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둥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2년부터 2003년에 본 지역 수련생이 외지에서 설립한 몇 개 대형 자료점이 사악에게 파괴됐다. 자료점의 대부분 수련생은 납치당했고 다수 수련생은 불법적인 10년형을 받았다. 경찰은 수련생에게 고문을 가해 어떤 수련생은 감당하기 어려워 나를 자백했다. 나는 마지못해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됐다. 경찰은 나에게 체포영장을 내리고 현지 ‘610’과 국보대대 경찰은 곳곳에서 나를 붙잡았다. 1년 후 나는 납치됐는데 현지 경찰은 나를 붙잡은 것을 경축하기 위해 폭죽까지 터뜨렸다. 경찰은 나를 붙잡기 위해 대량의 인력과 물력 자원을 소모했다고 한다.
정념으로 ‘10년’ 판결을 부정
경찰이 나를 공안국 국보대대 취조실에 납치해 갔을 때 지방 ‘610’ 두목은 이미 거기에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이번 행동을 자신이 배치했다고 했다. 그는 음흉하고 득의양양해 하며 말했다. “이번에 당신이 여기에 들어오면 10여 년을 있게 해야겠어.” 나는 정념이 충분하게 대답했다. “당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화가 나서 힘껏 내 두 뺨을 때리고 이를 악물고 말했다. “내가 결정하는 것인지 아닌지 당신이 지켜봐!”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당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사부님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는 화가 나서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 후 경찰 3명은 나에게 참혹한 고문을 가했다. 나는 그들의 불법적인 질문을 일일이 부정했다. 경찰은 내 옷을 벗기고 속옷도 찢어버렸으며 사지를 전선으로 묶고 내 잠바로 머리를 감싼 채 전기봉으로 온몸에 전기를 가했다. 위아래, 머리, 귀, 눈, 목구멍, 유두, 음부…… 온몸에 전기를 가했다. 파란 불꽃이 내 몸에서 ‘파팟’ 소리를 냈다. 이 강렬한 고통은 참기 어려웠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사부님 나를 구해주세요! 사부님 나를 구해주세요!”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이를 악물고 절대 협조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말을 하지 않자 한 경찰이 컵의 물을 내 몸에 부었다. 담뱃불을 콧구멍에 넣고 또 온몸에 전기를 가했다. 비록 경찰이 힘껏 나를 밟고 있었지만 강력한 전기 때문에 몸이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서 튀어 올랐다. 경찰이 내가 협조하지 않자 고문에 못 이겨 자백한 수련생의 자백서를 갖고 말했다. “당신이 몇 개 자료점 자료를 전달한다는 충분한 증거가 있어. 당신이 인정하지 않고 자료를 누구에게 준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오늘 저녁 당신의 껍질을 벗길 거야!” 나는 확고하게 머리를 저었다. 그들은 허리띠로 나를 힘껏 후려 갈겼다. 그때 몸은 이미 감각을 잃었다. 하지만 마음속에 일념이 있다. ‘절대 다른 수련생을 고발하면 안 된다!’ 경찰 3명은 고문으로 몇 시간 나를 괴롭혔다. 그들은 힘들어 온몸이 땀투성이였고 여기저기에 쓰러졌다. 한 경찰이 말했다. “힘들다!” 기록에 ‘무언(無言)’이라고 적고 나에게 대한 유혈 박해를 끝냈다.
경찰은 나를 붙잡고 나에게 10여년 형을 선고받게 하려 했지만 결국 사부님의 가호 하에, 나의 정념의 부정 하에 나에 대한 경찰의 박해는 이렇게 사라졌다. 마음속으로 똑똑히 알고 있는데 사악은 나를 죽이려 했다. 만약 사부님의 거대한 감당이 없었으면 나는 절대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일념으로 ‘1년 노동교양’ 부정
2008년 베이징에서 올림픽을 하기 전 중국공산당은 불법적으로 대법제자를 붙잡기 시작했다. 아내는 출근길에 공안국 국보대대 경찰에 납치당했다. 경찰은 아내에게 집 열쇠를 빼앗아 우리 집을 수색하러 왔다. 당시 나는 복도에서 소란을 피우는 소리를 듣고 느낌이 안 좋아 안에서 문을 잠그고 사부님 법상과 대법 책을 잘 챙겨 놨다. 경찰은 문을 열지 못하자 문을 미친 듯이 두드렸다. 발광하는 모습을 보고 이웃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놀랐다. 마지막에 경찰은 문을 열다 열쇠가 구멍에서 부러졌다. 그들은 노기등등해 소방차를 불러 창문으로 강제로 침입했다. 두 경찰은 강제로 나에게 수갑을 채우려 했다. 나는 건물 아래 집결한 군중을 보고 크게 외쳤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신앙은 무죄입니다!” 경찰은 나와 아내를 파출소로 납치했다. 거의 먹을 것을 주지 않고 4일간 눈도 부치지 못하게 하고 우리를 지방 구치소로 압송했다.
처음에 구치소에 갔을 때 먼저 임시 감옥에 감금됐다. 교도관은 본래 외국주재 대사관에서 일하는 분이라 진상을 알고 있고 대법제자를 잘 대해줬다. 우리 몇몇 수련생에게 햄도 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일도 시키지 않았다. 우리는 법을 외우고 진상을 알리며 서로 교류하고 격려했다. 환경이 비교적 느슨해졌다. 여기에서 해외에서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에게 감사드린다. 그중 박해를 심하게 당하고 중형을 선고 받은 한 수련생이 있었다. 그는 다른 수련생의 박해 상황을 나에게 알려줬다. 동시에 그 수련생의 생사가 관련된 중요한 일을 나에게 부탁했다. 나는 조급해 빨리 나가서 수련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며칠 후 경찰은 우리 몇몇 수련생을 각자 기타 감옥에 감금했다. 내가 감금된 감옥의 교도관은 아주 흉악했다. 한번은 내가 죄수에게 ‘9평공산당’을 말하고 중국공산당 사당(邪黨)을 폭로할 때 교도관은 경찰에 보고했다. 경찰은 내 두 손발을 하루 종일 수갑으로 채웠고 교도관을 시켜 마구 때리게 했다. 그들은 매일 강제로 나에게 마늘을 담가놓은 물에서 마늘을 까게 하고 완성하지 못하면 화장실에 잠가놓고 일을 하게 한다. 장기간 마늘 물에 잠겨있자 손톱은 흑갈색으로 변해 떨어지고 발바닥도 흑갈색으로 변해 껍질이 벗겨졌다. 그때 나는 박해를 당해 정념이 거의 사라지고 느낌에 하루하루 사는 것이 아주 힘들었다. 1개월 후 나는 1년 노동교양을 받게 됐다.
노동교양소로 가는 길에 나는 비로소 사부님의 법신이 옆에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수련생의 부탁이 생각이 났고 아직 많은 중생을 구하지 못한 것이 생각났다. 이때 나는 강대한 일념을 보냈다. ‘사부님께서 저에게 가지(加持)를 해 주세요. 저는 노동교양소에 가지 않겠어요. 거기는 제가 머무를 곳이 아닙니다.’ 나는 길에서 발정념을 하며 마음이 점차 평온해졌다. 노동교양소에서 신체 검사를 하자 불합격이었다. 노동교양소에 나를 데려다 준 경찰은 노동교양소에 나를 받으라고 빌었다. 하지만 노동교양소는 결연히 받지 않았다.
이렇게 사부님의 가지 하에 정념으로 1년 노동교양 박해를 부정했다.
사악의 경제적 박해를 철저히 부정하다
우리 부부 둘은 각자 남부럽지 않은 직장이 있었다. 2001년 ‘610’ 세뇌반에 납치됐다. 우리가 사악 요구와 명령에 협조하지 않자 ‘610’ 악인은 노기등등했으며 ‘전향’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에게 수련을 포기하라고 협박했다. 그들은 우리 각 직장에 문서를 하달해 우리에게 처분을 주게 하고 무급 휴직하게 했다. 온 가족은 경제력이 사라졌고 생활은 장기간 곤경에 빠지게 됐다.
사악이 우리에게 가한 경제적 박해를 타파하고 진상을 모르는 직장 상사를 구도하기 위해 여러 차례 직장 상사에게 진상편지를 썼다. 몇 년간 3명의 상사가 바뀌었다. (첫 번째 상사는 나를 박해했음) 나는 그들을 포기하지 않고 진상을 알렸다. 나는 세 번째 임명된 상사에게 4~5천 자나 되는 공개편지를 썼다. 상세하게 온 가족이 신앙을 위해 박해를 받은 것을 설명하고 파룬따파는 사람에게 선을 가르치는 불가(佛家) 수련대법이며 건강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장쩌민(江澤民)은 질투심에 파룬궁에 잔인무도하게 박해했고 지금은 이미 각국에서 기소를 당했다. 또 천안문 거짓분신 사건을 알려주고 구이저우(貴州)성의 장자석(藏字石: 중국공산당망이 새겨져 있는 고대의 돌)을 알려주고 막을 수 없는 삼퇴(三退: 중국공산당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의 시대적 흐름을 알려줬다. 마지막에 무조건 정상 출근을 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지도자는 편지를 보고 직접을 나를 찾아와 면담했다. 처음에 나를 만났을 대 아주 열정적이고 나에게 칭찬까지 했다. 하지만 면담에서 그가 공산당에 대한 공포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공산당에 대한 공포와 자아보호로 인해 비록 나의 요구는 들어주지 않았지만, 일정한 정도에서 진상을 알고 대법제자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 그는 또 이 편지를 다른 상사에게 보여주고 또 각 부서에 보내서 보게 했다. 한번은 한 동료가 “당신은 참 잘 썼어요. 아주 재간이 많아요. 우리는 모두 한 번 보았어요. 나는 그 편지를 저장했어요.”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아내는 그를 삼퇴시켜 주었다. 지도자는 나에게 두 세트 기념품을 보내줬다.
2009년 말, 기업은 구조개혁에 직면했다. 직장에서 근무 연한과 직책에 따라 적지 않는 보조금을 준다. 내가 출근을 하지 않기에 직장 상황은 모른다. 직장 동료가 나에게 빨리 찾아가라고 했다. 시 정부 공무원이 이미 직장에 오래 머물렀다며 개혁 조치가 지나면 찾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네 번째) 임명된 상사를 찾았다. 이 사람은 내가 직장 생활을 할 때 직장 상사의 조수였다. 1999년 박해 전 그는 대법을 지지했으며 나에 대한 인상도 좋았고 자주 대회나 각종 모임에서 나를 칭찬한 적이 있다. 1999년 이후 그는 중국공산당 거짓말에 미혹됐다. 수련생도 여러 차례 진상편지를 쓰고 대면해서 진상을 알렸지만 그는 줄곧 진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를 찾아 상황을 설명하고 무조건 보조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는 나를 회피했다. 매번 돌아와 나는 아내와 안을 향해 찾았으며 교류하고 정말로 많은 사람 마음을 찾았다. 예를 들면 재물을 구하는 마음, 조급한 마음, 원망심, 서둘러 목적을 달성하려는 마음 등이다. 이렇게 8차례나 그를 찾았다. 하지만 그는 처리해 주지 않았다. 나는 그가 중국공산당에 미혹돼 진상을 듣지 않고 구도 받을 생각이 없어도 절대 대법제자에게 죄를 범하면 안 되며, 내 돈은 대법의 자원이고 반드시 받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에게 강대한 정념을 발하고 그의 배후의 일체 사악을 철저히 청리하고 경제적으로 나를 박해하려는 일체 사악을 철저히 청리했다. 그런 후 나는 그를 또 찾았다. 무조건 보조금 지불과 출근을 요구했다. 그는 말했다. “당신은 이미 회사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듣고 그가 아직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을 보고 말했다. “내가 회사 사람이 아니면 사악은 왜 매번 나를 박해할 때 회사에 가서 나를 찾지요? 이때 나는 회사 사람이 아닌가요?” 그는 아주 난처하고 스스로 이유가 불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말했다. “당신이 먼저 작업 부서에 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작업 부서에서 동의하면 나를 찾아와요.” 다음날 나는 작업 부서에 상황을 설명하고 그들에게 ‘신앙은 자유고 신앙은 무죄’임을 말했다. 하지만 작업 부서 책임자는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일부로 나를 괴롭히려 했다. 나는 그에게 끊임없이 발정념을 했다. 이때 나와 함께 간 친척 한 분이 엄숙하게 그가 나를 괴롭히는 것을 제지했다. 또 며칠이 지난 후 나는 보조금을 받는 데 성공했으며 또 새로운 개혁조치 된 직장에 출근하게 됐다. 사부님의 가지 하에 나에 대한 사악의 경제적 박해를 철저히 부정했다.
출근 후 발견했는데 이전 동료는 대부분 퇴직 혹은 전임됐다. 직장을 10여 년 떠나 지금 와 보니 모르는 얼굴들이다. 게다가 내 일은 매일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다. 중생을 구도하는 책임이 크다고 느꼈다. 천백 년 이래 그들은 생생세세 윤회환생하며 아마 우리가 그들을 구도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줄곧 시간을 다그쳐 기회를 잡아 사부님의 요구대로 구할 수 있는 중생을 구해서 올 때의 서약을 지키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苦度)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문장발표: 2014년 12월 1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2/17/30162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