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신(新)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와 대법과의 결연은 참으로 사부님의 한 걸음 한 걸음의 고심한 안배였다. 한 번은 남에게 책을 사주다가 국학(國學)의 이치에 흥미를 갖게 됐고, 한 번은 질병에 대한 절망으로 종교로 들어가게 됐으며, 한 번은 마야 예언에 대한 호기심으로 우주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다. 나는 생명, 심령, 우주, 종교에 필연코 그 무슨 심오한 연계가 있음을 의식했다. 인류와 우주는 변혁에 직면했고 중국에 세상을 구할 성인이 나타날 것이며… 그러나 더 아래로 내려가니 나는 답안을 찾을 수 없었다.
2012년 7월 어느 날에 와서 나는 한 언니를 만났는데 그녀와 나는 함께 우주와 불법을 탐구 토론했고 또 나에게 ‘전법륜’이란 책 한 권을 추천해 주었다. 나는 ‘전법륜’을 한 번 다 읽고 나서 나를 여러 해 동안 곤혹케 하던 수수께끼가 풀렸고 내가 줄곧 찾아 헤매던 답안을 드디어 찾게 됐다. 그리하여 아무런 관념의 장애도 없이 나는 언니를 따라 대법 수련으로 들어섰다.
병업 중에서 우리의 정념을 보다
질병과 업력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 나는 대부분 정념을 확고히 할 수 있어서 절대 다수 질병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졌다. 하지만 가장 넘기 어려운 것이 생리통이었다. 그래서 매번 이 때면 나는 연공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본래 다리가 아픈데다 배까지 아프니 자신이 견뎌내지 못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픔을 두려워할수록 더욱 넘기지 못했다. 두 번째에도 배는 여전히 몹시 아팠다. 차를 타고 퇴근 해 집에 도착하자 소파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언니와 곁에서 조용히 한담하면서 교류할 때 나는 홀연히 머릿속에 생각 하나가 스쳤다. “무슨 일이 발생하든 법공부, 연공은 모두 평소대로 해야 한다” 그리하여 나는 이번에는 저녁에 얼마나 극심하게 아프든지 연공을 견지할 것이라는 결심을 했다. 기적이 나타났다. 그 날 저녁 가부좌할 때 배가 아프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평소에 아프던 다리마저 아프지 않았다.
더 이후에는 정념이 갈수록 충족해졌다. 시작에는 여전히 아파서 사람 마음을 자극했지만 나는 될수록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너는 아프겠으면 아파라, 나는 너를 상관하지 않고 너를 배척하겠다.’ 바로 이렇게 한 동안 아프더니 스스로 나았다. 먼저 이 때면 찬 물건에 손 댈 수 없었는데 이후에는 냉수에 옷을 빨았고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관념의 두려움과 걱정이 없었다. 정념 후, 이 모든 것은 업력 반응으로 촉성된 외적 요소이며 실질상 아픈 것은 그들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의식할 수 있었다.
연공하고 심성을 닦으면서 한 시간 결가부좌를 돌파
수련 시간이 짧았으므로 시작에는 결가부좌가 아주 힘들었다. 비록 한 번은 40분 결가부좌를 돌파하긴 했지만 나중에는 여전히 아파서 내려놓고야 말았다. 어느 날 수련생 언니는 우리 많은 수련생에게 사존께서 우리가 가부좌할 때 우리에게 신체를 조절해 주신다는 천목이 열린 서양 수련생이 쓴 내용을 읽어 주었는데 그 며칠은 우리가 공동으로 돌파한 첫 번째 단계라고 할 수 있었다. 또 다른 많은 수련생이 찾아와 함께 연공했는데 언니는 나에게 그들은 울면서도 한 시간을 견지했다고 알려주었다. 또 끈으로 다리를 동이고 연공했다는 등등 감동적인 장면도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한 시간 가부좌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 날 법공부를 같이 하는 수련생들에게 나는 한 시간 결가부좌를 하겠으니 나에게 다리를 내려놓지 못하게 하라고 부탁했다. 결국 그들은 아주 책임을 졌다. 내가 참지 못하고 내려놓으려 하면 여러 수련생이 마구 소리쳤다. 원래 아파서 마음이 번거로운데 그녀들이 떠들어대니 더욱 번거로웠다. 조용하기 위해서도 나는 억지로 한 시간을 견지했다. 이는 내가 처음으로 결가부좌를 한 시간 견지한 경험이다. 말하자면 우습기도 하지만 이 역시 사부님의 고심한 안배였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마지막에 쓰셨다. “진정한 겁난(劫難) 중에서 또는 관(關)을 넘는 중에서 당신은 시험해 보라. 참기 어려운 것을 당신은 참아 보고, 보기에 안 되고 행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을 그러면 당신이 한번 시험해 보라. 도대체 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만약 당신이 정말로 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로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柳暗花明又一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확실히 이러했다. 한 차례 결가부좌한 경험이 있게 되자 이후에는 자신감이 생겼다. 왜냐하면 한 시간을 견지할 수 있음을 스스로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 한 동안은 그야말로 사람을 각골명심하게 했다. 매 하루 가부좌를 하는 것이 그렇게도 아팠다. 아파서 눈물 콧물이 줄줄 흘렀고, 더욱 심한 것은 마음으로부터 밖으로 번거로워졌는데 온 몸에는 안팎에 모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 했다. 어떤 때는 참으로 참기 어려워 내려놓으려 하면 다른 한 정념이 반복적으로 나에게 알려준다. ‘내려놓지 마라, 한 번 내려놓기만 하면 매번 내려놓고 싶어진다, 이런 계기를 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날마다 내려놓으려 하다가도 속으로 부단히 사부님을 불렀다. ‘사부님, 저는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날마다 아팠다. 약 보름이 지난 후 한 차례의 큰 소업이 여러 날 만에 지나갔다. 예상외로 다리가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이때부터 나는 줄곧 언니와 서로 한 시간 가부좌를 지지했다. 지금, 많은 때 스스로 입정 상태에 도달할 수 있게 되어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달걀껍질 속에 앉아있는 것처럼 미묘(美妙)하고 무척 편안한 감각을 느끼며” 에너지장이 아주 강한 것을 느낄 수 있게 됐다.
법공부와 독서와의 관계를 잘 가늠하다
나는 문과를 나온 사람이기에 예전에 책 보기를 아주 즐겼다. 막 법을 얻었을 때 여전히 날마다 속인 책 50쪽을 보기로 했다. 이후에 와서 법은 우리 생명을 양성해 내는 근본이고 책은 보지 않아도 되지만 법을 보지 않으면 수련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래서 나는 서서히 법을 읽는 것을 첫 자리에 놓고 이전에 집착하고 즐기던 국학과 종교 서적을 서서히 내려놓았다. 자신이 하는 일은 문학 사업이어서 사업에서 곤경에 부딪힐 때면 어쩌다 마음이 움직일 때도 있었다. 이 속인 책과 대법 책을 도대체 어떻게 가늠해야 하는가? 볼 것인가 아니면 안 볼 것인가?
이후에 법을 읽음에 따라 수련은 아주 엄숙하며 불이법문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수련은 다른 공간에서는 극히 체계적이고 정밀한 연화(演化)과정으로서, 사상 중에 조금만 다른 것이 섞이면 수련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책에 지니고 있는 것은 전부 정보이며, 더욱이 근대에 와서 중국공산당 통치하의 문화에는 너무도 많은 정확하지 못한 관념으로 충만됐다. 설령 전통문화라 해도 필경은 속인의 책이고 층차는 대법에 비해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책을 될수록 보지 않기로 자신을 억제했다.
하지만 광고를 만들려면 어쨌든 어떤 물건을 누적해야 했으므로 나는 목적이 있게 일부 어휘를 수집하거나 습작 방식으로 적어두었다. 진정으로 써야 할 때가 되면 쓰기에 아주 쉬웠고 대법 또한 우리에게 아주 큰 지혜를 주기에 사유도 서서히 열리게 됐다.
그래서 나는 깨닫게 됐다. 법공부는 극단으로 갈 수 없으며 법을 배웠다고 해서 속인의 것을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하지도 않아서는 안 된다. 학생은 여전히 학교에 다녀야 하고, 과학연구는 여전히 해야 하며, 출국해 외국어를 역시 배워야 한다. 법을 배웠다 해서 극단적으로 일체 모두를 하지 않아서는 안 되며, 최대한도로 속인에 부합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필경은 수련인이므로 우리는 수련을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한다. 속인 중의 공명과 관록이 장구할 수 있는가? 무엇이 반본귀진보다 더 중요하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잘 따져야 한다. 최대한 이런 속인의 것, 좋지 않은 정보가 우리의 수련을 방해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만약 한가해서 할 일이 없다면 무엇을 보든 법을 보는 것보다 더욱 좋은 것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청정심을 유지하고 인터넷에 접속하려는 집착심 잘라버려
컴퓨터를 사용한지 이렇게 여러 해가 되어 인터넷 접속은 이미 습관과 집착이 됐다. 뉴스를 보고, 댓글을 보며,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접속하고, 게다가 낮에 일이 없으니 여러 사이트에 접속해서 놀았다. 그러나 인터넷 접속은 많은 사람 마음을 지니게 했다. 뉴스보기를 좋아하는 것은 호기심이고, 사이트에서의 쟁론을 보기 좋아하는 것은 쟁투심이고, 각종 사회 뉴스가 사람을 잇달아 불평하게 하는데 이것은 쟁투심이며, 사이트 곳곳에는 음탕한 것으로 차고 넘치는데 사람의 색욕심을 촉발시킨다… 갖가지 것들이 각종 마수처럼 사람의 마음을 움켜쥐고 놓지 않는다.
때문에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한 번만 점화해 주신 것이 아니다. 매번 인터넷에 접속해 놀려고 하면 컴퓨터 접속이 끊어졌다. 당시에는 명백하다가도 다음번에는 또 접속하려 한다. 이후에 나는 언니에게 맹세했다. 만약 내가 낮에 인터넷에 접속하면 나는 어떻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며칠간 맹세하고는 더는 맹세하지 않았다. 컴퓨터 시대에 자라난 사람으로서 인터넷 접속은 그야말로 돌파해야 할 하나의 아주 큰 집착이었다.
그 한 동안 사부님께서는 여전히 나를 점오해 주셨는데 밤에 꿈을 꾸었다. 꿈에서 나는 팔에다 거미줄 한 뭉치를 걸쳤는데 위에는 또 거미가 있었다. 당시 나는 꿈에서 거미는 집착임을 깨달았다, 거미가 집착이면 거미줄은 바로 집착망(망은 중국어에서 인터넷을 뜻함: 역주)이라는 뜻이다. 깨어나자 나는 사부님께서 내가 인터넷에 너무 집착한다고 알려주셨음을 곧 알게 됐다. 사부님께서는 거의 내 앞에 나타나셔서 알려주신 것인데 내가 아직도 무슨 이유로 내려놓지 않겠는가? 바로 이렇게 나는 인터넷에 접속하려는 마음을 철저히 내려놓았다. 괴상하기도 했다. 내가 내려놓은 후 내 동료가 접속이 끊기는 원인을 찾아 주어 컴퓨터 접속이 끊기지 않았다.
기억에 새록새록한 것은 이틀 동안 인터넷에서 아무런 소식도 보지 않으니 마음이 유달리 청정했졌다는 것이다. 홀연히 그 날은 마음이 유달리 홀가분한 감을 느꼈고 마치 꿈에서 공중을 나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그 상태는 더 없이 평화로웠는데 전에는 가부좌하면 늘 흐리멍덩하고 졸렸다. 하지만 바로 그 날은 가부좌하는데 예상외로 입정이 아주 잘 됐고 조금도 졸리지 않았다.
이후에 ‘전법륜’ 중에서 이런 한 단락을 보았다. “당신이 만약 당신 자신을 제고하려면 당신은 안에서 찾아야 하며, 당신의 이 마음에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당신은 그래야만 진정하게 제고할 수 있으며, 가부좌 중에서 당신은 비로소 고요해질 수 있고, 고요해질 수 있음이 바로 공(功)으로서, 정력(定力)이 얼마나 깊은가는 층차의 체현이다.” 나는 깨달았다. 평소 수련 중에서는 좋지 못한 상태가 나타날 수 있는데 사실은 모두 우리가 버리지 않은 좋지 못한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도처가 가상이고 일체 시련은 모두 고비
이전에 나는 늘 법정인간이 갈수록 가까워지는데 그동안 가족을 갈수록 더 잘 대해 주었으며 마치 이전에 그들에게 미안했던 마음을 다 갚아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후에 한 가지 일이 발생해 나에게 ‘정’을 반성해 보게 했다. 휴무기간에 고향 집으로 가는 도중 길에서 누가 핸드폰을 훔쳐갔다. 그 안에는 전체 대법 책과 나의 이력서 등 일부 자료가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누가 내 자료를 가져다가 고발하지 않을지 걱정을 했다. 하지만 정념이 돌아오자 나는 내 핸드폰을 가져간 사람이 대법과 인연이 있기를 바란다고 했더니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고향 집을 떠날 때 엄마는 나에게 집에 돌아가면 무슨 전화를 쓰던 엄마에게 전화를 하라고 당부했다. 나는 대답을 하고 돌아와서 곧바로 새 유심카드를 샀다. 오후 4시정도에 집에 전화하니 받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그들이 모두 밖에서 바삐 보내는 줄로 알았다. 그러나 저녁 6시가 돼도 여전히 받는 사람이 없어 나는 좀 걱정이 돼 다시 기다려 보려고 했다. 8시에도, 10시에도 여전히 받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속이 바짝바짝 탔다. 우리 집은 여태껏 집을 비우는 일이 없었는데 내가 걱정하던 일이 발생한 게 아닐까. 그들이 내 이력서에 따라 나를 찾을 수 없으니 결과적으로 우리 집을 찾아내 온 가족이 혹시… 그러나 날은 이미 저물었는데 난 어떡하지? 난 어디 가서 그들을 찾아야지? 조급한 나머지 나는 법도 볼 수 없었고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언니가 나에게 알려주었다. 대법제자에게는 일이 생길 수 없다. 관건은 염이 바른가의 여부에 달렸다. 두려운 마음을 내려놓으면 일체는 모두 무사할 수 있다. 그리고는 나에게 사부님의 ‘홍음-두려울 게 뭐냐’를 외우라고 했다. 나는 사부님 법상 앞에 다가가서 합장하고 줄곧 ‘두려울 게 뭐냐’를 외웠다. 눈물은 여전히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 족히 반시간을 외우니 마음이 서서히 안정되었다. 나는 자신에게 반복해서 알려주었다. 이 일체는 모두 가상이니 나는 법공부를 해야겠다. 언니가 나에게 여동빈이 신선으로 되면서 겪은 열 가지 고험을 들려주었다. 한 가지 큰 고험은 바로 그가 어느 날 집에 와 보니 온 가족이 다 사망한 일이었는데 그래도 그는 여전히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관을 묘지로 옮길 때 가족들은 다 부활했다.
이튿날 아침에 언니가 나에게 갑자기 일깨워 주었다. 전화가 고장 나지 않았는지 나에게 전화고장수리 AS센터에 전화를 해보라는 것이었다, 오전에 전화고장수리 AS센터 직원은 우리 집에 가보겠다는 전화를 나에게 걸어왔다. 잠시 후 집에서 전화가 왔는데 과연 전화고장이라면서 엄마는 집에서 너무 조급해 야단이 났다는 것이었다. 원래 이 일체는 과연 모두 가상이고 고험으로서 우리가 ‘가족 정’ 집착을 철저히 내려놓을 수 있는가를 보았던 것이다.
이 일은 나를 더욱 깨닫게 했는데, 수련인이 속인 중에서 보게 된 일체는 모두 가상이고 모두 우리를 고험하는 요소가 안에 있으며, 모두 우리가 넘어야 할 고비,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요소가 안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 일체는 모두 아무 일 없으며, 우리가 집착을 붙잡고 놓지 못할 때면 구세력이 우리의 집착을 틀어잡고 더욱 큰 마난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극단으로 가지 않고 좋은 이미지로 법을 실증
이전에 나는 화장을 하고서야 집을 나섰고 옷차림에도 신경을 썼다. 한 동안 법공부를 한 후 사람의 외면은 단지 한 층의 인피에 불과한 것이므로 치장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으며, 마음을 닦는 것이야 말로 가장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서서히 옷을 사기도 싫었고 화장도 하지 않았으며 커다란 안경을 썼다.
어느 날 한 집에 있는 여동생이 길고 아주 예쁜 치마를 샀다. 그녀는 다른 옷을 사려고 나에게 그 옷을 팔려고 했다. 내가 입어보니 모두들 예쁘다고 하기에 나도 자연히 받았다. 그 날 다른 이모수련생 집에 가니 이모는 이 치마가 예쁘다면서 마땅히 치장을 해야지 사람들에게 우리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은 저마다 모두 단장할 줄 모른다는 감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돌아온 후 나는 생각했다. 예쁘게 단장하는 게 두려운 것이 아니라 관건은 집착 여부에 달렸다. 다만 단장은 단정하고 대범스럽게 하고 대법제자답게 단장해야지 지금의 그런 속인처럼 아름다움과 추함을 가리지 못해서는 안 된다. 그 후부터 연한 화장을 하고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전문직 여성처럼 치마를 입었다. 보기에는 그래도 여전히 젊음이 빛났다.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차리고 나가서 진상을 알리면 남들은 파룬궁을 배운 사람이 텔레비전에서 말하는 것처럼 모두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지 않을 것이고 아주 소양이 있어 보인다고 말할 것이다
쟁투심을 닦아버리고 대인지심을 닦아내다
나는 속인 가운데서 ‘남을 말하지 못하게’하는 마음과 쟁투심이 아주 강했는데 수련 중에서 내가 돌파해야할 큰 고비였다. 여기에서 한 동료와 고비를 넘던 경험을 함께 나누려 한다.
동료 A는 일을 아주 신중하게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업협력 상 매 한 가지 사소한 일마저도 모두 나와 깊이 연구한다. 그러나 나는 당시 ‘남을 말하지 못하게’하는 마음이 아주 심했으므로 그녀와의 협력에서 그녀는 내가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해서 내 사람마음을 자극할 때가 있었다.
처음에는 아주 참을 수 없었다. 그녀와 쟁론해서는 옳지 않다는 것을 당연히 알면서도 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 날은 속으로 억울하다고 생각돼 눈물이 뚝뚝 떨어졌고 나는 고비를 넘기기 왜 이렇게 어려운지 원망스러웠다.
수련이란 반복적인 과정으로서 결코 이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어느 날 동료 A가 또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이번에 나는 그렇게 격렬하지 않았지만 속은 여전히 뒤집어지듯 괴로웠다. 이러했지만 내 어투가 나쁘지 않아 그녀의 태도도 개변됐음을 발견했다. 바로 이 순간에 나는 홀연히 의식했다. 상황은 마음에 따라 변한다고, 일체 모두는 자신에게 있는 좋지 못한 마음 때문에 촉성된 것이다. 반대로 만약 외재적인 이런 환경이 없이 수련한다면 우리에게는 심성을 제고할 기회도 없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나는 갑자기 동료 A가 확실히 고마웠다. 그녀가 없이 내가 어찌 자신의 이 좋지 못한 마음을 의식할 수 있겠는가?
바로 이렇게 한걸음 한걸음씩 자신을 개변했다. 후기에는 법공부를 함에 따라 쟁투심이 점점 약해졌고 나에 대한 동료 A의 태도에는 거대한 변화가 생겼다. 나와 그녀는 아주 친한 친구가 되어 늘 함께 식사하고 퇴근했다. 물론 나는 그녀에게 끊임없이 진상을 알려주어 대법에 대한 태도도 조금씩 개변이 생겼다. 사실 나는 이런 업력이 모두 나 자신의 난임을 알고 있었으며 내가 그것을 없애 버리겠다고 결심했을 때 사부님께서는 나를 도와 많고 많은 것을 없애 주셨다. 사존님, 감사합니다.
배움은 꾸준함이 중요, 아침에 일어나 법 외우기 견지
이 단계 수련 중에서 스스로 한 걸음씩 사람마음을 버릴 수 있었는데 가장 관건적인 것은 여전히 법력이었다. 날마다 일하기에 퇴근이 아주 늦고 자신의 시간이 많지 않긴 했지만 나는 될수록 일찍 일어나 출근 전에 많이 보았다.
최근, 이웃집 법공부 팀에서는 아침 3시 반에 일어나 연공하고 5시면 법을 외우기 시작해 9시면 끝난다. 언니는 날마다 아주 일찍 건너갔다. 그들은 일찍 일어나 모두 법공부를 하는데 나는 아직도 침대에서 늦잠을 잔다고 생각하니 무척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결심하고 날마다 5시면 어김없이 이웃집 법공부 팀에 가서 법 외우기를 견지했다.
한 마디 아주 훌륭한 말이 있는데, 수련은 봄의 새싹 같아 그것이 자라는 것이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날마다 자라난다는 것이다. 법 외우기를 통해 자신의 심성에는 확실히 무척 큰 제고가 있었다. 예전에 모순에 직면했을 때의 상태는 옳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집착심을 통제할 능력이 없었다. 한 동안 암송한 후, 자신의 심경이 갈수록 평화롭게 변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항상 당신의 마음이 늘 그처럼 자상자비(慈祥慈悲)하면 갑자기 문제가 나타났을 때 당신은 완충적 여지가 있으며, 사고할 여지가 있다.”이다
예전의 매우 강렬했던 쟁투심이 무척 적어졌고 기타 마음도 자연적으로 갈수록 담담하게 변했다. 원래 법공부를 견지하고 정진해 법에 동화되기만 하면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셨던 것이다.
법공부를 많이 하면 정념이 족해 사람을 많이 구한다
끊임없는 법공부 가운데서 현재의 정법 형세, 중국인이 직면하게 될 위기를 분명히 알게 됐고, 그래서 나는 결연히 조사정법, 중생구도의 길을 걷게 됐다. 날마다 진상 전화를 걸고, 정기적으로 나가서 자료를 배포하며, 신변과 주위에서 만나는 인연 있는 사람에게 진상 알리는 것을 견지했다. 지금의 내가 하고 있는 새 항목은 실시간 전화로 삼퇴시키는 것인데 지금 과정 중에서의 일부 심득을 여러분과 나누려 한다.
실시간 전화는 수련 상태와 관계있음을 더욱 느꼈다. 말할 때의 심태가 순정한가, 좌절을 당했을 때 마음을 움직이는가, 게다가 우리에게 좋지 못한 마음이 있을 때, 상대방의 상태를 통해 당신에게 반영된다. 그 한 동안은 늘 인터넷에 접속해 사당의 좋지 못한 뉴스를 보면서 쟁투심이 아주 강했다. 전화를 받는 사람들은 모두 나와 다투었다.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이 닦아버려야 할 마음을 보았다. 그러므로 낮에는 더욱 법공부를 많이 하도록 보증함으로서 좋은 상태를 갖고 사람을 구했다.
하루는 한 사람이 진상을 들은 후 말했다. “당신은 내가 당신을 고발하는 게 두렵지 않습니까?” 내가 말했다. “나는 완전히 당신을 위해서일 뿐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고 당신이 구도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전화를 받는 것만 봐도 당신은 틀림없이 좋은 사람일 것이며 당신도 이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아주 강한 정념을 품고 상대방의 나쁜 요소를 해체해 버렸다. 이후에 그는 자기는 일찍 ‘전법륜’ 등등을 봤다면서 나와 진일보 교류를 나누었다.
사람을 구하는 중에서 구세력도 교란했다. 한 동안은 매번 전화를 걸때면 몸에 병업가상이 나타났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일념을 발했다. “사부님, 구세력이 제가 사람을 구하는 것을 교란하지 못하게 저를 가지해 주십시오.” 그날은 배가 유별나게 아팠고 상태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기적적인 것은 내가 전화 거는 과정에서 오히려 괴로운 감각이 추호도 없었다는 것이다. 사부님 법신은 없는 곳이 없이 우리가 가는 매 한 걸음마다 가호해 주시는 것을 느꼈다.
이상은 내가 수련 1년 동안의 심득 감수다. 층차의 제한으로 적절하지 못한 곳이 있으면 수련생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자신의 경험이 새로 들어온 수련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정체로 승화 원용하고 합격된 사부님 제자가 되며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를 저버리지 말고 서약을 실현하며 사명을 완수하고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자.
문장발표: 2015년 1월 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신수련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9/3029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