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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즈메이를 회상하다

글/ 전 칭화대 파룬궁수련생

[밍후이왕] 최근 밍후이왕은 류즈메이(柳志梅)가 처참하게 죽은 소식을 전했고 마음은 아주 괴로웠다. 전에 칭화대학 학생 연공장에서 함께 수련했던 일원으로서 나는 함께 걸어온 역사를 정말 써내고 싶고 청순하고 선량한 이 후배 학생 수련생을 기념하고 싶다.

나는 1996년에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고 칭화대학 학생 연공장에서 연공했다. 그때 학생 연공장은 식당 서쪽 작은 숲에 있었다. 이미 몇십 명 학생이 수련했고 인원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류즈메이는 아마 1998년부터 연공장에 나왔을 것이다. 그 당시 화공계에서 두 여학생이 왔는데 그중 한 명이 류즈메이인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그녀는 보기에 청순하고 어수룩한 여자애였고 매일 그녀가 연공장에서 가부좌하고 연공하는 모습을 보았고 단체법공부 교류에서도 늘 그녀를 보았다.

박해가 시작된 후 몇 차례 단체교류 집회가 신고 당했기에 많은 수련생이 학교 관할 파출소에 감금됐다. 1999년 10월 칭화대학 측은 강제로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때 나는 이미 학교 강사가 됐고 나도 강제 휴직을 당해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2000년 1월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고 당시 일부 수련생들도 속속 학교로 돌아왔다. 류즈메이가 돌아올 때 나는 학교 정원에서 그녀를 만났는데 가정환경이 안 좋고 부모 형제가 핍박해 혼자서 집을 떠났다고 들었다. 당시 학교 측은 그녀에게 수업받지 못하게 했다. 간단한 대화 중에서 나는 그녀가 여전히 낙관적임을 느꼈다.

그 후 한동안 박해는 점점 심해졌다. 칭화대학 수련생들도 어떻게 하면 진상을 알릴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고 류즈메이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우리와 협력해 진상을 알리는 일에 동참했다. 내 기억 속에 한번 그녀와 합작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2000년 9월이었다. 밍후이왕은 ‘장쩌민의 회피할 수 없는 역사적 책임’이란 문장을 발표했다. 칭화대 교수진과 학생들에게 박해 진상을 알리기 위해 수련생들은 교내에 이 문장을 붙였고 나와 류즈메이가 파트너가 되어 이 일을 했다. 그날 우리는 풀 한 병과 솔, A4용지에 인쇄한 이 자료들을 대량으로 준비했다. 저녁에 나와 그녀는 함께 나갔다. 나는 자전거를 끌고 자전거 손잡이에 풀 병을 걸고 그녀는 가방 안에 많은 자료를 넣었다. 우리는 가는 길에 전봇대나 적당한 벽이 있으면 나는 멈춰서 풀을 바르고 그녀는 문장을 붙이고 손으로 꼼꼼하게 눌러 떨어지지 않도록 했다. 이 일을 할 때 몇 번 우리는 앞에 사람이 걸어오면 멈춰 서서 어둠과 몸으로 문장들을 보호했다. 이 일을 하면서 나는 두려움과 긴장감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태연해 보였고 심지어 약간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 대법을 위해 앞장설 수 있다는 것을 보았다. 다른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은 그녀에게 아주 행복한 일이었다.

그 후 나는 학교를 옮겼다. 다시 류즈메이를 보았을 때는 한 수련생 집에서였다. 칭화대 수련생들은 자주 갔다. 그때 베이징 공상대학 자오신(趙昕) 교수님이 구치소 경찰에게 맞아 사지 윗부분이 마비된 참혹한 사건이 발생했다. 자오신 교수님은 병원에 입원해 고통을 겪고 있었고 칭화대 수련생들은 번갈아 가며 교수님을 돌보고 있었다. 류즈메이는 바로 간호에 참가한 주요 수련생 중 한 명이었다. 비록 6개월 후 자오신 교수님은 돌아가셨지만 류즈메이의 수고는 자오신 교수님이 고난 중 지지와 안위를 느끼게 했다. 류즈메이는 이렇게 선량하고 강인한 여자아이다. 대법이 그녀를 사심 없고 용감하게 만들었다.

2000년 말에 나는 붙잡혔다. 먼저 하이뎬(海淀) 구치소에 감금됐고 이후 치추(七處)에 옮겨졌다. 치추에 있던 어느 날 내가 경찰의 심문을 받고 돌아오니 같은 방 수감자가 나에게 칭화대 여대생 류즈메이도 이 구치소에 갇혀 있다고 TV에서 보았다고 알려주었다. 그때서야 나는 류즈메이도 치추 구치소에 감금된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녀가 언제 붙잡혔고 어떤 시달림과 박해를 받았는지는 몰랐다. 그때까지 칭화대 여대생 왕란란(王蘭蘭)이 붙잡힌 것도 몰랐다. 내 마음은 더없이 비통하고 분했다. 나는 장즈신(張志新)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어 사당의 박해가 특별히 사악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선량하고 청순한 여자아이들이 현재 이런 흉악무도한 사람들 앞에 있고, 선량한 사람이 되게 해주는 파룬따파는 사교로 모욕당하고 있었다. 이것이 무슨 세상인가? 내 마음은 칼로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았다. 대법과 수련생들을 위해 언젠가 정의를 되찾는 날이 오기를 빌었다.

그 후 8~9년 세월을 나는 감옥에서 보냈다. 내가 감옥에서 나와 밍후이왕 보도를 보고 그녀가 고통에 시달리다 정신이 나갔다는 소식을 들을 때까지 류즈메이의 소식을 거의 듣지 못했다. 나는 그녀가 정신에 문제가 생긴 후의 사진을 보았고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렇게 청순하고 아름답던 여자아이가 고통에 시달려 그렇게 변했다. 그러나 그녀가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일말의 희망마저 현지 ‘610’에 의해 산산이 조각났다. 그녀를 도와주던 수련생들마저 박해당해 노동교양소로 갔는데 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 농가에서 칭화대학으로 날아온 금색 봉황, 대법 중에서 승화한 수련생 류즈메이는 원래 아름다운 삶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악한 박해는 그녀의 칭화대의 꿈을 산산 조각냈고 그녀가 존재하는 일체 기반을 전면적으로 파멸시켰으며 사람의 기본적인 존엄성마저 모조리 빼앗아 살해했다.

류즈메이는 갔다. 양심 있는 사람마다 그녀를 위해 분해하고 애석해한다. 머지않아 사당의 죄악이 철저히 청산될 것이고 역사적 심판은 이번 사악한 박해에서 흉악한 짓을 한 사람들을 놔주지 않을 것이다.

문장발표: 2015년 2월 2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기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2/28/30567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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