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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지혜는 대법수련에서 온다(2)

[밍후이왕] (위 문장에 이어서)

3. 스웨덴에서 매체에 진상을 알리다

귀국한 후, 앤은 예테보리 대학에서 중문을 배우기 시작했다. 대법 책을 읽으려고 그녀는 부지런히 중국어공부를 했다.

“그때는 수련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했어요, 중문에는 전문 용어가 있었는데 모두 시간을 들여야 비로소 알 수 있었어요. 중국 수련생에게 물어보면 이해가 좀 잘 됐어요. 문화적인 내포부분은 좀 어려운 편이었지만 그게 중요한건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수련하기 때문이지요. 법 공부를 통해 어떻게 나 자신을 개변시키고 수련하여 사상경지를 제고해야 하는 가를 알았어요.”

1999년 7월 20일, 풍운이 돌변하여 중공(중국공산당) 당국은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시작했다. 스웨덴수련생은 이 소식을 들은 후, 가장 빠른 시간에 스톡홀름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스웨덴 주재 중국대사관이 있었다. 파룬궁수련생은 중국정부에 청원서를 제출하고 파룬궁 박해를 중지하도록 호소했다. 그러나 청원은 무효가 되었다. 그 때 세계의 언론매체들은 전반적으로 중공관방 언론보도를 전재함으로써 파룬궁에 죄를 뒤집어씌워 모함하고 모욕한 정보를 해외로 만연시켰다.

“그 때 나는 마침 스톡홀름에 살고 있었고, 우리는 현지 매체와 연락해야 했어요, 이를테면스웨덴 TV방송국, 매일뉴스신문에 파룬궁진상을 알려줘야 했어요. 동료수련자는 내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어요, 나는 그때 대중들 앞에 서서 말을 하는 것에 그다지 자신감이 없었어요. 그러나 다른 수련생은 모두 어떤 원인으로 할 수 없었어요.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오직 나 자신에게 ‘무조건 나서라’고 명령할 수밖에 없었어요. 설령 내가 카메라 앞에서 겁에 질려 기절한다 하더라도 나는 해야 한다! 우리는 민중에게 진상을 똑바로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앤은 이번에 도전하기로 했다. 우선 한 신문에 취재를 하도록 했고, 후에 스웨덴 TV방송국의 취재를 받았다. 직접 텔레비전 조명을 받으며 현장인터뷰에 응했다. 사람들에게 파룬궁(法輪功) 진상을 알렸고, 사람들에게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왜 좋은지를 알렸다!

“나는 소파에 앉아서 취재를 받아들였어요. 소파맞은편에는 파룬궁을 반대하는 사람이 앉아 있었고 또 중국문제전문가도 있었어요. 나는 그곳에 앉았을 때 나 자신을 일깨웠어요, ‘두려울 게 없으니 침착하게 확실히 그들에게 파룬궁을 알려야 한다…….’ 나는 내가 해냈음을 알고 기뻤어요.”당시의 녹화했던 프로그램을 다시 보니, 앤은 시종 그렇게 침착하고 평온했으며 온화했다. 많은 관중들을 마주한 현장이었는데, 그녀의 몸에서는 평화라는 일종의 에너지가 발산되었다.

“나는 나의 역량을 최대로 발휘하여 일을 했어요. 왜냐하면, 이 일은 아주 중요하기에 반드시 가서 해야 했어요. 이후에, 감히 내가 해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됐어요! 그 후 우리는 또집중적으로 많은 사업을 했는데, 각국의 총리 등 고위층 정치인들에게 서신을 발송했어요…… ”

4. 베이징 파룬궁 기자회견

앤은 스톡홀름 대학에서 학업을 마쳤을 때 담당교수가 중국어를 배운 졸업생은 중국에서연수를 받으라고 고무해 주었다. 앤은 주저했다. 왜냐하면, 중국본토에서는 파룬궁이 한창박해를 당하고 있는 상태인데, 자신이 언론매체를 통해 중공의 파룬궁박해를 폭로했으니, 그것이 중공에 녹취돼 있을 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생각이 떠올라서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래도 신청했다. 결과는 녹취가 되기는 했지만, 장학금까지 타게 되었다. 그녀는 1999년 8월 순조롭게 비자를 받고 중국 다렌에 도착했다. 그녀는 중국이 변한 것을 보았다. 파룬따파가 휘황했던 다롄의 예전모습은 없었고, 연공장도 없었으며, 수련생을 찾을 수도 없었다.

“나는 중국의 상황이 험악함을 알게 됐고, 수련자들이 혹형에 시달림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나는 이곳에 오기 전 하나의 생각이 있었는데, 바로 ‘내가 중국의 어디를 가든지, 내 눈으로 직접 중공의 박해가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를 보겠다는 것이었어요!”

그녀는 다렌에서 혼자 법 공부와 연공을 했지만 환경이 이상하게 어려웠다. 고독감이 시시각각 엄습했는데, 참으로 수련생이 너무나 그리웠다. 몇 사람을 수소문한 끝에 드디어 수련생 몇 사람을 만났다. 그녀가 알게 된 것은 수많은 파룬궁수련생들이 (중공에) 납치당하고 수감됐다는 것이었다. 중국의 참혹한 살육의 현장은, 그녀가 해외에서 인식하고 있었던 것에 비하면 그 잔혹함이 백배도 넘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앤은 아주 초조했다. 그날 저녁 그녀는 갑자기 몸이 불편함을 느꼈다. ‘병’의 상태가 나타난 것이다. ‘이러지 말아야 하는데 어찌된 일인가?’ 틀림없이 무슨 일이 발생하려는 것이 아닐지.

“밤중부터 몸이 불편했어요, 목에 무슨 물건이 걸린 것 같아 밤새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새벽 6, 7시 경에 전화가 왔어요, ‘누가 이렇게 일찍 전화를 하지?’ 하고 생각했어요.”“앤, 베이징에 올 수 있어요? 몹시 중요해요, 올 수 있다면 빨리 와 주세요, 우리는 앤의 통역이 필요해요!” 전화에서 들려오는 여자 수련생의 말투는 다급했다.앤은 잠시도 주저함이 없이 담당 선생님에게 허가를 청한 후 즉시 베이징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이튿날 아침에 베이징에 도착했어요. 베이징은 몹시 추워서 베이징 수련생이 나에게 옷을빌려 주었어요. 그들은 택시를 잡아타고 몇 개의 다른 장소를 거치면서 몇 명의 수련생들과 회합하는 것이었어요, 우리는 또 수련생이 운영하는 미용실로 가서 머리를 다듬어 좀 보기 좋게 꾸몄어요.”

앤은 무슨 일이 발생하려는지 알 수 없었지만, 다만 수련생들이 뭔가 큰일을 하고 있다는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힘을 다해 협력하였다. 그들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이제 곧 무슨 일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제기자회견이 이곳에서 곧 열리게 된 것이다. 일반적인 보통의 호텔회의실에서 수련생들이 모두 묵묵히 회의장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분위기는 무거웠다. 방 두 칸을 얻어서 한 칸은 여자수련생, 한 칸은 남자수련생이 각각사용했으므로 외지에서 온 수련생들은 그곳에서 세수하고 머리를 빗고 단장을 할 수 있었다. 수련생은 새로 옷을 구입해서 미처 갈아입지 못한 수련생에게 입혔다. 모두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진행됐는데, 앤은 이런 모든 걸 보고 있었다.

“수련생들은 이런 기자회견을 중공이 금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용기를 내어자신들의 신분이 폭로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이 일의 후과를 분명히 알고있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외국 매체를 분연히 만났던 것입니다. 이런 장소에서는 매 사람마다 모두 단정한 모습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의복은 깔끔하고 신분에 맞도록 했어요. 수련생이 한 이 일체에서 나는 마음속으로 몹시 감동했어요.”시간이 되자 현수막을 걸었어요. 위에는 “중국대륙 파룬따파 기자회견”이라 썼고, 아래는 파룬도형과 사부님 법상이었어요.”

北京法轮功学员记者招待会

베이징 파룬궁수련생 기자회견

로이터 통신기자가 제일 먼저 회견장에 들어오더니 지체할 새 없이 곧바로 파룬궁수련생들을 향해 카메라로 녹화촬영을 시작했다. 곧 이어서 AP통신과 뉴욕타임스기자가 총총히 도착하여 취재를 다그쳤다. 박해폭로를 위해 처음 나선 사람은 11세 남자어린이, 현직경찰관, 사회 각 분야의 인사들이었다. 도합 30여 명의 파룬궁수련생이 왔는데, 그들은 모두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국제사회에 중공의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잔혹한 박해의 흑막을 폭로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국외기자들은 모두 파룬궁수련생의 용감함, 견강, 불굴 등의 자세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즉각 국제사회에서 일대 파문을 일으켰다. 중공이 파룬궁에 대해 가한 피비린내 나는 박해에 대해 반박할 수 없는 증거가 된 것이다. “이는 당시 국가주석인 장쩌민이 대외에 ‘파룬궁수련생을 온건하고 부드러운 방식으로 교육 한다’고 막 천명했을 때 거행된 기자회견이어서, 이 회견은 장쩌민의 따귀를 철썩하고 때린 것이다”라고 외국평론이 평했다.

“나는 당시의 수련생들을 잊을 수 없어요, 그건 내가 직접 보고 직접 들은 것이며. 또 중국에서 발생한 박해진상을 모두 겪을 기회가 있었어요, 기자회견을 했던 수련생들의 집을 가보았는데 아주 단출한 집이었어요, 화장실도 샤워실도 없고 또 바람막이가 제대로 안 돼몹시 추웠어요. 그러나 잇따라 발생한 일들은 나를 더욱 괴롭게 했어요, 머리를 짧게 땋은 아주 예쁘게 생긴 4세 된 여자아이와 그의 아빠가 우리와 함께 식사를 했는데, 그 아이가 밥을 아주 많이 먹었어요. 굶은 게 분명했어요, 뜨끈뜨끈한 밥 한 끼 먹은 것으로 해서 그 아이는 유달리 기뻐하는 것이었어요. 여자아이는 말했어요, ‘엄마가 체포돼서 감옥에 갇혔기 때문에 아빠가 베이징에 와서 상방(진정)한다고 ……”앤이 후에 들은 소식으로는, 기자회견에 참가했던 파룬궁수련생들은 연이어 계속 체포됐으며, 통역을 맡았던 차이밍타오(蔡铭陶), 미용사 딩옌(丁延)도 모두 박해를 받아 사망했다고했다.

(계속)

문장발표 : 2014년 11월 1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1/11/30009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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