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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착실히 수련하지 않으면 아이가 커서 더 이상 수련하지 않는다(하)

글/ 동심(同心)

[밍후이왕] (전편에 이어)

2. 어떻게 해야 어린 수련생을 잘 이끌 수 있는가?

어린 수련생을 잘 이끄는 것 역시 어른이 수련하는 중요한 일환이고 또한 사명도 있다. 어른이 정진해 실질적으로 수련하고 엄격하게 대법 요구대로 행하며 이렇게 배양해낸 아이는 수련에 정진할 뿐만 아니라 속인 중에서도 특출한 기능 하나를 지니고 있어 전문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많은 아이들은 사명을 갖고 왔기 때문인데 만약 부모가 그들을 잘 보살피지 않으면 그들은 그들의 사명과 함께 속인 중에서 훼멸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필자는 여기서 몇 가지를 건의하려 한다.

(1) 미국의 현재 방종하는 교육을 배우지 말아야 하고 반드시 엄격히 요구해야 하며 전통문화의 바른 이야기를 말해주어 아이들에게 바른 참조가 있게 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다. “더욱이 지금 미국의 자식에 대한 방임, 그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 어린이는 교양이라곤 전혀 없으며 전반 교육은 실패한 것이다.”[1]

서양에서 보편적인 혼란과 타락은 이런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부모가 방종한 것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이렇게 방종하면 아이를 지옥에 두는 것과 같다. 아이를 방종할수록 마성이 갈수록 커지고 도(道)와 더 멀리 떨어지며 수련하기 더욱 어려워진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역사상 어떤 한 차례 문화에서 비교적 두드러진 그러한 일들, 또한 부동(不同)한 시기의 수련인과 각자(覺者)가 표현한 상태는 모두 대법제자로 하여금 참조하게 한 것이고”[2]

역사상 아주 많은 바른 전형적인 인물들이 있다. 석가모니, 제갈량, 악비, 강희제, 채문희, 화목란(뮬란)… 그들의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주고 아이들은 자신에게 참조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낸다. 마치 그들처럼 그러한 바른 길에서 향상하게 하고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하게 되는데 아이의 수련과 인생에 모두 극대한 촉진 작용이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놀이에 빠져 의지를 상실하고 안일하게 응석받이로 키워서 바보가 된 반면(反面) 이야기도 있는데 역시 아이들의 정진을 촉진할 수 있다. 만약 아이가 어릴 때부터 정확한 본보기와 반면적인 경계가 없다면 그의 우상 공간에는 오늘날 가수, 배우 등으로 충만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수련하기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그는 그런 우상처럼 인생을 누리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2) 어린 아이도 법학습하면서 의미를 깨달아야 하고 어릴 때부터 법학습의 낙을 체험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어린 애가 무엇을 깨달을까?’ 이는 또 속인 마음이고 이전에 말한 대법 어린 제자들이 법을 깨달은 이야기는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한 수련생은 아이에게 “극미에서 극대까지 부패된 물체를 평정하고 홍대하고 미시한 시방에서 창궁을 보노라”[3]의 이해를 말해주었다. “겁(劫)은 불가에서 시간을 표시한다……” 어린 수련생이 물었다. “시공 시공하는데 그 겁은 시간 외에 공간의 뜻이 있나요?” 수련생은 단번에 깨달았다. 이 또한 사부님 정법이 조겁(兆劫)을 지나서 그렇게 많은 층의 우주를 지나왔다는 함의였는데 아이가 잘 깨달았다고 칭찬했다. 그리고 바로 아이와 같이 ‘2003년 정월대보름설법’을 배웠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법 중에서 나는 모든 대궁을 걸어 지나왔다.”[4] 이렇게 법학습하니 아이도 법에 용해되고 관통될 수 있었다.

사실 당신이 아이를 가르칠 때면 깨달은 매 한 단락 법의 표면적인 뜻에 대해 아이는 수시로 당신에게 자신이 깨달은 깊은 층의 내포를 알려준다. 왜냐하면 아이는 선천적인 본성이 아직 있어서 어른을 깨우쳐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법학습의 낙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면 성장해서 반드시 정진해 수련할 수 있다.

(3) 아이가 3살, 4살이면 스스로 연공할 수 있으니 더는 지체하지 말고 지체했다면 빨리 보완해야 한다.

앞에서 아이가 연공하는 연령 문제를 말한 적이 있다. 많은 부모 수련생들은 다그쳐서 보완해야 한다. 사람의 관념으로 이것을 고려하고 저것을 고려하는 것은 모두 장애다. 오로지 당신 마음이 법에 있으면 가서 보완하고 정법 노정을 따라잡아야 한다. 아이는 생각지도 못한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

(4) 아이는 법학습과 연공을 하루도 빠뜨리면 안 되고 조금만 배우고 연마하더라도 어릴 때부터 시간을 짜내 법공부 연공하는 습관을 키워주어야 한다.

만약 아이가 어릴 때부터 ‘법공부 연공을 며칠 동안 중단해도 아무렇지 않다’란 고질병이 형성되면 커서 연공이 철저히 중단될 수 있다. 만약 아이가 날마다 반드시 법공부와 연공하는 습관을 형성하면 성장해서 하루라도 중단하면 뭔가 모자라다는 것을 느끼고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방법을 찾아 보완한다.

지금은 시간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고 아이의 시간도 모자란다. 만약 어른이 아이의 법공부와 연공 시간을 고정시킬 수 없다면 아이도 시간이 없다. 그리하여 어린 제자를 거느리는 수련생들은 법공부와 연공 시간을 아이와 일치하게 조정하기 바란다. 반드시 아이를 도와 이 시간을 짜내고 아이를 바른 길로 이끌어야 한다.

‘아이가 이렇게 어린데 견지할 수 있을까?’ 이는 전형적인 속인 관념이다. 사실 아이가 견지하는 것이 어른보다 더 낫다. 일단 당신이 그를 정상 궤도로 이끌면 그는 날마다 당신의 법공부 연공을 감독하게 되고 심지어 당신을 이끌고 법공부와 연공을 한다. 이렇게 정진하는 어린 수련생의 이야기는 적지 않다.

(5) 바쁘다는 구실을 대지 말고 바쁘다는 것은 아이에 대한 ‘높은 표준, 엄격한 요구’에 영향을 준다.

한 노수련생은 농촌에서 손자를 데리고 도시로 들어왔다. 5살 아이는 아직 글을 모르고 단지 대법이 좋다는 것만 알았다. 수련생 집에 데려다 놓았는데 수련생은 무척 바빠서 아이에게 ‘홍음’ 읽는 것을 가르쳤다. 한번 읽고서 녹음해서 아이에게 녹음에 따라 스스로 배우게 했다. 밥을 먹을 때 대법에서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이는 일주일 동안 72수의 시를 익숙하게 읽었고 10일 만에 외웠다.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았는데 노수련생은 깜짝 놀랐으며 무척 기뻤다. 아이를 데리고 잘 수련해야 하는데 엄격히 요구하지 않으면 지금 아이들은 또 법을 배우지도 않고 수련하지도 않는다.

사실 어린 수련생을 데리고 있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지 당신이 속인마음을 내려놓고 당신이 대법의 끊임없는 제고 표준에 따라 그들을 요구하면 되고 그들은 결국 모두 도달할 수 있다. 당신이 만약 표준이 너무 낮으면 그들의 표준은 당신보다 더 낮아서 결국에는 속인에 동화된다.

해외 수련생들은 모두 바쁘다. 아이가 조금만 크면 거의 수련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수련하지 않는 아이가 페이톈(飛天)예술학교에 간다면 오히려 무척 정진하는 대법제자가 된다. 그것은 높은 표준, 엄격히 요구하는 환경이 촉성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집에서 수련생 사이에 왜 이러한 정진하고 실질적으로 수련하는 환경을 만들지 못하는가?

(6) 아이의 고생을 겪는 능력과 인내력을 배양하는데 주의하고 아이가 어릴 때부터 고생을 낙으로 삼는 것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신이 얼마나 높이 수련할 수 있는가는 완전히 당신의 인내력과 고생을 견뎌내는 능력에 달렸다.”[5]

많은 수련생들은 정법 일을 하는 기간 하루 종일 만두에 김치를 먹으면서 일체 시간을 다그쳐 행한다. 그러한 고생을 낙으로 삼아 착실히 수련하는 것은 모두 우주의 사적에 기록된다. 이는 단번에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고생을 겪어내는 능력과 인내력은 한 점 한 점 배양한 것이다. 어릴 때부터 기초를 닦는 것이 가장 착실하다.

‘아이를 계속 고생하게 한다’란 극단으로 들어가지 말고 더욱이 아이를 응석받이로 만들어 고생을 조금도 못하게 하지 말아야 하며 어릴 때부터 고생을 겪는 기초를 다지게 해야 한다. 온실의 꽃들은 비바람의 고험이 오기만 하면 반드시 시든다.

고생을 낙으로 삼음은 수련자가 반드시 도달해야 할 경지다. 눈 속의 차가운 매화는 사실 진실한 환경에서 연마된 것이다.

(7) 아이가 남을 위해 더 많이 헌신하게 하고 많이 넘어지고 엎어지게 해야 비로소 심성 기초를 잘 다질 수 있다.

가족들이 모두 아이를 에워싸고 돌고 있고 각 방면으로 시중을 들고 있는데 이렇게 배양해낸 아이들은 게으르고 손발이 둔하며 자아가 중심이 된다. 게으름은 거대한 마성이고 각 방면에서 체현되는데 이러한 사람은 정진할 수 없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떠한 집착심이든 당신에게 있기만 하면, 각종 환경 중에서 그것을 닳아 없어지게 해야 한다. 당신에게 곤두박질치게 하고 그 중에서 도(道)를 깨닫게 하는데, 바로 이렇게 수련해 온 것이다.”[5]

수련에서 넘어지는 것은 두렵지 않다. 오로지 그 속에서 반성하고 기어 일어나 계속 수련하면 되고 좌절을 마주하고 강인하고 불굴의 심태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실 이런 심성 소질을 배양하려면 어릴 때부터 할 수 있는 가사 일을 하게 해서 어른들과 같이 분담하게 하는 것이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아이가 설거지하다가 그릇을 깨뜨린다고 걱정하지 말고 바닥을 제대로 닦지 못하고 신발을 깨끗이 닦지 못한다고, 양말을 깁다가 손을 찌른다고 걱정하지 말라. 잘하지 못하면 바로 좌절인데 아이가 이런 좌절 속에서 반성하게 인도하고 격려해 그들이 더 잘 할 수 있게 하면 된다. 이러한 부지런한 아이는 타인을 생각할 줄 알고 수련에서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으며 넘어지더라도 빨리 일어어서 수련을 계속해 나간다.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단호한 심성 기초를 닦았기 때문이다. 응석받이로 키운 아이들은 커서 넘어지면 일어나지 못하고 수련이 너무 어렵다고 느낀다. 그리하여 게으름을 피우고 심지어 신심이 없으며 자포자기한다.

(8) 정확하게 칭찬, 격려를 운용해 아이의 자신감을 배양한다.

아이의 매 한 점의 진보를 홀시하지 말아야 하고 아이가 타인을 위해 헌신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되며 조그마한 칭찬, 격려도 아이는 수련에서 신심을 더 충족히 할 수 있다. 법을 얻으러 온 아이는 반드시 한 가지 특기를 갖고 있는데 장래 법을 실증할 때 사용하게 된다. 특히 대륙 수련생들은 시험 점수만 신경 쓰지 말아야 하는데 아이의 장점과 자신감을 매몰시킬 수 있다.

아이가 노력해도 잘하지 못하면 비평의 효과가 격려보다는 못하다. 그러나 아이가 착오를 범했을 때는 비평과 벌칙은 모두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자비를 지닌 비평은 아이가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이성적인 반성을 하게 된다. 법리에서 명백히 말한 후 벌칙을 주어야 아이는 수긍할 것이고 그래야 비로소 반발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는 어릴 때부터 귀에 거슬리는 말은 들으려 하지 않고 커서는 수련의 규칙이나 권유를 더욱 들으려 하지 않는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정법제자가 정법시기를 걸어 넘어가지 못한다면 다음 한 차례의 수련기회는 없다.”[6]

많은 아이들은 정법시기에 수련에 들어왔고 수련생들과 같이 박해의 가장 어려운 시기를 지나왔다. 성장 후 무슨 압력이 없는 상황에서 반대로 수련을 주동적으로 포기했다. 이 결과는 얼마나 심각한가? 법리는 엄숙한 것이고 사람의 정으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침통한 교훈의 근원은 모두 부모 수련생에게 있다. 이미 아이를 지체시킨 수련생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잘못을 알고 보완해야 하고 후회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만약 자신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아이는 여전히 당신 몸에서 대법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는데 아이로 하여금 속인에 대한 집착 추구를 내려놓으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오로지 당신이 새롭게 정신을 차리고 수련 초기처럼 용맹정진하고 그렇게 정진해 법공부하며 자신을 찾고 자신을 개변해 대법에 동화해야 한다. 아이는 끊임없이 대법의 위력을 보게 되고 그의 본성의 일면도 깨어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아이는 되돌아올 기연이 있을 수 있다.

이상은 개인 소견이고 적절치 못한 곳은 여러분들이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끝)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유럽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11-20년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시: ‘홍음-겁후’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 대보름설법’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6]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정법시기 대법제자’

문장발표: 2015년 1월 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2/3023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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