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神功)의 특효로 구사일생
[밍후이왕] (전편에 이어)
1. 신공(神功)의 특효로 구사일생
‘구사일생’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사람 혹은 사물의 발전이 절망적인 상태에서 사망 혹은 실패에 직면해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전환으로 생존의 기회를 얻은 것을 가리킨다. 파룬궁을 수련하는 수련생 중에 아주 많이는 수련 전에 ‘불치병’에 걸려 병원에서 위독 통지를 받았거나 집에 돌아가서 죽음을 기다리거나 혹은 ‘후사’를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그들은 운 좋게 파룬따파를 만나서 기사회생(起死回生)했다. ‘신공(神功)의 특효로 구사일생’ 시리즈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노인의 ‘혈관 파열’ 불치병
혼자서 앉아 있지도 못하고 기껏해야 10여 일 밖에 살 수 없기에 집에 돌아가 후사를 준비하는 심정은 과연 어떨까? 하지만 하늘만큼 큰 운이 내려와 지병이 전부 제거되어 무병 상태에 도달했다. 이러면 또 어떤 심정일까?
광둥성 마오밍(茂名)시 마오강(茂港)구 파룬궁수련생 리허잉(李合英, 여)은 2004년에 78세가 됐다. 1996년 전에 혈액 질환을 앓아 피를 토하고 혈변을 누어 광둥성 중산병원으로 치료하러 갔다. 의사는 ‘혈관 파열’로서 이미 치료할 수 없으며 기껏해야 10여 일 밖에 살 수 없으니 집에 돌아가라고 했다.
리허잉은 절망적인 심정으로 옷가지와 생필품들을 모두 한 병실에 있는 환우들에게 나누어 주고 슬픔에 잠겨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은 그냥 포기할 수 없어서 그녀를 다시 마오밍시 노동자 병원으로 데려갔지만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자 집으로 돌아와서 후사를 준비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 그녀의 딸(파룬궁수련생)은 오직 대법만이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차로 리허잉을 자신의 집으로 모셔왔다. 당시 리허잉은 앉지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딸은 파룬따파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틀어 그녀에게 보여주고 설법 녹음을 틀어 들려주었다. 기적이 나타났다. 리허잉은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들으면서 신체에 변화가 발생했다. 마음이 아주 편안한 느낌이 들었고 피를 토하고 혈변을 보는 횟수가 적어졌으며 차츰 일어나 앉을 수 있더니 서서히 일어설 수도 있었다. 딸은 그녀에게 5장 연공동작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양쪽에서 그녀의 허리를 받치고 부축했으며 딸은 그녀의 손을 잡고 동작을 가르쳤다. 차츰 그녀도 5장 연공동작을 할 줄 알게 됐고 게다가 스스로 바닥에 내려와 연공할 수 있게 됐다. 나중에 그녀는 혼자서 연공장에 걸어가서 수련생들과 함께 연공할 수 있게 됐다. 신체 증상이 모두 소실됐고 몸이 아주 좋아졌다.
대법이 그녀의 생명을 구해 주었고 그녀에게 건강한 신체를 주었다.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던 위독한 환자가 지병이 전부 사라지고 무병 상태에 도달했다면, 이런 행복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와 가족들은 모두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감사를 표현할 수 없자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표준에 따라,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자신을 엄격히 요구해 사회에서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암이 배출되다
지린성 융지(永吉)현 완창진(萬昌鎭) 구자(孤家)촌 2사 훠옌화(霍豔華, 여)는 2004년에 40여 세가 됐다. 예전에 불치병에 걸려서 하마터면 황천객이 될 뻔했으나 운 좋게 파룬궁을 수련한 덕분에 새 생명을 얻었다.
2000년 7월 중순에 훠옌화는 극심한 복통으로 지린성 부속 병원에 갔더니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시 의사가 복강을 열어 보니 종양이 가득했다. 이미 말기여서 어쩔 수 없었다. 수술은 이미 그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에 의사는 배를 다시 봉합하고 가족들에게 후사를 준비하라고 했다. 훠옌화는 정신이 붕괴될 지경이었다. 집에 돌아온 후 매일 대량의 항암약을 먹었지만 소용없었고 여전히 복통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생명이 곧 끝날 것임을 알았다.
절망하던 훠옌화는 1998년에 자신이 파룬궁을 수련했던 생각이 났다. 이후에 중국공산당이 광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바람에 무서워서 연마하지 않았다. ‘지금 내가 죽어가고 있는데 무엇이 더 두려우랴? 이렇게 좋은 공법을 안 배우면 너무 애석하지, 며칠 살지도 못하는데 얼마 배울 수 있으면그만큼 배우자.’ 이리하여 훠옌화는 다시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기적이 나타났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는 땅에 내려올 수 있었고 걸을 수 있었다. 두 달도 되지 않아 종양은 대변과 함께 배출됐고 20여 일 후 그녀는 깔끔히 나았으며 무슨 일이나 다 할 수 있게 됐다.
의사도 이것이 사실이라고 믿을 수 없었지만 기적은 훠옌화 몸에서 발생했다. 실제적이고 생생하게 발생했다.
임종 때 발생한 기적
장궈보(姜國波)는 의학계에서 ‘제2의 암’이라고 불리는 간신증후군에 걸려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없었다. 당시 갓 30세 좌우이지만 생명이 다한 것을 느꼈다. 절망적이고 무기력한 고통은 줄곧 그를 갉아 먹고 있었다. 장궈보의 아버지도 이미 폐암 말기여서 임종이 다가왔다. 밥은 거의 못 먹고 수의도 다 준비해 놓았다. 절망의 고통 속에서 생명이 다 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요통으로 세숫대야도 들지 못한다. 하지만 이 일체는 장궈보가 운 좋게 파룬궁 비디오테이프를 몇 번 보고나서 개변됐다.
장궈보는 1963년 3월 출생했으며 산둥성 웨이하이(威海) 사람으로 대학을 졸업했으며 전 웨이팡(濰坊)시 정치법률위원회 부현장급 간부다. 1994년 초, 장궈보는 현기증으로 머리가 띵하고 피로하고 무기력하며 전신에 부종이 왔다. 병원에 가서 검사하니 의학계에서 ‘제2의 암’이라 불리는 간신증후군에 걸려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없다고 했다. 슬픔 속에서 가족들은 한의, 양의 및 민간 처방을 수소문해 장궈보를 치료했다. 돈은 적지 않게 썼지만 병은 치료할수록 더욱 심해졌다. 아내와 여러 친척은 절망에 빠져 장궈보 몰래 많이 울었다. 가족들은 장궈보에게 요양하라고 여러 번 권했지만 장궈보는 고만한 명예와 금전을이렇게 포기할 수 없어 억지로 버티면서 출근했다. 다만 퇴근해 집에 돌아와 소파에 누우면 더는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장궈보는 당시 갓 30세 좌우지만 생명이 다한 것을 느꼈다. 절망적이고 무기력한 고통은 줄곧 그를 갉아 먹고 있었다.
장궈보의 모든 기대가 물거품처럼 모두 사라지려 할 때, 1995년 6월 초, 장궈보는 운 좋게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이 지난(濟南)에서 강의한 9일강의 설법 비디오를 보게 됐다. 그 당시 온 몸은 이전에 없었던 편안함을 느꼈다. 법을 배우고 연공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장궈보는 병이 없고 온 몸이 가벼운 행복감을 맛볼 수 있었다. 이전에 납덩이처럼 무겁던 두 다리는 매우 가뿐해 어떤 때는 길을 걷다가 껑충 뛰어 오르고 싶기도 했다. 1997년 어느 우연한 한 차례 혈액 검사에서 간과 신장의 병리변화를 나타내는 플러스(+) 기호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장궈보는 흥분과 행복감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1995년 하반기, 부모도 장궈보의 소개로 파룬궁을 배우고 연마했다. 생각지 못하게 파룬궁 연마는 기적을 ‘연마’해 냈다. 장궈보의 아버지는 1995년 7월부터 연공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이미 폐암 말기여서 임종에 처해 밥도 거의 먹지 못하고 다만 절망의 고통 속에서 생명이 다 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비통하고도 어찌할 방법이 없는 가족들은 아버지의 수의까지 준비해 놓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파룬궁을 연마한 후 뜻밖에도 기사회생했다는 것이다. 같은 해 10월, 장궈보는 고향에 갔다가 놀랍고도 기쁘게 아버지가 추수를 하고 계신 모습을 발견했다. 8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비록 이 억지스러운 박해 때문에, 특히 온 가족이 장궈보에게 연루되어 각종 박해를 받아 아버지는 정신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워 하셨지만 그의 신체는 그래도 건강했다. 장궈보의 70여 세 된 늙으신 어머니는 연공한지 얼마 안 되어 30년간 누워있던 병석과 작별했다. 원래 허리가 아파서 세숫대야도 들지 못하던 어머니는 연공한 후 젊은 사람들처럼 농사일을 할 수 있었다. 한 번은 어머니가 물통으로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채소밭에 물을 주었는데 오전 동안 두 개의 우물물을 몽땅 퍼냈지만 힘든 줄 몰랐다. 당시 이 일은 정말 마을의 ‘신화’가 됐다. 더욱이 사람들에게 혀를 내두르게 한 것은 학교를 하루도 안 다녀 본인의 이름도 잘 모르는 어머니가 파룬궁을 배운지 1년여 만에 16만 자나 넘는 ‘전법륜’을 익숙하게 통독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장궈보와 그의 부모의 몸에 발생한 기적은 현대 과학 각도에서 확실히 해석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생생한 사실이며 어떠한 사람도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이다! 이는 파룬따파가 초범적인 과학이라는 것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지 않은가?
그는 무엇 때문에 파룬궁 사부님께 한없이 감사하는가
그의 부모는 매우 고통스러웠다. 눈물을 머금고 아들을 위해 관을 사고 수의를 맞췄다. 백발의 노인이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기 일보 직전이었다.
류정양(柳正陽)은 후베이성 셴닝(鹹甯)시 충양(崇陽)현 샤오링향 산쟈오촌 사람으로 금년에 47세다. 류정양은 어려서부터 병약해 각종 질병을 앓고 있었다. 예를 들면 기관지염, 천식, 폐기종, 폐심증, 요로결석, 심부전 등이었고 게다가 천식은 네 살 때부터 시작했다. 그의 만성 질환이 급성 발작할 때면 종종 얼굴이 땀투성이가 되고 호흡이 곤란하며 반듯이 눕지 못한다. 며칠 밤낮을 침대에 기대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며 걷지도 못해 수액으로 생명을 유지할 뿐이었다. 그는 종종 부모에게 업혀 병원에 가서 주사와 수액을 맞았는데 여러 차례 입원하고 수술도 한 번 했었다. 일상에서 자신을 돌볼 수 없어 부모에게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으며 오랫동안 고통 속에서 발버둥 쳤다.
자신이 오랜 세월 질병과 약물로 끊임없이 부모에게 누를 끼치자 그는 죽기만 못하다고 생각했고 매우 절망했다. 여러 차례 자살 생각도 했다. 1997년 하반기, 그의질환이 다시 급성 발작해 호흡 순환계통에 심각한 쇠약 증세가 나타나 병원에서는 ‘위독통지서’를 내렸다. 그리고 그의 부모에게 후사를 준비하라고 했다.부모는 매우 고통스러웠다. 눈물을 머금고 아들을 위해 관을 구매하고 수의를 맞췄다. 백발의 노인이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 관건적인 시각에 현지 파룬궁수련생이 그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려주고 파룬궁을 배우라고 소개해 주었다. 법을 듣고 책을 보면서 그는 자신이 병을 얻은 근본 원인을 알게 됐다. 원래 병의 근원은 자신이 생생세세 나쁜 일을 해서 조성한 것이었다. 그는 지난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철저히 고쳐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 더욱 좋은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각종 곤란을 극복하고 매일 법공부하고 연공을 견지했다. 그의 신체는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길을 걸어도 많이 가벼워졌다. 그는 파룬궁이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됐다.
파룬궁 사부님께서 그의 목숨을 구해 주시고 그에게 두 번째 생명을 하사하셨다. 그는 매일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하면서 속으로 파룬궁 사부님께 무한히 감격했다. 아들이 구사일생한 것을 보고 그의 부모는 파룬궁을 배우는 것을 매우 지지했다. 그가 파룬궁을 배워 기사회생하고 구사일생한 사실은 현지에서 미담으로 널리 전해졌다.
말기 암 환자의 기사회생
이 이야기는 ‘구사일생’이란 단어에 대한 가장 좋은 사례다.
허베이 리현(蠡縣) 지방 우수교사 야오위푸(姚玉璞), 여, 1945년 출생. 1994년 말기암에 걸려 네 차례 수술했다. 본 현, 바오딩(保定)시 병원, 베이징 301, 307병원에 모두 그녀의 병력과 수술기록이 있다. 야오위푸는 파룬궁을 수련한 후 건강을 회복했고 일가족은 예전의 기쁨을 되찾았다.
야오위푸는 리현 교육계에서 유능한 여성으로 유명하다. 예전에 아주 좋은 교육적 성과를 내서 지방 우수 교사로 지명됐다. 그녀의 아들과 딸은 총명하고 영리하며 남편은 농민이지만 근면하고 유능했다. 일가족은 화기애애하고 행복했다.
그녀가 한창 사업에서 성공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동경할 때 갑자기 병원에서 말기암 진단을 받았다. 이 불행한 소식은 마치 무거운 폭탄처럼 그녀 직장과이웃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놀람과 두려움, 비통, 절망은 먹구름처럼 그녀의 가정을 뒤덮었다. 그녀는 사신(死神)이 자신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301병원에 입원해 수술, 화학요법, 방사선 치료에 시달려 거의 죽다 살아났다. 사지는 무기력하고 구토가 멎지 않았으며 병마는 일분일초도 그녀를 가만히 두려 하지 않았고 그녀에게 고통을 실컷 받게 했다. 인생을 돌이켜 보니 삶의 따뜻함도 있었지만 자신의 행운이 오래가지 않음을 원망했다. 그녀는 정말 하늘을 향해 통곡하고 싶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어린 두 아이와 80여 세 늙으신 아버지 때문에 그녀는 울 용기도 없었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 다만 묵묵히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엄마 없는 두 아이는 장래에 어떻게 살아가고 80여 세 늙으신 아버지는 누가 부양할까, 정말로 백발노인이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야 한단 말인가?’
화학요법 때문에 그녀의 뼈는 모두 약해지고 머리카락도 전부 빠졌다. 방사선 치료로 가슴과 등이 모두 탔다. 마지막에 전문의가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의 온 몸은 모두 암세포입니다. 집에 돌아가서 요양하십시오.” 그녀는 절망에 빠져 떠난 지 오랜 집으로 돌아왔다.
퇴원한 지 두 달도 안 되어 그녀는 마비되어 자신을 돌볼 수 없게 됐다. 온 몸의 뼈가 아팠다. 그녀는 생각했다. ‘생명이 마지막까지 왔구나, 하늘이 나에게 준 시간이 많지 않구나!’ 그녀는 일초일초 죽음이 임박해 오는 것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1997년 봄, 사신이 그녀에게 손짓을 할 때 마음씨 고운 사촌 언니가 그녀에게 소중한 책 ‘전법륜’을 보내왔지만 그때는 연공할 수 없었다. 사촌 언니는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네가 법을 배우고 마음을 닦고 책속에 쓰인 대로 하기만 하면 건강하게 될 수 있고 사부님께서는 너의 신체를 정화해 주실 거야.”
사촌언니가 간 후 그녀는 시험 삼아 해보자는 생각으로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듯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적이 나타났다. 그녀는 일어섰다. 서서 연공할 수 있게 됐고 걸을 수도 있었다. 그녀는 너무도 격동해 삽시간에 눈물범벅이 됐다. 그녀는 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마음에서 우러나와 말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 사부님은 저의 밥 한 그릇 안 드시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으시고, 돈 한 푼 안 받으시고 저의 병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사부님께서 저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셨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병원에서 치료 거부를 당한 사람에게서 기적이 발생하다
10여 가지 심각한 질환을 앓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직립 보행할 수 없으며 2급 장애인 증서 소지), 큰 소리로 말하거나 혹은 조금 큰 소리가 나도 즉시 기절해 어느 병원에서도 감히 치료하지 못했다. 이 사람은 법을 얻은 지 한 달 만에 아파트에서 내려와 한 시간을 걸어 연공장에 갈 수 있었다. 연공 사흘 만에 먼 길을 떠날 수 있게 됐다. 두 달 후 가벼운 체력 노동을 하더니 석 달 후 삼륜차를 몰고 짐을 실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지징창(戢景昌)은 1950년 생으로 창춘시 난관(南關)구에 살고 있다. 지징창은 법을 얻기 전에 10여 가지 심각한 질환을 앓고 있었으며 여러 차례 생명이 위험했었다. 어떤 때는 알레르기 테스트 주사 한 대에 쇼크하고, 어떤 때 토혈할 때는 두 사람도 미처 받아내지 못했다. 누가 큰 소리로 말하거나 혹은 조금 큰 소리가 나도 즉시 기절한다. 이후에 어느 병원도 감히 그를 치료할 수 없었다. 집안에 모든 저축은치료에 다 쓰고 빚도 많이 졌다. 지징창은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은 다시 좋은 사람 만나요. 내가 수속을 해 줄게요.” 큰 형도 지징창의 아내에게 말했다. “그에게 희망을 그리 걸지 말아요. 그는 이제 한 10여 일 밖에 살지 못해요.”
지징창 일가족이 절망에 빠졌을 때인 1998년 3월, 지징창은 기쁘게 대법을 얻었다. 짧디 짧은 두 달만에 기사회생해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었다.
지징창 본인은 2001년 8월 2일 밍후이왕에 투고해 이 한 단락 생사 과정을 자세히 서술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저는 생명이 곧 끝날 무렵에 법을 얻었습니다. 법을 얻기 전에 심장 변형, 좌심실 변형, 위암, 뇌혈전, 약물 내성 결핵, 90% 혈관 기형, 건망증, 뇌혈류 공급부족, 하지정맥류, 길을 걷지 못하는 등 각종 합병증(2급 장애인 증서 소지)을 앓고 있어 병원에서 사형 판결을 내린 사람입니다. 1998년 3월에 법을 얻어서 ‘전법륜’을 본지 한 달 만에 아파트에서 내려와 한 시간을 걸어 연공장에 갔고, 연공한 지 사흘 만에 장모님을 지린시에 모셔다 드릴 수 있었습니다. 5월 달에 가벼운 체력 노동을 할 수 있었고 6월 달에 삼륜차로 짐을 실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건강을 회복한 지징창은 연공인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고 더욱 좋은 사람으로 됐다. 난관구 민정국에서 매달 나오는 빈곤 가족 보조금 305위안도 그는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위기를 모면한 후 끝없는 감사
밥보다 약을 더 많이 먹고 수혈하지 않으면 수시로 생명이 위험하며 십 몇 만 위안을 쓰고도 병이 낫지 않았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가정이 파멸되고 산더미 같은 빚은 부모에게 부담이 됐다. 그야말로 죽기만 못했고 절망이 극에 달했다. 만약 이런 때에 돈 한 푼 안 쓰고 생명을 보장하게 됐다면 어떤 심정일까?
랴오닝성 차오양(朝陽)시 룽청(龍城)구 치다오촨쯔(七道泉子) 우자와(吳家窪) 북촌에 사는 무리화(牟麗華, 여)는 예전에 백혈병 환자였다. 삶에 절망했던 그녀는 대법을 수련해 새 생명을 얻었다.
무리화는 금년에 49세다. 그녀는 26세에 백혈병에 걸렸다. 혈소판 감소증으로 자주 재발성 출혈이 있었다. 그리하여 지혈 주사로 몸을 유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심각할 때는 안색이 창백하고 누워서 일어나지 못했으며 수혈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해야 했다. 매일 그녀와 함께 하는 것은 한약, 양약, 한의 양의가 함께 만들어낸 쓴 약들이었다. 밥보다 약을 더 많이 먹고 일년에 가장 오래 입원하면 8개월을 병원에 있어야 했다. 해마다 수혈 비용만 1만 위안이 넘고 수혈하지 않으면 수시로 생명이 위험했다. 십 몇 만 위안을 썼지만 그녀의 병을 고치지 못했다. 오랜 질병 때문에 남편도 고달팠고 아이는 6살 밖에 되지 않았다. 결국 가정이 파멸됐고 중병에 걸린 무리화는 친정에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사람들에게 가져다 준 것은 즐거움이 아니라 부담이었다. 부모는 딸이 병마에 시달리는 것이 가슴 아파 병을 고쳐보려고 친척 친구들에게 돈을 많이 빌렸다. 마지막에 또 이웃에게 돈을 꾸었다. 딸의 병 때문에 부모는 거리에서 구걸할 지경이었다.
병마에 시달려 무리화는 죽기만 못했다. 이때, 2003년 봄에 운 좋게 귀중한 책 ‘전법륜’을 얻었다. 책속에는 진선인에 따라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치를 설명했다. 오직 좋은 사람이 되어 마음을 닦고 선(善)을 향해야만 진정으로 병을 제거할 수 있으며 일에 부딪치면 먼저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누구든지 선하게 대해야 하며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 가장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이미 7년이 됐다. 최초에 수혈을 한 번 하고 그 후부터 주사 맞고 약 먹는데 돈 한 푼 쓰지 않고 무리화의 신체는 건강을 회복했다. 빨래하고 밥 짓고 가사를 하고 부모를 도와 힘든 농사일도 할 수 있게 됐다.
가족과 친척들은 그녀의 몸에서 대법의 신기함을 보았고 파룬따파와 사부님께서 그녀의 목숨을 구해 주신 것을 보았다. 대법에 대해 모두 감격해마지 않았다. 부모도 그녀가 대법을 배우는 것을 매우 지지한다. 여러 해 동안 병마의 시달림 속에서 부모는 오직 파룬따파만이 딸이 생존해 나갈 수 있는 보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계속)
문장발표: 2015년 2월 1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신수련생마당>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한 이야기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2/16/30464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