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랑팡(廊坊)시 대법제자
[밍후이왕]
정념의 힘
99년 ‘7.20’ 이후, 나는 법 실증을 하려고 여러 번 베이징에 청원을 갔고 여러 번 사당에 납치, 수감, 노동교양 박해를 당했다. 2009년 7월 어느 날, 내가 집에서 빨래하는데 갑자기 세 사람이 집에 뛰어들어 정부에서 왔다고 했다. 내가 그들에게 일이 있느냐고 묻자 그들은 보러 왔다면서 집안에 들어가 사부님 법상을 보고서 그중 두 사람이 소곤거리더니 앉았다.
그중 한 사람이 나에게 아직도 연마하는지 물었다. 그때 나는 아주 차분하고 상냥하게 그들에게 말했다. “연마하는지 안 하는지 묻지 마세요. 제 나이가 얼마인데 물어도 아무 소용도 없어요, 당신들에게 쓸모 있는 말을 알려줄 테니 바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라는 거예요.”
그들은 “네! 네!” 하고 대답했다. 책상 위에 있는 CD를 보고 물었다. 이건 뭔가요? 나는 션윈 CD라고 말하면서 “내가 틀어줄게, 보세요.”라고 했다. 그들은 보고 나서 “집에 갖고 가서 봐도 될까요?” 하기에 그러라고 했다. 그러면서 션윈 CD와 대법제자가 부른 가곡 CD도 함께 주었다. 떠날 때 나는 그들에게 내가 당신들에게 한 말을 기억하고 이후 다시는 오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들은 “예! 알겠습니다.” 하고는 가버렸다.
그들이 간 후 나는 집안을 둘러보았다. 그들이 앉았던 소파 곁에는 열기만 하면 모두 진상 자료가 가득 들어있는 대법 관련 물건들이었지만 그들은 어디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이로부터 나는 “나쁜 사상이 있는 사람이 바르지 않은 것을 생각할 때, 당신 장(場)의 강렬한 작용 하에서 그의 사상을 개변할 수 있어, 그는 그때 나쁜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1], 를 생각했다.
물론 그들은 그 후 다시는 오지 않았다.
기술을 배우는 과정에 심성을 닦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모든 대법제자, 신노 수련생들은 모두 행동으로 전면적인 진상 알리기를 시작해야 한다. 특히 중국대륙의 대법제자들은 사람마다 모두 나와서 말해야 하며, 곳곳마다,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고 할 것 없이 모두 닿도록 해야 한다.” [2], 정법 노정이 추진됨에 따라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은 갈수록 많아져 큰 자료점에서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나는 자료점을 세워 큰 자료점 수련생의 압력을 분담하려고 생각했다.
나는 금년에 69살인데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컴퓨터는 나에게는 아직도 낯선 물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꼭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나는 속인 중에서 나를 우둔한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으며 어려서부터 총명해 학교나 직장에서 모두 앞장섰던 사람이고, 사회에서도 강자로 여겼으며, 다른 사람이 할 수 있으면 나도 할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이 못해도 나는 할 수 있었는데 지금껏 남에게 져 본 적이 없다. 또 기술 수련생은 내 딸이라 남에게 없는 편리한 조건을 갖췄고 게다가 자신 조건을 더하면 아주 순조롭고 쉬운 일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배우는 과정은 아주 복잡해 딸과 한고비 또 한고비를 넘었다. 이후에야 깨닫게 됐는데 모두 나의 사람 마음으로 초래된 것이었다. 위에서 한 내 몇 마디 말에서 곧 자아를 실증하는 마음, 남을 깔보는 마음, 오만과 정이 폭로됐고 기술을 배울 때 또 수많은 사람 마음이 뒤섞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 마음으로 어찌 순조로울 수 있겠는가?
예를 들면 막 한 가지를 배우고 나서 딸이 돌아간 다음에 난관에 부딪히면 어쩔 바를 몰라 또 딸에게 물었다. 기억하려고 나는 순서를 상세히 기록했다. 클릭, 화면, 클릭, 다시 화면…… 심지어 도표까지 다 그렸다. 딸이 인터넷 접속을 가르쳐줄 때 나는 전심으로 듣고, 보고, 기억했다. 딸이 또 다운로드를 가르쳐줄 때 나는 바로 인터넷 접속을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배우지 못했다. 다운로드를 배울 때 다시 가르쳐달라고 하자 딸은 매우 싫어하면서 사정없이 말했다. “엄마, 왜 솔직히 말씀하시지 않고 이 모양으로 변했어요? 분명히 가르쳐드렸는데 왜 안 가르쳤다고 해요?” 나는 못 들었다고 했다. 그녀는 또 말했다. “배우겠으면 잘 배우시고 배우지 않으려면 그만두세요.”
매번 물으면 딸은 모두 언짢은 기색으로 나에게 대답하곤 했다. 딸이 나에게 성질을 부릴 때면 나는 감히 화를 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딸을 기분 나쁘게 하면 가르쳐주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속으로는 오히려 말했다. ‘너는 그래도 내 딸인데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다니? 만약 대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네가 나를 이렇게 대하지 못하게 했을 거야.’ 딸이 매번 나를 언짢게 말해도 나는 다 참으면서 속으로는 ‘다 배우면 너는 쓸모없어, 괜히 네가 나를 겁주게 하지 않을 거야’ 하며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겼다. 딸은 늘 내가 우둔하다면서 만약 하나를 보고 열을 알 줄 모른다면 배울 수 없다고 했다. 이후에 나는 해 보았는데 두려워할수록 더 잘못됐다. 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쓸모 있는 것마저 다 없어지게 했고 딸에게 물으면 딸은 또 언짢아하면서 한바탕 해댔다. “할 줄 모르면 마구잡이로 하지 마세요. 다시 고쳐놓을 테니 가르쳐 준 대로 하세요.” 입으로는 그러겠다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불만을 품었다. ‘네가 나에게 하나를 보면 열을 알라고 하지 않았니?’ 그 후 다시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감히 처리하지 못했고 이로부터 또 의뢰심이 생겼다.
한번은 딸이 또 나에게 화를 냈다. “할 수 있으면 하고 하지 못하겠으면 하지 마세요, 독립하지 못하면서 또 남을 잡아당기지 마세요.” 나는 꾹 참고 말했다. “나는 배운 적이 없잖니?” 그녀는 또 조급하게 말했다. “누구는 배운 적 있어요? 나도 배운 적이 없잖아요? 남에게서 배울 때 하나를 말하면 하나만 알면 되잖아요?” 말을 마치고는 성질을 내며 가버렸다.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었다. 딸이 간 후 나는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매번 억울함과 참음이 마음속에 북받쳤다. ‘나는 중생 구도를 위해 일을 좀 하려고 하는데 너는 매번 나를 이렇게 대하는구나. 다른 사람이라면 누구도 나를 이렇게 대하지 않을 거야! 수련이 아니라면 나는 절대 네가 나를 이렇게 대하지 못하게 했을 거야.’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면 차라리 하지 말자.’ 또 생각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사부님께서 나에게 안배하신 이 환경에 죄송하지 않은가?’
연속 며칠간 딸은 오지 않았고 나도 반성해 보았다.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내가 기술을 배운 데는 잘못이 없으며 사부님께서 나에게 하라고 하신 것인데 왜 이렇게 많은 번거로움이 나타났는가?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아보고 일함에 남을 먼저 배려하라고 하셨다. 나는 조용히 안으로 찾기 시작했다. 찾아보니 실로 적지 않았다. 자신의 첫 시작 사유부터 법에 부합되지 않았다. 우선 자신을 높이고 남을 깔보았고 겸손하게 남의 가르침을 청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처럼 여겼다. 그녀는 내 딸이니까 마땅히 참을성 있게 나에게 가르쳐 줘야 한다면서 늘 그녀를 내 딸로 가늠했을 뿐 기술 수련생으로 여기지 않았다. 이로부터 질투심이 생겼고 ‘왜 너 한 사람만 기술을 알지? 다른 사람이 있다면 나는 널 쓰지 않을 거야.’ 늘 그녀 앞에서 생색을 내면서 ‘네가 아니라도 나는 얼마든지 할 수 있어’를 보여 주려 했는데 쟁투심, 강한 승부욕을 폭로했다. 아! 한 무더기나 찾아냈다. 이렇게 많은 더러운 속인 마음을 갖고 어떻게 일을 잘할 수 있겠는가? 이는 모두 수련인이 버려야 할 마음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들이 대법(大法) 일을 위해 더없이 좋고 더없이 신성하다고 여기는 일까지도, 나는 모두 당신들의 집착심을 제거해 버리고 당신들의 마성을 폭로하여 그것을 제거하는 데 이용할 것이다.” [3], “정말로 이렇듯 제고해 올라와서 당신들이 순정(純淨)한 심태에서 한 일이야말로 가장 좋고 신성한 일이다.” [3]
나는 전혀 딸을 배려하지 않고 남이 나에 대해 어떠어떠하다고만 생각했으며 상대방의 각도에서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실은 딸도 수련을 아주 잘했다. 기술 방면에서 다른 수련생에 대해 늘 보수적이지 않았고 자신이 배운 기술을 다 쏟아내 인내심 있게 다른 수련생에게 가르쳐 주었다. 딸 역시 가정이 있는 사람으로서 많은 속인 일이 있었지만, 딸은 대법을 크게 여겼다. 수련생이 일이 있어 딸을 찾으면 아무 때라도 갔다. 딸이 나를 그렇게 대한 것은 실은 사부님께서 나의 집착심을 버리게 하려고 하신 것으로서 나를 제고하게 하셨다.
이런 것을 깨닫게 된 나는 마음이 편안했고 일체 억울함이 씻은 듯 사라졌다. 며칠 후 딸이 왔을 때 나는 말했다. “네가 간 후 컴퓨터에 또 문제가 나타났으니 봐 주렴.” 그녀는 컴퓨터를 열고 보더니 “이건 아주 좋은데요? 전부 정상인데요.”라고 했다. 딸의 태도는 전과 같지 않았다. 나는 말했다. “네가 오니 왜 좋아진 거니?” 나는 깨달았다. 이는 나의 의뢰심을 버리라는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의뢰심을 버렸고 더 많이 딸을 배려했다. 더 문제가 있어도 심성에서 원인을 찾고 사부님께 청하며 컴퓨터. 프린터와 소통하면 기본상 모두 해결할 수 있었으며 정말로 해결할 수 없을 때만 기술 수련생을 찾았다. 물론 이후에는 익숙해졌고 지금은 기본상 독립적으로 운행할 수 있게 됐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사람 마음 내려놓고 세인을 구하자’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재인식’
문장발표: 2014년 10월 2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0/28/29952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