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자비로우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수천만 대륙 수련생과 함께 사존을 따라 평범치 않는 14년을 걸어왔는데 시시각각 사존의 자비로움과 보호를 느낄 수 있었다. 펜을 들어 인터넷 법회에 참가한다고 생각하자 비할 바 없이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수련의 길에 다 말할 수 없는 체득과 신기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지면의 제한으로 몇 가지 실례만 들어 수련생들과 함께 나누겠다.
인연으로 대법에 들어서다
1998년 상반기, ‘전법륜’을 처음 읽었을 때 대법이 매우 좋다고 생각했지만 수련하겠다고 결정하지 않아 책을 언니에게 돌려주러 갔는데 당시 언니가 수련하겠냐고 물었다. 나는 “성격이 좋지 않잖아요, 수련은 엄숙한 일이기에 잘못하면 죄가 있을 것이고 벌 받을까 걱정이에요”라고 했다. 언니는 “걱정하지 마, 천천히 고치면 돼”라고 했기 때문에 나는 또 책을 집으로 가져왔다.
‘전법륜’을 두 번째로 읽었을 때 처음 읽었던 것과 완전히 달랐고 대법은 사람을 승화시켜 높은 경지로 올라가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얼마만큼 대가를 치르면 그만큼 얻는”[1]다는 것은 매우 공평하다고 생각해 뿌리를 박고 연마하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매일 법공부하고 연공을 견지했는데 공법은 아침저녁으로 연마했다. 평소 일하고 생활할 때 엄격하게 대법 표준대로 자신을 요구했다. 20여일 후 대법의 초범함과 신기함을 내 몸에서 나타났다. 첫째, 저녁에 잘 때마다 침대가 둥둥 기계같이 박자를 맞춰 움직이고 진동이 매우 컸는데 연속 수 개월 지속됐다. 둘째, 한 가닥 에너지가 몸속에서 나선식으로 발끝부터 위로 돌고 있는 것 같았고 매우 편안한 느낌이었다. 셋째, 연공할 때 한 가닥 에너지가 파도처럼 한 번 또 한 번 가슴에서 위로 아래로 올라왔고 동시에 한 가닥 에너지가 레이저처럼 뒷목부터 귀 양쪽으로 발산(표현이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하는 것 같았다. 당시 매우 현묘한 느낌이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신체를 조절해주시고 정화해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우리는 시작하자마자 곧 백맥이 전부 열린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백분의 팔, 구십 사람들이 현재 모두 온몸이 가벼운 상태에 도달했으며 병이 없다.”[1]라고 말씀하셨다. 병을 고치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수련 후 몇 년 동안 나를 괴롭히던 질병, 왼손 손바닥 골다골증, 경추 양쪽에 있던 오리알 크기의 종기, 고혈압(210/139), 30여 년 동안 낫지 않았던 중이염, 몹시 아팠던 흉막비후(후유증)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점심 12시부터 저녁 12시까지 미열이 지속돼 9개월 간 약을 먹었는데 이후 의사가 보통 6개월 약을 복용했으면 매우 긴 시간이라면서 더 이상 약을 처방해줄 수 없다고 했다. 때문에 나는 죽는 것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이 37~8세였고 아이는 몇 살 되지 않아 매일 고통스럽게 살았지만 정말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매일 몸이 매우 편안하고 즐겁고 안색이 좋으며 온몸이 가볍다. 이 모든 것을 주신 사부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걸어 나와 법을 수호하다
1999년 ‘7.20’이후 사당의 대법에 대한 천지를 뒤엎는 듯한 모욕과 박해에 직면해 한때는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라 속으로 매우 괴롭고 슬퍼 집에서 통곡했고 어떤 때는 법공부하면서도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좋은 공법인데 연마하지 못하게 하면 얼마나 아까운가! 얼마나 사악하든지 꼭 연마하겠다. 법이 있고 사부님 법신의 보호가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나는 변함없이 법공부하고 연공하고 법을 외웠다. 한동안 꿈에서 늘 국어, 수학, 물리, 화학 시험을 봤는데 다 객관식 문제였다. 또 꿈에서 중앙역까지 가는 기차를 탔는데 역전마다 내리는 사람이 있었다. 이것은 걸어 나오라고 사부님께서 점화해주신 것이라고 깨달았다. 나는 대법제자고 직접 혜택을 받은 사람이므로 당연히 걸어 나서서 법을 수호해야 하고 만약 모두 걸어 나와 백맥이 연결되면 법을 실증하고 사부님을 위해 대법을 위해 말할 수 있는 하나의 강한 정체의 힘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베이징에 가기로 결심했다.
당시 함께 가는 수련생이 있었으면 하자 사부님의 법신은 내게 한 수련생을 배치해주셨다. 박해 초기 천안문 광장에 경찰과 사복경찰이 매우 많았고 우리는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천안문 광장에 도착하자마자 붙잡혔고 신분증도 불법적으로 압수됐다. 우리 둘은 하이뎬구 파출소에 수감됐는데 거기에서 전국 각지에서 온 수련생을 만났고 모두들 매우 친절했다. 이후에 우리는 경찰에 의해 현지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꿈을 꿨는데 자신이 10여살 밖에 안 되고 천정이 없는 한 가마에 앉아 하늘에서 아래로 내려오자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계셨고 옆에 많은 사람이 나를 마중하고 있는 것을 봤다. 깨어난 후 사부님께서 격려해주시는 것이라고 알고 속으로 매우 기뻤다. 현지로 돌아온 후 우리는 구치소에 수감됐다. 어느 날 저녁에 꿈에서 금빛 과일이 온 정원에 가득 달려 있었고 그 중 보라색 큰 과일이 있는 것을 봤다. 다시 한번 격려해주신 사존께 감사드린다.
불법적으로 한 달 수감됐다가 경찰은 또 나를 파출소로 데리고 와서 명ㆍ이ㆍ정으로 나를 고험했고 앞으로 연마하지 않겠다고 서명하라고 했다. 사부님께서 “법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으면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의 사람이 아니며, 당신의 신체를 속인의 위치로 되돌려 놓고, 좋지 않은 것들을 당신에게 돌려준다. 왜냐하면 당신은 속인이 되려고 하기 때문이다.”[1]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나는 협조하지 않고 서명하지 않았다. 이후 사부님의 보호 하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는 몸이 텅 비고 가벼웠으며 사람을 보기만 하면 눈물을 흘리고 싶었고 그들이 매우 가련해 보였다. 다른 수련생은 나에게 자비심이 나왔다고 했다.
이후에 직장, 동사무소, 파출소 간부 5명이 집으로 찾아왔다. 나는 마침 이 기회를 이용해 그들에게 대법을 연마해 심신의 혜택을 받은 사실을 말해줬고 “파룬궁은 좋은 사람이 되고 남과 싸우지 말고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으며 도덕이 높은 사람으로 되라고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이 많아지면 사회질서도 안정되고 경찰도 그렇게 힘들지 않게 되죠”라고 했다. 그들은 들은 후 “됐어요, 원래 당신을 ‘전향’시키려 왔는데 오히려 ‘전향’당했네요”라고 했다.
수련의 길에 사부님의 보호가 있다
2001년 9월 어느 날 오후,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다가 악인에게 고발당해 몇 명 사악한 경찰이 수갑을 채워 공안국으로 나를 납치했다. 2시간 후 파출소로 이송해갔고 6시간 벌을 섰다. 저녁 11시쯤에 가족이 보증하니 나를 집으로 가라고 했다. 경찰은 2,500위안을 내라고 강요했는데 가족이 1,000위안만 주자 경찰은 3일 후 또 나를 찾겠다고 했다. 가족은 두려워 나보고 외지에 가서 일하라고 했다. 이번 납치되기 얼마 전에 경찰에게 납치돼 구치소에서 불법적으로 45일 수감됐다가 또 세뇌반에서 20일 동안 박해받았기 때문에 가족의 심리적 압력을 덜어주기 위해 외지에서 일하는 것에 동의했다.
외지에 온 후 매우 순조롭게 임시직을 찾았다. 한 친척이 나보다 몇 살 어린데 2개월이나 일자리를 찾았지만 찾지 못하다가 나와 함께 동시에 채용됐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셨다는 것을 안다. 낮에 일하고 아침저녁으로 법공부하고 연공했다. 점심 휴식 시간에는 스티커에 글을 쓰고 저녁에 나가서 붙였다. 잠시 다른 수련생과 연락할 수 없어 자료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했다.
이듬해 현지에 돌아왔는데 잠시 친척집에서 살았다. 어느 날 저녁에 나가서 스티커를 붙였는데 마지막 한 장 남았을 때 공안국 정면 골목에 이르렀다. 전봇대에 붙이려 하는데 오토바이를 탄 사람이 오더니 “뭘 합니까?”라고 하자 나는 손을 뒤로 감추고 정정당당하게 그를 보면서 내가 가장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큰소리로 “당신은 뭘 합니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또 “이렇게 늦었는데 혼자서 뭘 합니까?”라고 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친척집에 놀러 갔다 오는 길인데 안 됩니까?”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오히려 관심을 보이며 “무슨 문제는 없으시죠?”라고 했다. “그럼요”라고 하자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공안국 가족 주택단지로 들어갔다. 사부님의 보호가 있었으므로 위험이 있었지만 무사했다!
또 한 번은 한 수련생과 함께 산간지역에 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했는데 저녁 9시가 넘어서야 다 배포했다. 집으로 돌아가는데 어둡고 비가 내려 손전등을 켜면서 산길을 걸었다. 세 갈래 갈림길에 왔는데 어느 길로 가야할 줄 몰랐고 또 어느 방향이 집으로 돌아갈 방향인지 몰라 우리는 멈추고 발정념하고 사부님께 가지(加持)를 청했다. 좀 지나 집으로 가려면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 둘은 똑바로 갈 것을 선택했지만 눈앞의 작은 수림을 지나려면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 몰랐다. 결정을 내리자 작은 수림으로 들어갔는데 신기하게도 몇 분 걷자 가로등이 있는 큰 길이 보였다. 나와 수련생은 “정말로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柳暗花明又一村)”[1]의 기쁨을 느꼈다! 이때 오토바이 택시가 오는 것을 보자 우리는 손을 흔들고 버스 정거장까지 갔다. 도중에 오토바이 운전자는 진상을 들었고 ‘삼퇴’에 동의했다. 우리는 막차를 타고 집에 도착하자 12시가 넘었다.
조사정법한 이 몇 년 동안 우리는 법 중에서 한걸음 한걸음 성숙으로 걸어갔고 자신의 책임과 사명, 어떻게 교란을 제거하고 구세력의 박해를 부정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
2008년 5월 어느 날, 집에서 넘어졌는데 왼쪽 무릎 뼈가 부러졌다. 당시 움직일 수 없어 남편이 나를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괜찮다고 했다. 이것은 구세력의 요소가 강요한 박해라고 생각하고 고통을 참고 천천히 방으로 들어가 90분 동안 발정념을 했다. 당시 무릎의 한 곳이 특별히 아팠고 열이 났는데 그 아픈 부위에 마치 자석이 뼈 부스러기를 중간으로 모아서 복원시키는 것 같았다. 이것은 무릎 뼈가 부러진 것이 아니고 가상이라고 생각하고 상관하지 않았으며 오후에 예전대로 법공부를 하러 갔다.
저녁 식사 때 다리는 또 움직일 수 없었고 저녁 때 아파서 잠을 이룰 수 없자 일어나 발정념을 했다. 구세력의 박해를 해체하고 흑수난귀 및 공산사령의 모든 요소를 제거하고 구세력이 역사에서 배치한 모든 것을 승인하지 않고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읽었다.
아침 3시 반에 일어났는데 기적이 또 나타났다. 벽을 지탱하고 걸을 수 있게 됐다! 정말로 신사신법하면 지나갈 수 없는 고비가 없다! 나는 예전대로 5장 공법을 했고 매일 3강을 배웠다. 일주일 후 씩씩하게 걸을 수 있게 됐고 기쁘게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큰 흐름으로 돌아왔다.
십여 년 동안 이런 기적은 헤아릴 수 없다.
가정자료점 이야기
처음에 비교적 큰 자료점 수련생에게서 진상자료를 가져왔는데 사부님의 “사실 중국대륙의 수련생들은 더욱 간고(艱苦)하다. 자료점은 기본적으로 모두 가정(家庭)단위이며, 도처에 꽃이 피는 식으로 다시 말하면 매 사람이 모두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매 사람, 혹은 작은 범위에서 협조하여 모두 이러한 일을 하고 있다.”[2]라는 설법을 배우고 수련인은 사부님의 말씀을 듣는 동시에 다른 수련생을 생각해야 하고 다른 수련생의 압력을 덜어줘야 한다고 생각해 작은 자료점을 만들었다. 그러나 배움이 부족하고 나이가 많다고 생각해 이렇게 수승(殊勝)한 일을 담당하지 못할까 걱정했다. 이후에 ‘밍후이주간’에서 이 방면에 관한 교류문장들을 읽고 칠팔십 수련생이나 나보다 적게 배운 수련생들도 관념을 개변하고 곤란을 극복해 컴퓨터를 배우고 인터넷에 접속해 자료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수련생과의 격차를 찾아내자 법에서 교란을 돌파했다. 사부님께서 내 소원을 보시고 2008년 전후 한 수련생을 배치해 컴퓨터와 프린터를 설치할 수 있게 해주셨다. 나는 마우스 사용법부터 무엇이 ‘바탕화면’이고 어떻게 ‘내 컴퓨터’를 클릭하는 것을 배웠다. 그 수련생은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나는 하나하나 기록하면서 배우자 기본적인 것을 매우 빨리 배울 수 있었다.
수련생이 간 후 그녀가 바빠서 또 그녀를 찾기 어렵다고 생각해 이후에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사부님의 점화에 의지했고 자신의 인내심과 의지력으로 연구했으며 기계에 고장이 나면 자신의 심성에서 찾았다. 이렇게 매주 제때에 만들어야 할 진상자료를 만들어냈다.
평온하게 2~3년간 가정 자료점을 운행한 후 원래 중고 컴퓨터를 바꿀 때가 됐는데 비용이 부족했다. 이때 아이가 내게 1,000위안을 줬지만 1,000위안이 부족했다. 다른 수련생이 좀 보태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어느 날 뜻밖에 옷장 옷 호주머니에서 500위안을 발견했고 이튿날 다른 옷 호주머니에서 또 600위안을 찾아내 정말 기뻤다! 난 돈을 다 지갑에 넣었고 옷 호주머니에 넣는 습관이 없었다. 남편과 아이도 돈을 호주머니에 넣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는 이 일을 듣고 웃으면서 “사부님께서 엄마가 돈이 부족한 것을 보시고 돈을 주신 것이에요!”라고 했다. 그렇지! 사부님께서 주신 돈이었다!
가족 및 친정, 시댁의 친척은 몇 년 동안에 대법의 신기함과 초범함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대법을 지지했고 천천히 삼퇴를 했으며 복을 받았다. 남편은 비록 아직 수련하지 않았지만 어떤 때는 속인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다. 내가 5번 납치됐었는데 그 중 4번 불법적으로 수감됐을 때 그는 모두 주동적으로 사람을 석방하라고 요구했고 동시에 많은 질병이 연공을 통해 확실히 다 나아졌다고 말했으며 사부님의 보호 하에 내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매번 백절불굴의 의지로 내 석방을 요구했고 진상을 알렸다.
다행히 억만 수련생과 함께 곤란을 두려워하지 않고 한결같이 대법 속에서 걸어왔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에 감사드린다! 밍후이왕 및 주변 수련생의 협력과 도움에 감사드린다! 이후의 길이 어떻게 어렵든 안정적으로 걸어가고 사전(史前)의 큰 소원을 완성하고 원만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다!
타당하지 않는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밍후이왕 제10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3년 11월 1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10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18/281650.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3/12/5/14350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