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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인의 병업 마난을 가볍게 논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의 어머니 역시 대법제자다. 어머니의 병업상태가 장기적으로 제거되지 않아 내 심정 역시 평온하지 않았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걱정하고 우려했다. 나의 이런 표현은 혈육의 정에 대한 집착이다. 또 병업 상태와 병원치료에 대해 부정확한 인식이 있어 나는 한차례 의혹도 생겼다. ‘만약 수련인이 관을 넘는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단지 체면 때문에 병원에 가지 않으면 병업 상태가 더욱 위급해진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이 때 병원에 가서 표면 증상이 잘 치료되면 어쩌지?’ 등등이다.

그 후 나는 사존의 병업 방면에 관한 설법을 보고 수련생과 이 방면의 교류를 해본 후 사실 내 이전의 생각이 속인 각도에서 생각한 것이라는 것을 방금 깨달았다. 정말 부끄러웠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에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 수련해서 고층차에 이르는 것은, 당신 자신이 발한 소원과 실제로 얼마나 높이 수련할 수 있는가에 근거하여 사부가 비로소 당신에게 배치하는 것인데, 모두 매우 과학적이다. 당신은 본래 한 덩이 강철(鋼)인데 당신을 철(鐵)로 배치한다면 그건 안 된다. 당신이 보살과위로 수련할 수 있는데 당신을 나한과위에 배치한다면 이 역시 안 된다. 매우 정확하게 보는 것으로 그곳에서는 조금도 잘못 보지 않는다.”[1]

나는 깨달았다. 사실 우리가 진정으로 수련한 그날부터 우리의 일체는 모두 사존의 장악과 배치 중에 있다. 그 중에 우리의 매 일보, 매 하나의 관, 잘 넘고 잘 넘지 못하고, 넘을 수 있고 넘을 수 없고, 심지어 수련의 최후 일보, 다시 말하면 어디까지 수련하고 얼마나 높이 수련하는 등, 사실 이 수련의 길은 이미 일찍부터 그곳에 놓여있다. 우리는 단지 사존의 말씀만 듣고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하면 된다. 모든 내려놓지 못하는 집착심, 모든 한 동안 잘 넘지 못하는 모든 관은 정진만 하면 넘을 수 있다. 우리가 수련의 이 길을 걸어가려면 마땅히 마음에 잡념이 없고 안심하고 대담하게 사존을 따라 가야 한다. 일체를 사존께 맡기고 일체는 사존께서 배치를 하신다. 살아도 죽어도 우리 모두 대법제자다. 무엇이 두렵겠는가? 무엇 때문에 걱정하고 무엇 때문에 마음을 졸이겠는가? 다시 나의 그 속인의 생각을 되돌아보니 정말 아주 가소로웠다.

이외에 나는 우리 수련인이 병업상태에서 정념이 강하지 못한 것은 또 하나의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지금 서방 실증과학과 의학 관념의 영향이다. 지금 서방 실증과학이 연구하는 것은 사물, 인체, 물질표면이며 인류에게 물질을 첫 번째로 삼게 하고 정신을 두 번째로 삼는 변이된 과학으로 유도하고, 정신을 물질의 부속품이라고 말해 인류를 신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했다. 사람을 기계처럼 수리하는데 현대의학은 너무 표면적이다. 과거의 중의학은 현대의학보다 많이 심오하고 다른 길을 걸었지만 여전히 속인 층차 중의 것이다.

많은 세월, 우리가 속인 중에서 양성된 실증과학을 믿고 서양의학을 미신한 껍질은 이미 단단하기가 비할 바 없다.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정념으로 현대과학과 의학을 미신하는 껍질을 타파하고 속인 시절의 습관적 사유를 타파해야 하며 더욱 실질적으로 수련의 각도에서 문제를 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다시 자신을 말해보자. 속인일 때 나는 생명을 매우 아끼는 사람이며 신체가 조금만 불편하면 아무 생각이나 다 하며 어떤 병에 걸렸는지 걱정했다. 19년 동안 수련하면서 이 속인일 때의 결점을 줄곧 버리지 못했다. 최근 1년 역시 늘 복부에 딱딱한 물건이 있는 것을 느끼고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 상태가 이미 틀렸다는 것을 깊이 알았지만 오히려 그 중에 깊이 빠지고 오랫동안 스스로를 억제하지 못했다.

최근 병업관에 새로운 체득과 깨달음이 있으면서 비로소 점차적으로 정념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사존께서는 “당신이 수련인이 됐기 때문에 당신이 비로소 만나는 것이고, 당신이 수련인이 됐기 때문에 이러한 일은 무릇 정면적인 반응이든 부면적인 반응이든 모두 좋은 일이다. (열렬한 박수)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이 수련하고 있는 이 길에서, 당신의 제고를 위해 준비한 것이기 때문이다.”[2]라고 말씀하셨다.

구세력은 우리 자신의 일부 누락을 이용해 우리를 박해하려 한다. 우리는 정념으로 부정하고 그것을 수련중 제고하는 한 차례 기회로 간주하고 누락을 수련해 제고해야 한다.

정법시기의 한 대법제자로서 설사 신체가 병업 상태에 처해도 뭐가 두렵겠는가? 옛사람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可死).”[3]란 기백이 있는데 하물며 우리는 우주 진상을 명백히 알고 대법에 동화된 대법제자다. 우리의 매 개체는 모두 작은 강철가루다. 대법의 용광로에 용해되면 우리들의 일체는 모두 바로 잡히는 중에 있다.

우리는 운이 좋게 대법제자가 됐다. 정념으로 정확히 병업상태를 직면하면 어떤 문제도 우리 수련의 길을 가로 막을 수 없다.

층차의 한계로 약간의 얕은 견해를 수련생과 교류하니 자비롭게 시정해 주시기를 바란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창춘(長春) 法輪大法(파룬따파) 보도원을 위한 설법[2]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4년 샌프란시스코법회설법’[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법 중에 용해되자(溶於法中)

문장발표: 2015년 3월 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3/4/30584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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