파룬궁이 효과가 좋다던데 가서 시험해 보는 게 어때요?” 이리하여 우차이롄은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연공한지 8일 되자 그녀는 온 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는데 나온 땀은 온통 약 냄새였다. 이전에 먹은 약이 몽땅 몸에서 배출됐던 것이다.

그때부터 2008년까지 10년간 우차이롄은 줄곧 건강해 의료비 한 푼도 쓴 적이 없다! 우차이롄은 한 포대에 50kg씩 나가는 시멘트를 메고 1층에서 7층까지 올라갈 수 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 그녀는 혼자서 두 사람의 일을 할 수 있었다. 연공하기 전에 신체가 안 좋을 때, 우차이롄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시집가지 말하고 권했었다. 이렇게 많은 병을 갖고 어느 집에 가든지 모두 그 집에 부담이 된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우차이롄이 모든 가사를 도맡아서 남편은 지금까지도 밥을 할 줄도 모른다. 평소에 그녀는 남편과 함께 외출해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계를 꾸려 나간다. 그녀는 말했다. “저는 평생 병고의 시달림을 받았습니다. 리훙쯔 사부님께서 저를 기사회생하게 해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사부님께 감사드리지 않고 파룬따파에 감사하지 않겠어요?!”

아무도 연마하지 않아도 우리는 연마해야 한다

그녀의 병세는 다시 악화되어 흉골은 이미 변형됐고 앞가슴이 뚜렷이 돌출됐다. 그녀는 뒤로 기대어 반쯤 눕고 반쯤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병원 의사는 류옌메이(劉延梅)의 남편에게 말했다. “그녀의 병은 이미 악화되어 입원해도 치료할 수 없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설날 장을 보느라 분주한데 류옌메이의 남편은 후사를 준비하느라 바빴다. 1999년 류옌메이는 37세 밖에 되지 않았다. 온 가족의 슬픔은 말할 수 없었다.

류옌메이, 중등 전문대 졸업, 산둥성 이난현(沂南縣) 다왕좡(大王莊)향 다거우(大溝)촌에 살고 의료업에 종사. 세 살 때 실수로 우물에 빠져 목숨은 건졌지만 폐가 상해서 천식과 일 년 내내 추위를 타는 질환을 앓고 있다. 그 후부터 류옌메이는 일 년 내내 주사를 맞고 약을 달고 살았다. 결혼 후 점차 기력이 없고 가슴이 답답하며 호흡곤란 등 증세가 나타났으며 이후에는 하루에 3,4번씩 대량으로 피를 토했다, 88년에 이난현 병원, 이난현 중의원, 쥐현(莒縣)병원 등 여러 병원에서 폐심증, 폐기종 진단을 받았다. 병세가 악화됨에 따라 류옌메이는 일을 못하고 밥도 못하게 됐다. 링거를 맞고 약을 먹으면서 생명을 유지했다. 가정 일년 수입의 5분의 4는 전부 치료에 썼다. 병마에 시달리는 류옌메이는 사는 것이 죽기만도 못했다. 98년도에 궁지에 빠진 상황에서 농약을 반 병 마시고 죽으려 했지만 다좡 병원에서 구급됐다.

98년 말, 그녀의 병세는 재차 악화되어 흉골은 이미 변형됐고 앞가슴이 뚜렷이 돌출됐다. 그녀는 뒤로 기대어 반쯤 눕고 반쯤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쥐현 병원에 치료하러 갔더니 의사는 류옌메이의 남편에게 말했다. “그녀의 병은 이미 악화되어 입원해도 치료할 수 없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설날 장을 보느라 분주한데 류옌메이의 남편은 후사를 준비하느라 바빴다. 1999년 류옌메이는 37세 밖에 되지 않았다. 온 가족의 슬픔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링거를 맞을 때 손발 혈관은 모두 바늘을 꽂을 수 없을 정도였다. 마을 의사 두 명이 큰 힘을 들여서야 나중에 머리에 바늘을 꽂을 수 있었다. 류옌메이는 너무 고통스러워 링거를 놔주는 의사에게 말했다. “다음에는 죽어도 링거를 안 맞아요.” 어린 아들은 위독한 어머니를 보면서 시를 한 수 썼다. “엄동설한에 땅이 강철 석판으로 얼어붙었네, 자애로운 어머니 질병 앓으시니 고통으로 마음 슬프네.”

99년 정월 초하루, 류옌메이가 절망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 마을 파룬궁수련생이 류옌메이에게 진귀한 서적 ‘전법륜’을 가져다주었다. 그때 류옌메이는 신체가 붓고 매우 허약해 책도 들고 있을 수 없었다. 눈도 똑똑히 보이지 않아 남편이 류옌메이에게 읽어주었다. 듣고 나서 류옌메이는 연공장에 가고 싶었지만 자신은 걸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남편이 연공장에 업어다 주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3, 4차례 업혀간 후, 류옌메이는 일상에서 완전히 자신을 돌볼 수 있게 됐고 빨래하고 밥을 지을 수 있게 됐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류옌메이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후 자주 말한다. “대법이 없었다면 오늘의 제가 없습니다.” 남편은 대법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감개무량해 말한 적이 있다. “아무도 연마하지 않아도 우리는 연마해야 합니다.”

많은 파룬궁수련생과 같이 류옌메이는 병이 위독해 절망하던 데로부터 수련해 새로운 삶을 얻기까지 정말로 생사가 교차됐다.

‘고목에 봄이 오다’는 전설이 아니다

24세 때 사람들은 그녀를 아주머니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70여 세인데 사람들은 50여 세라고 말한다.

쉬웨이샤(許維霞) 노인은 쓰촨성 구린(古藺)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각종 질병의 고통 속에서 시달렸다. 무슨 피부병, 류머티즘 요통, 두통, 신장염, 위염, 비염, 눈병, 뇌혈관 경색 등등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몇 번이나 자살로 이 고통을 끝내고 싶었다. 어려서부터 피부병을 앓아 온 몸은 긁어서 피가 나고 고름이 흘렀다. 14~15세 때부터 허리와 다리가 아팠고 눈병에 30여 년을 고생했으며 1996년 청두(成都)에서 대장암을 진단 받았다.

하지만 기사회생의 기적이 그녀 몸에서 일어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죽음을 기다리던 사람이 파룬궁을 수련해 평생 그녀를 괴롭히던 여러 질병이 모두 나았고 암도 소실됐다. 오늘 이 노인은 고목에 꽃이 핀 듯이 신체가 건강하고 원기가 왕성하다. 그녀는 말했다. “24세 때 사람들은 저를 아주머니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70여 세인데 저를 50여 세로 봅니다. 1963년에 눈병을 앓아 무엇을 보아도 흐릿했는데 특히 글을 보면 빨갛고 파랗고 한데 엉켰으며 게다가 눈물도 끊임없이 흘렀는데, 지금은 수십 년 된 눈병이 나았습니다. 말하면 믿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저는 70여 세의 노인이지만 책을 볼 때 안경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어느 날 날씨가 아주 추운데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녀가 얇은 반발 상의에 반바지를 입고 있는데 약을 파는 한 사람이 지나가다가 그녀에게 말했다. “어르신, 건강이 아주 좋으시네요!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춥지 않으세요? 관절염이 없어요?” 쉬웨이샤는 말했다. “원래 제 관절염이 아주 심각했지요, 허리와 다리 통증이 장난이 아니었지요. 팔은 아파서 이불도 들지 못했지만 지금은 나았어요.” 그 사람은 말했다. “어떻게 나은 거예요?” 그녀는 말했다. “파룬궁을 연마했지요.” 이 사람은 아주 이상하게 생각했다. ‘중국공산당의 파룬궁 박해가 이렇게 심한데 아직도 파룬궁을 감히 연마하는 사람이 있다니. 감히 공개적으로 파룬궁을 좋다고 말하다니.’ 쉬웨이샤는 어디에 있든, 어떤 사람이든 심지어 사악한 박해 하에서도 늘 당당하게 수련인의 진실한 말만 한다,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며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실증했다.

맺음말

이상의 이름이 나와 있는 파룬궁수련생들이 질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한 이야기는 모두 밍후이왕 파룬궁수련생이 박해받은 안건 중에서 수집해 정리한 것이다. 그들은 모두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수련을 포기하지 않고 신앙을 견지하며 자신이 직접 혜택을 받은 파룬궁 진상을 똑똑히 알렸거나 혹은 끊임없이 괴롭힘을 받거나 혹은 불법적으로 감금당하거나 혹은 강제 세뇌, 불법적인 강제노동,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어떤 이는 고문 혹형에 시달려 불구가 됐고 어떤 이는 박해로 사망했으며 어떤 이는 수련환경을 잃어버려 지병이 재발했다. 이들의 파룬궁을 수련해서 질병이 사라지고 건강해진 신기한 효과는 진실하고 확실하게 파룬따파가 좋다는 점을 실증했다. 그리고 그들이 박해받은 경험은 또한 선(善)을 박해하는 사악한 중국공산당의 본질을 반영했다.

사실 밍후이왕에 아직도 완전한, 신기한, 불가사의한, 이름 있는 파룬궁수련생들의 질병이 사라지고 건강하게 된 감동적인 이야기가 많고도 많이 있다. 독자들이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예를 들면,

‘마중퍼의 자술, 불치병이 완쾌돼 주위를 놀라게 하다’ 문장이다.

마중퍼(馬忠波)는 20여 세에 이미 폐인이 됐다. 양측 대퇴골 괴사로 절뚝거리며 걷던 데로부터 쌍지팡이를 짚었고, 마비가 되어 고통스럽게 땅에서 기어 다니는 산송장이 되어 삶의 희망이 없었다. 1999년 3월, 그녀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인연을 맺었으며 3일 만에 대퇴골 괴사가 기적적으로 정상 회복돼 현지에서 폭발적인 뉴스가 됐다. 당신이 말해보라. 신기한가, 신기하지 않은가.

더욱 신기한 것도 있다. 2001년 마중퍼는 하얼빈 완자(萬家) 노동교양소에서 고문 박해로 유방암에 걸려 줄곧 부어있던 오른쪽 유방이 터져버렸다. 흑자색 핏물이 고름과 함께 분출되어 나왔는데 반 세숫대야나 받아냈다. 유방 하나가 빈 껍질만 남았다. 집으로 돌아온 후 완강한 의지력으로 연공을 했다. 곯아서 텅 비었던 유방은 새로운 살이 자라나 가운데로 아물고 있었고 속살은 사흘 만에 아물었다. 죽은 살이 된 표면 피부는 짓무르고 딱지가 앉아 탈피하기 시작했다. 단 3일 만에 완전한 유방으로 재생됐다. 이는 그녀 자신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파룬궁에 탄복했다.

세상에 이러한 선례가 있었던가? 또 예를 들면,

‘랴오닝성 판진시 왕위란이 대법 수련으로 불치병이 완쾌, 요도에서 결석을 배출’ 문장이다.

랴오닝성 판진(盤錦)시 싱룽타이(興隆台)구 보하이(渤海)향 리자촌(李家村)의 왕위란(王玉蘭)은 법을 얻기 전에는 요도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봐야 했고 대변은 장세척에 의지해야 했다. 머리와 손을 움직일 수 있는 외에 다른 부위는 모두 움직이지 못했다. 손은 움직일 수는 있지만 귀를 만지지는 못하고 돌아눕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그녀의 두 다리는 다른 사람이 들어서 아무렇게나 놓아도 전혀 감각이 없었다. 당시 왕위란은 죽음과 불과 한 걸음 떨어져 있었다.

그녀 식구들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인 1997년 7월, 친척의 소개로 그녀는 기쁘게 대법을 얻었다. 왕위란은 법을 배우고 연공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천천히 혼자 돌아누울 수 있게 됐다. 법을 배운지 두 달이 됐을 때 자궁종양이 나았다. 법을 배운지 석 달이 되자 22개월 동안 마비됐던 그녀가 기적처럼 일어나 앉았다. 왕위란은 앉을 수 있게 되자 가부좌를 하기 시작했다. 법을 배운지 넉 달 때 소변 호스를 제거했고 장세척을 중지했다. 대소변을 스스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5개월이 되자 땅에 설 수 있었고 6개월에는 침대머리를 붙잡고 걸을 수 있게 됐다. 15개월 때, 그녀의 요도에서 기적적으로 7.5, 5.3, 4.3mm 크기에 계란 모양 결석이 배출됐다. 의사들은 보고서 모두 경탄했는데 의학사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왕위란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다. 지주막 유착, 뇌결핵, 흉부 협착은 기본적으로 불치병이다. 만에 하나 현재 의료기술로 치료한다면 설사 살아있다 해도 마비가 되어 움직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당시 왕위란의 몸에 발생한 기적은 리자촌의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녀 집에 가서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보는 사람들이 거실에 가득했고 집 밖에도 사람들로 붐볐다. 많은 사람들이 대법 수련에 들어왔고 진심으로 법을 배우는 사람들은 모두 심신의 혜택을 입었다.

본문에 이름이 나와 있는 파룬궁수련생들이 질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한 신기한 효과는 반박할 수 없는 사실로서 의학사와 인류 역사상 기적을 창조했다고 할 수 있다. 이 파룬궁수련생들은 파룬궁의 신기한 효과를 실증했으며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 진선인은 좋습니다)’의 세상에서의 체현을 위해 가장 좋은 해석을 내놨다.

파룬따파 수련 중에서 도덕이 되돌아오고 마음이 정화되며 질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한 신기한 경험은 우주 역사 속에서 영원히 기록되어 존재할 것이다.

사람들이여, 만고에 만나기 어려운 이 파룬따파를 소중히 여겨라!

(끝)

문장발표: 2015년 2월 2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신수련생마당>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한 이야기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2/21/3046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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