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또 언제까지 기다릴 셈인가?

글 / 오스트레일리아 정위안

[밍후이왕] ‘2014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을 배울 때 “나는 일찍이 말한 적이 있는데, 당신들은 또 언제까지 기다릴 셈인가? 당신들은 또 언제까지 기다릴 셈인가?! 시간이 없다.”라고 하신 사부님의 말씀을 읽을 때마다 나는 눈물범벅이 됐다. 그렇다. 내가 또 언제까지 기다릴 셈인가? 내가 또 언제까지 기다릴 셈인가? 내가 뭘 기다리고 있는가? 왜 다그쳐 중생 구도를 하지 않는가?!

나는 호주에 온 지 3년이 된다. 진작부터 중국 백성들에게 전화하여 진상을 말하고 싶었지만, 줄곧 지체했다. 이런 일이 있지 않으면 그런 구실이 있었고 이런 구실도 있었다. “내가 법공부를 잘해 정념이 강해지면 전화해야겠다.” “자신이 법공부를 잘한 다음에”라는 이 말을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자신의 사심이 드러난 것이 아닌가? 생각한 것은 자신이었다. 이 구실은 아주 은폐되었고 아주 깊은 곳에 숨어 있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기만 하고 쓰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이 주동적으로 수련하는지, 당신이 수동적으로 이끌려서 걸어가는지, 표현해낸 것은 여전히 당신이 수련하는지 수련하지 않는지의 문제이다.”[1]를 생각하니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배치하신 길은 바로 중생구도의 과정에서 자신의 집착을 닦는 과정임을 알았다. 교란을 배제하고 전화해 사람을 구하는 것이 바로 정념이다. “내가 법공부를 잘해 정념이 강해지면 전화하겠다.”라고 하면 나는 영원히 법을 잘 배울 수 없으며 정념도 영원히 강해질 수 없다. 자신의 나를 위하는 그 사람 마음이 나의 제고의 길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도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2]를 수련해 낼 수 없다. 3가지 일은 상보상성하는 것으로 하나라도 부족해서는 안 된다. 법을 잘 배우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더욱이 중생 구도를 잘하기 위한 것이다. 아울러 전화하여 중생을 구하는 과정도 자신의 집착심을 폭로하고 자신을 단련하는 과정이다.

전화를 건 첫날 나는 원고대로 읽었는데 좀 두려웠으며 한 사람도 탈퇴시키지 못했지만 상심하지 않았다. 이튿날 계속 걸었다. 두 시간이 지나자 수확이 있었다. 당원 한 사람을 탈퇴시켜 마음으로 정말 기뻤다. 이 사람을 위해 기쁜 것만이 아니라, 내가 한 사람을 탈퇴시켰다는 것은 나도 전화하여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사흘째 되는 날 네 사람을 탈퇴시켰고 나흘째 되는 날엔 다섯 명을 탈퇴시켰다.

탈퇴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자신의 집착도 많아졌다. 속으로 이 전화 거는 것도 어려운 것이 아니구나! 이전에 국내에서 여러 차례 박해 받아 감히 말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시름 놓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사람 마음인 것이다! 당신이 전화를 걸 때 마음을 자신한테 둔 것인지 아니면 마음을 전화 그쪽에 준 것인지? 이것이 바로 ‘위아(爲我)’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인가 하는 구별이다.

어느 날 내가 6팩의 전화를 걸었지만 한 사람도 탈퇴시키지 못해 아주 낙담했다. 수련생들과 교류했더니 수련생은 나에게 떡 10개를 나눈 이야기로 나를 고무했다. 나도 안으로 찾아 무시하는 마음, 하소연하는 마음, 3퇴 인원수에 집착하는 마음을 닦아버렸다. 나의 이 말은 가볍게 묘사한 한 마디 말이지만 이 과정을 당신이 실제로 체험하지 않으면 그 사람 마음 집착을 알기 어려울 것이다.

한 번은 내가 소선대를 탈퇴시킨 사람에게 진상을 분명하게 알리고 삼퇴의 중요성을 알려주었더니 그 사람이 한마디 했는데, 내게 아주 인상 깊었다. “우리 아이도 소선대에 가입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나는 “아이는 어른을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도 탈퇴시켜 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아주 유쾌하게 받아들여 나는 가명을 지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아이가 얼마나 큰지 옆에 있는지를 물어보고 아이가 동의해야 된다는 것을 똑똑하게 물어보아야 했었다. 이는 나의 이해다.

또 한 번은 ‘깡패 무리’ 사람을 만났었다. 처음에 나는 그가 나를 속이는 줄 알았는데 후에 그가 온통 이 지반, 저 거리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속으로 정말 ‘깡패’라고 생각했다. 그는 일이 있다면서 나에게 잠시 후에 전화하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나는 이 ‘깡패’에게 어떻게 말할 것인가? 생각했다. 많이 생각하지 않고 계속 다음 전화를 걸었다. 거의 10시가 됐을 때 나는 이 사람이 생각나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그에게 수호전의 영웅호걸이 하늘을 대신해 도를 행한 이야기를 했더니, 그의 구미에 딱 맞아 유쾌하게 탈당하고 그의 지반에 있는 중국대륙 수련생을 돌볼 것이라고 대답했다.

사실 전화를 걸면 일대일 진상을 알리는 효과를 제고할 수 있는데, 주말에 차이나타운에 가면 수확도 적지 않다. 이야기도 아주 많지만, 여기에서 수련생들의 시간을 지체하지 않겠다. 나는 다그쳐 전화로 사람을 빼앗고 구해야겠다는 마음만 가지겠다! 왜냐하면, 새로운 우주의 ‘남을 위하는(爲他)’ 기점은, 오직 중생을 구도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단련시켜야 비로소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2014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 ‘불성무루(佛性無漏)’

문장발표: 2015년 1월 30일

문장분류: 명혜주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30/303793.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