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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공(神功)의 특효 증명 ‘파룬따파는 좋다!’(4)

희비가 교차하다

[밍후이왕] (전편에 이어서)

3. 희비가 교차하다

일부 파룬궁수련생은 수련 전 갑작스러운 재난, 혹은 갑작스러운 실명, 혹은 높은 곳에 떨어져 반신불수가 되는 경험을 했다. 고통스러워하고 불행한 이들이 다행히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만난 것이다. 이들은 처음 수련한 후 무슨 일이 발생했을까? ‘희비가 교차하다’ 시리즈는 이런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절망한 그녀가 빛을 보다

3년간 마른 밥을 먹지 못했으며 딱딱한 것도 먹지 못하고 다만 부드러운 음식을 먹어야 했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까지 앉아 있어야만 했다. 정말로 하루가 일 년 같았다! 몸은 말라 거의 35kg 밖에 되지 않고 두 눈은 실명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몰래 말한다. “아이메이(愛梅)는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아….”

인아이메이(誾愛梅) 집은 후베이(湖北) 베이마청(北麻城) 바이궈(白果)진 둥자허(董家河)촌 이자허칸완(易家河坎灣)에 살고 있다. 옷을 만들고 지퍼를 바꿔주며 구멍난 옷을 기워주며 생계를 유지했다. 남편은 바이궈 직물공장에서 실직한 사람이며 일 년 내내 주하이(珠海)에서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대법을 수련하기 전 인아이메이는 성격이 강하고 작은 일로 자주 남편과 시어머니와 다투었으며 매일 명예와 이익을 위해 다투고 싸웠으므로 자신의 몸을 다 망가뜨려 놓았다.

1990년부터 인아이메이는 빛을 보지 못하고 빛을 보면 눈을 뜨지 못하며 아프고 일도 하지 못했다. 그때 무한(武漢) 세허(協和)병원, 황저우(黃州), 뤄톈(羅田) 등 병원에서 여러 번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장기간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 약물 부작용으로 배가 아프고 더부룩했다. 3년간 마른 밥을 먹지 못했으며 딱딱한 것도 먹지 못하고 다만 부드러운 음식을 먹어야 했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까지 앉아 있어야만 했다. 정말로 하루가 일 년 같았다! 집에서 여러 해 모은 돈은 치료하는데 다 써버려 생활이 아주 어려웠다. 인아이메이는 1997년에 정월에서 6월까지 침상에 누어있어 11살과 9살 아이가 연못에 가서 물을 길어와 삶은 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몸은 바짝 말라 거의 35kg 밖에 되지 않고 두 눈은 실명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몰래 말했다. “아이메이는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아….”

1997년 9월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인아이메이는 파룬궁을 수련하면 병을 치료하고 몸을 건강히 한다는 것을 들었다. 급히 택시를 타고 바이궈 거리에서 마침내 파룬궁수련생을 찾았다. 즉시 파룬궁의 주요 저서 ‘전법륜’을 사서 조금도 지체할 수 없이 책을 보았다. 책을 보며 3년간 마른 밥을 먹지 못한 인아이메이는 자신도 모르게 책을 보며 흰밥 한 그릇을 뚝딱 먹어치웠다! 모자 3명은 아주 기쁘고 놀라며 함께 수련하기 시작했다. 인아이메이는 온몸의 병이 3일 후 모두 사라졌다. 거의 실명에 가까웠던 눈은 정상으로 회복됐고, 아들 이쑹(易松)도 머리 아프고 배가 아픈 병도 나았다. 작은 아들 융쑹(永松)도 식사량이 늘었으며 신체도 튼튼해졌다. 두 형제는 더 이상 작은 일로 다투지 않았다.

인아이메이 온 집안 식구는 ‘진선인(眞善忍)’ 표준에 따라 사람을 대하고 일을 처리했다. 파룬따파는 인아이메이 가족에게 건강, 화목, 행복을 가져다 줬으며 인아이메이는 이전의 이기적이고 억지 부리고 탐욕스럽고 쟁투하는 등등 나쁜 마음은 대법 수련에서 조금씩 녹아버렸다. 더는 개인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았다. 10여 년간 수련한 인아이메이는 신체가 건강하고 가벼우며 다시는 약을 먹지 않았고 많은 의료비를 절약해 두 아들을 대학에 보냈다. 인아이메이는 정부에서 한 푼의 대출도 받지 않고 구제금도 신청하지 않았다.

반신불수가 된 그녀가 기적을 불러왔다

출산 후 진리펑(金麗鳳)은 척추에 두 엄지만한 틈이 생겼다. 그리하여 하지는 반신불수가 되고 치료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파룬궁을 수련해 보겠다는 마음을 품고 시어머니가 차로 밀고 아이를 데리고 두 사람의 부축을 받아 4번 쉬어가며 연공장까지 찾아갔다.

진리펑(여)은 1962년 10월 2일생 후루다오(葫蘆島)시 시얼푸(寺兒蔔)향 신디하오(新地號)촌의 사람이다. 본과 졸업을 하고 일본어, 영어를 잘하는 우수생이며 사람마다 칭찬하는 재능 있는 여자였다. 그녀는 양자장즈(楊家杖子)진 고3 영어 교사로 학교에서 여러 번 우수교사로 선정됐다. 그녀는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교사로 이후에 버하이(渤海)선박공업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남편은 버하이 선박 공법학교의 지도주임으로 가정이 화목했다.

달도 어둡고 밝을 때가 있고 둥글고 모자랄 때가 있으며 사람도 아침저녁으로 화와 복이 있다. 진리펑은 36세에 아들을 낳았는데 불행이 그녀에게 찾아왔다. 출산 후 허리뼈에 두 엄지 손가락만한 틈이 생겨 하지가 마비됐다. 선양(沈陽), 베이징 등에 가서 치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친구와 친척이 모두 와서 위로해 주었다. 그녀는 절망하며 “나는 침대에 누워 죽기만 기다려요.”

반년 간 하반신 마비가 된 진리펑은 1999년 3월 생명의 새 기점을 맞이했다. 한 교사가 그녀에게 파룬궁을 소개해 주었다. 이렇게 그녀는 시험 삼아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시어머니가 차로 밀고 아이를 데리고 두 사람이 부축해 4번이나 쉬어가며 연공장에 찾아왔다. 이튿날 또 2번 쉬어가며 연공장에 도착했다. 셋째 날 기적이 일어났다. 그녀는 정상적인 사람처럼 걸어서 연공장에 도착했다. 이렇게 그녀는 고덕대법 ‘전법륜’을 배우게 되어 수련의 길을 걷게 됐다. 그녀는 만나는 사람에게 파룬따파가 그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었다고 말했다. 수련한 후 그녀의 사상은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고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학교에서 더러운 일, 힘든 일은 모두 그녀가 했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그녀가 매일 여러 사람들을 위해 반드시 하는 일이 됐다.

기쁘게 새 생명을 얻고 강당에 복귀하다

흉막염, 흉막삼출, 간담비대, 삼차신경통 등으로 8년간 병에 시달려 저축을 거의 다 써버려 죽을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강변에서 한 노인이 그에게 곤경에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 주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황민(黃敏, 남, 대졸)은 1968년 헤이룽장(黑龍江)성 자무쓰(佳木斯) 단압공작 기계공장에 취업됐다. 그는 정직한 고급 기술자로 자동차, 클레프 밀링, 밀링 펜치 등 모든 기계를 잘 다루고 적지 않는 제자를 두었다. 사람들은 그를 친절하게 ‘만능공’이라고 불렀다. 1973년 수학자 화뤄겅(淆庚)이 자무쓰에 와서 ‘우선법과 통주법’을 널리 알릴 때 황민이 줄곧 함께했다. 화뤄겅은 “내가 일찍 너를 만났다면 꼭 너를 데려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민은 자무쓰 TV공장으로 전근한 후 궈룽장(過龍江) 칼라TV공장의 주 설계를 담당했다. 1985년 자무쓰 공업대학으로 발령을 받아 강의를 했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자신이 저축한 1만 위안으로 공구와 기계를 구매해 실험실에 기증했다. 1987년 자무쓰 경제위원회에 주임을 담당하라고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인생은 무상하고 변화무쌍하다. 1988년 한 차례 교통사고로 황민은 좌절해 일어나지 못했다. 비록 죽음의 끝자락에서 벗어났지만 여러 질병이 그를 괴롭혔다. 그는 이어서 흉막염, 흉막삼출, 간담비대, 신경쇠약에 걸려 장기간 불면증에 시달렸다. 이후 삼차신경통에 걸려 더욱 심각해졌다. 수업할 때 삼차신경통이 발작해 온몸에 땀이 나고 머리로 벽을 박아야 했으며 얼굴색도 자주색으로 변했다. 학생들은 모두 보고 두려워했다. 이렇게 그는 하는 수 없이 강단을 떠나게 됐다.

그 후 황민은 8년간 고통에 시달렸다. 누가 그의 아픔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서양의학과 동양의학, 각종 민간요법 등 부지기수 방법을 사용했지만 모두 효과가 없었다. 이후 서독에서 수입한 ‘카르바마제핀’이 통증을 완화한다고 하는데 한 알에 10위안으로 하루에 3알을 먹어야 했고 한 알도 적으면 효과가 없었다. 그때 월급이 적어 집안 저축은 거의 모두 사용했지만 결국 효과가 없었다. 그는 아이가 학교에 다니고 돈이 많이 들자 아내 스스로 감당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고 짐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자살할 생각을 했다. 그때 아내 장수펀(張淑芬)과 두 아이는 매일 마음을 조이며 그를 지켜보았다. 그 괴로운 날들은 정말로 잊어버리기 어렵다.

한번 우연한 기회에 그는 구사일생했다. 장윈버(姜雲波)라는 노인이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고통스러운 얼굴을 한 황민을 보고 파룬궁을 소개해 주었다.

황민은 2개월 수련했는데 삼차신경통만 제외하고 기타 병은 모두 나았다. 연공을 반년도 하지 못했는데 삼차신경통도 의외로 나았다. 그 후부터 그는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더욱 좋은 사람이 됐다. 심성, 도덕의 승화에 따라 신체도 신기한 변화를 가져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파룬따파의 신기함에 모두 탄복했다. 파룬따파는 그에게 새로운 생기와 희망을 주었다. 그는 느낌에 이것이 자신이 일생동안 찾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련을 2년 남짓 한 후 황민은 다시 강단에 서게 됐다. 대법이 그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었고 대법도 황민의 온가족을 구했다. 그때 그들 가족은 마음속에 단지 행복과 감사의 마음뿐이었다.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 그들에게 새 생명을 주신 것에 감사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다)”라는 말이 그들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다.

고공에서 추락한 사람의 이야기

그녀는 6층 다리에서 떨어진 후 병원에 이송됐다. 검사하니 12흉추, 요골, 꼬리뼈, 가슴뼈가 모두 골절되고 흉부에는 피가 가득했다.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었으며 거의 반신불수 상태가 됐다.

1995년 5월에 당시 왕커(王克)의 집은 소형 여객차를 소유하고 있었다. 저녁 9시쯤 고객을 태우고 타오셴(桃仙) 비행장 입체 교차로에 이르렀을 때 차가 고장이 났다. 이후에 다른 차를 불러 고객을 보냈다. 왕커가 다른 차를 타려면 입체교 틈새를 지나야 했다. 왕커는 입체교 틈새를 지나가려 하다가 다리에서 떨어졌다. 입체교는 6층 건물만큼 높다. 입체교에는 기차도 달린다. 왕커는 기차 길에 떨어지지 않고 다른 곳에 떨어졌다. 당시 혼수상태였다. 이후에 어떤 사람이 그녀를 입체교에서 업어 차를 두 번 갈아타고 푸순(撫順) 중의병원으로 데려다 줬다.

병원에 가 검사하니 12흉추, 요골, 꼬리뼈, 가슴뼈는 모두 골절되고 흉부에는 피가 가득했다. 이후에 주사로 흉부의 피를 뽑았다. 당시 의사는 상처를 보아 왕커가 반신불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만약 수술하면 아마 오른쪽 다리에 마비가 온다고 해서 왕커는 수술을 포기했다.

왕커는 고통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온몸이 괴로웠다. 그런 고통은 발에 못을 박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남편이 그녀의 몸을 안마하지 않으면 전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백 미터 길도 택시를 타고 가야 했다. 꼬리뼈 골절한 곳에 골극이 자라나 발은 신발도 걸치지 못한다. 나중에는 오른쪽 다리 근육도 위축됐다.

왕커도 몇 가지 기공을 배웠지만 효과가 없었다. 이후 왕커의 친척이 오직 파룬궁을 배워야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했다. 왕커는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왕커는 당시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는데 느낌이 아주 좋았다. 점차 왕커를 변하게 하고 법을 듣는 과정에서 점차 신체도 변했다.

그때 왕커는 은행에 돈을 저금했는데 직원이 500위안을 더 많이 적어줬다. 당시 왕커는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은행직원의 실수이지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법을 배운 후 수련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녀는 다시 은행을 찾아 자기에게 500위안을 더 주었다고 직원에게 알렸다. 하지만 은행직원은 누구도 이 일을 승인하지 않았다. 왕커는 할 수없이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이후에 왕커가 새로 구입한 융주(永久) 자전거를 도둑맞았다. 이것은 그녀가 더 받았던 돈이 자전거로 빚을 갚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바로 인과응보였다!

1996년 6월부터 왕커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8월에 3개월이 되지 않았는데 왕커의 건강은 이미 정상으로 회복됐다. 스스로 도료(塗料)를 구매할 수 있고 또 건물 위로 운반할 수 있었으며 스스로 벽도 칠할 수 있게 됐다. 왕커는 아주 기뻐했다. 반신불수 된 사람이 파룬궁 수련을 2개월밖에 하지 않았는데 이 모든 증상이 모두 사라졌다.

실명 후의 비애와 기쁨

기적이 발생했다. 의학전문가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깜짝 놀랐다. 펑샤(鳳霞)는 더욱 흥분되어 대법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했다. 그녀는 즉시 퇴원하고 파룬궁을 수련하겠다고 결심했다. 10여일의 비애와 기쁨은 마치 꿈만 같았다. 펑샤는 병이 나은 기쁨을 품고 병원을 떠났다. 그런 후 그녀는 급히 파룬궁 공법을 배운 후 총총히 선전(深圳)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그녀에게 10여 일간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 독자 여러분께서 계속 보시기 바란다.

2005년 2월말 어느 날, 키가 크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지닌 우아한 여자가 아들을 데리고 20중학교 입학을 신청하러 갔다. 그런데 그녀는 집 밖 도로까지 걸어갔을 때 갑자기 눈이 흐릿해지더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바로 선전에서 충칭(重慶) 퉁량(銅梁)으로 휴가를 온 자오펑샤다. 그녀는 막 아들을 학교에 보내려 했는데 뜻밖에 불행을 당했다.

펑샤의 어머니는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괴로웠다. 그녀는 다급히 펑샤를 퉁량현 인민병원에 데려가 검사했다. 의사는 한참 서두르다가 마지막에 미안한 마음으로 “병이 심각하니 우리도 어떤 수가 없습니다. 빨리 충칭에 보내세요.” 이렇게 펑샤 부모는 딸을 충칭 다핑(大坪) 병원으로 보냈다.

다핑(大坪)병원에서 펑샤는 CT, 초음파, MRI, 골수 등을 검사했다. 안과, 뇌과, 내과 세 방면 전문가가 합동 진단했어도 병의 원인을 찾지 못했다. 마지막에 실험성 치료를 하려 했지만 병의 원인을 찾지 못해 펑샤 부모는 동의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쩌면 좋을까? 온 가족은 안달이 났다. 펑샤는 더욱이 얼굴이 눈물범벅이 됐으며 지극히 슬퍼했다. 자신은 아직 젊은데 눈도 보이지 않고 이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속수무책하고 있을 때 병실 친구의 언니가 펑샤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다)를 염하면 나아진다고 알려주었다. 본래 마음씨 좋은 그 언니의 남편, 아들은 모두 베이징 첨단연구원이다. 그녀는 이전에 불치병에 걸렸는데 매년 몇 십만 위안을 의료비로 사용했다. 하지만 돈도 떨어지고 머리카락은 전부 빠졌다. 당시 그녀는 생존의 희망이 막막해 단지 죽기만을 기다렸다. 이후 그녀는 파룬따파를 수련했는데 그 결과 신기하게 건강을 회복했다. 머리카락도 자라 60세인 그녀는 통통하고 고상하며 얼굴이 환하다.

이모의 말을 듣고 펑샤의 엄마는 급히 ‘전법륜’을 펑샤에게 읽어주었다. 펑샤의 모친도 본래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있었다. 1999년 7월 20일부터 중국공산당 장쩌민(江澤民) 집단이 사악하게 파룬궁 박해를 일으켰다. 펑샤의 모친은 주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기에 대법을 줄곧 언급하지 않았었다. 지금 딸을 위해 이모의 격려를 받고 모친은 담이 커졌고 자신감이 충만됐다.

이모는 기뻐하며 더욱 권했다. “펑샤가 빨리 병을 낫게 하려면 스스로 책을 보게 해야 합니다.” 옆에 간호사가 이 말을 듣고 비웃으며 말했다. “사람도 보이지 않는데 책을 볼 수 있겠어!”

펑샤는 그때 간호사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머릿속에 갑자기 이런 한 마디가 스쳐지나갔다. “정신이 7할이고 병이 3할이다” 펑샤는 자신도 모르게 이 한마디를 염하고 엄마에게 물었다. “이 말이 이 책에 나와요?” 엄마는 펑샤에게 “바로 ’전법륜‘ 책에 있다”고 했다. 펑샤는 책을 받아 급히 한번 보았다. 갑자기 책 속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글자는 어렴풋하더니 갑자기 똑똑히 보였다. 그녀는 보면서 갑자기 자신의 눈이 나아졌다는 것을 의식했다!

기적이 발생했다. 의학전문가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깜짝 놀랐다. 펑샤(鳳霞)은 더욱 흥분됐고 대법에 대한 태도를 철저히 개변했다. 그녀는 즉시 퇴원하고 파룬궁을 수련하겠다고 결심했다.

10여일의 비애와 기쁨이 정말로 꿈만 같았다. 펑샤는 병이 나은 기쁨을 품고 병원을 떠났다. 그런 후 그녀는 절박한 심정으로 급히 파룬따파 공법을 전부 배우고 선전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3일 동안에 근심어린 얼굴이 새 표정으로 바뀌다

한 손이 내 배에서 무슨 물건을 잡고 밖으로 당기는 것 같았다. 나는 또 소리를 들었는데 그 소리는 마치 쥐의 꼬리가 뽑혀나가는 소리 같았다. 이렇게 단번에 몸이 가벼워지고 병의 고통은 전부 사라지고 정신이 들었다. 이것은 조옌팅(趙豔婷)의 진실한 느낌이다.

2014년 16년 전, 허베이(河北)성 이현(易縣) 두웨샹짜이즈촌(獨樂鄉寨子村) 조옌팅(여, 34)은 한참 나이인데 질병에 시달려 집안 돈을 병원에 다 사용했지만 완치되지 못했다. 조옌팅은 죽음이 수시로 그녀의 생명을 빼앗아 갈 것 같아 매일 근심걱정이었다. 위와 심장이 아프면 한 움큼씩 피를 토했다. 산부인과 병은 장기간 그를 괴롭혔으며 자주 소변을 배출하지 못하고 배는 아파서 참지 못할 정도이며, 손발이 마비되어 몸 한편이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었고, 얼굴도 한쪽은 크고 한쪽은 작으며 눈도 TV를 볼 수 없고 보기만 하면 하얗게 변했다.

조옌팅은 말했다. “이런 몸이 3일 파룬궁을 연마하고 나아졌어요. 96년 봄에 병마에 시달려 죽기 직전의 나에게 언니가 파룬따파를 간단히 소개해 주었어요. 당시 나는 온몸에 힘이 없어 구들에 누워있었죠. 나는 전혀 힘이 없어 연마할 수 없다고 했어요. 언니는 나를 구들에서 부축해 일으켜 세워 장롱에 기대놓고 나에게 동작을 가르쳤어요. 처음에 어깨가 힘이 없어 들 수 없었어요. 언니가 손을 붙잡아줘 연공했어요. 셋째 날 사부님께서 나에게 신체를 청리해 주셨어요. 한 손이 내 배에서 무슨 물건을 움켜잡아 밖으로 꺼내는 것 같았어요. 나는 또 소리를 들었는데 그 소리는 마치 쥐의 꼬리가 뽑혀져 나가는 소리 같았어요. 그런 후 신체는 특별히 가벼웠고 통증은 전부 사라지고 딴 사람으로 바뀌었어요. 정신을 차리게 됐어요.”

조엔팅의 신체 변화에서 마을 주민들은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했다. 단번에 많은 사람이 법을 얻었다.

‘전법륜’을 본 후 세계가 맑고 깨끗해지다

2014년 41세 류후이는 1990년 청두(成都)사범대학교를 졸업하고 청두시 진친루(金琴路) 초등학교 국어 교사로 임명됐다. 1991년 선천성 고도근시 교정수술에 실패한 후 두 눈이 병변(病變)을 일으켰다. 매일 저녁 붕대로 눈을 감고 자야 아침에 비로소 물건을 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눈 안이 모래 같았다. 눈을 힘껏 감으면 눈이 붓고 눈물이 나며 물건이 잘 보이지 않는다. 붕대를 느슨하게 조이면 물건은 그림자 인형극 같은데 이는 초등학교 교사 류후이(劉暉)의 일상생활이다. 하지만 ‘전법륜’을 단지 2번 본 후 꿈에서 깨어나자 갑자기 이 세계가 밝고 깨끗하게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매일 열 시간 넘게 잠을 자도 생기가 없었다. 7년 동안 류후이는 이렇게 살았다. 얼마나 많은 붕대를 바꿨는지 모르고 눈에 넣었었던 냅킨은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의사가 병의 원인을 모르고 언제 갑자기 실명될지 모른 다는 생각이 들면 수시로 공포와 절망 속에 빠졌고 성격도 갈수록 거칠어졌다.

1997년 11월 4일 류후이는 단지 ‘전법륜’을 두 번 보고 잠에서 깨어나니 붕대를 두르지 않아도 이 세계가 밝고 맑아졌다. 그 후부터 이런 악몽에서 벗어났다. 1개월 후 위축성위염, 인후염, 관절염, 산부인과병, 과민성피부염, 각한 변비, 치질이 모두 나아졌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녀는 자신의 거친 성격, 이기적이고 냉정한 좋지 않은 습관을 통제할 수 있어 점차 사람을 대할 때 선하게 대하고 관용, 배려하는 마음이 생겼다. 특히 당시 56명의 아이와 적대적이었지만 원망에서 벗어나 다시 선한 인연을 맺었다.

무너진 ‘기둥’이 일어나다

1995년 3월 24일, 자오메이산은 고공작업을 하다가 떨어져 중상을 입어 허베이성 제3병원에서 응급조치를 받았다. 그는 끊임없이 신음소리를 냈고 고통스러워 기절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가족들이 다그쳐 사람을 부르고 의사와 간호사는 응급조치를 했다. 모두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아내와 아들은 다만 그를 지켜보며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

제3병원 정형외과에서 반년을 치료받고 매일 직장에서 사람을 파견했으며 열 몇 명이 24시간 교대로 그를 간호했다. 수술을 잘하지 못해 몇 개월은 호전되지 않았고 고통스러워 참기 어려웠다. 고통스러워 기절할 정도였는데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못했다. 의사도 머리를 저으며 후반생은 침상에서 지내야 한다고 했다.

집에 돌아간 후 자오메이산은 반신불수가 되어 침상에 누워있었고 마음은 무거웠으며 자주 화를 냈다. 생활은 모두 아내가 돌봐야 하며 매일 그의 대소변을 받아야 했다. 아내도 몰래 마음 아파 눈물도 많이 흘렸다. 자오메이산은 집안의 기둥이라 그가 병이 들어 눕자 하늘이 무너진 것과 같았다. 집안 분위기는 아주 심각했고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온 가족은 절망에 빠졌다. 반신불수로 후반생을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족을 부양하지 못하고 가족에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니 자오메이산은 절망해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 저녁에 아내와 아들은 돌아가며 그를 지켜보고 감히 잠도 자지 못했다. 혹시 그가 좋지 않은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해 의외의 사고가 날지 두려워했다.

1996년 9월 18일 친구가 파룬궁을 소개하며 병을 치료하고 몸을 건강히 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했다. 처음에 자오메이산은 믿지 않았다. 여러 사람의 권유 하에 그는 책을 보겠다고 했다. 자오메이산은 본래부터 선량한 사람이고 파룬궁이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기에 그는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 후 파룬궁의 원칙으로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했다. 단지 3개월 만에 반신불수가 된 자오메이산은 다시 일어섰다! 스스로 밖에 나가 연공을 할 수 있다! 게다가 몇 년간 심장병, 위장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얼굴에 미소가 있었고 온 가족도 기쁨을 되찾았으며 파룬궁에 대한 감사로 충만됐다. 직장 책임자도 여러 번 집에 와서 그를 보았다. 관심의 각도에서 그에게 병원에 가서 신체를 검사하라고 했다. 자오메이산은 격동돼 부서 지도자에게 “파룬궁을 수련한 후 신체가 점차 좋아지고 있기에 회사에 폐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파룬궁이 저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었습니다!” 직장 사람들은 그의 신기한 변화를 보고 그들 온 가족을 위해 기뻐했다. 그 후 십여 년 간 자오메이산은 의료비로 돈 한 푼도 사용한 적이 없다.

자오메이산이 매일 기뻐하고 화도 내지 않고 신체가 좋아진 것을 보고 온 가족도 파룬궁이 자오메이산에게 다시 살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준 것에 아주 감사했고 온 가족은 복을 얻었다. 온 가족이 다시 생활의 활기를 되찾았다! 당시 체육위원회와 기공협회조직에서 대형 단체연공을 조직했고 파룬궁이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한 효과를 조사했다. 자오메이산을 초청해 신체가 회복된 기적을 강연하게 했다. 그때 사람들은 모두 파룬궁은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건강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고 있고 배우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계속)

문장발표: 2015년 2월 1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한 이야기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2/18/3046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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