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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돌팔이 의사 때문에 장애인이 됐으나 대법 수련으로 환골탈태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해마다 밍후이왕 수련생의 심득교류 체득 문장을 보면 문장을 쓰려는 충동이 있었으나 자신의 사상 속에 좋지 않는 관념이 방해하고 있었다. 자꾸 자신이 장애인이고 잘하지 못했으며 자격이 없다는 등, 자신을 비하하는 생각이 스스로를 통제해 언제나 글을 쓸 수 없었다.

2013년 7월 31일, ‘밍후이왕 제10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고를 또 모집하자 더 이상 구세력이 내게 강요한 관념으로 이번 법회를 소극적으로 대해서는 안 되고 위사위아(爲私爲我)의 상태에서 걸어 나와야 한다는 것을 갑자기 인식했다. 법을 얻은 초기, 하지 장애인이 다행히 대법을 만나 사부님께서 병업을 없애주시고 복부에 파룬, 수련의 기제를 넣어주시는 것을 직접 본 것 및 사부님의 각종 보호 하에 끊임없이 대법을 연마하고 완강하게 오늘까지 견지해온 수련심득을 써내 수련생과 함께 교류하겠다.

고난에 찬 나날

나는 1947년에 한 가난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식초 장사를 하셨고 젊은 시절에 불교를 믿었다. 1951년, 사존께서 인간세상에 태어나는 해에 한 고인(高人)이 신도들을 조직해 한 마을에 가서 주불 탄생의 법회를 경축했는데 공안국이 ‘불법 집회’라는 핑계로 그들을 붙잡았다가 이후에 또 전부 석방했다고 했다. 내가 13~14살 때 아버지는 늘 이런 옛일들을 말해주셨고 지금은 말법시기라 인류에게 대재난이 발생할 것이라고 하셨다.

1962년 중학교 졸업 후 생계를 위해 식당에서 일을 했으며, 1936년 11월부터 현(縣)에서 우편을 배달했다. 1964년 11월 저녁 12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갑자기 정전이 일어났는데 그날은 비가 오는 날씨였고 저녁에 기온이 매우 낮았다. 아침 6시 알람소리에 깨어보니 뜻밖에 밤새 이불 위에서 잤다는 것을 발견했다. 온몸이 얼음처럼 차가웠고 두 다리는 납을 주입한 것처럼 무겁고 힘이 없었으며 오줌까지 눈 상태였다. 목욕탕에 가서 45도의 뜨거운 물에 담가봤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이후부터 소변을 자주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변과 대변이 저절로 나왔다. 한번은 화장실에서 대변을 보지 못했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이미 바지에 변을 싼 상태였다. 건장한 젊은이가 갑자기 이런 꼴이 됐다.

한의사, 양의사를 다 만나봤는데 약을 먹을수록 증상이 더욱 심해졌다. 황력 6월 초열흘에 집에서 ‘탕두가결(湯頭歌訣)’이란 옛날 책을 보니 ‘계명산‘이란 처방이 무거운 다리를 치료한다고 했다. 고통이 싫었던 나는 처방대로 약방에 가서 약을 지어와 두 제를 먹었는데 날이 밝을 때 많은 더러운 것들을 배설했고 다리가 따뜻해지고 소변간격도 길어지며 다리도 좋아졌다. 그런데 황력 6월 14일, 아버지가 현지에서 비교적 유명한 경험 많다는 한의사를 초청해 와서 그의 처방약을 두 제를 먹었더니 오히려 다리가 더욱 무거워졌고 마비됐다. 그런데 이 돌팔이 의사는 반응이 있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그의 처방대로 계속 60여제 먹였는데 그 후 다리는 완전히 마비돼 걸을 수 없었다. 이것은 중공 사당이 정권을 강탈한 후 중화 의학의 정수를 파괴해 사회와 민중에게 가져다 준 재난 중 하나다.

1977년에 나는 9살 어린 정신박약자 여성과 결혼했다. 그녀는 숫자 3개도 똑똑히 헤아릴 줄 모르는 정도의 지력이었으나 가사는 다 할 수 있었다. 그녀의 천성이 바보라 힘든 일도 주동적으로 했고 부지런했으며 정말로 남을 먼저 생각하고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았는데 다만 위장이 좋지 않아 만성장염이 있었다.

1979년 겨울 어느 날, 갑자기 감기에 걸렸는데 머리와 팔이 아프지 않는 외에 온몸이 다 아팠다. 특히 가슴, 등, 두 다리 근육관절이 매우 아파 매일 아스피린, 프레디니손을 10알씩 먹어야 했다. 너무 아파 죽고 싶어서 바보 아내보고 전선을 잡아당겨 달라고 하고 스위치를 눌렀는데 뜻밖에 정전이 일어났다. 죽는 것마저 어려웠다!

1981년 겨울, 12월이 다 됐는데 또 폐결핵에 걸려 열이 나고 기침하며 힘이 없고 식사량이 줄어들어 매일 물만두 몇 개밖에 먹을 수 없었다. 부모님은 내 모습을 보더니 마음이 조급해서 울었고 건강이 갈수록 나빠지는 것을 보고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 돈을 빌려 관을 만드는 목재를 사오고 재봉사를 찾아 수의를 만들었다. 하지만 하늘에서 불행한 나를 불쌍히 여겼는지 아니면 무슨 원인인지 나는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적같이 살아났다. 그러나 1987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대법을 얻은 초기 신불(神佛)의 신기함을 체험

1998년 4월 2일 오전, 이웃이 ‘전법륜’을 보라고 내게 가져다줬고 이 책은 불가(佛家) 수련대법이고 매우 진귀한 불법(佛法) 책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불법 수련 책이라고 하자 관심이 생겼고 즉시 한 세트를 구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웃은 내가 진심으로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고 구해주겠다고 했다. 오후에 그녀는 내게 책 4권 (‘전법륜’, ‘미국법회 설법’, ‘시드니법회 설법’, ‘파룬따파의해’)과 지난(濟南) 설법 동영상을 가져다줬다.

3일 밤으로 ‘전법륜’을 한 번 다 본 후 막 자려 하는데 복부에 ‘수불법(修佛法)’이란 3개 큰 글자가 새겨져있는 패쪽이 나타났고 사부님께서 파룬을 아랫배에 넣어주시는 것을 봤다.

4월 6일부터 윗 앞니가 아프고 코 안이 부었으며 머리가 어지럽고 머리 안에 화로가 있는 것처럼 뜨거웠다. 책의 법리대로 이것은 사부님께서 신체를 청리해주시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심성을 지키고 아무런 약도 먹지 않고 할 일을 했으며 계속 법공부를 했다. 8일에 4권 책을 다 봤고 설법녹음을 한번 들었다.

4월 10일 오전, 책을 보고 금방 눈을 감았는데 갑자기 머리 위에 길이 3미터, 두께가 약 30센티미터 쯤 되는 채색 파룬이 빨리 회전하며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고 주위에는 큰 붉은색 휘장이 있었는데 자신이 그 안에 덮어져 있는 것을 봤다. 그 아름다운 느낌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4월 10일 점심에 이웃이 또 사부님의 경문과 그림이 삽입된 5장 공법자료를 가져다주고 배우라고 했다. 오후에 책을 보다가 좀 힘들어 눈을 감았는데 사부님께서 금불(金佛)의 형상으로 내 왼쪽 상공에서 땅과 1미터 높이에 서 계셨고 신체 주위에 채색 광환이 있는 것을 봤다. 다시 책을 볼 때 책의 글자가 모두 황금색으로 변했다. 이후부터 법공부에 대해 신심이 가득했고 ‘전법륜’의 법리대로 집안의 모든 기공책, 점치는 책을 전부 다 처리했고 곳곳에서 자신을 진정한 수련인으로 요구했다. 수련생이 책에 따라 5장 공법을 가르쳐주자 매우 빨리 배웠고 연공음악 테이프를 복사해 앞 4장 공법은 아침저녁으로 한 번씩 연공했고 제5장 공법은 저녁에 했다.

법을 얻은 지 한달 후, 오후에 방에서 책을 보다가 힘들자 결인하고 가부좌를 했다. 눈을 감자 강한 빛에 눈이 부셔 나는 의자를 서쪽 방향으로 돌리고 다시 결인하고 눈을 감았는데 순간 굳어버린 것 같았다. 눈앞이 눈부셨다가 서북쪽에 어떤 생명이 세 줄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중 한 줄이 내려왔는데 지면에 닿을 무렵에야 모두 황금색이고 직경이 90센티미터의 원형 조각 꽃무늬 생명체라는 것을 똑똑히 봤다(층차의 한계로 진상을 볼 수 없었음). 동시에 하늘 한 쪽에 누각과 정자 및 화초나무 화면이 나타났고 이때 하늘, 지상, 방이 전부 황금색 세계가 됐다. 갑자기 큰 손이 내 복부에 들어가 끄집고 잡아당기고 많은 갈홍색의 썩은 살과 같은 더러운 물질을 끄집어내는 바람에 숨쉬기가 힘들었다. 이어서 또 중복해서 아랫배에서 더러운 물건을 끄집어냈고 마지막에 다리 관절을 두 번 손질했다. 병업을 없애자 온 몸이 매우 편안했다. 저녁에 금방 눈을 감았는데 또 길이와 모양이 다양한 각종 황금색 물질을 내 몸에 넣어주셨다. ‘전법륜’ 중 사부님께서 “우리 여기서는 파룬(法輪)・치지(氣機)를 넣어주어야 하며, 일체 수련의 기제(機制) 등 많고도 많은, 만 가지도 넘는 이런 것을 모두 당신에게 주어야 하는데, 마치 종자처럼 당신에게 심어준다. 당신의 병을 제거한 후, 해야 할 것을 모두 하고, 주어야 할 것을 전부 당신에게 넣어주어야만 당신은 비로소 우리 이 한 법문 중에서 진정하게 수련해 낼 수 있다”[1]라고 말씀하신 것과 똑같았다. 정공을 연마할 때 몸속의 아스팔트 같은 까맣고 진득진득한 뼈가 날아가 버리고 백옥 같은 새로운 뼈를 갈아주신 것을 봤다. 나는 철저히 환골탈태했다. 이것은 내가 대법을 얻은 후 직접 겪은 일이다. 사부님의 자비로움과 대법 수련이야 말로 내게 새로운 인생을 줄 수 있었다!

이 기적 같은 모든 체험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장애인도 불법수련을 할 수 있다니!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다. “수련의 길은 같지 않으나 모두 대법 가운데 있도다. 만사에 집착이 없으면 눈앞에 길은 스스로 열리리라”[2].

사부님의 “사람이 예전에 나쁜 일을 하여 생긴 업력(業力) 때문에 병이나 마난(魔難)이 조성된다.”[1]라는 설법을 배우고 자신이 만약 그렇게 많은 나쁜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이렇게 많은 업력이 없었을 것이고 돌팔이 의사 말을 듣고 약을 잘못 먹은 것은 다만 인간세상의 표면 현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법은 나를 위해 몇 년 동안의 마음의 매듭을 철저히 풀어주었고 인과응보의 법리를 알게 했으며 다시는 돌아가신 노 한의사(돌팔이 의사)를 마음에 두지 않게 됐다. 금생에 불법을 수련하고 환골탈태하며 자신을 되찾게 해주신 사부님의 구도에 감사드린다.

1998년 4월에 기쁘게 대법을 얻은 후 잇따라 대법의 각종 서적과 설법녹음, 영상물, 파룬 뱃지를 전부 집으로 사들였고 남동생은 내게 TV, CD플레이어를 사주기도 했다. 그리하여 사부님의 동영상을 매일 틀어놓고 인연 있는 사람이 오면 법을 듣고 연공을 배우게 했는데 오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대법(大法)을 널리 전하니, 소문을 들은 자는 찾고, 얻은 자는 기뻐하는바, 수련자가 날로 많아져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3]였다.

일상생활 모순 중 심성을 제고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매우 특별했다. 도시환경 개조 때문에 철거주민들은 한 줄로 설계한 집에 입주했다. 가장 긴 줄에 다섯 집이 있었는데(20개 방) 우리 집은 중간에 있었다.

앞 주민이 주택을 철거한 후 건물터를 팔겠다고 했고 나도 마침 작업장을 확대시키려 해 8방 길이의 건물터를 7천7백 위안에 사들였다. 건물터를 사기 전에 윗집 여자(여자가 집안 일을 결정함)와 함께 우리 두 집에서 돈을 나눠 내겠다고 말해놓았다. 그러나 땅 값을 계산할 때 그 집 여자는 두 개 방 비용밖에 내지 않겠다고 했다. 동쪽을 철거할 때 건물터에 허물지 않는 집단소유의 낡은 집이 있었는데 철거 시 다 허물지 않았다. 그녀는 두 개 방의 돈을 낸 후 공짜로 그 집단소유의 집을 차지하려 했던 것이었다. 당시 그녀의 의도를 똑똑히 알지 못했지만 자신은 수련인이고 “이것이 가장 어렵다. 어려운 것은 바로 당신이 속인의 이익 중에서 명명백백하게 손해를 볼 때, 절실한 이익 앞에서 당신이 마음을 움직이는가 움직이지 않는가”[1]라는 사부님의 설법이 깊이 머리에 반영됐다. 일상생활 중 모순이 나타날 때 그것을 자신 수련 상에서의 한 차례 고험이라고 생각했고 철저히 속인 마음을 내려놓자 심성도 따라서 많이 제고됐다.

아랫집 남자는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다. 1995년에 내게서 3,500위안을 빌려갔고 거기에 묵은 빚 350위안을 합하면 3,850위안이다. 당시 가정형편에 비하면 이 돈은 적지 않는 액수였다. 그는 빚을 떼먹으려고 일부러 바깥에서 내가 그의 아내를 강간하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돈을 위해 이렇게 부끄러운 일도 감히 했고 자신의 아내도 팔아먹었다. 2년 사이에 여러 번 갚으라고 재촉했지만 2,500위안 밖에 갚지 않았고 내가 갚으라고 할 때마다 그는 크게 욕설을 퍼부었고 마지막에도 결코 나머지 1,350위안을 주지 않았다. 대법을 배운 후 그와 발생한 일은 전생에 지은 업(業)이라고 생각하고 이후에 갚으라는 것을 완전히 포기했다.

법을 얻은 그 해 여름, 두 이웃은 연합해 나를 괴롭혔다. 이웃 여자가 먼저 와서 “말을 전하러 왔어요, 길을 남쪽으로 고치려고 온 마당 주민이 회의를 열고 언제 고치겠는지 상의하려고 해요”라고 했다. 동쪽 곁채는 내 창고였고 1년 내내 몇 천근 옥수수가 쌓여 있었으며 분쇄기도 거기에 설치되어 있었다. 문 앞에는 반죽하는 큰 가마가 있었고 반죽을 다한 것을 끓이는 다른 큰 가마도 있었는데 두 가마의 거리는 2미터밖에 안 됐다. 여과조는 바로 가마 옆에 있어서 여과해 끓인 액체가 파이프를 통해 다시 반죽 가마에 흘러들어가며 다시 반죽하는데 사용했다. 이런 작업 배치는 간편하고도 힘이 덜 들었다. 서쪽 곁채는 식초가 만들어지는 작업방이었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목적은 나의 생산 환경을 개변시키고 생산을 중지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악의에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나는 수련인이고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배치해주시고 결정하시는 것이기에 순리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튿날 저녁에 그들은 내 남동생도 불러 회의했는데 그 결과 이웃 남자의 조카가 반대해 그들의 계획이 무산됐다.

우리 마당 서쪽에 남북 방향의 옛길이 있고 길 서쪽에 집을 수리해서 계단을 마침 우리 마당으로 향하게 했다. 거기는 통풍이 잘되고 시원해 식사 시간이 되면 이웃들은 거기에 모여 앉아 한담했다. 몇 번이나 이웃 남자가 나의 험담을 하는 것을 들었다. 나를 보면 더욱 신이나 욕했고 우리 부부가 하나는 다리 병신이고 하나는 바보라고 욕하고 조롱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으면 더욱 귀에 거슬렸지만 나는 참고 마음속으로 매우 평온했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연공인이고 그가 내게 심성을 제고하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는 것을 알았다. 이후에 이웃 여자는 또 와서 내게 알려줘 나를 화내게 만들려 했지만 나는 여전히 심성을 지켰다.

소업 중 심성을 지키고 정진하며 착실하게 수련

어느 생에 몇 십 년이 걸려도 다 갚지 못하는 업을 지었는지 모른다. 1964년 앓기 시작해서부터 1998년 법을 얻기 전까지 34년간 여름에 솜바지를 벗어본 적이 없었다. 법을 얻고 나도 얇은 바지를 입었고 다리 류머티즘과 전립선이 완전히 나았으며 노안도 정상 시력으로 회복됐다. 매일 정력이 넘쳤는데 법을 얻은 15년 이후 다시는 약 한 알도 먹지 않았다.

1998년 11월 21일, 물 값을 낼 때 나는 자발적으로 더 사용한 10리터 물 값을 추가로 냈고 물 값 받는 직원에게 “지금 파룬궁을 연마해요. 우리가 연마하는 것은 ‘진선인(眞善忍)’이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기에 공짜로 물을 쓰는 것은 연공인의 표준에 부합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직원은 리스트에 “대법수련생이 물 값을 더 냈다”고 기록해 놓았다.

11월 23일, 물 값을 낸 이틀 후였다. 꼬리뼈에 손가락만한 종기가 생겼는데 춥고 열이 나며 헛구역질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며 입맛이 떨어졌다. 4일 후 사발처럼 커졌고 돼지 간 같은 색으로 변했는데 껍질이 벗겨져 물이 나와 할 수 없이 의사를 불렀다. 의사는 마취 주사를 놓고 절제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연공인이기에 마취주사를 놓지 않아도 됩니다. 절제하세요”라고 말했다. 의사는 정(丁)자 모양으로 절개했으나 아픔을 느끼지 못했는데 안에는 핏물이 있었고 고름은 매우 적었다. 의사는 닦아내고 상처를 붕대로 감았으며 하루 지나 붕대를 바꾸고 항생제를 맞으라고 했다. 우리 남매 넷은 모두 수련인이므로 약 쓰는 것을 주장하지 않았다. 다시 붕대를 바꿀 때 고름은 없어지고 종기도 가라앉았다. 의사는 직접 눈으로 내 몸에서 나타난 대법의 초범함과 신기함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20일 후 상처는 완전히 아물었다. 1984년에는 오른쪽 사타구니 살이 찢겨져 3센티미터 두께의 달걀 모양 큰 딱지가 있었고 18년간 벗겨지지 않았는데 대법을 배운지 며칠 만에 벗겨졌고 피부가 반들반들하게 빛났다. 이번 종기가 생기게 된 것은 심성을 제고한 나를 보시고 사부님께서 일부러 관을 크게 만들어 빨리 소업하고 빚을 갚게 하신 거라고 생각했다!

이전에 류머티즘으로 아팠던 곳이 또 아프기 시작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프기 시작하면 반나절도 안 되어 이불이 땀으로 다 젖곤 해서 매일 번갈아 햇빛에 말렸다. 온 몸이 아팠고 맥박은 매분 130번씩 뛰었으며 숨도 잘 쉬지 못했고 밥맛도 없어 매우 적게 먹었다. 어머니는 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파서 매번 여러 음식을 만들어 주시느라 매우 고생하셨다. 나는 여전히 매일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고 대법 책을 봤으며 사부님께서는 나를 도와 큰 업을 없애주고 계시는 것이라고 확고하게 믿었고 정진하고 착실하게 수련했다. 1999년 1월까지 40일간을 억지로 버텼다. 나는 어머니에게 “라면 하나 끓여주세요, 배고파요”라고 했다. 어머니는 매우 기뻐서 “한 달간 배고프단 소리를 듣지 못했구나!”라고 했다. 그 후부터 나는 매우 빨리 건강을 회복했고 또 정상적으로 연공하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어머니도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1999년 1월에 신년에 물 값을 낼 때 나는 또 간장과 초를 만드는데 사용했던 물 값을 추가해 냈는데 기적이 다시 한번 나타났다. 물 값을 낸 이틀 후 그믐날 23일에 아내 엉덩이에 종기가 났는데 이틀 후 종기가 직경 6~7센티미터로 되고 주위가 사발만하게 부었다. 즉시 수액을 맞고 약을 먹었으며 그믐날 29일에 아파서 절개하고 고름을 짜내고 열흘이 지나자 나았다. 이번 일을 통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인간세상의 이치는 반대라는 법리를 깨달았다. 이것은 우리가 좋은 일을 했기 때문에 상을 얻은 것이고 진짜로 수련하는 제자가 빨리 소업하게 하시는 것이다.

1999년 봄에 얼굴 신경마비가 또 나타났지만 나는 여전히 확고하게 신사신법하고 마음에 두지 않자 20일 만에 다 나았다.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가족이 혜택을 받는다

아내의 만성 위염은 발작하면 며칠 간 밥을 먹지 못하고 포도당 물만 조금 마실 수 있었는데 배를 치며 배가 그득해 괴롭다고 했다. 양의사 말로는 이것은 만성 위축성 위염 증상이라고 했다. 내가 법을 얻은 후 아내의 지병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아침저녁으로 한 사발 먹으면 아내는 세 사발 먹을 수 있었다. 딸은 해마다 겨울이면 목이 며칠 쉬곤 했다. 2009년에 또 목이 쉬었는데 나는 정념으로 대하지 않고 속인 방식대로 약을 좀 먹으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어떤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었다. 어느 날 나는 또 그녀에게 비파나무 잎과 쥐방울 등 약을 먹게 했는데 오래된 한약으로 만든 탓으로 딸은 약을 먹고 계속 토했다. 처음에 어쩔 바를 몰라 급한 마음에 딸을 도와달라고 사부님께 빌었고 또 딸보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읽으라고 했다. 딸은 점심부터 저녁 9시까지 토하고 크게 설사 몇 번을 하더니 “아빠, 땀이 났어요”라고 했다. “땀이 나는 것은 좋은 일이지. 사부님께서 너의 병을 없애고 병 뿌리를 뽑아주시는 것이야”라고 했다. 이튿날 아침에 딸의 쉬었던 목이 나았고 딸은 내가 끓인 좁쌀죽을 먹고 출근했다. 이후로 다시는 발작하지 않았다.

이후 법리에 따라 안을 향해 자신의 부족함을 찾았다. 자신의 관념에 의학상식을 좀 안다는 근본적인 집착심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련인의 모든 것과 관련된 가정환경을 포함해 모두 사부님께서 관할하고 계시는 것이고 우리의 직업, 생활은 수련과 하나로 융합되어 있는 것이다. 관건적인 시각에는 주변에 발생한 모든 것을 수련인의 태도로 대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렸다. 속인 물건을 어떻게 수련에 사용하고 속인 물건으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이것을 인식하자 법리상 또 한번 제고되고 승화됐으며 온 몸이 부풀어 오르고 법에 녹아드는 것 같았다.

진상을 알리고 세인을 구하다

2005년 사부님 경문 ‘세간을 향해 바퀴(輪)를 돌리노라’와 ‘9평’ 자료를 얻은 후부터 삼퇴를 권하는데 참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친척, 친구에게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는데 두려움이 많고 경험이 적어 효과가 좋지 않았다. 반복적으로 ‘9평’을 보고 인터넷의 각종 예언과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한 수련생들의 교류문장을 보고 경험이 점차 풍부해졌다. 법을 잘 배운 기초 상에서 정념도 점차 강해지고 수시로 발정념하는 것을 중시하고 사부님께 가지(加持)해달라고 요청하자 삼퇴를 권하는 효과가 갈수록 좋아졌다.

2008년 전의 44년은 내성적인 성격이라 낯선 사람과 교류하기 싫어해 밖에 나가 사람과 접촉하는 것이 적었다. 사부님의 설법을 배운 후 대법제자는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해야 한다는 중요성을 깨닫고 위사위아(爲私爲我)의 상태를 개변하고 삼퇴를 권하는 큰 흐름에 녹아들었다. 2008년부터 아침 5시에 일어나 거리를 청소하는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는데 거의 다 탈퇴했다. 그리고 시장에 가서 야채 장사꾼과 지나가는 행인에게 진상을 알렸다. 2010년에는 공원에 사람이 많고 시간에 따라 모이는 사람들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1시부터 3시까지는 고등학생이 많고, 3시부터 퇴직한 노간부가 많았다. 공원에서 많은 노간부에게 진상을 알려 대다수 사람들은 진상을 똑똑하게 알고 삼퇴했는데 다만 사당의 거짓말에 속고 있는 소수의 노간부가 삼퇴를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방해도 했다.

2011년 후반기부터 매일 점심 1시 반에 공원에 가서 고등학생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는데 효과가 비교적 좋았다. 가는 도중에 사부님께 공간장을 청리해주시고 인연 있는 사람을 배치해달라고 발정념을 했다. 사실 정말로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이다. 매일 새로운 사람이 많았고 중복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가장 많이 삼퇴했던 것은 올해 봄이었다. 공원에서 여러 명 아이가 놀고 있는 것을 보고 다가가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자 그들은 모두 탈퇴했고 이후에 또 중학생 두 명이 왔는데 그 둘도 삼퇴에 동의해 모두 14명이 삼퇴를 했다. 그들은 내게 많은 문제를 제출했고 나는 하나하나 대답해줬다. 그러자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말하느라 경찰 두 명이 온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이 학생 몇 명을 불러갔지만 나는 마음이 평온했고 두려워하지 않아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공원의 긴 의자에 4명이 앉을 수 있어 매번 1~4명을 탈퇴시킬 수 있었다. 진상을 알릴 때 진상을 똑똑하게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예언과 장자석 내용, 수인(獸印)을 없애 평안을 보장하는 것,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 미치광이 푸이빈(傅怡彬)이 살인하는 것, 대법이 전 세계 널리 전해진 것, 삼퇴 인원이 날마다 증가되는 것, 신불이 법을 전하고 사람을 구하는 것, 1989년 ‘6·4’ 천안문 대학생 탄압한 일, 장쩌민이 “공산당이 파룬궁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란 말을 뱉은 후부터 6만5천 파룬궁수련생의 장기를 생체 적출하는 것,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자주 읽어 복을 얻은 실례, 사회부패로부터 부패한 관리가 곳곳에 있고 천재와 인재가 나타나며 지금 사회에서 나타난 정국 동요와 각종 위기가 나타난 원인까지 말해줬다. 아이들은 비교적 진상을 받아들였고 다 자발적으로 삼퇴했다.

계속 이웃들에게 삼퇴를 권한 실례를 말해보겠다. 우리 이 마당에는 임시로 10여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유동인구가 많아 삼퇴를 권하는데 많은 편리를 가져다줬다. 매일 이웃에 친구와 친척들이 놀러와 수시로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 그(그녀)들에게 진상을 똑똑하게 알리고 삼퇴를 권할 수 있었다. 돈을 빌리고 갚지 않았던 이웃 남자가 죽자 그의 아내의 남매들이 매우 많이 왔는데 대부분이 당원이었지만 그들마저 모두 삼퇴시켰다.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면서 가지각색의 중생을 만날 수 있었는데 어떤 사람은 진상을 알리기만 하면 탈퇴했고 자신만 탈퇴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에게도 탈퇴해주려 하면 반드시 본인이 동의하고 탈퇴해야 한다고 알려줬다. 어떤 사람은 많은 사람을 불러와 탈퇴하게 했고, 어떤 사람은 탈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발하는 사람도 있었다.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날 수 있었다. 이전에 먼 친척이 하나 있었는데 여러 번 권해도 탈퇴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공산당의 돈을 받으면서도 나보고 당, 단, 대에서 탈퇴하라고? 공안국에서 이미 당신 이름을 알고 있어. 병신이 아니었으면 벌써 잡혀 갔어”라고 욕했다.

아내와 결혼한 지 40여년이 됐는데 그 사이에 처갓집에 간 적이 없었다. 2009년 여름, 마침 장모가 세상을 떠난 지 3년째가 됐다. 아내는 마을 사람들에게 삼퇴를 권하라고 활체어로 나를 밀고 아침 7시에 출발했다. 큰 길을 따라 갔는데 갈림길에 도착하자 아내도 어느 길로 가야 할 지 몰랐다. 결국 저수지 제방까지 와서야 틀리게 왔다는 것을 알았다. 마침 거기에 5명이 앉아있는 것을 보자 우리는 다가가 길을 물었는데 외지 사람들이어서 그들도 몰랐다. 우리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다. 한 명은 당에서, 두 명은 단에서, 두 명은 대에서 탈퇴했다.

우리는 다시 갈림길로 가려고 하는데 한 농부가 밭에서 감자를 가꾸고 있는 것을 보고 다가가 그에게 진상을 알리고 대에서 탈퇴시켰다. 남동생과 아내의 남동생은 우리를 찾으러 마중을 나왔다. 장인이 살고 있는 마을로 밀고 갔는데 마을 길 경사가 너무 심해 힘들어 진상을 알리기 불편해 겨우 8명만 탈퇴시켰다.

정념정행 수련을 처음과 같이

지금 매일 4~5시간 법공부를 하는데 주로 저녁에 하고 낮에도 했다. 올해는 온라인 법공부를 많이 했다. 대법 책이 완전치 않아 인터넷에서 보면 전면적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견지했고 삼퇴를 권하고 밍후이왕에 접속에 수련생의 교류문장을 봤고 시간을 빼곡하게 배치했다.

우리 이곳에는 수련생이 매우 적었고 3남매는 각종 이유로 법공부 팀을 형성할 수 없어 각자 집에서 법공부를 했는데 며칠에 한 번씩 함께 교류했다. 나는 큰 여동생과 함께 삼퇴를 가장 많이 했는데 막내 여동생의 남편이 대대간부였기 때문에 그녀와는 적게 했다. 이런 인맥이 있었으므로 박해 이후 14년간 촌에서는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몇 년 동안 평온하게 걸어올 수 있었던 근본적인 보장은 신사신법하고 마음속의 두려움을 내려놓고 사부님께서 배치한 수련의 길을 걸었고 정법 시간이 짧든 길든,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설령 사악이 가장 미친 듯이 날뛰는 기간에도 시종 법을 스승으로 삼고 확고하고 착실하게 연마했기 때문이다.

결심을 내리고 이 문장을 쓸 때 꿈에서 이불을 덮고 있어 이불을 젖혀보니 온 몸에 큰 면적의 피부가 촉촉하고 따뜻하며 연분홍색 피부처럼 가득 벗겨져 있는 것을 봤다. 순식간에 온 몸의 피부는 금방 태어난 아기처럼 부드러웠고 본체는 다시 한번 개변되고 승화됐다.

이상은 이 몇 년간 수련하면서 체득한 진실한 수련심득을 수련생 여러분과 함께 교류한 것이다. 처음 투고하는 것이고 법에 대한 인식이 아직 부족하므로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2] 리훙쯔 사부님의 시가: ‘홍음2-가로막지 못하리’[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사부를 모시다(拜師)’

(밍후이왕 제10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3년 11월 1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10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18/282157.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3/12/16/14369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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