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한국 자매 法輪大法(파룬따파)의 신기한 위력을 실증하다

―언니 악성 뇌종양 대법 수련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다

글/한국 서울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서울에서 수련하고 있는 대법제자입니다. 항상 부족하고 나약하기 그지없는 제자이지만 그때마다 자비로 이끌어주시는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늘 마음속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여 항상 괴롭고 죄송스럽기만 하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어 언니와 저의 이야기를 통해 대법의 끝이 없음을 수련생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언니 악성 뇌종양 대법 수련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다

2002년 10월 저의 언니는 뇌종양으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암세포 중에서도 가장 교활하다고 해서 교묘세포종(Glioblastoma)이라는 이름이 붙은 암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종양부위가 너무 커서 다 제거할 수가 없었고, 다 제거하게 되면 말을 못하게 되고 오른쪽 팔다리도 못 쓰게 되는 행동장애가 온다하여 뇌의 많은 부분을 들어냈지만, 종양이 있는 부위를 모두 절제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암세포가 남아 있는 상태로 머리뼈를 닫아야만 했습니다. 병원에서는 예후가 아주 좋지 않은 암이라 보통 6개월에서, 길어야 2-3년 살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머리를 가르는 대수술은 고통이라고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진정한 고통은 수술 그 이후의 삶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럽고 끔찍했던 언니의 그 때 모습은 기억조차 하기 싫습니다. 뇌종양은 발작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반드시 발작억제제를 먹어야 하는데, 또 약을 먹는다고 해서 발작을 일으키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한 번 발작을 일으키면 엄청난 고통으로 괴성을 지르며 사지가 꼬이고 뒤틀려 몸은 녹초가 되고 말조차 한 동안 하지 못하는 상태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언니의 몸과 마음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결국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정신과 약까지 먹게 되었습니다. 언니의 생명은 그렇게 7년 동안을 모질고 질기게 견뎌내고 있었지만, 제 눈엔 그저 나날이 죽어가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언니의 모습을 바라보는 저 역시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던 2009년 7월 어느 여름날, 언니를 위해 늘 새벽기도를 다니셨던 어머니가 어디선가 파룬궁 소책자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기 치료 하는 곳인 것 같은데, 당장 언니를 데리고 가봐야겠다고 하셨습니다. 전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기 치료라……. 돈도 많이 들고 중독성이 강하다는데 가봐야 아무런 효과가 없을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다녀온 언니와 어머니의 반응은 의외였습니다. 음악이 상당히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면서 동작 또한 편안하다고 했습니다. 또 돈 한 푼 받지 않고 너무나 자상하게 잘 가르쳐 준다고 하면서, 그 무슨 기 치료 같은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저의 언니는 기운이 없어서 서서하는 동작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언니는 처음으로 대법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당시 언니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눈은 항상 불안해보이고, 이는 모두 까맣게 변해버렸으며, 앙상하게 뼈만 남은 몸은 누가 봐도 살아있는 송장이었습니다. 그런데 파룬궁을 한 달 정도 연마한 후부터 언니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검게 변했던 이가 하얗게 변하더니, 저에게 매일 같이 자기의 고통을 호소하던 10통이 훨씬 넘던 전화 횟수도 차츰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제가 살 것 같았습니다.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혼자서는 아무데도 갈 수 없었던 언니는 혼자서 버스를 타고 연공장에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저는 파룬궁이 좋다고는 생각되었지만 책을 읽어 볼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언니는 항상 전법륜을 가지고 다니면서 읽곤 했는데, 언니는 뇌종양 수술로 뇌의 많은 부분을 들어냈기에 책을 읽는 것과 내용을 이해하는 것을 원래 좀 어려워했었습니다. 그래서 언니는 수차례 저에게 전법륜을 주면서 읽어보고 자기에게 무슨 내용인지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소책자에 있었던 끔찍한 진상 사진이 무서워 책을 보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던 저는 몇 번을 미루다가 그래도 언니의 부탁이니 들어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오로지 언니를 위해 2009년 10월경 드디어 전법륜 책을 펼쳤습니다. 책을 펼치는 순간 전법륜의 가장 첫마디 말씀이 저의 두뇌를 뒤흔들었습니다.

“‘불법(佛法)’은 가장 정심하며, 그는 세계 모든 학설 중에서 가장 현오하고 초상적인 과학이다.”[1]

정심하고 초상적인 과학이 불법(佛法)이라고? 충격이었습니다. 당시 저도 약간의 우울증이 있어 불안감으로 잠을 잘 잘 수가 없었는데, 전법륜을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저는 어렵사리 법을 얻었습니다. 항상 연공장에 같이 가자는 언니의 권유를 뿌리치고 가지 않았었는데 비로소 같이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니랑 같이 연공장에 갔습니다. ‘1-4장 공법에서 5장 공법까지 무조건 다 따라 하리라.’ 마음먹고 갔으나, 5장 공법 중에 구토증세가 심하게 올라와 결국 가부좌를 풀고 화장실에 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오한증세로 일찍 잠자리에 누웠는데 정말 오래간만에 꿀 같은 깊은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일들이 기적처럼 일어나고 있었지만, 어리석게도 법에 대한 깊은 인식을 스스로에게 요구하지는 못했습니다. 단지 언니가 신기하고 좋은 법을 만나 다행이다 정도의 인식만 갖고 있었을 뿐, 저 스스로는 수련을 해야겠다는 확고한 마음조차 생기지 않은 듯 했습니다.

이렇게 속인 세상에 미혹되어 어리석기만 한 제자에게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너무나 생생한 점화로 못난 제자를 일깨워 주시곤 했습니다. 저는 원래 절에 다녔었는데, 하루는 꿈속에서 어떤 절에 갔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절에는 불상은 없고, 와이셔츠를 입은 어떤 중년 신사분이 사람들에게 5장 공법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꿈속에서 ‘절에 불상이 없으니, 나도 저거나 수련해야겠다.’ 마음먹고 맨 끝 줄에 가 앉았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저는 너무나 생생한 꿈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도대체 파룬궁이 뭐 길래 꿈에까지 나타나지?’ 궁금증에 대법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저는 망치로 맞은 듯 또 다시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세상에! 꿈속에서 5장 공법을 지도하던 양복을 입은 그 중년신사분의 사진이 사이트에 있었습니다. 바로 자비하신 사부님이셨습니다.

그 해 겨울 우리나라와 전 세계는 신종플루라는 독감으로 발칵 뒤집혔습니다. 당시 신종플루에 걸리면 누구나 죽을병에 걸린 것처럼 무서워했고 실제적인 사망자 수도 꽤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의 둘째 아이가 학교에서 신종플루에 걸려 왔습니다.

그로 인해 저도 전염이 되었는데 타미플루라는 독한 약만이 치료제였습니다. 제 아이는 치료제를 먹고 나서 다행히 나았지만 전 그 당시 연공도 열심히 하지 않고 책도 열심히 보지 않았으면서도 막연히 “나는 연공인이다”라는 생각으로 약을 먹지 않았습니다. 신종플루에 걸려 약을 안 먹는다는 것은 당시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으로는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고열이 나는 것을 3일 동안 참다가 4일째도 열이 떨어지지 않자 슬슬 사람마음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에 무서운 마음이 들어 약을 먹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약을 먹자마자 머리는 더 터질듯이 아프고 심한 구역질이 나서 약을 모조리 토하고 말았습니다. 토하고 나니 더는 약을 먹을 마음이 없었고, 마음도 평안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보호하고 계셨나봅니다.

“무엇이 마음이 바르지 않은 것인가? 바로 그가 늘 자신을 연공인(煉功人)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전법륜)[2]

그 당시 저는 법을 잘 몰랐지만 적어도 마음의 한부분이 법에 있었나 봅니다. 무섭게 유행했던 신종플루라는 독감이 특별한 치료 없이 5일 만에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이렇게 부족하기만 한 저는 사부님의 거듭되는 자비로 법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해서 집에서 혼자 연공하고 전법륜도 꾸준히 읽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수련을 시작하면서 그렇게도 절 괴롭혔던 우울증이 서서히 없어지면서 고질적이던 두통도 어느 순간 없어졌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천만 년에도 만나기 어려운 대법을 만나게 되어 감사했고 수련의 길로 이끌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대법을 만난 후부터 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연공했고 책을 읽는 데는 여전히 좀 어려움이 있어 매일 강의를 들었습니다. 옆에서 정진하지 못하는 저로서는 저렇게 몸이 고통스럽고 머리도 어눌함에도 불구하고 매일 수련을 견지하는 언니가 대단해 보였습니다. 그렇게 꾸준히 수련을 견지하자 언니에게도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우울증으로 매일 신경안정제를 먹어야했던 언니는 제일 먼저 그 약을 끊어 버렸고, 수면제 없이는 한 잠도 자지 못했던 언니는 서서히 수면제 없이 잠을 자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잠을 자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할 것이 있나 하겠지만, 언니의 당시 소원이 하루에 단 한, 두 시간만이라도 잠을 자는 것일 정도로 언니는 장기간 끔찍한 불면의 고통에 시달려왔습니다. 누구나 누리는 평범한 일상이 늘 언니에게는 기적 같은 일이었는데, 바로 그 ‘평범’이라는 기적이 대법을 수련하면서 언니에게 계속 일어났습니다. 언니는 약을 하나하나 끊었고, 이도 하얘지고 혈색도 돌아오고 몸에 살도 붙기 시작했습니다. 비로소 사람 같았습니다.

그렇게 수련 초기에 언니는 다른 약은 다 끊었지만 발작억제제 만은 양을 줄이긴 했지만 완전히 끊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뇌종양 환자는 반드시 발작억제제을 먹어야 한다는 속인의 관념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언니는 대법을 만나 후 1년 반쯤 지났을 때 발작을 한 번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대법을 만나기 전 언니는 이미 여러 번의 발작이 일어났기 때문에 담당의사는 한번이라도 더 발작을 일으키면 아주 심각한 상태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했었습니다. 새벽 6시쯤 형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언니가 발작을 일으켜서 응급실에 와 있다고. 대법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전화를 받고 응급실로 가는 내내 고통스럽고 정신없이 불안해했겠지만, 당시 제 마음은 아무 일도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고 담담하기까지 했습니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저는 여태껏 본적이 없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평소대로라면 언니는 사지를 응급실 침대에 묶인 채 연신 알 수없는 말을 하면서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괴력으로 응급실 침대를 들썩거렸어야 하는데, 그날 언니는 너무나 평온한 모습으로 누운 채 “너 왜 왔어? 안 와도 되는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대법은 저와 언니에게 ‘평온하고 조용하게’ 위대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 언니는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발작약을 지금까지 먹지 않고 있고 발작을 일으키지도 않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분들도 계시겠지요. 교묘세포 뇌종양이 얼마나 무서운지, 더군다나 뇌종양 수술자가 발작억제약을 먹지 않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 언니는 약도 먹지 않고 있고 발작도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지인은 언니보다 훨씬 가벼운 뇌종양이었는데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가 담당 의사선생님께 여쭤보았습니다. 이 악성 교모세포종으로 5년 이상을 산 사람이 있는지. 우리나라에는 5년 이상 산사람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세계적으로도 거의 없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의 언니는 13년째 살고 있고, 심지어 지금은 아주 건강한 편입니다. 아마도 어쩌면 세계에서 이 병으로 가장 오래 살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담당 의사선생님께 저의 언니가 파룬궁이라는 기공을 수련해서 좋아졌다고 하니, 손사래를 치면서 말도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바로 옆에서 일어나도 믿지 못하는 것이 속인인가 봅니다. 저 역시 속인의 관념으로 똘똘 뭉친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으니까요. 전법륜에 한마디 말씀이 있습니다.

“여동빈(呂洞賓)의 한마디 말이 있다: 동물을 제도할지언정 사람을 제도하지는 않겠다. 사람은 정말로 깨닫기가 너무나도 어렵다. 왜냐하면 속인은 속인사회에 미혹되어 현실이익 앞에서 그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다.”[3]

딱! 저를 두고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렇게 언니의 고통 속에서 기적을 보았으면서도 열심히 정진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만해도 어리석게도 홍법이니 진상이니 하는 이런 것은 수련이 잘된 노수련생들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단지 연공장에서 연공하고 법을 공부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몸이 온전치 못한 언니에게는 더더욱 그랬습니다.

그렇게 안에서 소극적으로 개인수련만을 하다가 언니와 전 약 2년 전에 노수련생 분의 권유로 우연히 관악산에서 단체연공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요일 등산객이 많은 시간에 등산로에 쭉 늘어서서 연공동작을 한다는 것은 저의 알량한 체면으로는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었습니다. ‘딱 하루만~두 시간만 버티면 되는 거야.’ 하는 마음으로 눈을 딱 감고 버텼습니다. 어떻게 두 시간이 흘러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이 저에게는 왜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지, 속인의 이 마음 저 마음에 끌려 다니면서 참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속인 마음으로 마냥 발걸음이 무거웠던 제가 그냥 하다 보니 가벼워졌습니다. 그리 오랜 기간은 아니었지만 관악산에 다니면서, 함께 한 노수련생분들을 보면서 정진의 마음도 키울 수 있었고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 또한 조금이나마 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관악산 연공장까지는 차에서 내려서 이삼십 분쯤 걸어 들어가야 합니다. 추운 날에는 그 길이 상당히 멀게 느껴지곤 했는데, 제가 좋아하는 ‘홍음-태산에 올라’ 시를 언니에게 들려주며 그 마음을 달래보곤 했었습니다.

태산(泰山)에 올라

높은 계단 천척 길을 오르나니

가파른 굽이굽이 발걸음이 더디네.

고개를 돌리니 마치 정법수련을 보는 듯

반공중에 멈추면 제도받기 어렵도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만근다리 옮기나니

괴로움을 참고 정진하며 집착을 버리네.

천백만 대법제자

공성원만하여 높은 곳에 있도다. (홍음)

언니는 저에게 전법륜을 읽고 뜻을 알려달라는 떼 아닌 떼로 저에게 대법과 인연을 맺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때론 제 마음을 닦도록 안으로 찾게 도와주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언니는 뇌수술로 전법륜의 뜻을 이해하는 데 힘든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저에게 전화를 해서 이건 무슨 뜻이냐, 저건 무슨 뜻이냐 물어볼 때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같이 법공부를 할 때면 발음이 잘 되지 않아 같은 곳을 반복하여 읽을 때가 많습니다. 처음엔 잘 설명해주다가도 속인의 답답한 마음이 마구 올라와 화를 낼 때가 많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법에 모든 것이 다 있다 하셨는데 이렇게 더디게 해서 언제 다 읽을 것인가 하는 답답함에 화를 내곤 했습니다. 그리고는 큰소리로 다그쳐 묻습니다. 언니는 왜 수련하냐고? 그러면 언니는 늘 한결같이 순진무구한 얼굴로 말합니다. “잘 모르겠어. 그냥 좋으니까. 그리고 감사해서.” 언니의 순정한 마음이 수련을 합니다. 언니의 순정하고 선한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울컥합니다.

수련에는 지름길이 없다는 사부님 말씀대로 착실하고 착실하게, 참답고 참답게 수련하고 있는 언니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죄책감이 듭니다. 안으로 찾아봅니다. ‘언니가 어눌하게 말을 잘 못하고 사리판단을 잘 못하는 것이 왜 그렇게 화가 나는지. 혹시 나의 명리심 때문에 언니가 창피해서 그런 것일까?’ 그 순간 저는 언니가 바로 내!! 언니라는 것에 화가 나고 있음을 찾았습니다. 거기에는 이기심으로 기득한 ‘나’라는 존재가 있었던 것입니다. 무사무아-그 텅 빈 자리에는 자비로 가득 차 있음을 감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올해 여름 책임자 한 분으로부터 진·선·인(眞·善·忍) 미술전 협조를 부탁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전단지만 나눠주라고 하시더니 나중에는 관람객들에게 작품설명을 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부끄러움이 많은 저로서는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이 이만 저만 힘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라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너희는 가서 하기만 하라’는 사부님 말씀이 생각나서 순정하게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겨우 승낙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떨리고 말이 잘 안 나왔지만 그 다음 번엔 조금 나아지고 그 다음 번엔 더욱 나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비록 제가 하고 있는 일이 표면적으로는 큰 변화는 아니었지만 안으로는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두려웠던 많은 마음들이 없어지고 있었습니다. 미술전시회에서는 저의 설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틀림없이 사부님께서 가지해 주시고 계셨습니다. 저의 머릿속에서는 그런 말들이 나올 수 없습니다.

세 가지 일을 하는 수련의 길에서 끊임없이 제고하다

제가 언니와 함께 수련을 함에 있어 지난 몇 년 동안 비록 용맹정진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딛으면서 대법제자의 사명에 부합하기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언니와 저는 사부님께서 세 가지 일을 잘하라고 하셨는데 항상 진상이라는 이 부분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되어 늘 마음이 걸려 있었습니다. 상황에 따라 션윈, 미술전, 장기적출반대서명 등의 항목에 참여는 했지만 직접 중국인을 상대로 진상을 하는 것은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핑계겠지만, 여러 가지 환경이나 조건이 늘 적절치 않아 대 중국인 진상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못난 제자가 진상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바로 롯데월드 앞에서 연공하고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진상자료를 나누어주는 진상장소가 열린 것입니다. 저와 언니에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적절하고 귀한 진상장소입니다.

어느 날 노수련생분께서 롯데월드에서 언니의 모습을 보시고는 감동을 받으셨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언니에게 언니의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꼭 말해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언니는 비록 말이 좀 어눌하고 이해가 더딜지라도 사부님의 인도 하에 언니의 수련의 길을 순정하게 잘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이곳에서 제가 마음에 늘 걸렸던 진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와 저의 언니에게도 중생구도의 기회를 주셔서 사부님 감사합니다.

저는 매일 나가지는 못하고 있지만, 얼마 전 롯데월드 앞에서 진상할 때의 감동을 전하며 부족한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저와 몇몇 수련생분 들이 롯데월드 앞에서 중국인들에게 신문을 나줘 주고 있는데, 한 예쁜 중국인 아가씨가 처음엔 신문도 받지 않고 모른 척 지나가더니, 다시 돌아와 제 바로 앞에서 합장(合十) 자세를 취하면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저희를 차례로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더니 아쉽게 자리를 떴습니다. 그날 감동으로 정념이 충만하여 더욱더 큰소리로 중국인들을 향해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치면서 가슴속에 전율이 왔던 감동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날 이후 더욱 더 열심히 정진하고 더 많이 사람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저 같이 부족하고 어리석은 제자를 어찌하여 이리도 이끌어 주시고 깨닫게 해주시는지 알 수 없습니다. “사실 나는 당신들 자신보다도 더 당신들을 소중히 여긴다!”[4] 라는 사부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무슨 사명을 가지고 왔는지, 무슨 서약을 하고 왔는지, 대법과 어떤 인연이 있는지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매 순간 표준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놓치지 않고 따라갈 것입니다. 제가 혹시 흔들린다면 저를 꽉 붙잡아 주십시오. 수련생 여러분과 함께 끝까지 정진하겠습니다.

자비로운 사부님 감사합니다.

두서없는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신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논어’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제6강의’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제8강의’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마지막 집착을 제거하자(去掉最后的執着)’

(2014년 한국 파룬따파 수련심득교류회 발언고)

문장발표: 2014년 11월 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해외법회 발언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1/5/299895.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