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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자료를 버리는 원인을 천목으로 보고 교류

글/ 홍원(洪願)

[밍후이왕] 진상자료를 거절하고 버리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장기적으로 계속되면 또 대법 진상 입소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얼마나 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 심혈을 지불했는가? 원고를 쓰고 심사하기까지, 편집에서 제작까지, 또 고생과 심지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배포하기까지…… 이전에는 아쉬워도 대책이 없다고 느꼈다.

요즘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일련의 광경을 펼쳐 보이셔서 진상자료가 거절당하는 심층 원인을 보게 하셨다. 나는 법리에서 글을 써 여러 수련생과 교류하려 한다. 개인 층차의 깨달음이니 적절하지 못한 곳은 공동으로 시정해 줄 것을 환영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사실 당신들이 넘은 고비는 바로 당신들의 마성을 제거한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은 한 차례 한 차례씩 각종 구실 또는 대법(大法)으로 덮어 감추어 지나갔으며 心性(씬씽)을 제고하지 못했고 한 차례 한 차례씩 기회를 놓쳤다.

당신들은 아는가? 오로지 당신이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환경, 어떤 상황 하에서든지 부딪힐 수 있는 그 어떤 시끄러움과 좋지 않은 일, 나아가 당신들이 대법(大法) 일을 위해 더없이 좋고 더없이 신성하다고 여기는 일까지도, 나는 모두 당신들의 집착심을 제거해 버리고 당신들의 마성을 폭로하여 그것을 제거하는 데 이용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들의 제고만이 제일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이렇듯 제고해 올라와서 당신들이 순정(純淨)한 심태에서 한 일이야말로 가장 좋고 신성한 일이다.”[1]

진상자료의 매 과정에 있는 수련생은 이 단락 법에 대해 얼마나 깊게 깨닫고 얼마나 할 수 있는가? 얼마나 동화될 수 있는가? 진상에 작용을 일으키고 더욱 큰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지 여부는 모든 과정이 상관관계가 있다.

1. 제작자의 심태가 가장 주요한 원인

사부님께서 가장 먼저 나에게 펼쳐 보이신 것은 진상자료를 제작하는 수련생의 심태다. 어떤 수련생은 진상자료를 제작할 때 심경이 순정하지 못하고 법에 있지 않다. 어떤 수련생은 인터넷에 접속해 놀고 있고 어떤 수련생은 노래하고 사적인 일을 생각하며 어떤 수련생은 자신의 병업을 생각한다. 그는 이렇게 진상을 알리는 일을 정진으로 생각하고 이렇게 정진하면 병업이 빨리 낫는다고 생각한다. 어떤 수련생은 모순 중에서 안으로 찾지 않고 사람의 방법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며 어떤 수련생은 화내고 마음은 원망 중에 있다…… 이렇게 실제로 자료를 만드는 것을 속인 일로 간주하고 수련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사실 여러 사람들이 이렇게 자료를 만들면 품질이 떨어지는 비율이 높고 기계가 또 쉽게 고장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당시 사악은 당신의 누락을 틈 타 교란한다. 그러나 불합격품을 없애고 만든 자료를 배포해도 여전히 사악이 계속 빈틈을 탄다! 속인은 적게 받으며 버리는 것이 많다.

진상자료를 만들 때 순정하지 못하고 선하지 못하며 원망하고 심지어 기타 좋지 않는 사상은 모두 물질이며 진상자료 표면에 지니게 한다. 이것은 사악이 계속 교란을 하는 원인이며 이것이 바로 사악이 중생이 진상자료를 보는 것을 막는 이유 중 하나다. 속인의 표현은 보고 싶지 않으며 갖고 싶지 않으며 심지어 경시한다.

하지만 수련생이 자료를 만들 때 마음이 법에 있고 제작과정을 구도 중생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순정, 순선(純善), 자비 심태로 만든 자료 표면에는 이런 법의 본성을 지닌 물질이 있기에 사악 난귀(爛鬼)는 보기만 해도 두려워하고 접근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이러한 자료는 속인이 받는 비례가 크며 일으키는 효과도 좋다.

2. 배포하는 수련생의 심태는 대륙에서는 이차적인 원인이지만 해외는 홀시해서는 안 된다

대륙에서 자료를 배포하는 것은 필경 모험이 있다. 때문에 여기에 어떤 요구를 제기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자료를 배포하는 심태가 순정할수록 효과는 더욱 좋다. 이것은 대면해서 진상을 알리고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중에서 충분히 체현한다. 또 제작자 심태의 부족함을 보충할 수 있다. 순선, 자비의 심태는 당시 속인을 감동시킬 수 있고 사람을 구할 수 있으며 기뻐하며 돌아가 자료를 보게 한다.

당연히 어떤 수련생은 진상자료를 사용하지 않고 대면해서 진상을 알리면 사람을 구할 수 있는데 이것도 심태가 순정한 결과다.

그러나 사람을 구하는 희망을 모두 배포하는 수련생에게 두면 안 된다. 어떤 자료는 대면해서 배포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고 어떤 지역은 이렇게 하는 조건이 아직 성숙되지 않았다. 속인이 받아가지고 돌아가 보면 사람을 구하는 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문자 자체이며 진상자료 자체는 끊임없이 완벽하게 하는 과정에 있기에 제작하는 심태는 더욱 홀시할 수 없다.

3. 편집하는 수련생의 심태

이전에 나는 이 부분의 원인을 생각하지 못했다. 최근 보고 이 심층의 과정도 홀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개인이 원고를 편집할 때 심태가 아주 순정하다. 그러나 여럿이 함께 토론할 때 나는 어떤 수련생의 심태가 법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았다. 모두 자신의 의견이 옳고 자신의 방법이 좋다고 느낀다. 어떤 수련생은 좋은 말만 듣고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들으면 마음속으로 먼저 안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먼저 배척하고 각종 이유를 찾아 변호하고 귀에 거슬리는 것을 교란으로 간주하며 바로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법을 책임지는 것이라고 구실로 삼는다. 극히 개별적으로 서로 배척하고 엄중한 간격이 생기고 심지어 ……

이렇게 편집한 진상 자료는 그런 모든 좋지 않는 마음, 좋지 않는 물질을 지니고 있고 진상자료 실체와 포장 표면에 있지 않다. 사악은 내용 표면에 교란을 착수한다. 사람은 비록 보지 못하지만 민감한 사람은 불편한 것을 느끼며 사악은 그런 좋지 않는 물질을 가중해 사람이 내용을 보면 짜증나고 보고 싶지 않으며 포기하게 만든다.

개별적인 편집자는 장기적으로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이 과정을 수련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또 어떤 수련생은 진상자료에 대한 다른 사람의 칭찬을 듣고 업무 중에서 착실히 수련하는 것을 더욱 개의치 않으며 심지어 자료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을 교란으로 간주하고 일절 배척한다. 사실 이런 심태 하에서 만든 자료는 속인이 받지 않고 보지 않고 보지 않는 비례가 적지 않는데 그 문제점은 이 과정에 있다. 이것은 내가 거시적으로 본 것이다.

한 부의 진상자료는 사람을 구할 수 있고 편집하는 수련생은 일부분 공로가 있다. 여기에 상응되는 것은 버린 한 부의 진상자료에 만약 위에서 말한 문제가 있다면 편집한 수련생은 일부분 책임이 있다.

4. 저자, 편집자의 심태

어떤 수련생은 심득 중에 사부님께서 일찍이 일부 제자에게 신필(神筆)을 주셔서 법기로 삼아 장래에 법을 실증하는데 사용하라고 하신 것을 보았다고 썼다. 또 어떤 수련생은 일찍이 과거의 대작가다. 그러나 이 신필이 오늘날 훌륭한 작품을 창작했는가? 일찍이 역사상 인류 문학을 정립한 수련생은 오늘 당시 수준에 도달했는가? 무엇 때문에 많은 수련생이 도달하지 못하는가?

자신이 문장을 쓸 때 심태가 좋지 못하면 쓰지 못한다. 그러나 수준과 지혜는 필경 유한하다. 수련생들이 서로 완벽하도록 도와주고 수정 의견을 제기할 때 쟁론하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상대방의 의견이 완벽하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지적한 문제는 종종 완벽하지 않고 조속히 완벽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다.

관건은 이때의 심태다. 첫 번째 일념은 안으로 찾았는가? 이후 토론 중에 안으로 찾았는가? 다른 수련생이 가리킨 여기에 반드시 문제가 있으면 나는 어떻게 수정하고 완벽히 하겠는가를 생각했는가? 아니면 여전히 자신을 수호하고 어떻게 자신을 변호하겠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마음이 상대방을 질책하고 상대방의 결점을 찾는데 있는가? 결점을 찾지 못하면 그 사람의 태도, 말하는 어투에서 결점을 찾는가?

자고로 문화인(文化人)은 얼마간 ‘서로 경멸’하는 부분이 있다. 모두 자신이 쓴 것이 좋고 그린 것이 좋다고 여기며 다른 사람이 의견을 제기하면 첫 번째 일념은 밖으로 밀어내고 다른 사람의 결점을 찾고 눈은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본다. 이런 심태는 아주 보기 좋게 문장을 수정하더라도 문장 여기저기에 자아의 요소를 지니게 된다. 왜냐하면 심태를 고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모순은 바로 사부님께서 가장 좋고 빠르게 배치하신 제고 과정이다. 오직 법에 있고 문제를 발견하고 지적하면 모두 안으로 찾으면 작품은 이러한 협조 하에 예상치 못하게 좋게 변할 수 있다. 심성의 제고는 수준의 제고가 수반되며 법을 실증하는 길에서 점점 잘할 수 있고 선천적인 능력이 점차 나타날 수 있다.

사실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화려한 문학적 재능이 아니라 소박한 언어 중 체현하는 순정하고 참된 마음이다. 때문에 심태가 가장 관건적이다.

당연히 또 다른 일종 극단이 있다. 문장이 부족한 것을 보고 말하지 않으며 무골호인, 화목한 분위기로 가득 차서 마치 심태가 좋은 것 같지만 이것도 법에 있지 않다. 이런 방임하는 결과는 속인에게 한 더미 결점을 보여준다. 서술이 혼란하고 전후가 모순되며 상식적으로 틀리고……똑같이 진상자료에 대한 입소문에 영향을 끼친다.

어떤 진상자료는 아주 잘 만들었고 속인은 다투면서 돌려본다. 그러나 여기에서 발걸음을 멈출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중에 여전히 부족함이 있고 주로 심태 부족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여러 수련생이 자신의 이 부분을 잘 파악하고 모두 자신을 그 중의 매 일보를 수련으로 간주하며 시시각각 순정한 심태로 하면 일부 기타 부분의 부족함을 보충할 수 있다. 만약 매 과정에서 심태를 순정하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가장 좋은 협조이며 진상자료는 더욱 큰 작용을 발휘할 수 있다. 구도중생은 참신한 국면이 있을 수 있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재인식(再認識)’

문장발표: 2014년 10월 1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0/16/2990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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