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6년 막 대법 수련을 시작했을 때 수련생이 내게 ‘대기원 정중 성명’ 하나를 줬는데, 나는 본 후 이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하고 필을 들어 종이에 베껴 썼다. 대문 앞(큰길을 향하는 길가)의 벽에 금고 하나가 있는데 주변 여러 주택단지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다녔기 때문에 붙일 장소로 정했다.
밤 12시 후 나는 풀을 들고 베껴 쓴 ‘대기원 정중 성명’을 그 금고에 붙여놓았다. 풀을 붙이는 과정 중 이따금 차가 지나가 마음이 좀 두근거리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 앉았는데도 마음이 좀 두근거렸다. 이튿날 대문 앞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내가 붙여놓은 진상자료를 보는 것을 보자 마음속으로 몹시 기뻤다. 이후로 나는 진상자료를 붙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이웃이 내게 “아침 단련할 때 매 현관 방범용 철문에 누가 쓰고 붙인 것이 있는데 우리는 다 봤다.”라고 했다. 나는 더욱 흥분했고 사부님의 격려임을 알았다. 2009년 장쩌민을 재판하는 국제체포영장 스티커가 나온 후 나는 즉시 자료점의 수련생에게 “좀 많이 찍어줘요. 온 시 곳곳에 붙이게.”라고 했다.
그때 마침 추운 겨울이었다. 나는 국제체포영장 스티커를 가지고 시내 주요 간선도로를 따라 주택단지든 거리든 다 붙였다. 장갑을 끼면 불편해 아예 장갑을 끼지 않고 붙였다. 잠깐이면 손이 얼어 뻘게졌다. 그러면 복도에서 두 손으로 호-하고 녹였고 오리털 잠바에 점점이 묻은 풀이 얼어서 하예지면, 침을 묻혀 손으로 닦아버렸고 이런 것들을 상관하지 않고 계속 붙였다.
매일 서너 시간 걸어 다녔다. 어떤 때 붙이고 있는데 사람들이 와서 보면 나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즉시 보는 사람들에게 삼퇴를 권했다. 그 자리에서 삼퇴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더욱 큰 격려를 받아 계속 붙였고 붙이면서 진상을 알렸다. 한 기업의 가족 주택단지에서 지역사회와 기업 사람들이 복도에서 나를 가로막고 내 가방을 뒤지려고 했다. 나는 이것은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당시 사부님의 보호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말하면서 계단으로 내려가자 그들은 길을 비켜줬고 나는 이렇게 갔다. 정말로 신기했다!
대략 2007년 수련생이 내게 컬러판 ‘파룬따파하오(法轮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표어 두 장을 줬는데 아래에 색칠한 큰 연꽃이 있었다. 정말 보기 좋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표어는 응당 큰길 입구에 붙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두 장소를 찾아새벽 5시 날이 아직 어두운데 빗자루를 들고 표어가 긁힐까 봐 그 빗자루 끝을 수건으로 감싸고 한 시장의 입구에 와서 풀을 붙이고 마침 붙이려고 하는데, 맞은편에서 갑자기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당시 나는 표어만 잘 붙이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많이 생각하지 않고 빗자루를 들고 계속 붙였다. 다 붙이자 그 사람도 가까이 왔다. 내가 몸을 돌려 떠나자 그는 바싹 뒤쫓아 왔다. 내가 골목으로 들어가서 골목을 나왔는데 마침 그 사람과 마주쳤다. 거의 얼굴을 맞댔는데 그 사람은 “아이, 어디 갔느냐? 어디 갔느냐?”라고 했다. 그가 나를 보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나를 숨겨주셨다. 나는 즉시 떠나서 또 다른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 성공적으로 다른 표어를 붙였다.
2009년, 대면해서 션윈 CD를 배포했는데 집을 나설 때마다 인연 있는 사람이 제때에 션윈 CD를 가지게 하려고 CD를 좀 들고 나갔다. 어느 날 저녁에 딸(당시 8살쯤)을 데리고 거리에서 남자애(약 2살)를 데리고 있는 한 젊은이에게 배포했는데, 젊은이는 그가 경찰이라며 내 가방을 빼앗았다. 나는 경찰은 악인을 제거하고 양민을 평안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자 그는 멍했다. 그러나 여전히 핸드폰을 꺼내 전화하려고 했다. 딸은 달려들어 작은 손으로 그의 핸드폰을 빼앗으면서 “안돼요, 안돼요……”라고 했다. 경찰은 딸이 그와 다투는 것을 보고 손을 놓고, 딸을 잘 교육하라고 했다. 나는 “아이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더욱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고 있어요.”라고 했다. 경찰은 또 한 번 멍하더니 “빨리 가요, 안 가면 정말 전화해요.”라고 했다. 나는 딸을 데리고 열 발자국 걷고 뒤돌아서서 “젊은이, 평안하길 바라요.”라고 했다. 젊은이는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어느 해 시내 한 고급 주택단지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이 주택단지에 때때로 경비원이 순찰하고 있었고 CCTV가 상당히 많았고 현관마다 모두 CCTV가 있었다. 5동 현관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 경비실의 CCTV가 고장 난 것을 봤다. 빨간색, 파란색 전선을 뜯어내고 경비원들이 바삐 수리하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은 “아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아이!”라고 했다. 대문에 서 있는 경비원은 줄곧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머리를 들고 성큼성큼 대문으로 걸어나갔다. 나중에 수련생이 그러는데 이 주택단지는 금방 지었는데 가장 비싸고 CCTV가 엄밀하다고 했다. 인간의 모든 것은 대법을 위해 개척한 것이고 사부님의 보호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은 대법제자가 대법을 실증하는데 길을 비켜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금방 법을 얻은2007년 정월 8일 나는 구치소 부근에 가서 발정념했다(그전에 며칠 지나 발정념하러 왔고 나무에 진상표어를 붙이고 삼림 감시 간판에 ‘천멸중공’ 등을 써놓기도 했다). 산에 올라가자 많은 자동차가 있는 것을 봤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발정념을 다하고 산에서 내려갈 때 주위 사복 경찰이 깔렸음을 그제야 알았다.
그들이 사복 경찰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나는 트레이닝기구 옆에 가서 또 작은 스티커를 붙이고 자전거를 타고 산에서 내려가자 까만색 자동차가 바싹 나를 뒤따랐고 기사는 전화했다. 이때 나는 자전거를 타면서 며칠 전에 내가 삼림 감시 간판에 써놓은 ‘천멸중공’이 아직 있는 것을 보고 위로가 됐다. 자전거를 빨리 타려고 했지만 속으로 두근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다리에도 쥐가 났다. 어떻게 됐는지 남편의 친척이 운영하는 가게 문앞까지 오자 남편의 친척 부부가 나를 맞이했다. 이때 경찰차도 경적을 울리며 내 앞에 도착했다.
110의 경찰은 우리 셋이 가게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경찰차를 좀 멈췄다가 우리가 가게에서 일상사를 말하는 것을 보고 들어오지 않았고, 좀 지나 경찰차는 떠났다. 후에 이따금 사복 경찰이 유리창에 엎드려 나를 봤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속으로 매우 두려웠다. 집에 돌아온 후 사흘 동안 밖에 나가지 않았다. 나는 ‘전법륜’을 펼치고 사부님의 법상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때 정념이 나왔다. ‘어떻게 된 일인가, 내가 누굴 두려워하는가? 나가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씻고 문을 나섰다.
이 몇 년을 돌이켜 보면 시시각각 사부님의 보호로 대법을 실증하는 것이 최고로 영광스러웠다.
문장발표: 2015년 1월 2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29/3037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