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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오상태에서 본 장기 병업(13)

글/ 대륙 대법제자 홍원(洪願)

[밍후이왕] (전편에 이어)

20. 노 수련생의 각종 욕망이 장기적으로 버려지지 않아 안일심을 자양했으나 각종 구실로 덮어 감춰

수련으로 말하면 색욕은 가장 주요한 고비다. 이것은 수련생들이 교류를 많이 했으므로 여기에서 다시 말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욕망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속인 중의 각종 욕망과 각종 집착심을 버리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많은 노 수련생은 읽기는 했는데 자신과 대조하지 않는다.

맛있는 것을 먹기 좋아하고, 듣기 좋은 것을 듣기 좋아하고(귀에 거슬리지 않는 말만 들으려 하고, 귀에 거슬리는 말은 교란이라고 여김), 속인 중에서 보기 좋다고 여기는 것을 보기 좋아하며, 물질 향수를 좋아하고, 돈 쓰기 좋아하는 등, 실은 이 모두가 속인의 욕망이다. 그러나 이런 수련생은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런 욕망에 습관이 되어 갈수록 안일심을 자양하고도 느끼지 못한다.

사실 이런 수련생은 정진하는 수련생의 집에 가 보라. 자신이 만약 이런 환경에서 생활하고 수련한다면 자신은 견뎌낼 수 있겠는지를 보라. 사부님께서는 ‘미국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라면 당신은 곧 이 한 관(關)을 넘긴 것이다.”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를 해낼 수 있는가? 더 부유한 수련생 가정환경에서 부러워하지 않음도 해 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가정환경이 못한 수련생의 환경에서 장기적으로 이 점을 해 낼 수 있는 것도 버리는 게 아니겠는가? 그래도 즐겁고 기쁘게 정진할 수 있는가? 해 낼 수 있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것이다. 물질 향수 이 관을 당신은 정말로 넘은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수련생은 해내지 못했다. 생활 표준을 조금 낮추니 먹는 문제에서 모두 견뎌내지 못하고, 시간이 길어지면 기타의 것도 다 견뎌내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안일심에 빠져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교훈이 있다. 한 수련생은 원래 아주 고생을 즐겁게 겪었고 육신은 고생스러운 수련을 거쳐 정백체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후에 환경이 크게 바뀌고 압력이 없어졌으며 생활도 좋아지자 안일심이 조금씩 자양되기 시작했고 각종 욕망도 올라왔는데 이런 욕망이 올라오자 심성은 곧 떨어졌다. 지금은 고생을 할 수 없고 고생만 하면 괴로워지고 신체도 따라서 나빠져 시커멓게 되고 병업도 나타났다. 오히려 수련에 신심을 잃게 됐다. 왜냐하면 더는 고생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21. 작은 울타리에서 수련하고 정체 협력에 용해하지 않으며, 인터넷 교류를 보면서도 자신을 그 중에 용해시키지 않는다.

어떤 수련생은 자기와 마음 맞는 작은 울타리에서만 수련하면서 현지의 정체 협력에 용해하지 않아 자신에게 병업이 있어도 장기적으로 넘지 못하고 있으며, 다른 수련생이 와서 교류하지도 못하게 하는데 정체 협력에서 자발적으로 떨어져 나간 것과 같다. 이럴수록 병업은 더욱 넘지 못하고 한 번을 겨우 넘기면 다음번에 또 온다. 법리상에서 근본적인 승화가 없고 심성에는 근본적인 개변이 없으니 관을 전혀 넘지 못한다.

한 수련생은 밍후이왕의 교류 문장을 보고 확실히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냈다. 하지만 자신의 방법상 차이와 심성 표면의 차이만 보았을 뿐이다. 사실 만약 자신을 그런 교류문장 속에 용해시킨다면, 자신이 만약 그런 마난에 처했다면 자신의 마음은 어떻게 움직일까? 어떤 때에 견디기 어려울까? 어떤 염두가 나올까? 무엇 때문일까 등을 생각할 것이다. 이러면 자기 심층의 집착심이 폭로될 것인데 그것들을 일일이 제거해 보라. 이렇게 수련생의 심득을 보면 마치 자신이 똑같은 관, 난을 넘는 것과 같이 직지인심이 되며 그런 마음을 버리면 제고가 무척 빠를 것이다.

사실 장기적으로 변화가 크지 않다고 스스로 여기는 수련생은 인터넷에서 정진하는 그런 수련생처럼 해보라. 이것은 인위적으로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이 아니고, 본보기를 찾는 것도 아니다. 이건 ‘비학비수’(홍음-착실한 수련)로서 하기만 하면 당신은 발견할 수 있을 것인데, 다른 사람의 고생을 당신이 견딜 수 없다는 것에서 많은 집착심이 폭로돼 나올 수 있다. 그러면 당신은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참을 수 없는 것도 참아내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한다”를 해 보라. 꼭 될 수 있다. 우선 당신의 고생을 겪는 능력이 제고되면 심성 자체도 제고될 것이고 법에 대해 새로운 인식이 있을 것이며 수련에서 경지의 돌파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러면 서서히 정체에 용해되어 승화 중에 있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피차 이끌며 승화하는 중에서 또 주의해야 할 것은, 절대로 서로 간에 깔보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남을 깔보는 것은 자신을 깔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정체로서 피차 포용하는 마음이 홍대해야 한다. 그는 당신 세계의 일부분이고 당신은 그의 세계의 일부분이라는 것처럼 당신 가운데 내가 있고 내 속에 당신이 있다. 우주의 구조는 실은 이러한데 그는 바로 당신의 좌우 양손과 같다. 가령 이러한 정체를 형성할 수 있다면 구세력 스스로 탄복하며 물러설 것이다. 여러분의 일체에 용해됨에 영향 주는 어떠한 관념, 피차의 어떠한 관념이든 모두 구세력이 박해를 가중하는 빌미가 될 것이다.

대법의 매 입자는 정말로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만여 갈래 맥이 한데로 이어지게 하여, 맥이 없고 혈(穴)이 없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정체 협력이 이런 정도에 도달할 수 있다면 사악이 ‘정곡을 찌르려’ 해도 찌를 수 없을 것이며, 박해도 절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개인마다 자아를 내려놓고, 사심을 내려놓으며, 관념을 내려놓고 공동 노력할 것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병업 속에 있는 수련생은 어떤 사람은 원인이 모두 다방면인데, 어떤 사람은 위에서 말한 문제의 거의 절반을 포괄해 이젠 아주 위험하다. 그렇게 큰 누락을 더 이상 마음을 활짝 열지 않고 단단한 결심을 내리지 않고 바로 잡고 보완하지 않는다면 남들이 아무리 도와준다고 해도 쓸모없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홍음2-사도은’에서 말씀하셨다.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 마음속으로 정말로 인식할 수 있고, 정말로 할 수 있으며, 정말로 바로 잡을 수 있다면 이러한 큰 고비는 꼭 넘길 수 있다.

사실 이런 병업은 모두 예전에 고비를 질질 끌며 넘었거나 심성관을 넘지 못해 쌓인 것이며, 잘못에 또 잘못을 저질러 날이 가면서 쌓여 큰 고비로 된 것이다. 이런 교훈은 다른 수련생의 거울로 되기에 충분하다.

이상은 개인의 체득으로서 타당하지 못한 곳은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끝)

문장발표: 2014년 10월 2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0/24/29924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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