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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공(神功)의 특효 증명 ‘파룬따파는 좋다!’(5)

도덕성이 향상하고 질병이 없어 온몸이 가뿐하다

[밍후이왕] (전편에 이어)

4. 도덕성이 향상하고 질병이 없어 온몸이 가뿐하다

사람들은 미혹 속에서 명예와 이익, 일부 소위 행복을 위해 사회 여러 환경 속에서 경쟁하고 분투해 자신의 신체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고 질병투성이가 됐다. 그러나 그들이 파룬따파를 배운 후부터 사람이 되는 이치를 알게 됐고 사상을 승화하는 과정 중 어느덧 모든 질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질병이 없어 온몸이 가볍게 됐다. ‘도덕성이 향상하고 질병이 없어 온몸이 가뿐하다’ 시리즈는 바로 이런 이야기들이다.

가정 여성 린위친의 이야기

린위친(林玉琴)은 랴오닝(遼寧)성 좡허(莊河)시 쉬링(徐嶺)진 양(楊) 촌 린자산(林家山)촌의 한 가정 여성이다. 2009년 때 62세였는데 수련하기 전에 질병이 많았다. 예를 들어 현기증, 빈혈, 피부병과 류머티즘 등이다. 현기증이 발작할 때마다 며칠 간 누워있어야 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눈도 감히 뜨지 못한다. 이 정도면 괜찮은 셈이고 어떤 때는 옆에 사람이 없을 때 발작하면 제때에 누워있지도 못해 넘어져 멍들게 된다. 또 심한 류머티즘이 있어 다른 사람이 여름에 치마를 입을 때 그녀는 솜바지를 입어도 추워서 벌벌 떨었고 걸을 때 언제나 절뚝거렸다. 피부병은 그녀를 가장 괴롭혔다. 8살에 걸린 병인데 수련하기 전까지 도처에서 치료해도 효과가 없었지만 돈은 적지 않게 썼다. 매번 병이 발작되면 짧으면 8,9일, 길면 보름에서 20여일은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다. 간지러워 견딜 수 없어 온몸이 만두처럼 부을 때까지 자꾸 손으로 긁었고 눈도 부어서 작은 틈만 보였으며 다른 사람이 봐도 무서울 정도였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그녀의 모든 질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건강한 노인이 됐다. 집의 농사일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서 할 수 있었고 아들과 딸네 집의 일도 맡아했으며 시간이 있으면 친척과 이웃을 도와 일하기도 했으므로 주변 사람들은 모두 파룬따파의 신기함을 느꼈다.

리위친은 파룬궁을 수련한 후 신체가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성격도 변했다. 이전에 입을 열기만 하면 사람을 욕했고 잘못했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한번은 그녀 며느리와 조카며느리가 텃밭 때문에 모순이 생겨 서로 욕했는데 당시 그녀도 텃밭에 있었다. 갑자기 며느리와 조카며느리는 예봉을 그녀에게로 겨누어 크게 욕설을 퍼부었고 듣기 싫은 말만 골라했다. 그녀는 못들은 체하고 고개를 숙이고 일만 했다. 이웃 몇 명이 보다 참지 못해 “당신이 시비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또한 그녀들의 윗사람인데 왜 욕만 먹고 있어요. 왜 그녀들을 욕하지 않아요?”라고 했다. 그녀는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입니다. 저희 사부님께서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말라고 알려주셨어요”라고 했다. 그녀가 참자 조카며느리와 며느리는 부끄러워했다. 이후에 그녀들은 예전처럼 사이좋게 지냈다.

또 한 번은 가을에 그녀가 달걀을 사러 가는데 옥수수 밭을 지나가다가 옥수수(100여 개)가 한 가득 쌓여있는 것을 봤다. ‘누가 떨어뜨렸지, 농사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데’라고 생각하고 달걀을 사러 가지 않고 즉시 집집마다 다니며 옥수수 주인을 찾으러 갔다. 8,9집을 찾아서야 드디어 찾았다. 찾는 과정 중 한 아내가 남편에게 “파룬궁을 배운 사람은 우리와 정말 다르네요. 만약 내가 한가득 옥수수를 봤다면 집으로 가져왔을 거예요. 주은 것이고 훔친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는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과 비하면 격차가 너무 커요”라고 했다.

린위친은 어떤 때 전통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는데 거스름돈을 많이 받은 적이 몇 번 있었다. 이럴 때마다 시장이 끝나면 사람을 찾지 못할까 봐 즉시 돌아가 되돌려줬다. 이것은 우리가 아는 일부분일 뿐이다.

‘오래된 약골’의 변화

간염, 간경화, 간복수, 부인병, 심장병, 류머티즘 관절염이 있어 사흘이 멀다 하고 병원에 입원했다. 그녀가 퇴직수속을 한 그 해 공장 상사들은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듯이 “드디어 우리가 번거롭지 않게 됐다”고 했다.

리인겅(李銀賡, 여)은 1940년 12월 생으로 허베이(河北)성 바오딩(保定)시 양탄자 공장의 퇴직 직원이다. 이전에 공장 동료들은 그녀가 오래된 약골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간염, 간경화, 간복수, 부인병, 심장병, 류머티즘 관절염이 있어 사흘이 멀다 하고 병원에 입원했다. 그녀가 퇴직수속을 한 그 해 공장의 상사들은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린 듯이 “드디어 우리가 번거롭지 않게 됐다”고 했다.

리인겅은 젊었을 때부터 병이 많았다. 특히 심장 간헐열은 그녀를 죽는 것만 못하게 만들었다. 어떤 때 자전거를 타다가도 갑자기 의식을 잃어 바닥에 쓰러지곤 했다. 한번은 이웃이 놀러와 한참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또 의식을 잃는 바람에 이웃을 매우 놀라게 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큰 도시에 가서 유명한 의사를 많이 찾아봤지만 효과는 거의 없었다. 상황이 급하다보니 여기저기 도움을 구했다. 기공이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듣자 잇따라 각종 기공을 배워봤지만 고통 속에서 벗어나게 하지 못했다.

1994년 말 어느 날, 그녀는 또 공원에 가서 기공을 연마하다가 한 군인을 만났는데 그녀에게 파룬궁을 소개해줬다. 군인의 소개를 듣고 그녀는 새로운 삶의 희망을 되찾은 듯 마음이 갑자기 확 트였다.

이튿날 아침에 파룬궁 연공장에 가서 연공했고 이후부터 그녀는 매일 아침에 단체로 연공하고 저녁에는 단체로 법공부를 했다. 온몸의 병은 치료하지 않았는데 다 나았다. 그날 저녁에 그녀가 법공부하고 집으로 왔는데 남편이 자세히 보더니 “당신도 미용원에 갔다 왔어요? 얼굴의 주름이 적어졌고 피부도 부드럽게 됐네요”라고 했다. 그녀는 남편에게 “당신은 아직 다 말하지 못했어요, 지금 온몸에 힘이 있고 자전거를 타도 누가 뒤에서 미는 것 같아요. 대법 사부님께서 구해주셨어요”라고 했다.

이전에 신체가 약하고 질병이 많아 리인겅은 성격이 괴팍하고 급하고 자주 사람을 욕하는 나쁜 습관이 있었지만 대법을 수련한 후 기분이 맑고 상쾌했고 딴 사람으로 바뀐 것처럼 현모양처로 변했으며 다시는 그녀가 욕하는 것을 들을 수 없었다. 대법의 신기함을 직접 겪은 가족은 여러 방면에서 그녀를 지지했다. 어느 날 그녀는 또 어지러워 넘어졌다. 남편은 다급히 약을 찾자 그녀는 “찾지 마세요, 약을 다 버렸어요”라고 했다. 남편은 당황해서 아이에게 전화를 하려 하자 그녀는 남편의 손을 잡고 “당신은 가만있어요. 전 괜찮아요, 수련했기 때문에 이것은 병이 아니고 소업하는 거예요. 평생 저는 대법을 믿고 사부님을 믿겠어요”라고 했다.

대법을 수련한 후 리인겅은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다)’를 말했고 파룬따파는 그녀에게 인생의 참뜻을 찾아줬으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게 했다. 거리나 공원 도처에 그녀가 법을 전하는 모습이 보였다. 많은 수련생은 그녀의 체득한 것을 듣고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사상이 승화되자 치료하지 않았는데도 고질병이 다 나았다

2014년에 42살인 저우자푸(周家福)는 허강(鶴崗)시 둥산(東山)구에 살았고 허쾅(鶴鑛) 그룹의 청지(城基) 수력발전 회사 노동자였다. 그는 어릴 적부터 신체가 약했고 병마에 시달렸다. 열 몇 살에 심한 신경쇠약증에 걸려 저녁에 잠을 이룰 수 없었으며 낮에는 집중해 공부할 수 없었다. 이후에 또 폐결핵에 걸려 사람은 우울해졌고 성격은 갈수록 거칠어져 집안사람은 누구도 감히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

저우자푸가 25살 되는 그 해, 폐결핵이 심해져 자주 한 덩이씩 피를 토했고 말기에 이르렀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더는 받아주지 않았다. 의사는 가족에게 희망이 없으니 돌아가 사후를 준비하라고 했다.

생명이 위독하고 인생의 절망에 처해있는 1996년 6월, 소개를 통해 저우자푸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고 그는 엄격하게 파룬궁의 ‘진선인(眞善忍)’의 표준대로 행했다.

파룬따파를 수련함에 따라 그의 사상과 도덕성이 끊임없이 승화되자 신체도 따라서 개변됐다. 짧디짧은 한 달 만에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고 폐결핵, 신경쇠약 등 고질병이 치료하지 않았는데도 다 나았으며 몸과 마음이 크게 변했으며 온몸이 가뿐했다.

그는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과 파룬따파가 자신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고 더욱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주셨음을 잘 알고 있다. 파룬궁은 그에게 인생의 희망을 보게 했다. 이후부터 그는 딴 사람으로 변했고 활력이 넘쳐났으며 성격이 온화해졌고 성심으로 사람을 대했으며 노인에게 더욱 효도했다. 직장 일이 바쁘지 않을 때 아르바이트(소형 탄광에 가서 일해 생활비를 보조했음)를 두 개 했다. 그는 가족, 이웃, 동창, 동료들이 다 인정하는 좋은 사람이다.

야오페이시의 이야기

야오페이시(么佩喜, 남)는 허베이(河北) 탕산(唐山) 사람으로 2012년에 61세였다. 오래전 장년 때 중풍에 걸려 정신이 희미해져 병가를 내고 집에 있었다. 1995년 운 좋게 파룬궁을 수련했고 이후부터 인생에 큰 변화가 생겼다.

야오페이시가 39살 되는 그 해 중풍에 걸렸다. 반신이 마비되고 머리 절반이 아프고 주먹을 쥘 수 없었다. 현지 병원 전문가들이 검사한 결과 조혈기능이 파괴되어 피를 만들어 내기만 하면 점도가 높아져 혈전이 형성된다고 했다. 반년동안 입원했지만 낫지 않았다. 퇴원할 때 정신이 희미하고 눈빛이 멍했으며 아무 일도 생각할 수 없고 사유가 텅 비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찐빵을 팔았다. 찐빵 하나에 0.05위안이었는데 손님이 1위안을 주면서 5개를 사겠다고 했지만 야오페이시는 손가락으로도 계산할 수 없었다. 3일 팔고 30위안을 손해 보는 바람에 그만뒀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야오페이시는 기공도 배웠으나 소용없었다. 이후에 파룬궁이란 공법이 있는데 질병을 없애고 건강하게 하는데 매우 좋은 효과가 있고 연마하기만 하면 효과가 있다는 것을 들었다. 야오페이시는 ‘전법륜’ 한 권과 리훙쯔 사부님의 공법을 가르쳐주시는 녹화테이프를 사서 집에서 책을 보고 동영상을 보고 따라서 공법을 배웠다.

책을 28일 봤을 때 중풍 증상이 다시 나타났다. 반신이 또 마비되고 움직임이 어려웠으며 고열이 났다. 그러나 3일이 지나자 온몸이 상쾌하고 매우 편안했고 머리도 똑똑해졌고 기억력이 돌아왔다. 진짜로 온몸이 가벼운 아름다움을 체득했다. 이후부터 그의 중풍 증세는 철저히 나았고 다시는 의료비를 신청하지 않았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부터 야오페이시는 집에 있든 바깥에 있든 남을 배려해줬고 특히 이익에서 따지지 않았다. 며느리는 당시 중국공산당 사당의 파룬궁을 모욕하는 선전의 영향을 받아 무서워 할아버지가 손자를 접촉하지 못하게 했다. 이후 일상생활 중 노인의 일언일행을 통해 그녀는 점차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내려놓았고 노인이 알뜰하게 손자를 잘 돌본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가족과 이웃들도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은 모두 가장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야오페이시가 다니는 직장 사람들은 그의 중풍이 파룬궁을 연마해 나은 것이라는 것을 다 알 뿐만 아니라 상급 큰 회사의 상사들도 안다. 한번은 대회에서 공장의 간부가 말했다. “여러분이 신체가 아무리 건강해도 의료비가 있어 공장은 부담이 큽니다. 몇 년간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은 한 푼의 의료비도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공장 동료들도 파룬궁수련생의 사람 됨됨이를 잘 알고 있다. 공장에 한 부서가 있는데 그곳은 임금도 많고 보너스도 많으며 고객도 늘 커미션을 줬으므로 이득이 많이 보는 직위였다. 책임자는 말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내게 뇌물을 주고 이 직위를 달라고 해도 승낙하지 않았네. 비록 자네는 한 푼의 뇌물도 주지 않았지만 내가 스스로 찾아왔다네.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정직하다고 믿네. 이 직위를 맡길 바라네.” 야오페이시는 완곡하게 그의 호의를 사절했고 다시 한 번 그에게 자신은 수련인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한 번은 공장 책임자가 그에게 어느 부서에 가서 과장을 맡으라고 했다. 그것도 임금이 높고 대우가 매우 좋은 직위였다. 공장 책임자는 또 그 한마디였다. “파룬궁을 연마하니까 믿네. 무슨 조건을 제출해도 다 만족시켜 주겠네”라고 했다. 야오페이시는 여전히 완곡히 사절했다. 그도 파룬궁수련생의 정직함에 감동을 받았고 이후로 파룬궁수련생의 됨됨이에 더욱 탄복했다.

그날그날 되는 대로 살던 왕스친이 큰 파문 일으켜

병원에서 6번이나 설을 쉰 적이 있고 한 해에 9번이나 입원한 적이 있다. 당시 왕스친(王士芹)은 몰라보게 말랐고 얼굴색은 자주색 무와 같았으며 허리도 펴지 못했다. 법공부하고 연공한 한 달 만에 곧 죽어가는 사람으로부터 건강한 좋은 사람이 됐고 얼굴색이 불그스레하고 씩씩하게 걸었으며 가사든 장사든 뭐든 다 잘했다.

왕스친 여, 2013년에 65살, 집은 위수(楡樹)시 페이잉(培英)로에 있다. 위수 금속공장에 근무했었고 30여살 때 심한 류머티즘성 심장판막증이 있었고 손가락 두 개를 굽히지 못하며 심할 때는 갑자기 숨이 넘어갔다. 병세가 갈수록 심해지자 가족들은 그녀를 하얼빈 대학 제1병원, 제2병원, 하얼빈 중의대 병원으로 데리고 갔지만 치료할 수 없었다.

1984년 왕스친은 또 베이징 푸와이(阜外)병원, 중국심혈관연구원에 갔는데 류머티즘성 심장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만약 수술한다면 3개 판막, 주동맥판, 이첨판을 바꿔야 했다. 의사는 심장병 환자 만 명 중에 서너 사람이 이런 심한 질환이 있었는데 그때는 외국 의사가 집도했고 치료 겸 실험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보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20만 위안의 수술비가 필요했다. 주치의는 왕스친 및 가족에게 “돌아가요, 행여 몇 년 더 살 수 있는데 수술한다면 수술대에서 바로 끝날 지도 몰라요”라고 했다. 방법이 없어 왕스친은 돌아와 보수적인 치료를 했고 그날그날 되는 대로 살았다.

당시 왕스친은 몰라보게 말랐고 얼굴색이 자주색 무와 같았고 허리도 펴지 못했다. 84년부터 95년까지 해마다 위수 병원에 몇 번 입원했는데 병원에서 6번이나 설을 쉰 적이 있고 한 해에 9번이나 입원한 적이 있다. 가정 경제도 어렵게 됐고 집안사람에게 폐를 끼쳤다. 그녀는 “당시 아이가 어리지 않았더라면 살려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절망에 처해있을 때 파룬따파의 법광은 이 작은 도시를 널리 비췄다. 95년, 위수 공원에서 왕스친은 대법수련에 들어섰다. 대법의 요구대로 법공부하고 연공하며 심성을 닦고 선을 지향했다. 약 한 알을 먹지도 않고 주사 한 번도 맞지 않고 법공부하고 연공한지 한 달 만에 그녀의 모든 병이 없어졌다. 왕스친은 곧 죽어가는 사람으로부터 건강한 좋은 사람이 됐고 얼굴색이 불그스레하고 씩씩하게 걸었으며 가사든 장사든 뭐든 다 잘했다.

왕스친은 이전에 장사할 때 돈을 위해 도덕을 지키지 않고 상품의 분량을 부족하게 팔았고 나쁜 것을 좋은 것이라고 속였는데 대법을 배운 후 다시는 사람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았다. 과거에 그녀가 항상 입원했기 때문에 직장에서는 해마다 일정한 의료비를 줘야 했는데 그녀가 대법을 수련한 후 공장에서는 그녀에게 의료비를 결산해줄 필요가 없게 됐다. 그녀 공장의 상사는 “다른 사람이 파룬궁이 좋다고 좋지 않다고 말하든 어쩌든 왕스친의 신체를 좋아지게 할 수 있었다면 바로 좋은 공법”이라고 했다.

왕스친이 건강을 회복하고 마음이 개변된 이야기는 현지에서 매우 큰 파문을 일으켰다. 친척과 친구들은 대법의 신기함을 봤고 많은 사람은 이 실례를 보고 잇따라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백혈병 환자의 행운

성격이 급하던 그는 얼굴에 웃음꽃이 폈고 친절하고 선량하게 변했다.

어우커순(歐克順, 남)은 1962년생으로 후난(湖南)성 창더(常德)시 린리(臨澧)현 왕청(望城)향 쑹위(宋玉)촌 사람이고 1998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수련 전에 그는 불치병인 백혈병에 걸렸는데 항암치료로 인해 눈썹이 전부 빠지고 심하게 말랐다. 몇 년간 의료비는 모두 친척과 친구가 빌려준 돈으로 유지해왔는데 98년에 이미 몇 만 위안의 빚이 있었다. 마음씨 좋은 한 의사가 그에게 말했다. “이 병은 병원에서도 어쩔 방법이 없어요, 누가 그러는데 파룬궁을 연마해 각종 난치병이 다 나았다고 해요, ‘전법륜’이란 책을 찾아봐요, 희망이 있을지도 몰라요.”

아무런 방법도 없는 상황에서 그는 약을 좀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곳곳에서 파룬궁을 알아본 끝에 인연이 있어 드디어 ‘전법륜’을 찾았고 파룬궁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이후부터 그는 엄격하게 ‘진선인(眞善忍)’의 표준대로 자신의 언행을 요구하고 도덕을 중시하고 선을 지향하자 짧은 시간 내에 그의 사상, 마음과 신체도 정화됐고 불가사의한 효과를 얻었다. 절망하고 성격이 급하던 그는 얼굴에 웃음꽃이 폈고 친절하고 선량하게 변했다. 이전에 자주 아내를 때리고 욕했는데 법공부하고 연공한 후부터 주동적으로 가사를 했고 아내를 더욱 관심했다. 아내는 원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던 데로부터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게 됐으며 어우커순은 어린 두 아이에게 말과 행동으로 모범을 보였으며 ‘진선인(眞善忍)’ 대로 시시각각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줬다.

한번은 그의 아내가 마을 의료소에서 가죽가방 하나를 주웠는데 안에 현금 80위안과 기타 영수증이 들어있었다. 어우커순은 아내에게 “우리는 대법을 배우는 사람이므로 이런 돈을 가져서는 안 돼요”라고 말하고 영수증의 주소와 이름대로 배를 타고 강을 건너 몇 리 길을 걸어 분실자에게 돌려줬다. 분실자는 돈을 꺼내 감사하려 하자 그는 “만약 이 돈을 받는다면 오늘 주은 물건을 가져오지 않았을 겁니다. 감사하려면 대법에게 감사드리세요. 만약 파룬궁을 연마하지 않았더라면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분실자에게 돌려주지 않았을 겁니다. 이후로 대법이 좋다는 것만 기억하면 되요”라고 했다.

연공하기 전에 그의 신경이 날카로워 이웃과 싸운 적이 있고 심지어 몇 년간 왕래하지 않았다. 연공한 후 어우커순은 주동적으로 찾아가 사과하고 이웃과 화목하게 지냈다. 어우커순은 대법을 확고하게 믿었고 심성을 닦고 도덕을 중시하며 법공부하고 연공해 약물이 전혀 해낼 수 없는 효과를 얻었다. 3개월 만에 그는 완전히 건강을 회복했고 논밭에 나가 농사일을 했고 농사일 경합에도 참가했다. 이후부터 그는 약과 인연을 끊었고 파룬궁을 수련한 후 딴 사람이 됐다. 정말로 너무나 신기했다.

퇴직한 노간부가 불현듯 깨닫다

천원(陳文)은 평생 체육운동을 좋아했다. 원래는 각종 체육단련으로 신체를 건강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 평생 체육단련을 견지했다. 예를 들어 달리기, 농구, 탁구, 수영, 냉수욕, 기공, (중국 전통적인) 희곡의 기본기 등. 농구와 동계 수영 외에 기타는 거의 몇 십 년을 견지해왔다. 젊었을 때 확실히 병이 적었고 건강했지만 환갑이 지난 후 감기에 걸리기만 하면 열이 났고 침대에 드러누워야 했다.

그는 체육단련을 평생 했지만 질병이 많이 쌓였다. 머리에 원형 탈모, 결막염, 각막염, 코피, 비염, 치통, 설하낭종 수술, 심장판막 협소증, 간기능 이상, 신장염, 오른쪽 배꼽헤르니아 수술, 오른쪽 복부 음낭수종 수술, 임파선 통증, 치질, 탈항, 변비, 왼쪽 대퇴골절, 무좀 및 얼굴, 귀, 손발 동상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약을 쓰지 않는 곳이 없었고 십여 년간 지속됐다.

천원은 어릴 적에 아버지를 잃어 가정이 가난해 1948년 미성년 때 집을 떠나 군대에 참가했다. ‘문화대혁명’의 대자보, 비판회, 만인 투쟁회 등의 압박을 받아 천원은 건물에서 뛰어내려 허벅지가 부러졌는데도 3년 노동개조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노동개조 농장에서 10년 넘게 일해 건강에 극도로 충격을 받았다.

소위 ‘누명을 벗고’ 고향으로 돌아온 후에 5,60이 된 그는 여전히 열심히 일했고 젊은 사람이 하지 않는 체력 노동도 필사적으로 완성했다. 과부하 체력으로 항문이 빠져나왔고 수종이 형성되는 바람에 딱딱한 파이프처럼 되어 되돌아가지 못했으며, 창자가 왼쪽 복부에서부터 떨어져 나와 피부를 받치고 있어 배꼽헤르니아를 형성했다.

비록 ‘누명을 벗은지’ 오래됐지만 여전히 보잘것없는 생활비 밖에 주지 않았다. 천원은 병원에서 돌아오더니 10여 년 동안 쌓은 새로운 원한과 이전의 원한이 같이 올라와 불평의 마음이 화산처럼 폭발했다. “이 세상의 모든 나쁜 사람을 소멸할 것이다. 내가 살지 못하면 나를 괴롭히는 사람도 못살게 굴 것이다. 폭탄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과 함께 죽을 것이다!” 그때 천원은 정말로 갈 길이 없었고 오랫동안 죽음의 형식으로 복수하려 생각했다.

1996년 1월 천원이 갈 길이 없어 할 때 이전의 동료가 연공장에 가서 파룬궁을 배워보라고 소개했다. 천원이 대법을 펼치자 그는 정말로 침식을 잊고 단번에 다 보려 했다. 당시 그의 흥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정말로 쇠신발이 닳도록 찾아다녀도 못 찾았는데 별로 힘들이지 않고 우연히 찾았네요!” 몇 십 년 산처럼 쌓여 그를 숨막히게 하고 견디기 어려우며 벗어날 방법이 없고 죽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던 재난이 한순간에 다 분쇄됐다! 천원은 계속 살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고 죽음의 쇠사슬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찾을 줄은 몰랐다! 그는 불현듯이 깨달았고 인생의 참뜻을 알게 됐다! 정말로 좋은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따른다!

천원은 파룬따파를 배우고 싶어 오금이 쑤셨다. 한 달 후 어느 날, 그는 목욕할 때 갑자지 몇 십 년 자랐던 두 개 종양이 없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해 천원은 우한(武漢)에서 배꼽헤르니아 수술할 때 우한 병원 전문가는 이 종양은 수술할 수 있지만 철저히 치료할 수 없다고 했는데 지금은 뜻밖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약을 쓰지 않으면 안 되던 병들도 사라졌고 그림자도 찾을 수 없게 됐다!

제 목숨은 누가 결정합니까?

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집안의 모든 저축을 써버렸지만 바꿔온 것은 한 장의 위독 통지서였다. 리더웨이(李德偉)는 병마에 시달려 온종일 잠 잘 수 없었고 밥이 내려가지 않아 대단히 고통스러웠다. 리더웨이의 아내는 이 타격을 감당할 수 없었고 절망에 빠졌다……

1994년, 산둥 라이시(萊西)시의 리더웨이 부부는 30여세였고 젊고 일을 잘했으며 날마다 자신의 장사에 바빴으므로 장사가 꽤 잘 됐다. 바로 이 해에 무서운 일이 발생했다. 병원에서 리더웨이가 불치병인 말기 간염, 초기 간경화에 걸렸는데 전염성이 있다고 했다. 집안은 한 깊은 골짜기에 빠진 것 같았다. 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집안의 모든 저축을 써버렸지만 바꿔온 것은 한 장의 위독 통지서였다. 리더웨이는 병마에 시달려 온종일 잠 잘 수 없고 밥이 내려가지 않아 대단히 고통스러웠다. 리더웨이의 아내는 이 충격을 감당할 수가 없었고 절망에 빠졌다. 어린 아이와 위독한 남편을 보고 50알 수면제를 준비해 놓고 리더웨이와 함께 죽으려 했다. 그는 완전히 절망했다. 금방 30살 넘었고 아내가 젊고 아이가 이렇게 어린데 자신의 목숨이 곧 끝난다고 생각하자 정말로 슬펐다. 그는 매일 저녁 잠을 자지 않고 지붕 위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며 하느님에게 “어떻게 할까요? 제 목숨은 누가 결정합니까?”라고 물었다.

바로 이때 1996년에 파룬따파의 복음이 그가 살고 있는 마을까지 전해왔다. 그의 어머니는 파룬따파가 질병을 없애고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데 신기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듣고 아들에게 “파룬궁을 연마해 봐라”라고 했다. 며느리는 “병원에서 그렇게 많은 돈을 써서도 치료하지 못했는데 연공해서 치료될 수가 있겠어요?”라고 했다. 어머니는 “돈도 쓰지 않는데 한번 해보라고 해”라고 했다. 이렇게 리더웨이는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파룬따파 수련에 들어섰다. 그는 파룬따파의 ‘진선인’을 배우고 인생의 진정한 의의와 대법의 사부님께서 좋은 사람이 되고 더욱 좋은 사람이 되라는 것임을 알게 됐다. 그는 곳곳에서 ‘진선인’의 요구대로 자신을 요구하고 매일 법공부하고 연공하자 신체는 매우 빨리 정화됐고 병이 다 나았다. 가족도 잇따라 수련에 들어섰고 집안에는 매우 빨리 예전의 생기를 회복했다. 파룬따파는 그에게 두 번째 생명을 줬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그의 몸에서 기적이 나타났고 온몸의 병이 다 없어졌으며 병원에서 사형신고를 받았던 사람이 파룬궁을 연공한 후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으로 변했다. 리더웨이는 그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신 파룬궁 사부님께 감사를 드렸다. 이후 파룬궁은 리더웨이 마음속에 깊게 뿌리를 박았다.

리더웨이는 일에 부딪히면 책의 ‘진선인(眞善忍)’의 표준대로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했다. 리더웨이는 상인으로서 손님을 해치고 속인 적이 없다. 손님도 그의 물건을 사기 좋아했고 그가 사람이 좋고 선량하다고 했다.

국가대표급 아이스하키 감독의 큰 변화

병세가 악화되고 몇 개월 치료했는데 여전히 효과가 보이지 않았고 계속 끊임없이 감기에 걸리고 열이 나며 뇌혈관 경련이 일어났고 자율신경부조, 관상동맥경화증이 발작하고, 내장 기능이 쇠퇴되고 마지막에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해 그는 유서를 쓰고 후사를 안배했다. 가오웨이시(高緯喜)를 잘 아는 많은 사람은 그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위해 안타까워했고 그가 곧 세상을 떠난다고 생각했다.

가오웨이시(남, 70세)는 창춘(長春)시 아이스하키 감독으로 국가고급감독이며 전 지린(吉林)성 아이스하키의 감독, 국가대표 아이스하키 감독, 제9회 동계올림픽 기간에 요청을 받아 홍콩 아이스하키 팀 감독을 담당한 적도 있었다. 60년대부터 가오웨이시는 빙상기지에서 일했기 때문에 선진적인 훈련법을 쌓았고 중국 아이스하키 발전에 매우 좋은 기초를 닦아놓았다. 그는 자주 팀원을 이끌고 국제시합에 참가했고 중국, 지린성, 창춘시를 위해 많은 상장을 탔으며 국제 아이스하키 계에서 매우 높은 영예를 갖고 있다.

사업이 끊임없이 발전함에 따라 질병도 갈수록 많이 쌓였다. 가오웨이시는 정말로 병투성이였다. 관상동맥 질환, 동맥경화, 담낭염, 위염, 십이지장궤양, 관절염, 전립선염, 직장암, 심한 신장기능 쇠약, 간염으로 인한 경도 간경화, 훈련으로 인한 심한 뇌외상 후유증, 뇌진탕 후유증, 수술 후유증, 녹내장, 관절손상, 골절, 경추병, 흉요추 만곡, 골다공증 및 대퇴골두 괴사 등. 질병으로 인해 그는 매일 고통 속에서 발악하고 매우 힘들게 살아야 했다. 1996년에 병세가 악화되어 수개월 치료했는데 여전히 효과가 없었다. 계속 끊임없이 감기에 걸리고 열이 나며 뇌혈관 경련이 일어났으며 자율신경부조, 관상동맥경화증이 발작하고, 내장 기능이 쇠퇴되고 마지막에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는 유서를 써서 후사를 안배했고 고생스러운 여생을 떠나려 했다.

가오웨이시의 아내가 파룬궁을 수련했는데 가오웨이시에게 오직 대법이야말로 그의 목숨을 구해줄 수 있다며 그에게 ‘전법륜’을 보여줬다. 가오웨이시는 침대에 누워서 돋보기를 끼고 ‘전법륜’을 보고 있으면서도 마음속으로 ‘죽을 날이 멀지 않는 나 같은 환자도 희망이 있을까? 아직도 나를 관할할 사람이 있을까?’고 의심했다. 그러나 신체 고통이 하루하루 감소되자 그는 대법의 신기함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1998년 9월이 대법 사부님의 해외에서의 설법녹음을 듣고 대법은 사람에게 반본귀진하라고 가르쳐주는 것이고 ‘성명쌍수(性命雙修)’하는 고덕(高德)의 대법이라는 것을 알고 드디어 수련의 길에 들어서겠다고 결심했다. 1년 반 침대에 누워있던 가오웨이시는 매우 빨리 내려와 연공하고 가부좌할 수 있었고 식욕도 있고 살도 점차 쪘으며 정신도 갈수록 좋아졌고 여러 질병이 다 없어졌다. 매일 활력이 넘쳐나고 걷고 자전거를 타도 힘들지 않으며 시력도 좋아져 200여도의 돋보기를 끼지 않아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가오웨이시는 99년 7월 20일 전에 한 편의 수련 체득에서 “파룬따파는 저를 구했을 뿐만 아니라 제게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라고 했다.

대법은 가오웨이시에게 새로운 생명을 줬을 뿐만 아니라 그를 딴 사람으로 만들었다. 수련 전 가오웨이시는 성격이 거칠고 급했고 툭하면 싸우고 사람을 욕했으며 빙상 스포츠계에서 그의 나쁜 성격은 유명했다. 수련한 후 가오웨이시는 대법의 요구대로 심성을 연마했고 대법제자의 표준으로 문제를 대하고 처리했으며 모든 운동선수를 관심하고 사랑하고 선의로 그들을 도와줘 그들은 큰 감동을 받았다. 일상 업무 중 생활 중 다시는 화를 낸 적이 없고 더는 사람을 욕하지 않아 아이스하키 계에서는 그에 대한 좋지 않는 평가가 철저히 개변됐다.

가오웨이시를 잘 아는 많은 사람들은 그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후 안타까워했고 그가 머지않아 세상을 떠난다고 생각했다. 2년 후 그는 건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정신상태가 몰라보게 달라졌으며 사람을 대하고 일을 처리할 때 인자하고 친절했다. 사람들은 다 매우 놀랐고 이 커다란 변화의 원인을 알고 싶어 했다. 가오웨이시는 그들에게 “난 파룬따파 수련자입니다. 대법은 제 생명을 구해줬을 뿐만 아니라 저란 사람을 개변시켰습니다”라고 했다.

부러졌던 발에 넣었던 철사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그녀는 하루 밤 죽었다가 살아난 적이 있고 쇠파이프에 발이 부러져 나사못으로 고정하고 철사를 감아 넣어 걸을 때 발뒤축을 내디딜 수 없고 쩔뚝거렸다……

윈난(雲南)성 쿤강(昆鋼)시 룽산(龍山)탄광의 리충량(李崇亮)은 2013년에 56살이었다. 1998년에 대법을 수련한 후 부러졌던 발에 넣었던 철사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각종 질병이 다 나았으며 그녀는 ‘진선인(眞善忍)’의 아름다움을 체득했다.

리충량은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 심한 신장염이 있어 하루 밤 죽었다가 살아난 적이 있는 외에 또 심장병, 여성질환이 있었으며 쇠파이프에 발이 부러져 나사못으로 고정하고 철사를 감아 넣어 걸을 때 발뒤축을 내디딜 수 없고 쩔뚝거렸는데 매우 힘겨웠다. 그녀는 질병에 시달려 오랫동안 주사를 맞고 약을 먹는 고통 속에서 괴로움을 당했다.

1998년 말에 리충량은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사부님께서 가르쳐주신 법리대로 곳곳에서 남을 선하게 대했고 일마다 ‘진선인’의 표준대로 자신을 요구했고 모순에 부딪히면 안을 향해 자신을 찾았으며 시간이 있으면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다. 그녀는 글자를 몰라 귀로 들을 수밖에 없었다. 저녁에 직장 수련생과 단체로 연공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중병은 다 나았고 부러진 발에 감아 넣었던 철사도 없어졌으며 걸을 때 발뒤축을 바닥에 내디딜 수 있어 자유로이 걸을 수 있게 됐다. 그녀는 파룬따파의 신기함과 아름다움을 느꼈고 사부님과 대법에 감사드렸다. 그러므로 더욱 ‘진선인(眞善忍)’의 표준대로 자신을 요구했고 일을 할 때 먼저 다른 사람을 생각했고 선타후아(先他後我), 무사무아(無私無我)했다. 리충량은 병이 없어 온몸이 가벼웠고 건강한 신체로 직장에서 전력을 다해 일했으며 가정에서 경제적 부담을 줄였고 즐겁게 생활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이 됐다

그녀는 늘 온몸이 나른했고 어떤 때 밥을 먹을 때도 젓가락을 잡지 못했으며 다리는 자주 부었고 일에 부딪히면 속이 좁았으며 화를 내기 좋아하고 화를 내기만 하면 경련을 일으켰다. 집안의 돈은 다 자기 손에 쥐어 잡고 있었고 무슨 일이든 그녀 말을 들어야 했다.

그녀는 걸을 때 온몸이 가벼울 뿐만 아니라 피부도 불그스레하게 됐고 얼굴에 반점도 없어졌다. 시부모에게 효도를 드렸고 남편을 존중했으며 일에 부딪히면 남편과 상의했고 임금을 남편에게 주고 관리하라고 했다. 어떤 때 남편이 화를 내도 그녀는 참을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첫 번째 사람은 좋지 않고 만나면 마음이 괴롭고 두 번째 사람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사실 이것은 같은 사람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파룬궁수련생 후추샤(胡秋霞, 여)는 2008년에 49세였다. 진저우(錦州)시 타이허(太和)구 링시다제(凌西大街) 51동 116호에 살고 있고 전 진저우시 플라스틱 조화공장 노동자였다.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 그녀는 고혈압, 정신쇠약, 부체 등 병이 있어 늘 온몸이 나른했고 어떤 때 밥을 먹을 때도 젓가락을 잡지 못하고 다리는 자주 부었으며 일에 부딪히면 속이 좁았고 화를 내기 좋아하며 화를 내기만 하면 경련을 일으켰다. 그리고 또 얼굴에 많은 반점이 났다. 그때 그녀는 도처에 다니면서 의사와 처방을 찾아다녔고 심지어 부처에게 절을 하고 신선에게 빌었으나 병세는 좋아지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은 무던하고 솔직했으나 그녀는 언제나 남편이 무능하다고 원망했고 늘 그에게 화를 냈고 집안의 돈은 전부 자기 손에 쥐어 잡고 있었으며 무슨 일이든 그녀 말을 들어야 했다. 실직된 후 비록 신체가 좋지 않았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녀는 할 수 없이 부근 시장에서 생활용품 장사를 했다. 매일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몸은 녹초가 됐다.

1997년 11월에 한 친척이 그녀에게 파룬궁이 질병을 없애고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데 신기한 효과가 있다고 추천했다. 그녀는 시험해보겠다는 생각으로 파룬따파 수련에 들어섰다. 연공한지 얼마 안 되서 모든 질병은 다 나았고 걸을 때 온몸이 가벼웠고 얼굴의 피부도 불그스레하게 반점도 없어졌다. 건강하게 된 그녀는 대법에 대해 매우 감사했고 끝까지 수련하겠다고 결심했다. 이후 그녀는 법공부하고 곳곳에서 ‘진선인(眞善忍)’의 법리로 자신을 단속했고 집에서 시부모에게 효도를 드렸고 남편을 존중했으며 일에 부딪히면 남편과 상의했고 임금을 남편에게 주고 관리하라고 했다. 어떤 때 남편이 화를 내도 그녀는 참을 수 있었고 직장에서 그녀는 노고를 마다하지 않고 원망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명리를 다투지 않았고 동료들과 사이좋게 지냈으므로 공장장의 신임을 받았다. 그녀는 하루 종일 낙관적이고 온화했으며 조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가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고 했다. 그녀의 몸과 마음이 크게 변화된 것을 보고 그녀 가족은 모두 대법을 지지했다.

‘본성은 바뀔 수 있다’의 비밀

질병의 온갖 시달림을 받은 그녀는 성격이 괴벽하게 변했고 갈수록 조급하고 변덕스러웠고 누구를 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쉐(大薛)향 류수이(流水)촌의 여성 쉬칭옌(許淸焱)은 2009년에 51살이었는데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전에 현기증, 요근 손상, 생리통 등 여러 질병이 있었고 갑상선 종양이 갈수록 커져 수술을 해야 할 정도이지만 집에 돈이 없어 다만 약을 먹고 완화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몇 가지 병에 시달린 그녀는 심하게 앓아 젊은 나이에 노동력을 상실했다. 그해 그녀는 38살 밖에 안됐다. 쉬칭옌은 사는 것이 어렵고 자신이 불행하다고 탄식했으며 이후 생활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생각했다. 그녀는 늘 숨어서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 질병의 온갖 시달림을 받은 그녀는 성격이 괴벽하게 변했고 갈수록 조급하고 변덕스러웠으며 누구를 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후에 그녀의 신체는 갈수록 나빠지는데다가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아 큰 언니가 어머니를 모셔갔다.

1997년 2월 12일, 쉬칭옌은 운좋게 파룬따파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했다. 얼마 안 되서 질병이 하나하나 없어졌다. 그녀는 평생 처음으로 병이 없어 온몸이 가벼운 행복과 기쁨을 체득했다. 그런 느낌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녀는 절실하게 ‘전법륜’을 들고 보기 시작했고 ‘진선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겠다고 결심했다.

이전에 어머니에게 효도하지 못한 것을 회상하자 그녀는 마음으로 매우 자책했다. 촛불 같은 여생의 어머니를 생각하고 또 지난 날을 생각하자…… 그녀는 후회하는 마음을 통제할 수 없어서 즉시 큰 언니 집에 가서 방에 들어서자마자 어머니에게 무릎 꿇고 용서를 빌었다.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다 울었다. 그녀의 큰 언니는 감동해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대법은 너무 좋아요, 한 달 수련했는데 이렇게 큰 변화가 생겼어요. 대법은 너무 신기해요. ‘강산은 쉽게 바뀌어도 사람의 본성은 바뀌기가 어렵다’고 말하지만 대법은 ‘본성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해냈어요. 이후로 쉬칭옌은 어머니에게 효도했고 남을 관심했다. 건강한 신체는 청춘을 다시 불러왔고 그녀는 또 농사일을 하고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됐으며 주동적으로 큰 언니 집에 가서 과수원 일을 도와 줬고 일가의 생활이 화목하게 됐다.

(계속)

문장발표: 2015년 2월 2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신수련생마당>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한 이야기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2/20/30465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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