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위 문장에 이어
5. 중국에서 진상전파
베이징에서 앤은 수많은 박해당한 파룬궁 수련생을 접촉했다. 그녀는 중공이 광범위하고, 대규모적으로 파룬궁을 박해 탄압하며, 박해가 극에 달하여 살인에까지 이른 것을 볼 수 있었다.
“저는 한 지방에서 그들을 접촉할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 그 곳에는 중국의 각기 다른 지역에서 온 수련생들이 있었어요, 그들은 모두 그곳에 살고 있었는데 어린이도 있고, 노인도 있었으며 젊은이도 있었어요. 저는 그들과 교류했어요. 그들은 후과가 무엇인지를 모두 알고 있었지만 용기가 있었으며, 감히 일체를 내려놓았고, 감히 베이징으로 올 수 있었으며, 감히 그곳에 서서 상방 청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다렌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그냥 베이징에 머물러 있었어요. 저는 스웨덴 수련생과 연락하여 베이징에 올 수 없는가를 물었어요, 왜냐하면 중국 수련생들이 우리를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상황을 알게 된 스웨덴 수련생들은 어떠한 주저도 없이 즉각 베이징으로 왔다. 반드시 외국으로부터 구원의 손길을 찾아야 함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그들은 제각기 나뉘어 중국주재 외국 매체에 연락했다. 미국, 핀란드, 스웨덴 및 기타 국가의 기자가 잇따라 연락이 되었다. 그런 후 외국 기자와 중국 파룬궁 수련생들이 만났고 파룬궁을 진실하게 보도했다.
“베이징에서 나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중국 수련생과 함께 숙박했어요, 미행하는 사람이 있었고 또 괴상한 전화가 와서 교란했으므로 우리는 늘 여관을 바꾸어야 했어요. 사악한 분위기를 곳곳에서 모두 감수할 수 있었어요. 놀라기는 했지만 위험은 없었고, 우리는 순조롭게 사업을 완수할 수 있었어요. 일을 마치고 저는 다렌으로 돌아갔고 스웨덴 수련생도 스웨덴으로 돌아갔어요.”
다렌에 돌아온 후 얼마 안 되어 앤은 또 광저우에서 법회를 연다는 비밀 소식을 받았다. 앤은 중국 남부의 파룬궁 상황을 모르고 있었으므로 몹시 알고 싶었다. 망설이지 않고 그녀는 즉각 비행기표를 사서 광저우로 향했다.
“11월 21일, 저는 광저우로 날아갔어요, 그 먼저 저는 홍콩에서 일하고 있는 ‘스웨덴 매일신문’ 기자와 연락하고 이번 광저우 법회에 그를 초청했어요. 저는 우리에게 외국 기자가 현장에 있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아침에 광저우에 도착한 그녀는 한 커다란 집에 숙박을 했다. 방이 여러 칸이고 열 몇 명의 수련생은 모두 다른 나라에서 온 해외 수련생이었다. 모두들 법회 발언문 번역에 착수했는데 중문을 영문으로 번역해야 했다. 그 때의 광저우에서는 중공의 박해 추세가 이미 시작되어 경찰은 지역에서 국부적으로 파룬궁 수련생을 체포하고 있었다. 앤은 나는 스웨덴 사람이므로 그들은 나를 잡지 않을 것이라고 천진한 생각을 했다. 그녀는 방에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사부님 설법 녹음을 들으면서 수련생들이 와서 함께 교류하기를 기쁘게 기다렸다. 그런데 방으로 어떤 사람들이 들어왔고 많은 사람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그녀는 발견하였다.
“저는 괴상하다고 여겼어요, 우리 파룬궁 수련생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데 왜 이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지? 잠시 후에야 저는 알아차렸어요. 집안에 가득 들어온 사람은 모두 경찰이었고 나는 나갈 수 없었어요. 그들은 나를 나가지 못하게 했어요……”
거처는 경찰에 포위됐다. 방안에 있는 것은 모두 파룬궁 자료, 유화, 서적이었다. 앤은 수련생 중간에 끼워져 서 있었다. 그녀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그들은 나를 체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중국 사람이 아니다. 저는 또 생각했어요, 이건 현실이 아니야! 이건 영화를 찍고 있는 거야”
영화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영화처럼 전개됐다.
밖의 상황은, 경찰이 주택을 포위했다. 안의 상황은, 방안에서는 경찰이 수색을 강행하고 개인 물품을 몰수했다.
파룬궁 수련생은 한쪽에 경찰에 에워싸여 있었다. 앤은 끌려 나왔고 여 경찰의 입에서 서투른 영어가 튀어나왔다.
“당신, 누구야? 어디서 왔어? 왜 이곳에 왔어? 이 회의를 어떻게 알았어?”
앤은 대답을 거절했다.
“말하지 않으면 끌어 가!”
앤은 방에 돌아와 가방을 가져가려 하였다. 방안에 한 발을 들여놓기 바쁘게 한 손이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클로즈업: 인민폐 한 묶음을 그녀의 손에 밀어 넣었다.
“이것은 법회에 기부하는 돈이고 또 사진 칩도 있으니 빨리 가지고 가세요!” 호주에서 온 한 수련생이 낮은 소리로 부탁했다.
밖의 상황: 도로에서 경찰차가 울부짖고 있고, 앤은 경찰에 구류 당했다. 그녀는 밖을 바라보았으나 낯선 거리, 낯선 얼굴뿐이었다.
안의 상황: 심문실. 앤은 배낭을 꼭 끌어안았다.
“뭐라고 불러? 그 사람들을 어떻게 알게 됐어? 경찰이 심문했다.
앤은 침착하게 말했다. “저는 95년도부터 파룬궁을 수련했어요. 아주 훌륭한 수련 방법……”
갑자기, 벽이 쿵쿵 울리더니 옆방에서 사람을 때리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맞은편의 경찰은 얼음장 같이 차가웠고 마치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듯 보고서만 썼다. 보고서를 다 쓰고 나서 앤에게 밀어주었다.
“서명하시오.” 경찰이 명령했다.
“볼 줄 몰라요!” 앤이 대답했다. 경찰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 그녀는 보고서를 찢어버렸다.
그녀는 재차 연행됐다. 경찰차로 압송되었다. 그녀는 고급호텔에 끌려갔다.
앤은 여전히 배낭을 꼭 껴안고 있으면서 속으로 근심이 좀 됐다. 이 안의 것은 대법의 자원이므로 절대 경찰의 손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가방에 뭐가 있어? 가방을 열고 검사합시다!” 경찰이 명령했다.
“안돼요! 제가 스웨덴 대사관 직원을 만나지 않고는 안 돼요.” 앤의 대답은 확고했다.
앤은 세 번째로 연행됐다. 경찰차로 압송되었다. 더욱 고급호텔로 들어갔다.
호텔에 들어가니 경찰이 물러갔다. 웬일일까? 그녀는 큰 호텔을 휘둘러보고는 조심스럽게 문밖으로 나왔다. 일체 모두가 낯설고 사복경찰이 있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녀는 손에 사진 칩을 쥐고 생각했다. 기회를 찾아 이 정보를 반드시 발송해야 한다!
그녀는 호텔에서 금발의 한 서양인이 컴퓨터 앞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다가갔다.
“저기요, 선생님은 스웨덴 사람인가요?”
“그렇습니다!”
정말 스웨덴 사람이네? 앤은 너무 기뻐 낮은 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저를 도와주실 수 있어요? 저에게 사진 칩이 있는데 발송하려 해요. 이는 저에게는 아주 중요해요, 저는 이메일을 발송하려 해요.”
“물론 됩니다. 당신은 저의 메일 박스로 보낼 수 있습니다!”
사진, 편지를 성공적으로 발송하자 앤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계속 주변에 구원요청을 해야 했다! 전화……초조히 기다렸다. 어서 빨리 연결돼야지! 그녀는 초조했다. 전화가 연결되었다.
“저는 핀란드 기자입니다! 우리는 지금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덴마크, 스웨덴 대사관에서도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앤은 구원됐고 그녀는 기자에게 물샐틈없이 둘러싸였다……
6. 베이징에서의 24시간
앤은 중국으로부터 스웨덴으로 돌아갔다. 비록 몸은 조국에 있었지만 그녀는 도리어 여전히 홍색 공포의 상태 속에 있었다. 머리가 어지럽고 멍했으며 긴장하고 불안해했다.
“저는 마음이 무거워 교류할 수 없었어요, 스웨덴 수련생은 이런 경험을 겪은 사람이 없어요, 저는 무슨 일을 하든지 모두 조심스러웠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스웨덴 이 환경에 적응될 수 있었으며 서서히 안정됐어요.”
홍색 중국의 단련을 거친 앤은 용감하게 변했고, 사명감도 증강됐다. 중국 수련생의 처지는 시시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녀와 해외 수련생은 함께 많은 사업을 했다. 국제사회에 중공의 파룬궁 박해를 제지할 것을 호소했다. 나는 얼마 후에 꼭 중국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앤은 속으로 생각했다.
2001년 11월의 어느 날, 여러 스웨덴 수련생들이 베이징에 가서 일을 좀 하자고 앤에게 물었다.
“시기가 왔어요! 나 갈래요!” 앤의 대답은 결단력이 있었다.
이번 베이징 ‘자유의 여정’은 집합 장소와 시간만 있을 뿐이었다. 매 사람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베이징에 도착했다. 집합 시간은 11월 21일, 장소는 천안문 광장이었다. 앤은 여전히 베이징의 한 대학에 머물렀다. 집합 시간을 기다리자니 시간이 너무 오랜 것 같았다. 그녀는 혼자서 이 고풍스럽고도 현대적인 도시를 걸었다. 천안문, 중국의 상징이다, 그는 변화무쌍한 중국의 역사, 흥망성쇠를 증명하고 있었다. 앤은 그를 응시하면서 생각했다. 오늘 너는 증인이 될 것이다!
멀리 바라보니 한 쌍의 서양인이 보였다. 여자는 나리꽃을 품에 안았고, 그들은 천안문 광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또 몇 명의 익숙한 얼굴들을 보았는데 모두들 묵묵히 한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넷……서양인 30여명이 한 곳에 모였다.
“준비, 시작!”
한 목소리의 지령에 따라 그들은 두 개 부분으로 갈라졌다. 앞쪽의 사람들은 땅바닥에 앉고, 뒷면의 사람은 섰다. 모두들 가슴에 단수입장 하였다. 노란색 커다란 현수막이 펼쳐졌고 현수막에는 중문 한자로 ‘진선인(真善忍)’이라고 위에 쓰여 있었고 밑에는 영문으로 “Truth Compassion Tolerance” 라고 쓰여 있었다.
서양 파룬궁 수련생이 천안문 광장에서 세인에게 파룬따파는 좋습니다(法輪大法好)!를 알려 주고 있었다.
천안문 광장의 관광객들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음은 귀청을 찢는 듯한 경적소리와 출동한 경찰로 혼란이 벌어졌다.
“파룬따파 하오! 전 세계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미국이 알고 있고 유럽에서 알고 있습니다! 파룬따파 하오……”
광장에서는 서양 파룬궁 수련생의 외침이 메아리쳤다.
앤은 가슴에 단수 입장하고 결가부좌하고 단정히 앉아서 시종 눈을 뜨지 않았다. 이 날을 그녀는 오랫동안 고대하며 기다렸다. 그녀는 무척 많은 것을 표현하고 싶었으나 이 시각에는 단지 무성의 외침, 움직일 수 없는 위엄만 있을 뿐이었다. 경찰이 다가와서 그녀를 잡아끌었으나 땅에 못 박아 놓은 듯 어찌해도 그녀를 움직일 수 없었다. 나중에는 건장한 경찰 두 명이 와서 그녀를 움직이려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단수입장한 채 까딱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차안에 내동댕이쳐지는 감을 느꼈지만 두 다리는 여전히 풀려지지 않았다. 이때, 귀가에 “파룬따파 하오” 외침 소리가 들리기에 그녀도 두 눈을 뜨고 따라서 외쳤다.
“저는 차문을 열고 ‘파룬따파 하오’를 외쳤어요, 경찰은 아주 사나워 저를 넘어뜨리고는 저의 팔을 비틀었어요. 차안에서 그들은 우리를 구타했어요.”
광장의 서양 파룬궁 수련생은 모두 경찰에 잡혀 경찰국으로 연행됐다.
“그들은 우리에게 손찌검을 했어요, 저의 팔은 얼룩덜룩 멍이 들었어요, 그들은 우리의 여권을 달라면서 우리를 심문했어요. 저는 여권을 그들에게 주지 않았으며 저의 이름도 알려 주지 않았어요. 우리는 갈라지지 말고 함께 있자고 서로 알려주었어요. 경찰은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을 보고는 우리를 지하실에 압송했어요. 계단이 아주 가팔랐고 아래는 쇠창살이 달린 단칸 감방이었는데 벽에는 핏자국이 있었어요. 그들은 우리들을 강제로 다른 감방에 밀어 넣었어요.” 앤이 회억하면서 말했다.
“이 기간 우리는 쉬지 않고 경찰에게 파룬궁은 좋다는 진상을 알려 주었어요. 날은 이미 어두워졌는데 우리는 또 경찰차에 올랐어요. 매 한 사람의 수련생 곁마다 젊은 경찰이 앉아서 지켰어요, 우리는 여전히 끊임없이 그들에게 파룬궁의 진상을 알려 주었어요.”
시간이 소중했기에 서양 수련생들은 분초를 다투어 가면서 절박하게 경찰이든, 일반 군중이든 신변의 매 한 사람에게 진상을 알려 주었다. 그들이 수감됐다는 소식은 이미 발송되었지만 날이 어두워졌으므로 그들을 구출하는 사람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은 경찰에게 끌려 한 곳으로부터 다른 한 곳으로 끌려갔으며. 심문, 자백 강요는 그치지 않았다.
드디어 스웨덴 중국주재 직원이 나타났다. 여 직원이었는데 다급히 말했다. “나는 도처로 당신들을 찾으러 다녔어요. 다 찾아 봤어요. 경찰은 나를 여기에 데리고 왔다가는 또 저기로 데려가곤 하면서 나를 속였어요! 나는 당신들이 아마도 공항 부근에 있을 거라고 짐작했어요,”
이때는 경찰이 파룬궁 수련생을 구류한 시간이 아직 24시간이 되지 않았다. 중공 측에서도 국제법을 위반하고 싶지 않았던지 난제에서 손을 떼려 했다. 스웨덴 국내에서는 ‘서양 파룬궁 수련생 천안문 항의’ 사건을 추적 보도했고, TV방송국은 황금시간에 방송했으며. 매 두 시간마다 사건 진전 상황을 한 번씩 보도했다. 그들의 생사(生死)는 수천수만 가정에 영향을 주었다. 베이징에서 스웨덴으로 가는 비행기는 출발을 기다린 지 이미 여러 시간이 됐으나 승객들은 발생한 상황을 모두 알고 있었기에 모두들 내심으로 기다리면서 기도하고 있었다. 최후시각에 스웨덴 대사관 직원이 탑승구에 나타나 파룬궁 수련생을 하나하나 검사했다. 모두들 별로 중한 상처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자 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스웨덴 수련생은 탑승한 후 기장과 모든 승객에게 사과의 뜻을 표했다.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괜찮아요, 우리 지금은 집에 돌아갈 수 있게 됐어요!” 기장이 말했다.
그 후의 며칠은 ‘서양 파룬궁 수련생 천안문 항의’ 사건을 국제 매체들이 열렬히 방영했는데, 세계 12개 나라에서 온 30여명의 파룬궁 수련생이 천안문 광장에서 평화적으로 호소했다는 내용을 각국의 매체는 다투어 보도했다. 참여자는 분분히 현지 기자의 취재를 받기도 했다……
앤의 이야기는 끝났다. 사실 아직도 많고 많아 책 하나는 될 것이다. 그녀는 여러 해 동안 조용히 있었고 주변 사람들은 그 한 단락 역사를 진작 잊어버렸다. 그녀도 예전의 그녀로 돌아가 조용히 살고 있었으므로 그녀의 예전 일을 다시 언급하는 사람이 아주 적었다. 매 번 중국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녀는 늘 특별한 관심과 감동을 드러내곤 했는데 온후한 말씨, 서글서글한 눈길에는 오히려 말할 수 없는 다른 것이 있었다.
“당신은 알고 있어요? 당신들이 중국 사람인 것을 내가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알고 있나요? 당신들은 사부님 설법을 직접 들을 수 있고, 직접 사부님께서 쓰신 책을 읽을 수 있지만, 우리는 번역을 해야만 비로소 알 수 있어요. 당신들은 중국 사람으로 된 게 얼마나 행운인가요! 당신들은 마땅히 모두 대법을 수련해야만 좋을 텐데 어찌하여 반대하는 사람이 있단 말입니까? 당신들은 정말 너무나 행운입니다! 당신들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어요, 당신들은 사부님 책을 갖고 있어 들고 있으면 읽을 수 있고, 사부님과 그렇게도 가까운데……”
우리 앞의 앤은? 그녀 몸에서 발산되는 차분함이든 아니면 그녀 내심의 그 용감한 마음이든, 모두 대법에 용해되지 않을 때가 없었고 그녀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감각은 더욱 그렇다. 그녀는 사부님과 파룬따파와 그렇게도, 그렇게도 가깝다……
(끝)
문장발표 : 2014년 11월 12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1/11/30009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