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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모든 일마다 남을 위한다면 막힘이 없다

글/ 헤이룽장(黑龍江)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앞 몇 기 법회 때 주위 수련생들이 나에게 반복하여 심득교류 법회에 참가하라고 일깨워 주었지만, 법회에 참가하는 중대한 의의를 인식하지 못했다. 내가 심득을 쓰려고 생각하자 글의 구상이 점차 똑똑해졌다. 문장을 쓰는 것도 수련이라 생각돼 수련 중에서의 일부 체득을 사부님께 보고하고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한다.

1. 대법에 대해 감성적인 인식에서 이성적인 인식으로 승화

1995년은 내 인생의 내리막길이었다. 어려서부터 다리 질환을 앓았기에 대수술을 두 번이나 했지만, 여전히 호전되지 않았다. 절뚝거리며 걷는 것이 몹시 힘들었는데 어떤 때는 몇 발자국만 걸어도 고통을 견딜 수 없어 쉬었다 가곤 했다. 이때 나는 기쁘게도 대법을 얻었고 사부님께서 내 신체를 정화해 주셔서 지금까지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멀리 걷던지 힘든 줄 모른다. 주위에 지인들은 내 변한 모습을 보고 대법의 신기함에 탄복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1999년 ‘7·20’, 사당은 천지를 뒤덮는 기세로 대법에 대한 박해를 진행했다. 나는 대법의 표면만 이해하고 심오한 내포는 깨닫지 못했기에 기초가 확고하지 못했다. 두려운 마음에 수련을 포기했고 원래 정화됐던 신체가 점점 나빠졌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자료와 ‘밍후이주간’을 보면서 전무후무한 이 박해의 실질을 이해하게 됐고 정념도 있게 되어 다시 대법수련 속으로 돌아왔다.

2006년 나는 집에서 현지 국가보안 경찰에게 끌려가 간수소에 보름 갇혀 있다가 불법적인 노동교양을 1년 넘게 했다. 그리고 노동교양소에 이틀 갇혀 있다가 남편 수련생의 구원으로 돌아왔다. 이 박해를 겪으면서 나는 새로이 자신의 수련 상황을 심사숙고했다. 수련은 으레 ‘그러려니’가 아니라 정말로 아주 엄숙하다는 것을 깊이 인식했다! 조사정법도 호언장담이 아니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체계적으로 사부님의 설법을 배워 어떻게 해야 착실하게 수련하는 것인지를 명확히 했다. 자신을 진정한 수련인으로 간주하고 대법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며, 생활 속에서 항상 자신의 일사 일념을 수련해서 절대로 보통 사람들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2. 법 공부팀을 설립해 전반적인 제고에 도달하다

법공부가 따라오자 수련 목표도 명확해졌다. 그리하여 나는 현지의 전반적 수련상태가 좋지 않고 부족함이 있는 것을 보아냈다. 수련생들이 단체 법공부를 조직하지 않는 원인은 전체적으로 두려운 마음이 크고 협조인의 압력이 크기 때문이다. 수련생들은 수시로 교란을 받고 가산을 압수당하고 납치당해 마음이 불안했다. 협조인의 압력이 높은 것은 수련생들의 눈길이 모두 협조인에게 쏠려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사부님의 말씀대로 했다. “신(神)은 모두 이렇게 생각한다. 게다가 어디가 부족한 것이 있으면 또 조건 없이 묵묵히 보완해주어 그것이 더욱 원만하게 이루어지도록 한다.” [1], 그리하여 나는 집에다 법 공부팀을 만들었다.

처음에 남편과 아이가 그리 지지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에 우리 지역에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이 많지 않았고 수련환경도 만들어지지 않아 박해 형세가 매우 심각했기 때문이다. 처음 법공부 팀에 참가하러 온 수련생들은 상태가 제각각이었다. 복도에서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문을 세게 두드리는 이도 있었고 이웃에 문이 열려 있어서 우리 집에 오는 사람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어떤 때는 이웃이 우리 집 문을 노크하면 수련생은 확인해 보지도 않고 문을 열어준다. 처음에는 나도 속이 두근두근했지만 원망하지 않았다. 수련생들과 반복하여 안전문제를 교류해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도 수련이라고 일깨워주었다. 나는 개인 수련을 매우 중시한다. 어느 한 고리에서도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하여 교류과정에서 자신을 수련하는 것을 중시해 말투에 주의하고 되도록 자비심에 이치를 더했다.

이웃은 내 안전을 고려해 나와 얘기한 적 있다. 나는 슬기롭게 그에게 농담했다. “제가 인기가 좋아서 그들은 모두 우리 집에 오기를 좋아해요. 제가 당신들에게도 이렇게 대하지 않습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문제없습니다. 당신들이 마작하고 술을 마시고 친척 친구가 와도 이렇게 무리를 짓지 않습니까?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시에 인내심 있게 그에게 진상을 알렸다. 대법제자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며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하면 복을 받고 대법제자를 박해해 응보 받은 사례를 많이 알려주었다.

주위 환경이 좋아짐에 따라 내가 대법을 배운다는 사실을 아파트 단지 사람들은 모두 알게 됐다. 이웃들은 무릇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대법제자라는 것을 알게 됐고 오래되자 그들도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내 마음속에는 박해 관념이 전혀 없었다. 어디에 잘하지 못했으면 법에서 바로 잡고 ‘잘하지 못하면 박해를 초래한다’는 부정적인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한동안의 단체 법 공부와 교류를 한 후 수련생들은 일부 소조는 법공부를 형식에 그치고 법공부한 후 교류하지 않아 제고가 없다고 반영했다. 그리하여 우리 집에서 매주 한 차례의 큰 팀 법공부를 조직하고 법공부한 후 문제점이 있으면 팀에서 교류했다. 수련생들의 많은 문제가 큰 팀에서 해결됐고 심성은 제고를 가져왔다. 많은 수련생이 소문을 듣고 오다 보니 어떤 때는 30여 명이 될 때도 있어 큰 팀을 지역별로 설립할 것을 건의했다.

처음에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어떤 수련생은 그리 지지하지 않았다. 나는 수련은 생각을 통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단지 안으로 찾고 자신을 수련하며 수련생들과 간격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나는 대면적으로 협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작은 면으로 협조했다. 이후에 수련생들도 들어왔다.

이후에 나는 또 시골 수련생과 교류해, 한 달에 한 번씩 함께 법공부할 것을 건의했다. 그들은 매우 기뻐하면서 모두 기꺼이 오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우리 집에 또 시골 팀 법공부 소조가 설립됐다.

3. 협조, 원용(圓容), 협력, 위타(爲他)

사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협조’라는 글자가 없었다. 다만 이렇게 해서 전반적인 제고에 이로움이 있다면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속에서 사부님께서 설법하신 것을 체득했다. “수련의 길은 같지 않으나 모두 대법 가운데 있도다 만사에 집착이 없으면 눈앞에 길은 스스로 열리리라” [2]

우리 집은 단지 내에서 가게를 운영한다. 술을 위주로 취급하는데 면적이 아주 작아 몇 제곱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수련생들은 수시로 우리 집으로 오는데 자료를 가져다주는 수련생은 우리 집으로 가져오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하고, 자료를 가지러 오는 수련생도 우리 집으로 가지러 오는 것이 편하다고 한다. 수련생들의 편리를 위해 부지불식간에 나는 자료를 전달하는 책임을 지게 됐다. 현지나 시골 수련생이 진상자료가 없을 때 우리 집에 오기만 하면 무엇이 필요하든지,기본적으로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어떤 때 3~4명의 수련생이 오면 가게는 꽉 찬다. 고객이 물건을 사러 오면 입구에 서서 건네주어야 한다. 어떤 때 남편과 아이가 들어와서 나와 인사하려 해도 집안에 자리가 없어서 그냥 올라갈 때도 있다. 이 장면을 본 수련생들은 아주 미안해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했다. 오직 수련생이 제고할 수만 있다면, 전반적으로 사람을 구하는 효과를 거둘 수만 있다면 나는 기쁘고 위안이 된다.

몇 년 동안 법을 실증하거나 협조에 나의 협력이 필요하면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협력했다. 수련생들은 모두 나와 협력하기 좋아했다. 심성의 문제나 법을 실증하는 중에 어떤 생각이나 수련생들은 모두 나와 교류하려 했다. 어떤 수련생은 ‘7·20’ 이전의 수련생도 우리 집에 데리고 왔다. 점차 내가 ‘마음 쓰는’ 일이 많아졌다. 새로 돌아온 수련생은 그녀들의 심성에 따라 법공부를 많이 하도록 이끌어야 하고 교류해야 했다. 어떤 이는 단체 법공부에 참가하기 싫어하는데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대법 서적을 모시려 하지 않는 이도 있는데 집에 놓기 두려워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들에게 우선 한 권을 보게 하고 다 보고 나면 돌려달라고 했다. 수련생들이 보려 하면 나는 한 권 한 권씩 제공했다. 점차 주간, 진상 소책자를 제공했는데 한 권만 주면서 다 보고 나면 다시 가져오라고 했다. 그녀들은 압력이 없어서 기꺼이 보았다. 시간이 흘러 법을 많이 배우자 나는 수련생들이 진상을 알리게 이끌었다. “다음에 진상 소책자를 다 보고 나서 누구네 집에 놔두는 것이 편하면 그 집에 놔두세요. 소책자와 진상자료는 세인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수련생은 아주 잘 받아들였다. “네.”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지금은 새로 돌아온 수련생도 거리에서 다른 수련생들과 함께 대면하여 진상을 알릴 수 있게 됐다.

어떤 때는 수련생들이 나를 찾지 않으면 누구를 찾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수련생들이 걸어 나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수련생들이 어려울 때 나를 찾는 것은 나를 믿고 가족으로 생각하며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부님께서도 내가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오직 정체적으로 제고할 수 있다면,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라면 나는 할 것이다. 나는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 [3], 으로 수련 성취할 것이다.

4. 구세력을 부정하고 안으로 찾아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다

협조과정에 많은 곡절이 있었다. 집에 수련생이 자주 오고 많이 오다 보니 늘 수련생이 내 귀에 대고 말한다. “이 수련생은 접촉하면 안 되고 저 수련생과 접촉하면 안전하지 못해요.” 어떤 수련생은 정말로 이지적이지 못하다. 일상 중의 전화로 공안, 검찰, 법원 인원들에게 진상을 알린다. 상대방이 그에게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알려준다. 게다가 매번 진상자료를 요구할 때 아주 ‘대범하게’ 조금도 거리낌 없이 같은 휴대전화로 나와 연락한다. 주위 수련생이 나에게 일깨워 준다. “아니면 그와 연락하지 마요.” 나는 말했다. “내가 그와 연락하지 않으면 누가 그와 연락할 수 있어요! 그럼 그를 상관하지 마요?”

어떤 때는 수련생이 거리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교란당하고 추적당하면 우리 집으로 달려온다. 시골에 내려가서 자료를 배포하다가 교란당해도 나에게 전화한다. 간수소에 감금된 수련생이 돈이 필요해도 간수소 경찰에게 직접 나에게 전화하게 한다.

사실 나도 마음이 답답하다. 하지만 조정할 수 있다. 수련생의 어떠한 상태도 나와 연관이 없다. 내가 하는 것이 오직 법에 부합되기만 하면 사부님께서는 나를 상관하신다. 나는 금방 감옥에서 돌아온 수련생을 포함해 그들과의 접촉에서 구별하는 마음이 없다. 수련생은 법에서 이탈하면 아주 고통스럽다. 당연히 도와야 한다. 나에게는 사부님의 제자를 문밖에 밀어낼 이유도 자격도 없다.

수련생들은 걱정 때문에 뒤에서도 의논한다. 어떤 수련생은 꿈에서 내가 노동교양을 했다고 하면서 수련생 중에서 전한다. 이후에 내가 발견했는데 한 가지 일 할 때마다 수련생에게서 오는 저지와 교란이 있었다. 끊임없는 법공부를 통해 나는 구세력이, 우리의 닦아버리지 못한 사람 마음을 이용해 내 정념을 움직이게 하고 나와 수련생 사이에 간격을 조성하려 함을 인식했다. 구세력의 수단을 간파하고 나중에 비슷한 일을 만났을 때 나는 스스로 마음이 움직이지 말 것을 요구했다. 수련생은 나의 안전을 위해서니 나는 수련생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자는 절대로 간격을 조성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에 압력은 아주 높았다. 나는 한편으로 묵묵히 감당하고 한편으로 안으로 찾았는데 자신에게 아직도 두려운 마음이 있어서, 박해받을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저와 경찰은 구도하고 구도되는 관계인데 현 단계의 심성이 비록 경찰을 구도할 수 있는 표준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경찰을 끌어서 업을 지을 수는 없습니다. 수련을 잘했던 못 했던 모두 사부님께서 상관하시지 구세력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그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그 염을 움직이지 않으면 구세력 그것은 방법이 없습니다.’

한번은 한 수련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녀들 소조 수련생이 집에서 법공부 하다가 공안국에 납치됐는데, 거의 80세가 된 노년 수련생이 심장병이 발작해 지금 국가보안 대대 사무실 바닥에 누워있다는 것이다. 말 밖의 뜻은 나에게 가보라는 것이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실내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너는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하지? 목숨도 사부님께서 주신 것인데. 정법이 필요로 하고 사부님께서 필요하시고 수련생도 내가 필요하다. 수련생이 납치당했는데 내가 집에 있어도 마음은 역시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래 가자.’ 공안국에 도착하니 경찰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나는 내친김에 경찰 입장에 서서 곤경에서 도와주는 어투로 말했다. 얼른 그녀 아들을 불러 모셔가라고 하세요! 이렇게 연세가 많은데 누가 감히 움직이겠어요! 우리는 서로 정념으로 협력하고 사부님의 정념 가지 하에 수련생은 안전히 집으로 돌아갔다.

납치당한 수련생은 이전에 거의 모두 나와 직접 연락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들이 나를 연루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오직 자신의 염이 바르고 다른 사람을 위하며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하면 가장 안전하다. 수련생들의 이지적이지 못한 행위에 대해 나는 원망도 하지 않고 증오도 하지 않았다.

또 한 번은 현지에서 세뇌반을 연다고 수련생이 전해왔다. 우리 집 문 앞에 잠복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나를 잡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은 수련생이 공안국에서 들었다는 것이다. 속인도 이 소식을 남편에게 전해주었다. 나는 적시에 남편과 교류해 안으로 찾고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게 했다. 내 생각에 두려운 마음이 있으면 닦아 버려야지 피하거나 덮어 감추지 말아야 하며 수련은 거칠 것 없이 평탄하고 신사신법 해야 한다. 박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우리에게 사부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교류를 통해 남편도 정념이 있게 됐고 바깥 형세에 이끌리지 않았다.

5. 수련생을 구출하고 가족과 경찰을 구도하다

수련생 구출에 참여하여 성공한 적도 있고 실패한 적도 있지만, 과정에서 나는 박해를 받은 적이 없다. 다만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 계통 중생에게 진상을 알린다는 생각으로, 평화롭고 이지적으로 부정적인 면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에 따라 그들의 선념을 일깨웠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심성이 승화를 가져왔다. 가족과 공검법의 부분 중생들도 구도를 받았고 감금된 수련생도 격려를 받고 정념을 보탰다.

처음 수련생을 구출할 때 정말 어려웠다. 특히 가족과 접촉하는 이 점에서. 그때 가족들은 사당의 거짓말에 너무 깊게 중독돼 사악의 이간질에 넘어가 나와 수련생을 쫓아냈다. 어떤 이는 갖고 간 선물을 위층에서 던져버리고 어떤 이는 위협전화를 하고 욕을 했다. 어떤 수련생은 우리가 생각을 잘못했다고 말했다.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내 입술에 물집이 생겼다. 하지만 우리는 낙심하지 않고 한번 또 한 번 집을 방문했다. 매번 선물을 주고 정신적으로 그녀들을 위안했으며 생활에서 그녀들을 관심하고 배려했다. 한번 또 한 번 그들을 데리고 공검법 계통을 오갔다. 어떤 가족들은 드디어 우리의 행동에 감동해 점차 지지하고 우리가 진상을 알리는데 협력했다.

처음 공검법 기구에 갔을 때 나도 직접 진상을 알리지 못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사부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해 차츰 두려운 마음이 없어지고 출입이 자유로웠다. 공검법은 공중장소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됐으며 누구나 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장애가 없어지자 자연히 진상을 알리는 상태에 들어갔다.

나는 법 공부팀에서 수련생들과 교류했었다. 어떻게 해야 경찰에게 진상을 알리고 박해를 저지할 수 있는가, 항상 대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인 데서 주동적으로 바꿔야 한다. 어떤 수련생은 너무 어렵다고 했지만 내 생각에 출발점은 그들을 구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박해를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대 전쟁에서도 사신(使臣)은 죽이지 않는다는데! 게다가 사부님께서 설법하셨다. “당신이 좋은 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나쁜 일을 생각해서는 안 되며, 가장 좋기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4]

한번은 수련생 두 명이 납치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녀들은 시골에 내려가서 자료를 배포하다가 현지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그때는 오전 10시 전후였는데 이 소식을 들은 몇몇 수련생들은 한곳에 모여 상의했다. 가장 빨리 반드시 정확한 소식을 알아내야 한다. 모두 말이 없어서 나는 우리 집에 가자고, 협조에 편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차에 앉았고 남편 수련생은 묵묵히 집으로 운전했다. 이번의 시골행은 남편이 수련생들을 차에 태워 간 것이다. 다른 수련생들은 모두 안전하게 돌아왔는데 그 두 수련생만 납치돼 마음이 아주 무거웠다. 집에 도착해 나는 집 열쇠를 수련생들에게 주면서 올라가서 발정념을 하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수련생은 사부님께서 상관하고 계시는데 이 경찰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더는 두려워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나는 남편과 상의한 후 인식을 공감했다. 남편이 운전해 함께 공안국에 가서 남편은 멀지 않은 곳에서 발정념 하고 나는 혼자 공안국으로 들어갔다.

그때는 이미 점심 11시였다. 전체 공안국에 접수실에만 젊은 경찰 두 명이 있을 뿐이었는데 그중 한 사람은 며칠 전에 금방 알게 된 선량한 경찰이었다. 그도 출근한 지 며칠 되지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잘 왔구나, 사부님께서 정말 자비하시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나는 발정념 하면서 시간을 끌어 그 낯선 경찰이 통화할 때 얼른 아는 경찰에게 온 뜻을 밝혔다. 그는 조금 있다가 소식을 알아봐 준다면서 시골 파출소 소장의 연락처를 나에게 주었다. 나는 수확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 직접 공안국에 가서 사람을 석방하라고 하는 것이 어떠냐고 수련생들과 교류했다. 수련생들은 관련 책임자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한 수련생은 국장과 아주 잘 아는 사이여서 전화 진상을 책임졌다.

이때 아는 경찰이 전화해서 수련생 두 명이 불법적으로 공안국에 감금됐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시골 파출소 소장에게 전화해 나도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라고 명확하게 밝히고 그들에게 붙잡힌 수련생의 남편은 외지에 있으며, 수련생이 어디에 갇혀 있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나는 또 더 무거운 말투로 그 소장에게 알려주었다. “사실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당신들입니다, 당신들은 절대로 부정적인 역할을 하지 마세요!” 현지에 직접 파룬궁 박해에 참여해 응보 받아 사망한 경찰이 몇 명 있기에 공안국 내부에서 반향이 아주 컸다. 그는 재빨리 말했다. “그럼 당신은 얼른 오시오!”

이후에 안 일이지만 그때 그들은 납치당한 수련생의 가족을 찾지 못했고 소장은 나를 그 수련생의 가족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우리도 무슨 속셈인지 몰라서 좀 불안했다. 시간은 오후 3시가 넘었고 방안은 소식을 듣고 달려온 수련생들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계책을 세우고 방법을 생각하고 어떤 수련생은 다른 사람을 추천해 나와 협력하라고 하지만 주동적으로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이 과정에서 나도 속으로 끊임없이 두려운 마음을 돌파하고 정념을 증가하고 있었다. 저녁 무렵 5시가 넘어 파출소 소장으로부터 다시 독촉전화가 왔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수련생 한 명과 함께 출발 준비를 했다. 떠나기 전에 남편이 말했다. “아이를 데리고 가요. 아이가 집에서 당신을 걱정할 테니.” 12살 된 아들은 출발하기 전에 화장실에 들렀다. 이후에 아들은 말했다. 당시에 붙잡힌다는 생각이 떠올라서 화장실에 가서 자신의 뺨을 힘껏 두 번 때려 즉시 조정했다고 했다. 한 수련생이 말했다. “가세요. 우리가 발정념 하겠습니다.”

공안국에 도착해 다른 수련생들은 모두 차 안에서 발정념 하고 우리 일행 3명은 공안국 로비에 들어가서 사무실마다 찾아다니면서 두 수련생이 있는지 확인했다. 책상 위에 일부 대법 서적이 놓여 있었고 한 수련생은 이미 경찰과 협력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사건을 처리하는 소장을 찾아가 진심으로 가족처럼 몇 마디 부탁했다. 그가 확실히 파룬궁 박해에 참여하기 싫어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다시 위층 국장 사무실에 들어가서 아주 자연스럽게 그와 이야기를 했다. 목적은 국장에게 사람을 석방하라는 것이지만 면담은 딱딱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가 다른 공간의 사악에 조종당한 것을 알고 있다. 그의 행동은 불안정했다. 손에 들고 있는 펜을 끊임없이 돌리면서 여기저기 한마디씩 했다. (당시 현지 수련생들은 모두 집중해 발정념을 했음) 나는 조급해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다만 어떻게 해야 알맞게 그에게 진상을 똑똑히 알릴 수 있겠는지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주셨다. 그의 한 친척이 예전에 나의 선생님이었던 것이 생각나서 이 기회로 화제를 끌어냈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진상을 알렸다.

처음에는 보름은 감금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인정하지 않고 반복하여 쟁취했다. 조금 있더니 일주일은 감금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에 사흘 감금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동의하지 않았다. 내 생각에 수련생이 1분 동안만 감금되어 있어도 박해이고 경찰은 죄를 짓는 것이다. 나는 국장에게 말했다. “당신은 절대로 그들을 감금하면 안 됩니다. 감금하면 더욱 문제가 될 겁니다. 어쩌면 그때는 당신 말이 소용없을지도 모르지요. 사실 그들은 얼마 오래 감금해도 다 감당할 수 있는데 관건은 당신입니다! 저는 당신이 여기에서 후유증을 남기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의 진정한 일면이 명백해졌을 것이다. 밤 9시까지 이어지다가 두 수련생은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이번에 수련생 구출에 성공한 것은 우리가 공안국에 간 것만이 작용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고리마다 누군가가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두 수련생의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수련생들은 그녀들의 수련상태에 집착하지 않고 힘을 다해 발정념을 했다. 특히 국장에게 진상을 알린 수련생은 마음이 순수하고 염이 바르다. 현지의 박해로 응보 받은 사례를 결합해 이해관계를 얘기하면서 국장에게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그에게 스스로 선택하게 했는데 마음은 완전히 그를 위한 것이었다. 수련생들은 자아를 내려놓고 전체적인 협력 효과에 도달했다.

사후에 나와 몇 번 거래를 한 국가보안 경찰이 아주 신기하다는 듯이 나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수련생이 납치되는 일)만 있으면 당신이 옵니까? 말 밖의 뜻은 ‘당신은 붙잡힐까 봐 두렵지 않습니까?’였다. 나는 진심으로 그에게 알려주었다. “저도 붙잡혔었고 붙잡힐까 봐 두렵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붙잡힌 수련생과 그들 가족의 느낌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밖에 제 생각에 한 사람으로서 친구에게 어려움이 있으면 당연히 도와야 합니다. 수련생이 납치당했는데 내가 안 오면 사람의 자격도 없습니다. 사람은 정정당당해야 합니다. 하물며 파룬궁은 잘못도 없는데요. 기왕 제가 배웠으면 당당한 모습이어야 합니다. 껍데기 속에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나는 말했다. “곰팡이 낀 어두운 공간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그에게 대법의 아름다움과 대법제자가 무엇 때문에 사람을 구하는지 알려주고 파룬궁을 배우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고 파룬궁을 붙잡는 것이야말로 위법이라고 알려주었다. 중점적으로 박해에 참여해 초래된 심각한 결과를 얘기하고 박해를 폭로했다. 마지막에 나는 그를 격려하며 말했다. “당신은 꼭 좋은 보답이 있을 겁니다.” 그는 무엇 때문이냐고 물었다. 나는 말했다. “대법제자는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당신이 좋은 사람을 도와주었으니 당신도 좋은 사람이지요. 당연히 좋은 사람은 일생 평안해야 합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감동하면서 대법제자를 아주 존경했다.

나도 아주 기쁘고 안심이 된다. 금생에 사부님의 제자로 될 수 있고 조사정법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가장 큰 영광이다 !

이상은 내가 몇 년 동안 수련 중에 약간의 체험이며 이 자리를 통해 은사님의 자비로우신 가호에 공손히 절을 올린다! 남편과 아이, 그리고 수련생들이 몇 년 동안 묵묵히 지지하고 협력해 주심에 감사드린다!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각지 설법2-2002년 미국필라델피아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2-가로막지 못하리(無阻)’

[3] 리훙쯔 사부님 경문: ‘정진요지-불성무루(佛性無漏)’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문장발표: 2014년 11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밍후이 대륙법회>제11기(2014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1/15/2996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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