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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공(神功)의 특효 증명 ‘파룬따파는 좋다!’(3)

근심과 고뇌를 끝내고 곤경에서 벗어나다

[밍후이왕] (전편에 이어)

2. 근심과 고뇌를 끝내고 곤경에서 벗어나다

많은 사람은 수련 전에 질병이 온몸을 둘러싸 ‘약탕기’, ‘약 바구니’, ‘약골’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신체적 고통과 경제적 부담은 자신과 가족에게 큰 번거로움을 가져왔다. 그러나 수련한 후 신체는 모두 건강하고 무병하게 됐으며 온몸이 홀가분해졌다. 식사를 할 수 있고 잠을 잘 자며 혈색도 좋고 걸음이 가벼우며 신체도 건강하며 심신이 유쾌하다. 마치 다른 사람으로 된 것 같았다. 본인과 가정은 근심 걱정하던 날과 곤경에서 벗어나 행복의 피안으로 향했다. ‘근심과 고뇌를 끝내고 곤경에서 벗어나다’ 시리즈에서 언급한 내용은 모두 이러한 이야기다.

‘죽은 사람의 허울’이 다시 태어나다

바이러스성 심근염, 재생불량성 빈혈, 기관지 확장성 토혈, 비염……, 사람들은 그에게 ‘죽은 사람의 허울(死人幌子)’이라는 별명을 달아주었다. 길을 걸을 때 허리를 펴지 못하고 허리를 굽히고 걸었으며 간혹 식사할 때 혼미해져 밥을 먹지 못하고 밥공기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선천성 심장병을 앓기에 장기적으로 빈혈이 있었고 얼굴, 몸은 마치 백지처럼 혈색이 없었다. 한 번은 버스에서 내릴 때 앞에서 두 아이가 놀고 있었는데 아이들은 그녀를 보고 후다닥 달아나면서 “귀신이 왔다”고 소리를 질렀다.

장춘제(張春傑, 여)는 1957년에 태어나고 집은 자무쓰(佳木斯)시에 있다. 그녀는 원래 자무쓰 철도차량 노동복무회사에 출근했다. 집에는 언니, 남동생이 6명 있고 장춘제는 둘째다. 장춘제는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고 병이 많으며 소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학교에서 조직한 어떤 활동도 참가할 수 없었다. 학우들이 활동 중에 놀면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매우 낙심했고 언제까지 참고 견뎌야 할지 몰랐다.

1976년 장춘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마침 전국 지식청년이 강제로 산에 오르고 하향(下鄉)을 해야 될 때였다. 당시 장춘제는 도시에 남으려 생각했지만 그때는 설령 조건이 된다 해도 연줄이 없으면 남지 못했다. 부모에게 부담을 더 주지 않으려고 장춘제는 슬그머니 지원해 푸위안(撫遠)현 하이칭(海淸)공동체 량즈리(亮子裏)로 가게 됐다. 부모는 사실을 알고 절대 가지 못하게 했지만 그곳 월급이 24위안이기에 장춘제는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러나 장춘제의 몸은 제구실을 못해 다른 사람이 밭 두 이랑을 매면 한 이랑도 매지 못했다. 결국 다른 청년들이 그녀를 도와줘야 했다.

1979년 장춘제는 질병으로 일하지 못하게 되어 도시로 되돌아갔다. 그녀는 부친의 노동복무공사에 출근했다. 모두 기차 부품이기에 매일 철을 다뤄야 해서 매우 힘들었다. 늘 고기를 사흘 잡고 그물을 이틀 말리는 식으로 자주 출근하지 못했다. 장춘제는 매일 하늘땅을 원망했다. 하늘이 불공평하며 다른 사람은 병이 없는데 자신은 아프다고 원망했다. 장춘제는 바이러스성 심근염, 재생불량성 빈혈, 기관지 확장성 토혈, 비염 등을 앓고 있었으며 ‘죽은 사람의 허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좌골신경통으로 길을 걸을 때 늘 허리를 펴지 못해 허리를 굽히고 걷는 것이 자연스럽게 됐다.

장춘제는 선천성 심장병, 장기 빈혈로 얼굴, 몸이 백지장처럼 혈색이 없었다. 한 번은 버스에서 내릴 때 앞에 두 아이가 놀고 있었는데 아이들은 그녀를 보고 후다닥 달아나면서 “귀신이 왔다”고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은 장춘제를 귀신으로 생각했다. 그때는 정말 살 수 없고 죽을 수도 없어 늘 점을 보러 다녔고 자무쓰 4대 병원 명의를 찾아갔지만 장춘제의 병을 치료하지 못했다. 간혹 장춘제는 식사할 때 혼미해져 밥을 먹지 못하고 밥공기는 어디로 갔는지 몰랐다.

장춘제는 기공으로 병을 치료하겠다고 생각했다. 1997년 장춘제의 이모 집 언니 소개로 그녀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법공부를 통해 장춘제는 지금 처지는 모두 자신이 생생세세 빚은 업이며 빚을 진 것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았다. 장춘제는 세상에서 사람이 사는 진정한 목적을 알았다. 연공을 하면서 신체의 일체 질병은 치료를 하지 않고 나았다. 출근을 할 때 자전거를 타고 갔고 육교를 건너도 숨이 차지 않았으며 자전거를 탈 때 몸이 가벼웠다. 여러 해 동안 질병의 고통에 시달리던 장춘제는 마침내 무병하고 온몸이 가뿐해졌다!

지금 장춘제는 어떤 일도 다 할 수 있다. 46kg이었던 체중이 60kg이 됐고 살결이 곱게 변하고 얼굴은 뽀얗고 붉은 빛이 돌며 10살은 젊어 보인다. 파룬따파(法輪大法)에 대한 감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가족, 동료는 장춘제의 정신과 신체적 변화를 보고 모두 대법을 인정했다. 그들은 파룬따파가 신기하고 초범적인 기공임을 목격했다. 장춘제는 매일 강변 광장에 가 연공하고 저녁에는 법공부 팀에 가서 법공부를 한다. 그것은 장춘제의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반신불수인 아들이 걷게 돼 기뻐하다

반신불수로 침대에 누워있는 아들 샤오웨이(小偉) 몸에 기적이 발생했다. 수련함에 따라 아들은 차츰차츰 몸을 돌리고 몸도 아프지 않았다. 위축된 근육도 자라고 짚고 일어날 수 있었으며 부축하면 천천히 걸었고 결국 스스로 걸을 수 있었다……. 이것은 장위커(張玉科) 집에서 일어난 신기한 일이다.

장위커는 중국 수리수력발전 제1공정국(간단히 중수1국이라 칭함) 재무처 부처장이다. 장위커 일가 세 식구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전, 1995년 아들 샤오웨이는 대학을 갓 졸업했고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되는 환절기에 갑자기 척주염에 걸렸다. 당시 정형외과 전문의는 병세는 반신불수, 근육위축, 괴사로 발전하게 되며 생명을 보존하기 어렵다고 했다. 일가족이 비록 샤오웨이를 위해 다방면으로 의사를 찾아가 진찰하고 해보지 않는 일이 없었지만 병세는 끊임 없이 악화됐다. 반신불수로 침대에 누워있어 둔부가 극히 아팠고 하지근육에 위축이 나타났으며 양측 대퇴골이 괴사됐다. 1996년 여름, 병세는 갈수록 심각해졌다. 샤오웨이는 치료할 약이 없다는 것을 알고 약을 먹는 것을 거부했다.

반실불수로 침대에 누워있는 아들 때문에 온 집안이 절망에 빠졌다. 그의 아내 펑윈(鳳雲)도 본래 여러 가지 질병이 있었다. 그녀는 아들이 난치병에 결렸다는 소식을 듣고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아 매일 표정이 이상했다. 장위커는 방법이 없자 집에서 아내와 아들을 보살폈다. 당시 장위커도 여러 가지 질병에 걸렸다. 심각한 신경쇠약으로 늘 온밤 잠을 자지 못하고 기관지염, 등이 아프고 심지어 몸을 돌리는 것도 어려웠다. 또 치질약도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는데 출근해서는 치질 때문에 늘 의자에 반쯤 걸터앉아 사무를 보았다. 또 늘 위장병, 편두통, 관절염 등 각종 증상의 시달림을 받았다.

일가족이 절망 속에 있을 때 1996년 8월 장위커는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얻었다. 이때부터 일가족 세 식구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결국 온 가족은 기적적으로 구사일생했다.

연공을 한 지 며칠 후 아내의 정신은 정상으로 회복되고 기타 병도 사라졌다. 이어서 아들 샤오웨이 몸에도 기적이 발생했다. 수련에 따라 아들은 차츰차츰 몸을 돌릴 수 있었고 신체도 아프지 않았다. 위축된 근육도 자라나 짚고 일어설 수 있었고 붙잡고 천천히 걸었으며 결국 스스로 걸을 수 있었다. 장위커의 각종 증상도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신체도 건강해졌고 활력이 넘쳐 업무를 잘하게 됐다.

온 가족의 이런 변화는 꿈에도 감히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몸을 건강하게 하는 파룬따파(法輪大法)의 기적은 이 세 식구에게 진실하게 체현됐다. 이때부터 세 사람은 병마의 고해에서 벗어났다. 대법을 수련한 후 온 가족은 여러 해 동안 의료비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일가족은 정말 매우 기뻤다.

하루아침에 수련을 만나니 고질병이 완쾌

요통으로 의자에 앉을 수 없고 허리를 숙여 머리를 감을 수 없었다. 길을 걸으면 소변이 새고 두 손에는 고름이 흐르는 부스럼이 가득했다. 겨울만 되면 갈라진 두 손의 상처에는 피가 흘러 뼈가 드러나지 않는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출근하면 일을 할 수 없고 집에서는 가사 일도 할 수 없었으며 밥도 할 수 없었다…… 이것은 바로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 허추친(何秋勤)의 증세였다.

허추친(여)은 1948년에 태어났고 허베이성 바오딩시 만청현 우체국을 퇴직했다. 당시 진찰하고 약을 먹는 것은 모두 직장에서 실비를 제공했다. 이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그녀는 사방으로 다니며 의사를 찾아 약을 문의하고 약을 적지 않게 먹었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이후에 사회에 기공 붐이 나타났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허추친은 기공을 부지런히 연마했다. 만청현에 나타난 모든 기공을 거의 연공했지만 그녀의 신체는 여전히 호전되지 않았다.

1997년 11월, 마음씨 좋은 언니가 허추친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라고 알려주었다. 그녀는 더 묻지 않고 보물을 찾은 것처럼 그날 저녁에 언니를 따라 법공부 팀에 갔다. 그녀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다. 사부님의 말씀마다 이치가 있고 마치 이것이 바로 그녀가 여러 해 동안 찾던 생명을 구하는 보물 같았다. 그녀는 움직이지도 않고 들었고 들을수록 마음이 편안했다. 그녀는 파룬궁을 잘 수련하리라 결심했다. 그날 저녁 법을 다 듣고 또 다른 사람에게서 연공동작을 배웠다.

며칠 지난 후 어떤 사람이 “파룬궁 책이 왔어요”라고 알려주었다. 그녀는 단숨에 보도소에 가서 모든 대법 책을 달라고 했고 집으로 돌아온 후 목마른 사람처럼 삼가 읽었다. 이후 그녀는 매일 법공부, 연공을 견지하고 대법의 ‘진선인(眞善忍)’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했다. 한 달이 지난 후 그녀의 신체는 명확한 변화가 생겼다. 손의 농창은 좀 호전되고 요통이 자신도 모르게 좋아졌다. 길을 걷고 달음박질하면 소변이 새지 않고 집안의 어떤 일이나 다 할 수 있었다.

그녀는 기뻐서 사람만 만나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접촉하는 사람에게 “시간이 있으면 파룬궁을 수련하러 가세요! 너무 좋아요!”라고 말했다. 이듬해 봄날, 그녀는 무병하고 온몸이 가벼운 것을 느꼈다. 만청 현소재지에서 40여 리의 친정(팡순교)까지 자전거를 타지 않고 걸어가도 문제가 없었다.

이후에 그녀 손의 농창은 천천히 완쾌됐다. 무릇 직장에서 그녀를 아는 사람은 그녀 손의 농창을 다 안다. 파룬궁이 질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히 한다는 신기한 효과를 말하면 손이 어떻게 됐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그녀는 자랑스럽게 손을 동료에게 보여줬다. 동료들은 보고 모두 놀라 “여러 해 동안 치료 못하던 병이 지금 이렇게 완쾌됐으니 파룬궁은 정말 신기하다!”라고 말했다.

허추친은 자신이 파룬따파를 수련해 비할 바 없는 행운을 느꼈다. 1997년 말 법을 얻고 1999년 7월까지 그녀는 법공부, 연공에 매우 심혈을 기울였고 곳곳에서 대법의 요구로 자신을 대조하고 일마다 다른 사람을 많이 생각했다. 온몸의 병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정신도 승화됐다.

무병한 몸의 행복함과 오묘함

무병한 몸의 행복함과 오묘함, 왕리거(王麗閣)는 수련을 한 후 진정으로 이 점을 체험했다. 하룻밤이나 잠을 잘 자다니? 그는 그야말로 이것이 정말인지 믿기지 않았다. 관절염이 아주 빨리 사라지고 이미 변형된 오른다리가 천천히 회복됐다. 왼쪽다리는 길을 걸을수록 튼튼해지고 또 자전거를 탈 수도 있었다. 또 굽 높은 구두를 신고 길을 걸어도 몸이 곧았다. 심장병과 현기증도 완쾌됐다. 허리 디스크와 꼬리뼈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았고 오래 앉아 있어도 문제가 없었다. 차멀미도 뿌리가 뽑혔다. 연공한 후 얼굴 혈색이 좋아지고 피부가 섬세하고 윤기가 나며 더는 여드름이 나지 않았다. 자궁근종도 보이지 않았다.

1997년 5월, 이푸(逸夫) 중학교에서 학부모 회의를 했다. 한 학부모가 왕리거를 찾아가 신체 상태를 물었다. 왕리거는 그녀에게 갈수록 악화된다고 말했다. 그녀는 반복적으로 왕리거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라고 권했고 이 공법은 몸을 건강히 하는 신기한 효과가 있다고 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른 상황에서 왕리거는 해봐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6월 1일 저녁 6시, 이 학부모는 왕리거 집에 와서 연공동작을 가르쳤다. 동공을 1시간 가르치면서 동작요령을 가르쳤다. 한 시간 반 연공이 끝나자 왕리거는 이미 기진맥진했지만 억지로 버텼다. 그녀가 간 후 왕리거는 잠을 잤다. 그녀는 아주 빨리 잠들었다. 왕리거가 눈을 뜨자 날은 이미 밝았고 태양이 떠올랐다. 그녀가 놀라 시계를 보니 이미 6시 반이라 놀라서 급히 앉았다. 설마 낮에 잠을 잔 것은 아니겠지? 그녀는 이전에 깨어나면 늘 한밤중이었다. 관절염으로 아파서 잠을 깼다. 어떻게 되어 온밤 아프지 않았지? 어떻게 온밤 잠을 잘 잤지? 왕리거는 그야말로 이것이 정말인지 믿을 수 없었다. 아침을 먹은 후 그녀는 출근했다.

그때 왕리거의 사무실은 4층에 있었다. 이전에 그녀가 4층에 올라가려면 몇 번 휴식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날 그녀는 단번에 4층에 올라갔다. 숨이 차지 않고 심장이 뛰지 않았으며 아주 홀가분한 것을 느꼈다. 왕리거는 매우 놀라 ‘파룬궁은 너무 신기하구나. 이번에 나는 살 가능성이 있다’고 기뻐했다.

왕리거는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연공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신체는 신속히 건강을 회복하고 모든 질병이 완쾌됐다. 류머티즘의 고통은 아주 빨리 사라지고 이미 변형된 오른 다리는 천천히 회복됐다. 왼쪽 다리는 걸을수록 튼튼해졌다. 왕리거는 또 자전거를 탈 수 있고 굽 높은 구두를 신을 수 있었다. 길을 걸으면 몸도 곧아졌는데 동료들은 그녀의 키가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심장병과 현기증도 완쾌됐다. 허리 디스크와 꼬리뼈도 더 이상 아프지 않았고 오래 앉아 있어도 문제가 없었다. 왕리거가 어려서부터 하던 차멀미와 휘발유 냄새를 싫어하던 증세도 연공한 후 자기도 모르게 사라졌고 더 이상 차멀미를 하지 않았다. 이전에 그녀는 얼굴이 초췌하고 늘 여드름이 났지만 연공한 후 혈색이 좋아지고 피부가 섬세하고 윤기가 나며 더는 여드름이 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7년이 넘었다. 왕리거는 신체가 건강하고 약 한 알도 먹지 않고 주사 한 대도 맞지 않았다. 더욱이 병원에 가지도 않아 의료비를 거의 10만 위안이나 절약했다. 여름에는 창문을 열고 잘 수 있었고 겨울에는 찬물로 빨래를 할 수 있게 됐다. 왕리거를 본 사람은 그녀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이후에 그녀는 2중학교로 전근했다. 2000년 2중 교사와 직원이 신체검사를 할 때 그녀는 교사 쑹쩌쥐(宋則菊)와 함께 검사실에 들어갔다. 초음파 진단기로 진단하니 왕리거의 자궁근종이 보이지 않았다. 수련을 한 후 왕리거는 무병하고 온몸이 가벼운 행복감을 진정으로 체험했다.

쓰디쓴 인생에 다행히 대법을 만나다

사람들은 황련(黃連: 한약재)이 쓰다고 늘 말한다. 그러나 그녀의 운명은 황련보다 더 썼다. 10년 동안 두 아들이 불행히 요절하고 자신은 중병으로 고생했다. 남편의 버림을 받아 늙은 아버지는 견디지 못해 자살하고 생활의 핍박으로 막다른 골목에 몰려 온종일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 그녀는 늘 자살하려고 했다. 이렇게 한 불행한 여자가 다행히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얻었고 불법(佛法)은 그녀 마음의 짙은 안개를 걷어내고 불광(佛光)은 그녀 마음속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전신의 질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정쭌슈(鄭尊秀)는 후베이성 마청(麻城)시 사람이며 채소농사를 짓는다. 집은 마청시 룽츠차오(龍池橋) 사무소 룽츠차오촌 구이화수(桂花樹) 16호에 있다. 사람들은 늘 황련이 쓰다고 말하지만 이전에 정쭌슈의 운명은 황련보다 세 배나 더 쓰다고 할 수 있었다. 1987년 정쭌슈의 큰아들은 불행히 물에 빠져 사망했다. 1988년 정쭌슈는 남편과 이혼했다. 연속 다가온 충격으로 그녀는 온몸에 병을 얻었고 가까스로 괴롭고 힘든 일을 견디며 5살 된 작은 아들을 키웠다. 1998년 의지하고 살던 작은 아들이 또 불행히 물에 빠져 사망했다. 정쭌슈는 인생의 길이 이미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해 출가하거나 죽으려 했다. 그녀의 부친은 감당하지 못해 먼저 자살했다. 부친의 후사를 다 처리하고 그녀는 온종일 눈물로 얼굴을 적셨고 더욱더 살고 싶지 않았다. 자살하려는 염두가 늘 그녀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쭌슈가 죽음의 문어귀에서 맴돌던 1998년 10월, 한 마음씨 좋은 대법제자가 그녀에게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진정한 해탈을 찾으라고 권했다.

정쭌슈는 법공부 팀에서 매번 ‘전법륜(轉法輪)’ 제6강의 한 단락을 읽을 때 그녀가 어느 위치에 앉아서 읽던, 어느 수련생이 먼저 읽든지 막론하고 매번 정쭌슈가 늘 이 단락을 읽게 됐다. 그녀는 눈물이 나 읽지 못했다. 이렇게 연속 6번 계속됐다. 7번째 또 그녀 차례가 되어 이 단락을 읽을 때 한 수련생은 그녀에게 상심을 피하기 위해 이 단락을 읽지 말고 다른 사람이 읽게 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정쭌슈는 확고하게 “오늘 나는 반드시 이 단락을 다 읽겠어요”라고 말했다. 이번에 그녀는 확고히 이 단락을 읽었다. 다 읽은 후 정쭌슈는 마치 하나의 큰 구덩이를 지나간 것 같았다. 이때부터 더는 이전처럼 늘 자살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파룬불법(法輪佛法)은 그녀의 심중의 매듭을 풀어주었고 불광은 그녀의 산산조각 난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이때부터 정쭌슈는 환골탈태한 것처럼 온몸의 질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사람도 낙관적이고 활발해졌다. 새롭게 태어난 정쭌슈는 대법의 아름다움을 말로 형용할 수 없었고 어떠한 방식으로도 사존께 감사를 드릴 방법이 없었다.

13년 완고한 질병이 4일 만에 완쾌

13년 먹은 약을 과장하지 않고 말해도 차로 끌만 하고 삼주구복액(三株口服液)과 육주구복액(六株口服液: 약이름)은 한 상자씩 날라도 될 정도였다. 바오딩(保定)시 리(蠡)현 시청퍼(西城坡) 초등학교 교사 자오옌메이(趙彥梅)는 오직 내 병을 치료할 수만 있다면 오줌을 먹으라고 해도 먹겠다고 말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고생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정말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했다. 이전에 여러 해 동안 그녀가 늘 하는 말이 있었다. “내가 이렇게 많은 고생을 겪고 이렇게 많은 약을 썼는데 하루라도 몸이 좋아지면 나는 만족하겠습니다.” 지금 그녀를 고통스럽게 한 궤양성 결장염이 뜻밖으로 신기하게 좋아졌다. 무슨 원인인가?

자오옌메이는 1957년 출생했으며 어려서부터 병이 많았다. 혈관증, 위궤양, 심장병, 폐결핵, 부인과병, 저혈압, 경추병, 뇌혈액 부족 등등이다. 1984년 또 궤양성결장염에 걸렸다. 이 고질병은 그녀를 13년간 괴롭혔다. 장기적인 고통으로 그녀는 삶의 용기를 잃고 일찍 죽으려 했다.

자오옌메이는 궤양성 결장염에 걸린 후 매일 농혈변을 10여 차례나 보았다. 신체는 아주 빨리 무너졌고 하루하루 못해만 갔다. 그녀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남편은 그녀를 데리고 차례로 10여 개 병원에 입원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13년 동안 먹은 약만 해도 과장하지 않아도 차에 실어도 되며 삼주구복액과 육주구복액은 한 상자씩 날라도 될 정도다. 이외 각종 민간 처방도 써보았지만 어떠한 작용도 일으키지 못했다.

성(省) 병원에서 처음에는 약을 먹고 링거를 맞았으며 이후 관장을 하고 그 후에는 또 주사를 맞았다. 의사는 그녀에게 한약재 중에 가장 먹기 어려운 약 하나를 첨가했다고 말했다. 자오옌메이는 “내 병만 치료할 수 있다면 오줌을 먹으라고 해도 먹겠어요”라고 말했다. 과연 이 약을 먹으니 구역질이 났다. 두 달이 더 지났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의사는 또 토방(土方)을 쓰자고 했다. 소위 ‘토방’이란 바로 매일 항문에 직장경을 삽입해 장내에 약을 바르는 것이었다. 직장경은 스테인리스 철관으로 된 것이다. 직장은 이미 전부 궤양이 있었다. 직장경을 궤양이 생긴 곳에 삽입하면 그녀는 아파서 땀과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그녀는 침대 위에 꿇어앉아 두 손으로 침대를 단단히 잡고 이를 악물고 버텼다. 마치 고문을 당하는 것 같았다. 다 한 후 한 병실 환자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아이고, 정말 고생하네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각종 방법을 다해 3개월을 치료했다. 비록 대변을 보는 횟수는 적어졌지만 여전히 농혈변을 보았다. 그녀는 또 실망하고 돌아왔다.

1996년 겨울, 자오옌메이의 신체는 갈수록 허약해져 길을 걸어도 휘청거리고 문밖으로도 나가지 못했다. 남편은 그녀에게 “병원에 입원합시다. 치료하지 못하면 집에 돌아오지 말죠”라고 했다. 그녀는 또 베이징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서 검사하니 궤양성 결장염에 암세포가 증식했다. 베이징 둥즈먼(東直門) 병원의 한 교수는 유명한 장과 위 전문가다. 교수는 현재 해외에도 이 병에 대해 좋은 치료법이 없다고 했다. 이렇게 2만 위안의 병원비를 결산하고 그녀는 절망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베이징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자오옌메이는 더는 치료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며칠 살면 며칠 살았다 치자.’ 그녀는 온 종일 침대에 누워 몰래 눈물을 흘렸다. 어느 날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가족들에게 빨리 장례 옷을 준비하라고 하고 다른 사람을 이제 상관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녀는 “이 13년 동안 나는 인간세상의 고생을 진저리나게 겪었어요”라고 말했다.

1997년 9월 어느 날, 그녀가 절망에 빠져있을 때 어느 우연한 기회에 한 파룬궁수련생을 만났다. 그는 자오옌메이에게 파룬궁을 추천하고 그녀에게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주었다. 자오옌메이가 책을 펼쳐 보니 배가 꾸륵꾸륵하고 소리가 났다. 뿐만 아니라 여러 해 동안 얼음을 넣은 것 같던 아랫배가 갑자기 따뜻한 것을 느꼈다. 이것은 그녀가 병에 걸린 후 한 번도 없었던 느낌이었다. 책을 더 보니 페이지마다 붉은빛이 물결쳤다. 그녀는 이 대법은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보고 보다가 갑자기 정신이 들고 힘이 나는 것을 느꼈다. 이날부터 다시 삶의 희망이 그녀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 후 그녀는 연공장을 찾았다. 수련생들은 열정적으로 그녀를 접대했다. 그녀에게 연공을 가르쳐주고 그녀를 도와 사부님 설법 녹음테이프, 비디오테이프를 찾아주었다. 수련생들의 열정적인 도움은 그녀를 크게 격려해주었다. 그녀는 연공장을 찾은 그날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 나타났다. 연공장에 온 나흘 만에 기적이 나타났다. 그녀를 13년간 괴롭히던 결장염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대변도 정상이 되고 농혈도 없어졌다. 전신은 말할 수 없이 홀가분하고 유쾌했다. 이전에 여러 해 동안 그녀는 늘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이렇게 많은 고생을 겪고 이렇게 많은 약을 썼는데 하루라도 몸이 좋아지면 나는 만족하겠습니다.” 지금 그녀를 13년 동안 괴롭히던 궤양성 결장염이 뜻밖에 신기하게 나았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자오옌메이는 격동해 보서 ‘전법륜’을 꺼내 사부님의 법상을 펼쳤다. 그녀는 공손하게 침대 맡에 놓고 즉시 사부님께 세 번 절을 올렸다. 눈물을 마구 흘리면서 그녀는 “사부님, 제자는 너무 감격했습니다. 저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셨습니다. 저는 반드시 사부님을 따라 끝까지 수련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자오옌메이의 병이 좋아졌다는 소식이 날개 돋친 듯 전해졌다. 신속히 친척 친구 및 각 이웃에게 전해졌다. 그들은 잇달아 찾아오거나 전화로 문의했고 듣고 모두 놀랐다. 그녀 가족은 더욱 흥분해마지 않았다. 딸은 슬그머니 아버지에게 “어머니 병이 정말 좋아졌나요?”라고 물었다. 그녀 남편은 좋아졌다고 말했다. 양가 부모님도 모두 그녀 남편에게 정말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모두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특히 그녀 남편은 13년 동안 남자노릇도 하고 여자노릇도 하면서 아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늘 밖에서 바쁘게 뛰어다녀 식사도 잘하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다. 억울하게 많은 돈을 쓰고도 아내의 병도 치료하지 못했고 한 번 또 한 번 희망이 실망으로 변하고 마지막에 절망으로 변했다. 그러나 지금 자오옌메이는 파룬궁을 수련한 지 4일 만에 약 한 알도 먹지 않고 돈 한 푼 쓰지 않고 좋아졌다. 정말 복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그가 어찌 대법과 사부님께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때문에 그는 아내가 연공하는 것을 매우 지지한다. 오직 연공하는 일이면 그는 모두 허락한다.

근심과 고뇌를 끝내고 곤경에서 벗어나다

혈액 질환과 중증 근육무력증에 쌍둥이를 낳은 후 신체는 더욱 붕괴되고 정신은 늘 희미했다. 정신이 얼떨떨해 높은 건물에서 떨어져 반신불수가 되어 ‘2급 장애인’이 됐다. 이러한 사람이 근심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큰 아이는 외상성 뇌성마비에 걸려 지능이 낮고 밥을 10살까지 먹여야 했다. 또 바이러스성 심근염에 걸렸다. 둘째는 요붕증에 걸려 늘 코피가 나고 밤낮 울고불고 한다. 정말 설상가상이다. 노모친은 천연 가스가 폭발해 화상을 입어 근육이 마비됐다. 아마 독자 여러분은 이것은 살아도 살지 못하고 죽으려 해도 죽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할 것이다. 자신도 그녀 때문에 걱정스럽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독자 여러분은 잊지 말라. 본 문장의 제목은 ‘근심과 고뇌를 끝내다’이다. 어떻게 끝냈을까?

그녀는 일찍이 불치병에 걸리고 아들은 뇌성마비, 모친은 반신불수였다…… 이런 고난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했기에 해결됐고 그녀는 다시 새 삶을 얻었다. 그녀는 머우융샤(牟永霞)라고 부르며 2014년에 66세로 다칭시의 한 중학교 교사다. 머우융샤를 익숙히 아는 사람은 그녀의 인생이 정말 불우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머우융샤는 젊었을 적에 불치병에 걸렸다. 혈액 질환과 중증 근육무력증에 1년 넘게 길을 걷지 못하고 의사에게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 후 또 신장염, 심장병, 위궤양, 극도의 신경쇠약에 걸렸다. 머우융샤는 36세에 가정을 이루었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쌍둥이를 낳은 후 그녀의 신체는 전체적으로 붕괴되어 늘 혼미했다. 다칭유전(大慶油田) 총병원에서 수혈하고 수액을 맞고 산소를 주입해 56일 동안 응급조치를 했다. 마지막에 병원은 치료할 방법이 없자 들것에 그녀를 실어 집으로 데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정신이 흐리멍덩해 높은 건물에서 떨어져 반신불수가 됐다. 그녀는 ‘2급 장애인’이 됐다.

머우융샤의 두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병이 많았다. 큰 아이는 외상성 뇌성마비로 오른쪽 신체가 기능이 실조되어 걸을 때 절뚝거리고 지능이 낮고 밥을 10살까지 먹였다. 또 바이러스성 심근염에 걸렸다. 둘째는 요붕증에 걸려 늘 코피가 나고 끊임 없이 물을 먹겠다고 했으며 늘 소변을 보며 밤낮 울고불고 했다.

두 아이는 머우융샤의 70여세 노 모친이 돌본다. 하지만 노 모친도 불행히 아이를 돌보다가 천연가스 폭발로 화상을 입어 근육이 위축되고 반신불수가 됐다. 오랜 시간 치료해도 낫지 않아 고향으로 모시고 갔다.

머우융샤의 남편은 몇몇 환자로 늘 초조하고 불안해 항상 화를 내고 물건을 부수고 아이를 때렸다. 한 번은 둘째 아들을 때려 아이가 경기를 일으키고 고열이 나고 눈 아래에서 피가 나더니 사시가 됐다. 이 가정은 더 이상 정상을 유지할 방법이 없었다.

남편이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머우융샤는 남편과 협의 이혼했다. 부양비를 요구하지 않아 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했다. 그녀는 그에게 건강한 여자를 다시 찾아 건강한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생활하라고 권했다. 남편은 떠났다. 그때 머우융샤의 두 아이는 겨우 5살이었다. 질병으로 인한 고통, 고생, 이런 설상가상의 나날에 다행히 마음씨 좋은 이웃, 동료, 학생, 친구들이 도움을 주었다. 두 아이와 노 모친을 위해 그녀는 발버둥질치며 하루하루 고생을 겪으며 살아갔다.

1998년 10월 7일, 한 사람이 머우융샤에게 ‘전법륜’을 한 권 가져다주며 그녀에게 반복적으로 이 책을 보고 연공하면 가족이 이익을 보며 고난을 벗어난다고 알려주었다. 머우융샤는 한 번 시험해 보자는 생각으로 ‘전법륜’을 읽었다. 1달 후 그녀는 뜻밖에 정말 스스로 생활할 수 있었고 심태가 온화해졌다. 이어서 온 몸의 난치병이 전부 사라졌다. 그녀는 기뻐하며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이웃도 “당신은 정말 좋아하네요”라고 말했다.

두 아이도 어머니를 따라 법공부를 했다. 그 결과 건강이 모두 좋아졌고 아이들도 좋아서 기뻐서 뛰었다.

아이들의 변화를 보고 머우융샤는 즉시 88세 반신불수 모친을 모시러 집에 갔다. 당시 모친은 감기에 걸려 고열이 났다. 자매들은 그녀가 모친을 모셔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머우융샤는 파룬따파(法輪大法)의 비할 바 없는 위력에 확신이 생겨 슬그머니 택시로 모친을 집으로 모시고 왔다. 노 모친은 그녀와 함께 법공부하고 연공했으며 아주 빨리 병상에서 벗어났다. 40일 후 자매들은 소식이 없자 노인이 이미 돌아가신 줄 알고 모두 따지러 왔다. 문을 열어보고 그녀들은 입구에 멍하니 멈춰 섰다. 창문 앞에 서 있는 한 노부인이 구면인 것 같았는데 큰 키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언니는 의혹에 차 “저 할머니는……”라고 말했다. 머우융샤는 “어서 들어오세요!”라고 말했다. 여동생은 “들어보니 이 목소리는 언니 목소리인데…”라고 말했다. 머우융샤 모녀의 거대한 변화에 친자매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자매들은 노 모친을 이리보고 저리 보더니 “어찌된 일이에요?”라고 물었다. 머우융샤는 “좋아졌지요”라고 말했다. 자매들은 즉시 노 모친을 에워싸고 파룬따파 사부님의 설법 동영상을 보았다.

머우융샤의 근심과 고뇌가 가득 찬 이전의 집은 처음으로 생기와 즐거움이 넘쳤다. 그녀 집은 그때부터 환자가 없었다. 그녀의 기적에 친구, 이웃, 동료들이 놀라고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고 이 소식은 널리 전해졌다. 사람들은 “이 파룬궁은 정말 좋다. 이 일가족을 구했어”라고 말한다. 친구, 이웃들은 모두 그녀를 찾아와 파룬궁을 배웠다.

머우융샤의 외상성 뇌성마비를 앓던 큰 아이는 이후에 사먼(廈門) 대학에 합격했고 졸업 후 괜찮은 일자리를 찾았다.

찬란한 햇빛이 그의 마음을 밝게 비추다

중의사, 양의사, 명의, 군의관, 떠돌이의사, 기공사, 무당, 무녀, 라마, 승려와 도사 등에게 온갖 방법을 다 받아보았지만 목숨이 위태로웠다. 양쉐구이(楊學貴)는 가족이 연루되는 것이 싫고 일찍이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슬그머니 수면제를 먹고 자살하려 했다. 행복하고 화목한 한 작은 가정이 흉악한 병마의 유린 하에 곧 산산조각이 나려 했다.

양쉐구이는 2006년에 41세였고 란저우(蘭州)시 제2병원의 총무과 간부였다. 1982년 양쉐구이는 현지에서 입대했다. 85년 노산(老山)전선에서 양쉐구이는 포병부대의 한 통신병이었다. 마오얼(貓兒) 동굴은 마치 시루처럼 옷을 입지 않아도 등에 땀이 뱄다. 집으로 돌아올 때 그의 목에는 건선이 가득 생겨 아주 가려웠다. 신체는 여위고 정신상태가 좋지 않았다. 가장 골치 아팠던 것은 갖은 방법으로 치료했지만 건선이 낫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1987년 양쉐구이는 제대한 후 란저우시 제2병원 총무과에 배치되어 출근했다. 1994년 겨우 29살이었던 양쉐구이는 심각한 간질환을 얻어 사지가 무력하고 숨이 찼다. 또 병원에서 진단을 내릴 수 없는 병에 매일 피곤하고 무력해 길을 걸을 힘이 없었고 추운 것을 두려워하고 한여름에 솜옷을 입고도 추워서 야단이었다. 많은 사람은 전쟁 후유증이라고 의심했다. 다행히 그는 병원 직원이었고 평소 업무를 잘했기에 시 제2병원은 전력을 다해 도와주었다. 가장 좋은 의사, 약품과 설비를 동원해 여러 달 애쓰고 1만여 위안을 썼지만 약간의 효험도 보지 못했다.

자녀를 걱정하는 세상 부모들의 마음은 똑같다. 그의 부모가 보니 치료가 안 될 것 같고 아들의 치료를 지연시킬까 봐 재빨리 병원에서 그를 데리고 나와 사방으로 의사를 찾아 치료했다. 중의사, 양의사, 명의, 군의관, 떠돌이의사, 기공사, 무당, 무녀, 라마, 승려와 도사 등 온갖 사람을 다 찾아갔지만 양쉐구이의 병은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욱 심해져 목숨이 위태로웠다. 이때 집은 이미 빚이 산더미 같았고 밥을 먹는 것도 문제가 됐다. 늙은 부모와 며느리는 온종일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 양쉐구이는 가족이 연루되는 것이 싫고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슬그머니 수면제를 먹고 자살하려 계획했다. 행복하고 화목한 한 작은 가정이 흉악한 병마의 유린 하에 곧 산산조각이 나려 했다.

아무런 방법도 없고 이미 절망에 빠진 1995년 10월, 한 친척이 파룬궁을 소개하고 보서 ‘전법륜(轉法輪)’을 주었다. 마치 한 줄기 금빛 찬란한 햇빛이 짙은 먹구름을 흩어지게 하는 것처럼 양쉐구이의 먼지투성이 마음을 단번에 밝게 비추었다. 그는 목마른 사람처럼 보고 배우고 연공했으며 완전히 자신의 병을 잊어버렸으며 문밖에서 배회하는 사신(死神)을 잊어버렸다. 겨우 2주 만에 그의 신체의 고통이 사라지고 먹을 수 있고 잘 수 있었으며 달릴 수 있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얼굴은 혈색이 돌고 원기왕성하게 병원에 출근했다. 그는 “과거의 양쉐구이는 이미 죽었고 지금은 다시 태어난 양쉐구이입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 저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저는 대법을 끝까지 확고히 수련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대법 법리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고 업무에 더욱 적극적이고 부지런했으며 진지하고 세심히 하고 노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병원 총무과는 이익이 생기는 곳이지만 양쉐구이는 대법 수련자의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자그마한 이득도 챙기지 않았다. 양쉐구이의 심신에 발생한 거대한 변화는 그의 주위 사람들을 놀라고 감탄하게 했다. 많은 친척, 친구, 동창, 동료는 잇달아 파룬궁을 배웠다. 병원의 상사, 전문가, 교수들도 스스로 찾아왔다.

10년간 더는 약 한 알도 먹지 않았다

이팅쉬(伊廷緒)의 딸이 주로 많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 장면은 탁자의 크고 작은 약병과 약단지였다. 또 한약을 달인 주전자를 들고 약 찌꺼기를 버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오래된 환자가 진심으로 파룬궁을 수련한 후 신체가 건강하고 무병하며 온몸이 홀가분하게 됐다.

이팅쉰, 세순팡(謝順芳) 부부는 2007년도에 60세 정도였다. 그들은 전통적인 중국 농민이며 소박하고 선량했다. 그들을 말하기만 하면 고향사람들은 더더욱 칭찬하며 그들의 건강한 신체를 더욱 부러워했다.

사실 이전에 그들의 건강은 이렇지 않았다. 두 노인의 회상에 따르면 세순팡은 심각한 피부병에 걸려 양의사, 중의사에게 치료를 받았고 찾을 수 있는 민간요법을 썼지만 피부는 여전히 가려웠고 장기간 명치통에 시달렸다. 큰 병원들을 찾아다녔지만 질병의 원인을 찾지 못했다. 갑상선이 붓고 가장 심할 때는 혀가 굳어져 말이 똑똑치 않았다. 의사도 머리를 흔들며 탄식했다. 산후조리를 잘하지 못해 한쪽 다리는 시리고 아프며 길을 걷는 것도 곤란하고 두 손이 마비되어 물건을 쥐지 못했다. 그릇을 얼마나 깼는지, 또 그릇을 몇 번이나 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팅쉰은 큰 고질병이 3개 있었다. 하나는 장기적으로 노동을 하고 업무환경이 습기가 많아 왼쪽 팔에 병이 생겼다. 나이가 들면서 고통이 밤낮 갈수록 심해졌다. 또 급성장염이 일단 발작하기만 하면 아파서 땅에서 뒹굴었으며 머리에 온통 땀범벅이 됐고 약이 장기간 몸에서 떠나지 못했다. 또 겨울만 되면 기관지염이 정확히 찾아온다. 약을 먹고 링거를 맞으며 보름동안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한다.

때문에 그들의 딸이 주로 많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 장면은 탁자의 크고 작은 약병과 약단지였다. 또 한약을 달인 주전자를 들고 약 찌꺼기를 버리는 것이었다.

당신은 아마 이런 사람이 어찌 건강하고 병이 없는 사람으로 변했는지 물을 것이다. 그들이 파룬궁을 수련했기 때문이다. 파룬궁을 몇 달 배우고 수련한 후 여러 해 동안 그들은 괴롭힌 고질병은 점차 소실되고 완쾌됐다. 파룬궁의 질병을 제거한 신기한 효과는 그들이 파룬궁을 수련하는 확신을 더욱 확고하게 했다. 파룬궁을 수련한 지 지금까지 10년 동안 그들은 약 한 알도 먹지 않았다.

(계속)

문장발표: 2015년 2월 1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신수련생마당>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한 이야기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2/17/30464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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