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기자 쯔윈 취재보도) 스웨덴 정식 간호사 피르요 스벤손(Pirjo Svensson)는 경력 있는 간호사다. 스웨덴에서 정식 간호사 지위는 의사보다 낮지 않다. 그들도 생사를 드나드는 ‘백의의 천사’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역시 평범한 사람이고 보통 사람처럼 질병과 시련이 있다.
피르요는 암에 걸린 어린이를 책임졌는데 많은 생명들의 나약한 죽음을 목격했다. 하지만 자신의 신체는 어땠을까? 그녀는 요통으로 참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당시 그녀는 33세로 인생 발전의 황금기였다. 하지만 요통이 발병하면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고 밤새 잠도 이루지 못했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서양의학 치료, 심리치료 및 기공치료도 받아봤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녀는 이후 파룬궁을 만나 생명의 전환점을 맞았고 그 후 먼 중국과 인연을 맺었다.
1. 파룬궁과 인연을 맺다
30살 때 피르요
“피르요, 당신은 알고 있나요? 중국 기공사가 곧 스웨덴에 온다고 합니다. 그는 젊고 지혜가 있으며 현명하고 아주 능력이 있어요. 그가 스웨덴에서 기공학습반을 개최한다고 합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서 한 친구가 생각대로 말한 것이다. ‘중국 기공사? 그가 누구지? 이름이 뭐지?’ 다 몰랐다. 하지만 피르요는 이 학습반에 참가하려 결심했다. 그녀는 친구에게 쪽지를 받고 연락하기로 했다.
스웨덴 사람들은 기공, 태극, 요가에 낯설지 않다. 의료기공은 신체 에너지 통로를 열어 건강에 유익하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인다. 생명 중 기연은 어떠한가? 피르요는 더는 생각하지 않고 고통을 감소시키는 일체 방법을 찾았다.
1995년 14일부터 20일까지 파룬따파 학습반이 스웨덴 괴팅겐에서 7일간 개최됐다. 파룬궁 학습반 첫날에 피르요는 제시간에 도착했다. 장소는 노르가든이었다. 그곳은 노란색의 오래된 건물로 면적이 크고 근처에 작은 언덕이 있다. 학습반에 참가한 사람은 120여명인데 거의 지방 사람이었다.
피르요는 강단과 가까운, 잘 들리는 좋은 자리를 선택했다. 파룬궁 사부님도 제시간에 도착했다. 피르요는 회상했다. “그는 보기에 젊고 온화했습니다. 나는 사부님을 보자마자 기쁘고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나 자신도 왜 그런지 해석할 수 없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아주 온화해 자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짙은색 양복에 흰색 셔츠를 입고 계셨습니다.” 피르요는 지금도 처음 뵌 사부님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파룬궁 도대체 무엇인가?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은 기초부터 말씀하시기 시작하셨다. 무엇이 파룬따파인가? 무엇이 수련인가? 사람의 생명은 어떤 구조인가? 다른 공간의 생명 존재 형식은 무엇인가? 피르요는 들으며 정신이 팔렸다.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에 특별히 흥미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도 사부님처럼 재미있게 얘기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나는 줄곧 이런 내용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리훙쯔 대사의 설법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가 확대되는 것 같았다. 얼마만한 성계가 하나의 우주를 형성했는가? 얼마나 많은 우주가 또 한 층 우주를 형성했는가? 우주는 도대체 몇 층이 있는가? 서양 수련생에게 똑똑하게 알려주기 위해 사부님께서는 그림을 그리며 말씀하셨다. 사부님께 통역을 해준 사람은 스웨덴과 스톡홀름에서 번역을 하며 10여 개 언어에 정통한 사람이다. 피르요는 흘려들을까 봐 정신을 집중하고 들었으며 끊임없이 기록했다. 그녀는 사부님께서 그린 것과 말씀하신 것을 모두 기록하려 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은 아주 신기하고 어떤 사람도 들은 적이 없었다. 한 강의가 끝나고 사람들은 파룬궁 사부님을 둘러쌌다. 피르요는 기회를 잡아 사부님 앞에 다가가 끊임없이 질문했다. 사부님께서는 그녀를 보면서 직접 대답은 하지 않으시고 반문하셨다. “제가 말한 것 알아들었나요? 알아들을 수 있나요?” 비록 피르요는 알아들었다고 답했지만 사부님께서는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사부님께서는 여러 사람을 보고 말씀하셨다. “제가 파룬따파의 위력을 펼쳐 보이려 합니다.”
다들 사부님의 눈만 쳐다보았고 동시 통역가는 사부님의 지령만 서술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모든 사람에게 신체에 아픈 곳을 생각하고 사부님의 손동작을 보고 신체의 아픈 곳을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 손으로 일부 특수한 동작을 하셨습니다. 저는 제 척추를 생각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손으로 일부 동작을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갑자기 등 뒤에서 바람이 부는 느낌이 ‘솨’ 들더니 허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일종 에너지가 척추를 지나갔습니다. 요추 압박감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허리는 단번에 편안해졌습니다.”
너무 신기했다! 모든 수련생은 직접 신기한 체험을 했다. 매 사람마다 신체 문제가 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졌다. 사부님께서 대법의 위력을 시연한 것은 모든 사람을 감동시켰다. 이어지는 수업은 갈수록 피르요를 빠져들게 했다.
피르요는 말했다. “사부님께서 천목을 말씀하실 때 물건이 머리 앞에서 돌고 있는 느낌이었고 에너지는 강렬하고 힘이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또 다른 공간을 말씀하셨습니다. 부동한 공간에 부동한 생명이 존재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날 밤에 집에 돌아가 감히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무엇이 보일까 봐 밤새 불을 켜고 잤습니다. 이튿날 나는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나는 좀 두려워한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무엇을 보게 되면 어떻게 되냐고 여쭈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이런 일에 두려워하지 말고 어떤 위험도 없기에 두려워하지 마세요’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매일 먼저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공법을 배웠습니다. 다들 정신이 났고 사부님의 설법은 매 사람을 빠져들게 했습니다. 연공할 때 사부님께서는 걸어 다니며 가볍게 동작을 바로 잡아 주셨습니다.”
세 번째 날 설법을 할 때 피르요는 강렬한 신체 반응이 나타났다. 집에 돌아가 큰 출혈 현상이 나타났으며 머리도 깨지는 듯 아팠다. 그녀는 이것은 연공 중의 반응이며 ‘소업’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사부님을 믿었다. ‘이것은 병이 온 것이 아니라 병을 제거하는 것이다.’ 생각을 명확히 하고 몸이 아파도 출근도 지체하지 않고 계속 강의를 들으러 갔다. 이상하게도 사부님의 강의를 들으러 가면 신체의 모든 상태는 정상으로 회복됐고 강의가 끝나면 불편함이 다시 나왔다. 강렬한 신체 반응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파룬궁을 생각하게 했다. 7일 학습반이 끝나고 그녀 신체상의 모든 질병이 철저히 사라졌다!
말할 수 없는 감동, 단지 7일 학습반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우주, 시공, 인체의 미스터리, 심지어 더욱 높은 층차의 공간을 말씀하셨다. 동시에 피르요도 역시 가장 중요한 이치를 알게 됐다. 우주가 아무리 복잡해도 인체는 가장 소중한 것이다. 그녀는 생명의 영원함을 말할 때 지금 사람이 하는 매 한가지 일은 자신의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첫째 날 강의에서 좋은 사람이 돼야 하고 모든 일에서 다른 사람을 고려해야 하며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녀는 스스로를 떠올리자 괴로웠다. 피르요는 사부님께 다가갔는데 이번에 그녀는 더 이상 과학의 미스터리를 탐구하거나 건강을 위해서도 아니며 자신의 반성과 잘못을 뉘우치기 위해서였다. “사부님, 파룬따파가 저를 도울 수 있을까요? 나는 이전에 잘못을 범했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사부님은 그녀를 아주 엄숙하게 보시더니 말씀하셨다. “파룬따파는 당신의 모든 것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비록 당신이 전에 한 일은 당신이 모두 모르고 한 것입니다. 파룬따파는 이런 일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피르요는 사부님을 바라보았다. 사부님의 눈길은 마치 우주 공간을 투시하고 그녀 생명의 영원함을 본 것 같았다. 반드시 진짜다! 물질은 불멸하고 생명은 윤회하며 대법은 모든 은혜와 원한을 선해(善解)할 수 있다! 사부님의 말씀은 갑자기 그녀의 마음을 홀가분하게 했다. 그녀는 사부님께 비할바 없는 친근감이 생겼고 경외심과 존경심이 생겼다. 그녀는 다른 수련생이 사부님께 가깝게 접근하면 심지어 질투심까지 들었다.
“당시 저는 사부님과 가까이 있으려 했고 사부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바로 이런 심정이었죠.” 피르요는 자신도 모르게 아이처럼 말했다.
파룬궁을 수련하고 피르요는 정신과 의사와 ‘절교’했다. 그녀는 14살부터 정신과 의사의 지도를 받았으며 지금껏 중단한 적이 없었다. 우울증이 범람하여 그녀만 정신과 의사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적지 않은 사람이 그렇다. 현대병이 온 유렵에서 만연돼 매 사람을 위협하고 있다. 지금 파룬궁을 연마하는데 심리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을까? 수련생들은 사부님을 에워싸고 물었다. 사부님께서는 웃으며 대답하셨다. “친구를 찾아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피르요는 심경이 확 바뀌었다. “이전에 상처받은 마음은 평온해지고 마치 솜 한 층이 덮어있는 듯 아주 부드럽고 온화했습니다. 심령의 승화한 후 걸어도 걸음이 가벼웠습니다. 저는 수련은 우선 심성을 수련해 자신을 제고하고 좋은 사람이 되며 다른 사람에 보복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처음에는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을 시도하고 안을 향해 찾았습니다.”
즉시 효과가 나타났다. 그녀는 트집 잡는 이웃을 만났다. 그녀는 참았고 이웃과 다투지 않았다. 그녀는 또 억지를 쓰는 환자를 만났다. 그녀는 참을성 있게 화해하고 모순이 격화되지 않게 했다. 옆에 보던 친구와 동료는 보고 넘어갈 수 없었다. ‘피르요가 왜 저렇지? 갑자기 왜 이렇게 나약해졌을까?’ “피르요! 왜 어떻게 된거죠? 왜 그렇게 인내심이 강해졌어요?”
피르요는 유쾌하고 환하게 웃었다. 그녀는 기뻐하며 주변 사람에게 말했다. “파룬따파가 나에게 참을성이 생기게 도와줬어요. 나는 파룬궁 수련자이며 진선인(眞善忍)을 믿어요!”
2. 최초의 중국 여행, ‘집에 돌아가’ 친척방문을 하다
스웨덴 파룬따파 학습반에서 이 한 무리 스웨덴 파룬궁수련생들은 혜택을 뚜렷이 받았다. 수련생들은 대법에 대단히 감사드렸다. 이때 각 어종의 대법 책이 잇따라 번역 중이었다. 1년 후 스웨덴어 ‘전법륜’이 출판됐다. 피르요는 얻은 후 아주 기뻐했다.
“이 책을 보고 나는 밤새 읽었으며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문이 열린 것처럼 나는 그것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아직 그 꿈을 기억하고 있는데 사부님 꿈을 꾸었습니다. 나는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아직 저는 파룬따파가 무엇인지 진정으로 알지 못합니다. 제가 굽은 길을 가도 저를 버리시면 안 됩니다. 한 번 더 제게 기회를 주세요’…….”
대법 책은 오묘하고 무궁하다. 읽을수록 더욱 깊이 알고 싶다. 이것은 서양 대법제자의 보편적인 심리다. 사부님께서 스웨덴을 떠나시고 수련생들은 사부님을 아주 그리워했다. 중국 그 땅에 깊은 그리움이 있었다. 다들 소원은 ‘집에 돌아가’ 친척 방문을 하자는 것이었다!
1996년 가을, 피르요는 몇몇 스웨덴 수련생과 함께 중국에 갔다. 우선 베이징에 갔다. 당시 베이징 어느 공원에 가도 파룬궁을 찾을 수 있었다. 서양 수련생으로 말하면 아주 흥분되는 장면이었다. 마음대로 어느 연공장에 가도 함께 연공할 수 있었다. 중국 수련생은 해외 수련생을 보고 아주 열정적으로 대했으며 그들을 집에 데려와 함께 밥을 먹었다.
“우리는 중국 수련생과 교류했을 때 늘 한 사람은 영어를 할 줄 알았습니다. 만약 통역이 없으면 우리는 서로 상대방을 보며 웃었습니다. 다를 함께 있는 느낌이 아주 좋았습니다. 나는 중국어를 배우고 싶었습니다. 마침 한 친구가 생일이었기에 우리는 중국어로 그녀를 위해 생일 축하곡을 불렀습니다.”
중국 수련생과 교류할 때 서양 수련생은 수련에 대해 깊은 이해가 있었다. 피르요는 “중국에서 수련생들의 심득교류를 들으면 정말로 격동됩니다! 한 여자 수련생이 이전에 심장병이 있고 심장 기능이 약해 20여년 직장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파룬궁을 수련 후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수련 중 고험이 왔습니다. 한번은 가부좌를 할 때 심장이 갑자기 아프게 됐는데 그녀는 전혀 고질병이 재발한다는 염두가 없었고 오직 일념, 아픈 것은 병을 청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일념으로 그녀는 큰 관을 넘겼습니다! 다른 한 여자 수련생은 머릿속에 종양이 있었고 의사도 그녀에게 생명이 1년 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파룬궁을 수련하고 3년이 지났는데 아직 살아있고 종양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그녀는 내 앞에 서 있었습니다…… 무엇이 수련인가? 수련 중의 일사일념은 얼마나 중요한가?! 만약 단체 중으로 걸어가지 않았다면 수련 중의 일은 자신의 탐색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력을 소모해야 하는가?!“
“이런 환경은 우리에게 아주 좋고 인상이 아주 깊습니다. 가장 기억이 깊은 것은 단체 연공을 하는 것입니다. 제2장 공법시 팔을 들 때 아주 힘듭니다. 만약 집에서 하면 전혀 견지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런 단체 장소에서 나는 느슨히 할 수 없었고 얼마나 아프고 힘들어도 중국 수련생처럼 견지했습니다. 결가부좌는 바로 중국에서 돌파했습니다!”
3. 두 번째 중국 여행, 경찰에게 파룬궁을 알리다
1998년 성탄절이 지나자 서양 파룬궁수련생들은 또 ‘집으로 왔다’. 그들은 중국을 ‘처가집’으로 생각했고 이번에는 23~24명 수련생이 왔다. 그들은 베이징을 거쳐 또 기차를 타고 다롄(大連)에 왔다. 그들은 다롄에서 중국 신년을 지내려 했다. 기차에서 내리자 서양 제자는 눈앞에 있는 장면에 놀랐다. 많은 중국 수련생이 마중하러 나왔고 서양 제자를 단번에 각자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서양 대법제자는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했다!”라는 따뜻한 중국말을 전부 배웠다. ‘처가집’ 생활은 너무나 따뜻했다. 피르요는 말했다. “기억하건데, 그들은 채소 소, 새우 소, 고기 소 등 7가지 재로로 물만두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맛을 봤습니다…… 정말로 잊혀지지 않습니다.”
중국 신년 다음 날, 모든 서양 파룬궁수련생은 다롄에서 아침 연공에 참가했다. 그것은 수승(殊勝)한 대법의 인간세상 성지였고 10만 명이 넘는 파룬궁수련생이 단체 연공을 했다.
서양 파룬궁 수련생이 다롄 단체 연공에 참가하다
피르요는 “한 축구 체육관 부근이었는데 매우 큰 축구장 하나가 있었고 밖에 잔디밭과 아스팔트 도로도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그 장면과 지역을 회상했다.
그러나 당시 중공은 이미 파룬궁수련생을 감시하고 있었다. 연공하는 인원이 끊임없이 증가되자 커다란 사회 단체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지금 또 이렇게 많은 외국인이 나타나자 정부에서는 파룬궁은 도대체 무엇인지, 해외에서 어떤 발전 징조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파룬궁의 진실한 상황을 정부에게 알리기 위해 현지 파룬궁수련생은 스웨덴에서 온 몇몇 수련생과 다롄 경찰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는데 피르요가 바로 그 중 한 명이었다.
“경찰들을 따라 갔는데 100여명 경찰이 한 방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진실한 상황과 우리가 아는 파룬궁을 알려줬습니다. 통역원이 현장에서 우리가 말한 것을 그들에게 전달해줬습니다.” 당시 피르요는 이미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녀는 ‘전법륜’의 논어를 중문으로 그 자리에 있는 경찰에게 읽어줬다. 경찰들은 외국인이 중국어를 잘하자 놀랐다. 피르요는 경찰에게 파룬궁을 수련하기 위해 많은 서양인이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알려줬다. 그들은 경찰들과 자신의 수련체득을 나눴는데 경찰들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피르요는 말했다. “당시는 가장 아름다운 나날이었고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중국 수련생은 모두 상냥했고 우리를 잘 돌봐줬으며 중국에서의 대법 상황을 많이 알려줬습니다. 우리는 함께 중국 신년을 축하했는데 우리는 스웨덴어로 스웨덴 노래를 불렀고 중국 수련생은 중국어로 중국 노래를 불렀습니다. 모두들 따뜻한 분위기에 취했습니다.”
피르요는 항상 만약 그 중국 수련생들과 교류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수련에 대해 그렇게 많이 알지 못했을 것이고 이렇게 확고하게 대법을 따라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중국에서 대법의 신기함을 너무 많이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베이징, 다롄, 홍콩, 선전 등 많은 곳에 간 적이 있지만 온 중국을 돌아다니며 대법이 널리 전해진 것을 보려는 것이 그녀의 소원이다.
4. 세 번째 중국 여행, 마음은 무겁고 어렵게 진상을 전하다
1999년 7월 20일, 파룬궁을 탄압하는 한 차례 기세 높은 운동이 중국대륙에서 시작됐다. 스웨덴 수련생들은 소식을 들은 후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예터보리의 스웨덴 주재 중국 대사관을 찾았다. “우리는 중국 대사관 밖에서 그들에게 파룬궁을 박해하지 말라고 했고 파룬궁은 좋은 것이며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으로 잘못한 것이 없으며 ‘진선인(眞善忍)’을 믿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중국 대사관은 응답이 없었다. TV, 잡지, 국제 뉴스에서는 전반적으로 중국 정부측 매체 보도를 전재해 죄를 뒤집어씌우고 파룬궁을 모욕하는 정보를 해외로 만연시켰다. “사실이 아니었죠! 밍후이왕에서 전해 온 소식을 보고 울면서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라고 강요하기 위해 교도소에서 노인도 학대한다는 것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밍후이왕은 파룬따파 불학회가 주최한 사이트로 중국 대륙의 직접적인 자료를 받고 전 세계 대법제자에게 수련 방면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정보를 통해 중국 많은 파룬궁수련생이 납치 수감되고 고문에 시달리고 있으며 중국 대륙에 있는 파룬궁수련생은 거의 치명적인 재난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바다를 사이 둔 서양 대법제자는 매우 초조했다. 그들은 ‘처가집’과 연락이 끊기고 편지가 통하지 않으며 전화를 걸어도 사람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스웨덴 TV방송에서 중국 파룬궁 상황을 해명하고 국가와 국제적 관심을 받길 희망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중국 공산당이 외신 기자의 취재 경로를 차단했기 때문에 그들은 중국 파룬궁수련생을 접촉할 수 없었다.
1999년 11월, 피르요와 몇몇 스웨덴 수련생은 특별히 베이징에 갔다. 그들은 중국 주재 미국, 핀란드, 스웨덴 및 기타 국가 기자와 연락했다. 외신 기자가 중국 파룬궁수련생을 만나게 함으로써 진실하게 파룬궁을 보도하게 하려고 했다.
이번 베이징 여행 내내 중국 경찰이 미행했고 호텔에서 경찰은 그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동영상을 찍었다. 비록 분위기는 공포스러웠지만 경찰은 서양 수련생에 대해 그래도 침착하게 대했다. “공기는 매우 무거워 숨쉬기도 힘들었고 파룬궁 아침 연공 장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태극권, 태극검 같은 것 밖에 없었고 아무 공법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탱고를 추는 사람이 쓸쓸히 있었습니다……”
그들은 천안문 광장 앞에 와서 산책했지만 마음은 매우 무거웠다. 모두들 마치 ‘언제든지 우리는 다시 올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5. 네 번째 중국 여행, 서양인의 청원이 전 세계에 알려지다
서양 파룬궁 수련생이 천안문에서 청원해 전 세계를 놀라게 하다
2001년 11월 21일, 국내외를 놀라게 하는 ‘서양인 청원’ 사건이 천안문 광장에서 발생했다. 30여명 12개국에서 온 서양인 파룬궁수련생이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평화적으로 청원했다.
세계 각국 TV방송국에서는 앞다퉈 천안문 광장의 화면을 보도했다. 서양인들은 커다란 ‘진선인(眞善忍)’ 글자 아래 한 줄의 영문 ‘Truth Compassion Tolerance’이 쓰인 있는 현수막을 펼쳤다. 서양인들은 바닥에 앉고 한 손으로 가슴 앞에 입장했다. 주위 여행객들은 놀라서 어안이 벙벙했다. 이후 귀에 거슬리는 경찰차 소리가 들렸고 출동한 경찰들이 현수막을 빼앗고 사방을 포위했다. 두 경찰이 서양인을 끌어당기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전 세계는 다 안다! 미국이 안다! 유럽도 안다! ‘파룬따파하오’를……”라고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피르요는 회상했다. “두세 대의 하얀 경찰차에 탄 경찰들이 우리를 경찰차에 집어넣었습니다. 제가 협조하지 않자 그들은 머리를 끄집어 당기고 경찰차에 끌어올렸습니다. 그들은 폭력을 사용했고 몇 명을 때렸습니다. 경찰차가 움직이자 나는 창문을 열고 높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외쳤고 다른 사람들도 따라 외쳤습니다. 한 경찰이 덮치고 내 등 뒤에 앉자 나는 일어설 수 없고 호흡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천안문 광장의 서양인 수련생은 한 곳에 수감됐다. 거기에서 피르요는 몰래 예터보리 매체에 전화를 걸었다. 다른 국가 서양인도 잇달아 자기 나라에게 정보를 알렸다. 국제 매체는 즉시 폭발했고 스웨덴 TV방송국에서도 추적 보도했으며 한 시간에 한 번씩 보도했다. 베이징에서 스웨덴 파룬궁수련생의 상황은 수많은 가정에 영향을 미쳤고 사람들은 중국에서 발생한 일을 관심하기 시작했다.
피르요는 말했다. “작은 격리실에 수감됐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얼마나 수감돼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여기는 공안국이니 방법을 생각해 중국 수련생이 있는지 찾아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화장실에 가는 기회를 이용해 중국 파룬궁수련생을 있는지 찾아보려 했는데 경찰은 시시각각 나를 감시했고 화장실에 들어가도 따라 다녔습니다. 복도에서 경찰 3명을 보자 큰 소리로 ‘논어’를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뜻밖에 경찰들은 그녀를 막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 외국인이 중국어를 외우는 것을 보고 그들은 기뻐했고 박수까지 쳤다.
“우리를 또 한 호텔로 데려 갔는데 여전히 구치소 같은 곳이었습니다. 우리는 심문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비밀리에 중국에 왔는지, 어떻게 이런 일들을 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어했습니다. 우리는 경찰 지도자에게 파룬궁은 매우 좋으니 파룬궁을 박해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책상을 치며 큰소리로 ‘안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서양인이 중국에서 청원한 사건은 도마 위에 올랐다. 각국 영사관에서는 온갖 방법을 다해 자기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려 했기 때문에 수감된 파룬궁 서양인 제자는 잇따라 풀려났다. 스웨덴 대사관 직원은 도처에서 피르요 일행을 찾다가 드디어 만나자 분노하며 말했다. “도처에서 당신들을 찾았고 다 찾아봤습니다. 경찰이 여기 저기 뛰어다니게 했습니다. 그들은 나를 속였어요!”
피르요 일행은 신속히 안전한 곳으로 이송됐고 비행기에 탑승했으며 예터보리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갔다.
귀국 후 TV방송국을 대면해 피르요는 마음속 말을 했다. “왜 천안문에 갔는지 묻는 거죠? 박해가 2년간 지속됐지만 우리는 외국 정부가 이번 박해를 저지하지 않는 것을 봤어요. 박해가 심해지고 있고 박해받아 죽는 중국인 수련인은 갈수록 많아졌어요! 어떻게 하겠어요? 우리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므로 우리가 반드시 무엇을 좀 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이번 여행을 계획했고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어요!”
서양인 파룬궁 제자가 천안문 앞에서 찍은 사진은 이후 널리 전해졌다. 피르요는 그 안에 앉아있었고 그녀는 한손으로 입장하고 가슴 앞에 한 송이 백합이 있었다. 파룬궁수련생들은 어려움을 함께 겪고 박해 중 불굴의 정신을 보여줬다. 10여 년간 줄곧 확고하게 수련한 피르요는 지금까지 여전히 중국 파룬궁수련생이 그들에게 선물해준 시 ‘영춘화(迎春花)’를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서른 여섯개 붉은 매화는 한 가지에서 피어났으니
혹한에도 씩씩하고 밝게 빛났네
마음고생에 시간이 느리다고 느끼지만
따뜻한 봄이 늦게 온 원인이 아니라네
문장발표: 2014년 9월 2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신수련생>대법과의 연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9/27/29824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