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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지혜는 대법수련에서 온다(1)

[밍후이왕] (밍후이기자 즈윈) 일종의 고독함으로 그(그녀)는 다만 자신의 세계 속에서 조용히 살아갈 뿐 다른 사람과 모여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사람들은 늘 그들을 외로운 사람으로 여겼다. 사실, 고독은 적막이 아니다. 앤 (Anne Hakosalo)이 바로 고독하면서도 적막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많은 사람 앞에서는 언제나 부끄러움을 탔고 겁이 많았다. 학급에서도 그녀는 학우들 앞에서 말하기 어려워했다. 학우에게 조롱을 당하고도 감히 말하지 못했으며 자신의 의견이 있어도 감히 발표하지 못했다. 대학에 가서도 그녀는 여전히 부끄러움이 많아서 얼굴이 붉어졌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여학생이었다. 그녀는 이 때문에 자신이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그러나 그녀의 인생을 되돌려 회상해 보면 그녀는 완전히 달라 부끄러움이란 없었고, 두려움 없이 많은 매체 기자들의 질문에 태연하게 대답하였다. 이 사람은 정말 그녀인가? 그녀를 바라보면서 예쁜 아가씨였던 그때의 모습과 오늘의 온화한 태도와 우아한 행동거지에서 그녀의 타고난 연약한 성품은 감출 수 없었다. 그런데 그 한 순간, 그녀의 용기, 지혜는 어디서 온 것인가?

“파룬따파가 저에게 준 것이예요!” 앤이 말했다. “저는 이미 대법 수련을 한지 거의 20년이 돼 가요. 그런 일은 지나간 지 모두 아주 오래돼서 많은 것은 기억이 잘 안나요……”

우리의 기대 속에서 앤은 서서히 그녀와 파룬따파(파룬궁이라고도 부름)가 인연을 맺게 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1. 전전 끝에 대법을 만나다

  九十年代时的安妮•哈卡萨拉

90년대 시절의 앤

앤은 일찍 교회에서 심령의 안위를 찾았다, 하지만 그녀의 생명 속에는 뭔가 한 가지 물건이 있는 것 같은데 도대체 무엇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고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묵묵히 찾았고, 사업을 따라 표류하면서도 마음은 고독 했다. 그녀는 호텔, 식당 사업을 해보기도 하고 또 관광 상업 작가도 되었다. 후에 그녀는 크루즈선에서 음식 도우미도 했는데 크루즈 사업은 그녀에게 아세아주 일부 국가를 관광할 기회를 주었다.

1993년, 그녀는 태국을 관광할 때 불가의 이론에 깊은 흥취를 가진 스웨덴 젊은이 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 젊은이는 일본의 불문 수도원에도 갔었다. 그는 앤에게 불가수련 방법을 소개하고 그녀에게 불가 입문 수행을 추천했다.

“아닙니다, 아니예요. 저는 수녀나 비구니는 되지 않을 거예요, 저는 사회를 벗어나지 않을 겁니다” 앤은 분명히 밝혔다.

앤은 순수한 서양 사람이지만 그녀는 동양의 신앙을 배척하지 않았다. 그녀의 신앙은 심령의 귀착지로서 모두 존중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후에 그녀와 그 젊은이는 일본에 가기로 약속했다. 그들은 일본의 대 삼림 속을 거닐면서 여전히 수행에 대해 담론했다. 앤은 뭇 산의 밀림 속에서 보일 듯 말 듯 숨어있는 절들을 보면서 망연함을 느꼈다. 어떻게 정법의 법문을 찾아내야 할 것인지?

“이는 당신 스스로 결정해 반드시 대문을 맞게 두드려야만 합니다!”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이렇게 큰 삼림 속, 이렇게 많은 절중에서 어떻게 맞게 대문을 두드릴 수 있을까요?”

“때가 되면 그 문은 자연히 열릴 것이로다!”

그녀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저 우스갯소리를 하는 줄로 여겼다.

고향 스웨덴으로 돌아온 앤의 생활은 개변이 없었다. 그녀는 태극을 연마하면서 태극의 이론 과정을 수강했다. 동양의 철학 어휘는 심오하여 그녀를 어렵게 하였다. 무슨 원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태극 과정이 갑자기 중단돼 선생님이 오지 않았다. 파룬궁을 수업한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파룬궁’이란 세 글자를 듣자마자 앤의 머리를 갑자기 무엇이 두드리는 것 같았고, 기묘한 감각이 그녀에게 알려 주었다. “시간이 되었다!”

이렇게 앤은 순조롭게 파룬궁 학습반에 참가하게 되었다.

스웨덴 예테보리 파룬따파 학습반은 리훙쯔 선생님이 직접 전수하셨고, 1995년 4월 14일부터 20일까지 7일 동안이었다.

무엇이 파룬따파이고 대법 선생님은 어떠한가? 그녀는 아무것도 몰랐다. 시간이 되자 그녀는 갔다. 그 곳에 가서 그녀는 대법 사부님- 리훙쯔 선생을 보았다. 키가 큰 사부님은 얼굴이 잘 생기셨다. 학습반에서 사부님께서는 가장 기초부터 말씀하셨고 강단 아래에는 백여 명의 서양 수련생이 있었다. 사부님 옆에는 동시통역을 하고 있었다. 모두들 통역을 통해 귀를 모아 사부님 설법을 빼놓을세라 듣고 있었다. 무엇이 파룬따파인가? 무엇이 수련인가? 인체와 우주간의 관계, 등등 등등, 앤은 도취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사람은 세속 사회에서 수행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앤은 뛸 듯이 기뻤다!

“이것이 바로 제가 찾던 것입니다! 이는 나에겐 가장 완벽한 방법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업, 생활하면서 수행하고 연공할 수 있다! 이건 너무 좋은 것이었습니다!” 앤은 너무 기뻤다, 사부님의 한 마디 말씀이 그녀의 마음 속 자물쇠를 열어 주었던 것이다.

7일 동안의 수업에서 사부님은 많은 것을 말씀하셨고 모두들 사부님 설법에 빨려들었다. 사부님은 모르는 것이 없었고 해법이 능숙했다. 수련생이 무슨 문제를 묻든 사부님께서는 모두 분명하게 답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또 직접 수련생의 몸을 조절해 주셨다.

“저의 무릎은 상해서 조금만 멀리 걸으면 아프고 부었어요. 또 편두통이 있었고, 두 어깨가 질리어 활동이 아주 불편했어요. 제1장 공법을 배우고 2장 공법을 할 때 시작에는 아주 힘들었어요.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연공하는 중 신체가 바로 잡혀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정말로 진실하게 느꼈어요. 저의 신체 혈위가 에너지 흐름에 열려진 후, 목, 어깨, 무릎과 머리 모두에 에너지 흐름이 강력했어요. 상했던 저의 무릎은 굽히기 어려웠는데 후에는 놀랍게도 앉아서 가부좌까지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라고 앤이 말했다.

신체는 짧은 시간에 편안해 졌고, 15살부터 아프기 시작했던 두통이 사라졌다. 이 7일은 앤에게 너무나 많은 진감을 가져다주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내 몸은 나는 것 같았어요. 집으로 오는 길은 오르막인데 자전거를 탈 때 나는 것 같았어요”라고 앤이 말했다.

겨우 7일인데 원래 표현을 잘하지 못하던 그녀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입을 열고 질문했다. 너무 많은 문제를 사부님께 가르침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앤은 말했다. “나에게 문제가 있으면 사부님께서는 곧 저에게 답안을 주셨어요. 저의 마음속 매듭이 풀려지자 마음은 대번에 차분해 졌어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바른 에너지와 수련의 환경은 나를 너무나도 편안하게 해 주셨어요. 그때는 사부님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랐어요. 선생님이라 할까? 부친이라 할까? 사부님은 그렇듯 자상했는데 그런 감각은 너무나도 특별했습니다.”

예테보리 파룬따파 학습반은 거의 유럽에서 파룬따파 홍전의 기초로 되다시피 했다. 바로 그때에 수련생들은 사부님 설법 후 예당 뒤의 작은 산등성이에 현지의 첫 번째 파룬궁 단체 연공장을 설립했다. 이 연공장은 줄곧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사부가 도제를 찾지 도제가 사부를 찾는 것이 아니다”[1]는 수련계의 한 마디 말로서 가진 뜻이 심원하다. 이에 대해 스웨덴 파룬궁 수련생은 감탄하지 않는 이가 없다. 사부님께서 대법을 문 앞까지 보내주신 것이다!

2. 즐거운 베이징 행

1995년 크리스마스 전, 대법을 얻은 스웨덴 파룬궁 수련생들은 중국에 가기로 약속했다. 이는 한 차례 즐거운 중국행이었다. 열 몇 명의 수련생이 참가했는데 앤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함께 한 부의 대법을 수련함으로 수련생 사이에서는 서로 ‘동수’라고 불렀는데 가족같이 화목했다. 함께 식사하고 함께 교류하며, 함께 밖에서 연공했다.

“밖은 아주 추웠어요, 우리는 아직 신수련생이어서 중국 곳곳이 모두 신기했어요. 그때 중국 수련생의 손에는 모두 중문판 ‘전법륜’이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단지 얇은 ‘파룬궁’ 책 한 권만 있었어요. 서로 교류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알게 됐어요. 앤이 회억에 잠겨 말했다.

그들이 베이징에 도착한지 며칠 안되어 영문판 ‘파룬궁’ 책이 여러 사람에게 전해졌다. 바로 설 첫날이라 사부님께서 수련생을 보러 오셨다. 사부님께서는 영문판 ‘파룬궁’ 한 권 한 권을 매 서양 수련생 손에 쥐어주셨다. 앤은 두 손으로 사부님께서 주시는 책을 받아들고 몹시 흥분했다. 그녀에게 갑자기 일념이 생겼다. 그것을 스웨덴어로 번역하자! 하지만 자신은 번역에 그다지 능하지 못하다, 그러나 이 일은 아주 중요한 것 같다! 그녀는 즉시 앞으로 나아가 사부님께 요청했다. “사부님, 지금부터 번역에 착수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주 좋습니다! 스웨덴어로 번역하십시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숙소로 돌아온 앤은 단숨에 영문판 ‘파룬궁’을 다 읽고 격동된 심정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 때에 사부님께서는 서양 수련생더러 중국에 가서, 중국사회가 어떻게 운행되고 있는지, 중국 사람은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보라고 고무해 주셨다. 그래서 후에 서양 대법제자들이 해마다 중국 ‘친정으로 돌아오는’ 재미있는 일이 나타났던 것이다.

1996년 10월 25일, 제1차 국제 파룬따파 법회가 베이징에서 열려 앤도 재차 중국에 오게 되었다.

앤은 베이징의 한 대학에서 숙박했다. “저는 학교에서 나와 활동 장소에 갔어요. 우리는 공원에서 함께 연공하고 함께 자신의 수련 경력을 교류했어요” 앤이 회억했다. 이때의 앤은 더 이상 심리 교류 장애가 없어졌다. 대법은 그녀의 봉폐된 상태를 열어주어 그녀의 마음이 밝아졌다. 중국 수련생의 열정적인 친절은 시시로 서양 수련생을 감동시켰다. 대법 수련 환경은 바로 한뙈기 정토로서 그녀를 녹아들게 했다.

법회가 끝난 후 여러 사람을 조직해 톈탄공원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식사가 막 끝났을 때 앤은 갑자기 한 가닥 강대한 에너지를 느꼈는데 몹시 강대했고 너무 강했다. 그녀가 밖에 나가 막 바람을 쏘이려고 하는데 사부님께서 오신 것이 보였다. 그날 사부님께서 수련생들에게 설법하셨는데 후에 ‘베이징 국제 교류회 설법’으로 발표됐다.

사부님을 만날 때마다, 대법 서적을 통독할 때마다 앤은 대법 원문을 요해하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중국말을 알아듣고 사부님께서 쓰신 중문 책을 알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녀는 중문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녀는 중문에 빠져 버렸다. 96년의 가을, 그녀는 또 베이징에 다녀왔다.

“그 한 때 저는 늘 수련생과 함께 있기를 기대했어요. 모두들 아침이면 가부좌하고 정공연마를 했고, 저녁이면 동공과 법 공부를 했어요. 그들은 저를 영어반의 법 공부 소조에 데려다 주었어요, 저의 중문은 아주 차해서 모두들 저를 도와주려 하면서 제가 중국 수련생과 함께 숙박하기를 건의했어요. 저는 중국 수련생의 집에서 머물렀어요. 그 한 동안은 그야말로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계속

주:[1] 리훙쯔사부님저작:《전법륜》

문장발표 : 2014년 11월 10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1/10/3000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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