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대학교 교수인데 1996년 5월에 법을 얻었고 사존의 보호 하에 17년 수련했는데 법을 얻은 기쁨도 있었고 자아를 내버리는 고통도 있었으며 사악의 고험에 헤맨 적도 있었고 진상을 명백하게 알고 분발한 적도 있다. 비틀비틀, 어기적어기적 조사정법하며 사부님의 발걸음을 따라갔다.
제10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인터넷 수련심득교류회가 다가올 즈음, 1년간 법을 실증한 것을 한번 귀납하고 종합해보려 한다. 비록 잘하지 못했고 사부님의 요구와 아직 멀며 수련생들과 비하면 말하기 부끄럽지만 자신의 심성 기초상에서 한 일부 법을 실증하는 일이고 대법 입자로서 밍후이 수련생들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준 이 교류장을 지지해야 한다. 이 명절 같은 모임에 참여해야 하고 방청객으로만 앉아있어서는 안되므로 용기를 내서 마당으로 걸어나와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과 수련생들에게 보고해야 겠다고 생각한다.
1. 대학교에서 진상을 알리다
금생에 교사 직업을 갖게 된 것도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이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태어난 몇 개월만에 외할머니가 나를 안고 나들이를 갔는데 한 점쟁이가 나를 보더니 “이 아가씨는 참 잘 생겼네, 커서 선생이 될 운명이야”라고 했다고 한다. 이후에 또 “의사 선생이 아니라 글을 가르치는 선생이 될 거야”라고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서 어머니는 줄곧 이 방향을 향해 노력했고 공부를 잘하라고 나를 독촉한 끝에 나는 사범대학에 붙었고 교사의 꿈을 이뤘다. 20살 되는 해에 신의 배치를 실현했다.
교사는 도를 전하는 중임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에 예부터 존중받는 신성한 직업이었지만 중국공산당(중공)이 정권을 강탈한 후 하늘의 뜻을 어기고 독재 통치하에 교육 방법이 구태의연한 교사로, 중공 사교(邪敎)의 전수자로, 중공이 거짓말로 중생을 기만하는 앵무새가 됐다. 중공 무신론에 세뇌당한 사람은 영원히 이런 변화를 알 수 없다. 현재 인터넷을 보면 중국의 교사들이 가장 부도덕한 직업 중 하나라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잘 설명한다! 중공의 사악한 체제 하에 모든 것이 부패해서 냄새가 나는데 중공이 만들어낸 모든 것은 구우주가 해체됨에 따라 해체될 것이다.
구도할 방법이 없는 십악독세(十惡毒世)에 사부님께서 오셨다. 파룬따파를 전함으로써 인연 있는 사람에게 무한한 희망을 가져다 주셨고 무신론에 세뇌된 길 잃은 나그네에게 다시 신의 기적을 보고 느끼게 하셨으며 너무나 아득하여 닿을 수 없는 위대한 불법이 다시 인간세상에 나타나게 하셨다. 파룬(法輪)불법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었고 사부님께서 우리 머릿속에 주입된 독소를 제거해주셨는데 사부님의 손을 꼭 잡고 따라 왔었기에 정법대도로 돌아올 수 있다. 교사라는 직업은 반드시 중공 사교의 통제 속에서 벗어나 우주의 진상을 학생들에게 알려줘야 하기 때문에 갈수록 어깨에 짊어진 짐이 무겁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이 사악한 체제 속에는 곳곳에 사람을 해치는 독기가 있고 유형무형의 폭력 형구들이 준비되어 있다. 예를 들어 대학교에서 정한 소위 교수도덕 처벌조례는 교수에 대한 통제와 협박이다. 비밀리에 각각 반에 배치한 정보원 학생들이 직접 학과부, 학교에 강사의 강의내용을 보고하며 감시하고 있다. 이렇게 사악하고 방대한 통제체계인데 만약 사부님의 무한한 법력이 없고 대법이 우리 마음속에서 강대한 위력을 보내지 않는다면 어떻게 구세력의 이 사악한 요소, 흑수난귀, 공산사령을 훼멸할 수 있겠는가?
① 수업시간에 진상을 알리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람을 구하는 것이 제1위이다!”[1]고 알려주셨기에 몇 년간 끊임없이 수업시간에 진상을 알렸다. 큰소리로 “공산당을 뒤엎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열렬하게 토론하고 박수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학생들 앞에서 직접 삼퇴를 권하지 못해 비록 그들은 진상을 좀 알았지만 자신의 생명과 관련된 최후의 깊은 이치를 명백하게 알지 못했다. 당시 그들에게 구도의 초석을 깔아주면 이후에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면 삼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이 생각의 배후에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법공부를 강화하고 관념을 개변시켜 ‘삼퇴는 구도되는 기본 조건 중 하나고 만일 그들이 이후에 진상을 들을 기회가 없다면 구도될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나와 만나는 이번 기회에서 내가 책임을 다 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만약 내가 삼퇴를 권했는데 그가 듣고 듣지 않는 것은 그의 선택이지만 내가 삼퇴를 권하지 않으면 내 문제구나’라고 깨닫고 삼퇴를 권하려 시도했다.
손들고 태도를 표명하다
한 반에서 민족 문제에 대해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오늘 이번 수업시간에 교과서를 보지 않는다. 나도 교과서에 따라 강의하지 않으니 집중해 듣고 강의한 내용에 따라 한 가지 문제를 판단할 것이다. 모두들에게 중요한 문제니 열심히 듣기 바란다”고 했다. 그러자 학생들은 핸드폰과 기타 하려고 하는 것을 치우고 몸을 똑바로 하고 앞을 봤다.
“한 민족의 흥망은 교육에 관련된다고 하는데 지금 중국 교육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 주입식교육, 주입식암기, 표준답안, 이런 교육체계에서 키워낸 사람들은 자주적인 사고가 부족하다. 특히 사회, 도덕 측면에서 자신의 식별능력과 독특한 견해가 없기에 이후에 사기를 당하거나 옳고 그름에 대해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폐해를 심어놓는다.”
예를 하나 들었다. “만약 실험실에서 옷 한 벌과 휘발유를 담은 플라스틱 병에 각각 불을 붙이면 어느 것이 더 빨리 탈까?”라고 하자 학생들은 “플라스틱 병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피부와 머리카락 어느 것이 먼저 탈까?”, “머리카락입니다.” “좋아, 모두들 천안문 분신자살을 본 적이 있니?”라고 하자 어떤 학생은 “어릴 때 본 적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면 분신자살자 왕진둥(王進東)의 옷이 다 타버렸던 것을 봤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다리 중간에 놓은 휘발유를 담은 플라스틱 병은 하나도 손상이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왕진둥 얼굴이 시꺼멓게 탔지만 그의 까만 짧은 머리카락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이것이 가능할까? 잘못 본 것인가 아니면 녹화에 문제가 있을까?”라고 했다.
나는 계속해서 학생들에게 “지금 자신의 머리로 한번 생각해라. 왜 과학실험과 정치문제를 섞어놓으면 판단능력이 사라지는가, 왜 과학을 믿지 않고 거짓말을 믿는가, 권위에 눈이 가린 게 아닐까? 알겠느냐? 이것이야 말로 미신이다. 이 녹화에서 중국인의 치명적인 사고 난청지역을 볼 수 있는데 이 난청지역은 중국공산당이 일부러 만들어낸 것이다. 전 중국인은 조작한 이 사안을 의심치 않고 믿었고 이것이 가짜라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안 되며 허점을 보았더라도 감히 말하지 못했다. 같은 영상이지만 외국인은 보고 많은 의문을 제출했다. 예를 들어 전혀 타지 않은 플라스틱 병, 짧은 머리카락, 기관지를 절개하고도 말하고 노래할 수 있다는 점, 심한 화상을 입으면 무균환경에 있어야지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 안 된다는 점, 소화기, 소화담요, 근거리 녹화 등 문제는 모두 이 분신자살 사건이 가짜라는 점을 증명했다. 외국인들은 오히려 이것을 통해 파룬궁을 알게 됐고 파룬궁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나 중국인은 다 속았고 중공의 유언비어를 날조하고 죄를 뒤집어씌우는 선전을 믿고 파룬궁을 적대시하며 파룬궁을 감히 접근하지 못하게 됐다. 심지어 파룬궁의 진상도 감히 듣지 않았다. 다시 한번 생각해봐라, 이 생명들을 이용해 거짓말을 만들고 국민을 속이는 한 정부에 대해 무슨 생각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학생들은 “무서워요, 너무 무섭습니다. 이후에 누굴 믿어야 합니까?”라고 했다.
이것을 돌파구로 중공의 여러 차례 정치운동 중 만들어낸 억울한 사건, 거짓으로 꾸미고 과장한 대약진, 중국 전통문화를 훼멸시킨 야만적인 문화대혁명, 89년에 빈주먹인 학생들을 살해한 사건, 99년에 파룬궁을 박해한 사건, 파룬궁의 질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한 기적과 도덕이 승화되고 전 세계에 널리 전해진 등 실례를 많이 말해줬다.
수업을 마칠 때로 말했다. “수업이 끝나려 한다. 금방 열심히 들었지? 명백하게 알았니?”라고 물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작은 테스트 하자. 눈을 감고 서로 훔쳐보기 없고 내 말을 듣기다.” 학생들이 다 눈을 감은 것을 보고 “정의의 편에 서 있고 중공 조직에서 탈퇴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라”라고 했다. 교실은 쥐죽은 듯 조용했으나 한 학생만이 들까말까하는 듯이 손을 얼굴에 놓았고 다른 학생들은 손을 들지 않았다. 5초 후 “눈을 떠라”라고 했다. 학생들은 눈을 뜨고 서로 쳐다보면서 말을 하지 않았다. “너희들 모두 틀린 선택을 했다”라고 하자 학생들은 의논하기 시작했고 “선생님, 손을 감히 들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갑자기 화가 나서 말했다. “뭘 무서워하니? 이런 자그마한 정의감도 없다니? 이 문제는 반드시 선택해야 할 문제고 정의를 선택해야만 미래가 있는 것이야. 지금은 다만 작은 테스트다. 이후에 기회가 있으면 스스로 진상을 알아보고 만약 누가 진상자료를 주면 거절하지 말길 바란다. 진상자료는 정확한 선택을 하게 너희들을 도와줄 것이다. 진심으로 너희들이 아름다운 미래가 있길 바란다.”
수업이 끝난 후 어떤 학생은 “선생님, 다시 한번 테스트해요. 저 손 들겠습니다”라고 했다. “좋아, 선생이 널 도와서 탈퇴시켜 줄게”라고 했다. 얼굴에 손을 놓은 학생은 가면서 “선생님, 전 파룬궁을 알아요. 연마한 적도 있고 결가부좌도 할 줄 알아요. 그들이 모르니 제가 돌아가 알려줄게요”라고 했다.
수업이 끝난 후 ‘학생들이 진지하게 들었는데 왜 손을 들고 선택하라고 하니 학생들은 망설였을까? 이런 형식이 학생에 대해 압력이 너무 큰가? 자신의 마음이 순정하지 않았던 것인가?’라고 생각하면서 몹시 괴로워하는 동시에 자신의 상태를 회상해봤다. 첫째, 수업 전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발정념을 하지 않았다. 둘째, 수업할 때 정념이 강하지 않고 두려움이 좀 있었고 삼퇴를 말하면 학생들이 반감할까 우려했다. ‘따지웬 회의에서의 설법’ 중 ‘상유심생(相由心生)’의 법리처럼 결과는 항상 자신의 마음이 초래한 것이다. 이번 일로 자신이 착실하게 연마하지 못해 마지막에 화를 냈다는 것을 알았고 사람의 정과 관념 때문에 자비롭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진상을 들을 때 학생들은 제3자로서 남에게서 발생한 일이고 자신과 관계를 없다고 생각해 쉽게 받아들였지만 ‘삼퇴’하는 것은 자신과 관계되고 과거를 부정하고 사악을 포기하며 다른 방향으로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고 정신적 측면으로 봐서는 바로 죽음과 신생의 과정이기 때문에 확실히 비교적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필경 속인 중의 일이 아니고 우리가 앞에서 하고 사부님께서 배후에서 사람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될수록 법공부를 잘하고 강한 정념을 유지하고 사람을 구하겠다는 일념만 가지고 구도될 사람 배후와 외부 환경의 요소를 제거해야 하며 대법제자 자체의 잡념 때문에 상대방에게 좋지 않는 영향을 끼치지 말아야만 더욱 사람을 잘 구할 수 있다.
진상을 보고 그 자리에서 선택하다
이번 학기 수업할 때 교재에 어느 방면이 진상과 관련되는 내용이 언급되면 그 방면에 관해 진상을 알렸다. 예를 들어 ‘도덕과 사람됨됨이’, ‘진화론과 청장(澄江) 화석’, ‘인권과 중국에 인권이 있는가’, ‘법률의 기원과 헌법’, ‘중국 헌법과 법률의 현 상태’, ‘민족과 현재 중화민족의 비애’, ‘종교와 파룬궁 진상’ 등.
마지막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말했다. “이번 학기수업은 곧 끝난다. 이번 수업시간에는 새로운 내용이 없다. 숙제하거나 중점 내용을 복습하면 되는데 임무가 하나 있다. 선생에게 자료가 있는데 차례로 와서 보고 선택해야 하는데 반드시 자료에 따라 혹은 수업시간에 말했던 관련 내용을 진지하게 사고하고 독립적으로 완성하길 바라고 서로 의논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내 말에 학생들은 궁금했는데 어떤 학생은 흥분해 일어나 “선생님, 무엇입니까? 제가 먼저 보겠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조용히 앞에서부터 뒤로 차례로 나와라”라고 했다.
나는 진상자료 한 장을 정리해놓았는데 너무 많으면 한 수업시간에 다 할 수 없기 때문에 기본 진상과 삼퇴내용만 포함돼 있었다. 이 진상자료를 가장 맨 앞에 두고 다른 백지 한 장에 당, 단, 대 3개 란을 써놓고 탈퇴하려는 칸에 이름 혹은 아명을 쓰면 되는 것이고 학생들은 오직 자기가 쓴 것만 볼 수 있다. 이렇게 시작됐다. 교실은 매우 조용했고 학생들은 차례로 이 책상 앞에 와서 봤다. 진상을 보는 학생들은 매우 진지했고 모르는 곳은 내게 작은 소리로 물어봤으며 나는 하나하나 설명해줬다. 어떤 학생은 탈퇴했고 어떤 학생은 망설였으며 어떤 학생은 좀 더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30여명 학생들이 한번 씩 다 보고 12명이 탈퇴했다. 나는 구도된 생명을 위해 정말로 기뻐했다. 나를 가지해주시고 격려해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② 단독으로 학생에게 진상을 알리다
“촌관 시험을 보지 말고 입당도 하지 말자”
어느 날, 한 학생이 날 찾으러 왔는데 고민이 있어 좀 상담하고 싶다고 했다. 촌관(村官-촌민위원회 간부) 시험을 보려면 반드시 당원이어야 했으나 그녀는 당원이 아니기 때문에 시험을 보기 위해 먼저 입당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 촌관 시험을 보지 말고 입당도 하지 말자, 알겠니? 공산당의 부패에 1억 4천만 명이 중공 조직에서 탈퇴했고 이 탈당 대물결은 지금 전국을 휩쓸고 있는데 어찌 아직 가입하려고 하니?”, “공산당의 부패를 압니다. 원래 학생회 간부였기에 간부 혹은 입당하기 위해 뒷거래하고 장학금을 타기 위해 거짓을 꾸미는 학생들을 많이 봤고 마음에 들지 않아 학생회에서 탈퇴했어요.”, “참 잘했다. 가장 좋기는 철저하게 공청단에서도 탈퇴하면 더욱 깨끗하다”라고 하고 또 그녀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려주자 그녀는 탈퇴했다.
“너의 선택은 틀림없다”
이전에 삼퇴한 한 학생이 연구생을 졸업하고 날 보러 왔다. 그가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동창들이 입당을 권하면 관심이 없다고 했고 지도 교사가 입당하면 일자리를 찾기 쉽다고 했지만 동요하지 않았는데 대학교에 가서 일자리를 구할 때 확실히 이 문제 때문에 많은 실패를 맛봤다고 했다. 각 대학교에서 당원을 최우선적인 정치적 조건으로 보기 때문에 당원이 아니면 기회조차 없었다. 이 규정은 이 학생을 매우 어렵게 만들었다.
나는 말했다. “중공에서 탈퇴한 것은 잘못이 없어. 이것은 중공이 대학교 등 국가기업을 이용해 사람을 통제하는 한 가지 수단이야. 이익으로 사람을 유혹하고 정치 조건으로 사람을 배척하는데 그것의 사악한 본질이 드러난 것이 아니니? 중공이 받아주지 않아도 괜찮아. 다른 일자리를 찾으면 된다. 중공의 통치 하에 교사는 좋은 직업이 아니야. 교사는 학생들에게 구름에 가린 햇빛을 보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중공의 무신론을 선전하며 백성들을 기만하고 갖고 노는 도구로 만들어서 지옥에 내려가도 부족해. 이런 난잡한 현상은 멀지 않을 것이고 천멸중공이 실현될 날이 머지않을 거야. 한때 날뛰는 것을 보지 말렴. 신은 매우 빨리 그것을 찾아 청산할 거야.” 내 말을 듣더니 그 학생은 마음이 확 트였고 즉시 대학교에 가서 일자리를 찾지 않겠다고 했다. 이후 그는 베이징에서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찾았다.
무단결석왕이 공청단 조직에서 탈퇴하다
내가 가르치는 반에 언제나 무단결석하는 학생이 있었는데 어느 날 수업하러 온 그를 겨우 만났다. 그리하여 수업시간이 끝난 후 그를 사무실로 불러내 왜 무단결석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내가 그를 훈계할 것이라고 생각해 처음에 좀 긴장했는데 내가 부드럽게 말하자 “선생님, 전 윗학년 학생인데 집에 일어 있어 휴학했다가 올해 복학했습니다. 아빠가 큰 교통사고를 당해 우리 집에서는 모든 저금을 털어서야 아빠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지만 일을 하시지 못합니다. 엄마도 병에 걸려 올해 복학 때 학비를 대주지 못해 아르바이트 돈으로 공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그를 매우 동정했다. “학교 기숙사에 있니?”, “아닙니다.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숙박합니다.”, “책 한권을 줄테니 한번 봐라. 여기에서 자신의 정신적 지주를 찾을 수 있을 거야. 다 보고 돌려줘”라고 했다. 며칠 후 그가 날 찾으러 오더니 “선생님, 그 책을 봤습니다. 정말 좋아 가져오지 않고 집에 가져가 엄마보고 보라고 했습니다”라고 했다. “잘했다. 안 돌려줘도 된다. 엄마에게 드려라”라고 했더니 그는 기뻐서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또 그에게 ‘삼퇴’하면 평안을 보장한다는 것을 말해주자 시원하게 사당 조직에서 탈퇴했다.
“돌아가 이 책을 한번 잘 보겠습니다”
어느 날 수업시간이 끝난 후 한 학생을 내 숙소로 불러와 ‘9평공산당’을 꺼내서 보여주며 “이 책을 본적이 있니?”라고 물었다. 그는 받아보고 “선생님은 국가 녹을 먹는 사람인데 어찌 이런 것을 봅니까?”라고 했다. 나는 “정당은 백성을 위해 복무하는 것인데 어찌 그런(‘9평’ 중 언급한 일) 일을 할까. 이것은 모두 공산당이 한 짓인데 어찌 볼 수 없고 말할 수 없지? 관리는 그것의 말을 듣고 통치를 유지하기 위해 거짓을 꾸미고 허풍을 떨며 대약진 운동을 해 몇 천만 명을 굶어죽였고, 백성들은 그것의 말을 듣고 기세가 등등하게 운동을 벌여 중국전통문화의 생명을 살해했으며, 군인은 그것의 말을 듣고 89년 6월 4일 천안문에서 총으로 자신의 형제자매를 총살하고 탱크로 중국동포의 몸을 깔아뭉갰는데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통계할 수 없었지. 경찰은 그것의 말을 듣고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파룬궁수련생에게 마수를 뻗어 몇 백만 대법제자가 생명을 잃게 했고, 의사는 그것의 말을 듣고 파룬궁수련생의 장기를 생체 적출해 인성 없이 폭리를 도모했으며, 매체는 그것의 말을 듣고 거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대중을 속이기 위해 심지어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을 조작해 시청자들을 속였고, 교사들은 그것의 말을 듣고 책에 쓰인 대로 경을 읽고 다음 세대를 미혹시키고 기만하고 있지. 이런 것들을 좋아하니?”라고 했더니 학생은 놀라서 “아, 선생님 전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집에 돌아가 이 책을 한번 잘 보겠습니다”라고 했다.
2. 가정 관계를 잘 평형하고 가족들이 대법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다
집집마다 모두 곤란한 일이 있는 법이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다. 시어머니의 세 아들은 노인을 부양하는 일로 서로 낯선 사람이 되고 서로 왕래하지 않으며 깊은 원한이 있는 것처럼 누가 이 일에 대해 말하면 화를 냈다. 그러나 나는 사부님의 지도 하에 선으로 그들의 모순을 화해하고 참음과 너그러움으로 부부, 시어머니와 며느리, 동서, 형제 및 친척지간의 관계를 유지해왔다. 사부님께서 가정 관계를 잘 처리하는 법보를 가르쳐주셨으므로 장애가 하나도 없었고 진정으로 ‘진(眞), 선(善), 인(忍)’이 중생에게 가져다준 화목함과 따뜻함, 아름다움을 느꼈다.
① “아내에게 전화를 바꿔줘라”
몇 년 전에 시어머니의 팔순 큰 언니가 시어머니를 보러 왔는데 우리 집에서 며칠 묵었다. 남편은 큰 이모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말대꾸나 말다툼을 하기도 해서 큰 이모를 화내게 했다. 그래서 시간을 내서 큰 이모를 몇 마디 위로해줬더니 큰 이모는 우리 가정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자네 시어머니가 말하는데 셋째 아들에게 쌀을 보내라고 하려는데 자네가 하지 말라고 했다면서? 셋째 아들이 부모를 돌보지 않는 이상 식량을 드리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니냐?”, “쌀이 있으면 자발적으로 주겠죠, 없으니까 안 주겠죠.”, “지금 쌀이 없는 집이 어디 있니?”, “쌀이 없는 것이 아니면 효심이 없는 것인데 그 효심을 달라고 할 수 있나요? 우리 집에 먹는 것이 모자라는 것도 아닌데 그런 걸로 화내서 뭘 해요?”, “시어머니가 말하는데 큰 며느리는 대화해주지 않지만 자네는 잘 대해줘서 여기에 사는 수밖에 없다더라.”, “큰 이모, 마음 놓으세요, 노인을 봉양하는 데는 형제가 많고 적음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누가 효심이 있으면 그가 의무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 바빠서 어머님을 돌볼 시간이 없어요. 우리도 잘 모시고 임종을 지킬 의무가 있으니 바깥으로 내쫓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큰 이모는 눈물을 흘리며 “아, 아이구, 왜 이렇게 이치에 밝고 인정이 있니!”라고 내 손을 잡고 오랫동안 놔주지 않았다. 큰 이모에게 진상을 알리려는데 남편이 돌아와 더 이상 그녀에게 진상을 알리지 않았다(그때는 남편은 내가 연공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임). 설을 쇨 때 큰 이모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남편과 몇 마디하고 “아내를 바꿔줘”라고 해서 전화를 받았더니 또 한바탕 칭찬이었다. 아쉽게도 큰 이모가 외지에 있어 아직 진상을 알릴 기회가 없었다.
② 우리 이 며느리는 친딸보다 친하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시어머니는 줄곧 우리 집에 계셨고 가끔 시아주버니 집에 가셨다. 시어머니가 손윗동서와 마음이 맞지 않아 제각기 이유가 있다면서 서로 화내는 바람에 시아주버니 집에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지식이 없어 무슨 이치를 모르는데다 고집이 매우 세고 머리는 좀 둔했으며 또 생활 중 많은 나쁜 습관이 있었는데 지적해도 고치려 하지 않았다. 정말로 사람이 미칠 지경으로 화나게 만들었다. 남편도 시어머니에게 큰 소리를 지르곤 해서 가정 분위기가 매우 좋지 않았다. 나는 표면적으로 남편 형제들처럼 그렇지 않지만 속으로는 화가 많았다. 그러나 매번 화낸 후 법공부할 때 사부님께서 점화해주시는 것을 보면 즉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음에는 잘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정말로 고치기 힘들었다. 마음속에 화가 조금 있더라도 내뱉는 말이 부드럽지 않았고 자신이 듣기에도 좋은 말 같지 않았다.
이렇게 한번 고치고 또 고쳐 차차 승화됐다. 어느 날 갑자기 흉금이 끝없이 넓어졌고 아무런 근심걱정도 없으며 가벼워졌고 자유자재했다. 그런 아름다운 느낌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이후로 마음은 기본상 안정됐고 쌓여서 흩어지지 않았던 나쁜 기운이 사라졌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돌이켜 이 집을 보자 비록 대면한 것은 같은 노인이었고, 시아주버니는 관심이 없고 손윗동서는 화가 나서 가슴 아파하고 남편은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붓는 시어머니였지만 나는 사부님의 지도 하에 이미 그들의 사유권에서, 사람의 정으로 만든 관념에서 벗어나 매우 즐거웠다. 다시 사부님의 법을 보니 글자마다 반짝반짝 빛났고 사람을 상쾌하게 했다. 정에 얽혀 고통스러워하는 가족들을 보니 ‘사람은 정말로 구도하기 어렵구나,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내려놓지 않다니. 그들에게 좋은 것을 주는데도 받지 않다니 정말 불쌍하구나’라고 생각했다.
시어머니는 고집을 부리다 넘어져 대퇴가 골절되어 반신불수가 됐다. 남편은 할 수 없어 휴가를 내서 집에서 시어머니를 돌봤고 나는 낮에 출근하고 저녁에 돌봤다. 시어머니의 배설물을 처리할 때 나는 늘 메스꺼워 구토했지만 움직일 수 없는 시어머니가 더욱 많은 곳이 감염될까 봐 자주 몸을 닦아드렸다. 이렇게 대소변을 받아내며 밥을 지어드리고 몸을 뒤집어 닦아주며 알뜰히 돌봤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병문안 하러 온 이웃에게 “우리 이 며느리는 친딸보다 친해”라고 하셨다.
③ 자비로 원한을 화해시키다
시어머니는 넘어져 다치신 후 우리 집에서 반년 계시다가 고향 큰 집에 가셨다. 셋째 동생 집은 시어머니를 전혀 관심하지 않고 형과 형수가 시어머니를 잘 돌봐주지 않았기 때문에 남편은 매우 화가 나서 술김에 셋째 동생을 때렸고 형수하고도 싸웠다.
대법제자이므로 이 집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은 비록 직접 나를 겨냥해 온 것이 아니지만 나도 가정의 인원이기 때문에 마땅히 적극적인 작용을 해야 하고 대법제자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그들이 느끼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간을 짜내 손윗동서와 한번 잘 이야기해 보려고 했다.
남편이 말을 과장하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말을 다 믿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손윗동서는 나를 만나자 몇 마디 하지 않고 이 일에 대해 말했는데 말할수록 화가 나서 눈물이 났고 손발도 차가워지고 손가락에 쥐가 났다. 나는 손윗동서의 손을 힘껏 비비며 위로해주며 다친 마음을 더듬어줬다. 예상대로 남편은 독한 말을 많이 해서 손윗동서를 몹시 화나게 만들었다. 손윗동서는 시집간 막내딸을 불러와 사건의 앞뒤를 말해주고 “엄마가 널 불러온 것은 만약 오늘 엄마가 죽으면 어떻게 죽었는지 알라는 것이야. 삼촌 때문이다”라고 했다. 나는 “형님, 화를 좀 풀어요, 그 사람과 30년간 살았어요. 말은 날카로워도 마음은 부드러운 사람이에요. 평소에는 마음씨가 착한데 화가 나면 아무렇게나 말해요. 제가 파룬궁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벌써 미쳤을 거예요. 이전에 저도 상처받은 것만 기억했고 그를 미워한다고 끊임없이 반복했는데 그땐 정말로 고통스러웠죠. 지금 마음에 법이 있자 점차 상처받게 한 그의 말을 지워버렸고 나를 잘 대한 것만 기억했고 그를 용서했어요. 그러다보니 울화병이 없어졌고 벗어났어요. 이후에 그가 어떤 말을 해도 상처받지 않게 됐고 지금 그의 말을 전혀 귀담아 듣지 않아요. 귓등으로 들어요. 만약 이런 것들을 내려놓지 못하면 홧병에 죽을텐데 얼마나 가치 없는 일입니까?”라고 하자 손윗동서의 표정이 많이 상쾌해졌다.
손윗동서는 몸이 좋지 않고 가슴이 아프고 좌골신경 때문에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힘이 없어 빨래도 할 수 없고 어머님을 돌볼 수 없다고 했다. “건강 상태를 그들에게 알려주면 형님보고 뭐라고 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내가 아무리 괴로워해도 네 시아주버니는 물어보지도 않고 모른 척하는데 말해서 뭘해.”, “형님도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왜 읽지 않아요?”, “읽었어, 소용없어.”, “병을 고쳐달라고만 하면 안 되고 마음속으로부터 좋다고 생각해야 해요, ‘진선인(眞善忍)’이 얼마나 좋아요! 왜 참지 못했지, 다음에 꼭 참아야 한다고 생각해야 해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그 표준으로 자신을 개변하고 제고할 때는 소용 있을 거예요. 형님이 진심으로 소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용없다고 느끼는 거예요”라고 했다. 몇 시간 이야기하자 손윗동서의 화도 풀렸고 시어머니의 과거 일에 대해서도 좀 말했다. 우리는 시어머니와 같이 굴지 말자고 말했다. 손윗동서는 마지막에 “좋아! 그들을 용서하겠어. 어머님보고 돌아오라고 하렴”이라고 했다.
내가 또 손윗동서 집에 갔는데 시아주버니께서 하시는 첫마디는 “어머니는 왜 오시지 않았니? 오겠다고 하지 않으시더냐?”라는 것이었다. “계속 오겠다고 하셨는데 시아주버님이 바쁜지 확인하고 바쁘지 않으면 보내드리겠다고 반나절 설득해서야 가만히 계셨어요.”, “제수씨, 속 털어 말할게. 내 마음이 가장 괴로워. 아버지께서 세상을 뜨기 전에 죽으면 어머니는 어떻게 하겠냐고 몇 번이나 물었어. 그때 ‘아버지 마음을 놓으세요, 제가 먹을 것이 있으면 어머니도 먹을 것이 있어요’라고 했는데 지금 이 꼴이 되다니. 형제 둘은 내가 어머니를 잘 돌보지 못한다고 원망하고. 사실 여기까지 온 것은 모두 어머니 탓이야. 어머니가 한 일들을 생각하면 정말 화가 나.”, “이미 이렇게 됐으니 어머님과 따지지 말죠, 어머님이 좋고 나쁨은 어머님의 일이고 선악유보이기에 우리도 잘하지 않으면 안 되죠.”, “어머님보고 돌아오시라고 해라, 아버지와 약속했으니 지켜야지.”, “그래요, 날씨가 시원해지면 시아주버님의 소원도 풀어드릴겸 모시고 올게요. 몸이 안 좋으셔서 오래 있게 해서는 안 되니 겨울이면 저희가 다시 모셔갈게요”라고 했다. 시아주버님은 만족해서 머리를 끄덕이셨다. 정말로 사부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리고 자비로 친척들 사이의 원한을 선해(善解)하게 해주셔서 감사드린다.
④ “외숙모가 당신을 칭찬했어”
2012년 12월 어느 날, 시어머니의 오빠가 세상을 떠났다. 그때 시어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움직일 수 있어서 “어머님, 오빠가 세상을 떠나셨는데 보러 가시겠습니까?”라고 묻자 가겠다고 했다. 이렇게 우리는 차를 몰고 200여리 떨어져 있는 고향 집으로 내려갔다. 시어머니는 금방 휠체어를 버리고 지팡이로 걷기 시작하셨기 때문에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이셨다. 이렇게 해서 언제 영전에 가겠느냐고 생각해 업고 가려는데 시아주버니께서 와서 시어머니를 업고 가셨다. 거기에서 나는 시어머니의 일상을 알뜰히 돌봤다. 시어머니의 친척들-시어머니의 여동생, 매부, 남동생, 제수, 조카들이 모두 보러 왔다. 집에 돌아온 후 남편이 “들었어? 외숙모가 당신을 칭찬했어”라고 했다.
외숙모가 나를 칭찬하는 것을 듣지 못했으나 친척들의 눈빛에서 존경심을 느꼈다. 내가 일부러 보여주려는 것이고 아니고 진심이기 때문이다. 내가 대법을 배우고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으므로 그들은 마음속으로 ‘봐라, 파룬궁을 배운 사람이 얼마나 좋냐’라고 말했을 것이다.
⑤ “언니는 연공인이니 괜찮을 거예요”
어느 날 친정집에 갔다가 시어머니를 데리고 상을 치른 일을 말했다. 시어머니에게 화를 내지 말라고 남편을 권하거나 고향으로 돌아간 후의 일들, 집에 돌아올 때 시어머니를 업고 계단을 오르내렸다는 등을 말해줬다. 그런데 뜻밖에 아버지는 나를 걱정하시며 말했다. “시어머니의 행동도 불편하고 계단을 오르고 내릴 때 업어야 하는데 왜 데리고 갔니? 너도 50살이 넘었는데 50kg넘는 사람은 업고 5층을 오르다가 다치면 어떻게 하려고?” “남편은 허리디스크 때문에 힘을 쓸 수 없지만 전 괜찮아요. 업기 전에 ‘난 대법제자니 초범적인 능력이 있다. 사부님께서 보호하시고 계시니 할 수 있다’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쉬지 않고 단숨에 5층까지 올라갔어요, 좀 힘들지만 별 문제가 없었어요.”
한번은 친정 부모님이 우리 집에 오셨는데 계단을 오를 때 숨이 차고 힘들자 아버지는 더욱 나를 걱정하셨다. 이 일은 마치 돌처럼 아버지 가슴에 딱딱하게 눌러앉았는데 매우 괴로워 하셨다. 막내 여동생이 부모님을 보러 갔는데 아버지는 거듭 말씀하셨다. “꼭 언니를 좀 말려라. 다시는 시어머니를 업고 계단을 오르내리지 말라고. 내가 한번 갔었는데 빈손으로 오르는데도 몇 번이나 쉬었다. 50kg넘는 시어머니를 업으면 견딜 수 있겠느냐! 꼭 전해줘라”라고 하셨다. 여동생은 “언니는 연공인이고 심성이 좋아 괜찮을 거예요”라고 했다.
막내 여동생은 이 일을 내게 말해준 적이 없다. 내가 다시 친정에 갔을 때 아버지가 이 일을 또 말씀하셔서 걱정을 풀어드렸다. “우리는 대법제자이고 곳곳에서 법을 실증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고향 사람들은 모두 우리가 연공하는 것을 아는데 시어머니를 모시고 가면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시어머니를 선하게 대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그러면 이런 좋은 접대를 받고 싶은 노인들은 다 파룬궁 며느리가 있는 시어머니를 부러워 할 것이고 노인을 선하게 대하지 않는 젊은이도 차이를 보게 되고 역시 연공하는 사람이 잘한다고 감탄할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아빠 딸을 칭찬할 때 사람들은 파룬궁을 연상하게 하고 대법을 칭찬하게 되는데 기쁘지 않습니까?”라고 하자 아빠는 연속 머리를 끄덕이며 “잘했다. 잘했어”라고 하셨다.
⑥ “자네 시어머니는 복이 참 많아”
2년 전에 시어머니의 시누이가 신장(新疆)에서 올케를 보러 왔다. 그때 시어머니는 아직 넘어져 다치지 않을 때였다. 그녀가 우리 집에서 한동안 있었는데 내가 시어머니를 어떻게 대하는지 다 봤다. 올해 설날 전에 전화가 왔는데 “집에 한번 더 가고 싶은데 80이 다 되니 다리가 아파 돌아갈 수가 없게 됐네, 넌 우리집의 좋은 며느리야. 자네 시어머니는 참 복이 많아. 우리 며느리라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이 있으면 좀 보러 와라. 보고 싶다”라고 했다. 나는 “예, 시간이 있으면 뵈러 갈게요”라고 했다. 며칠 후 또 “언제 오니?”라는 전화가 왔다. 나는 “여름방학이면 갈게요”라고 했다. 여름방학이 되자 또 전화가 왔다. “방학이 됐는데 왜 아직 오지 않니? 거짓말이었니?”라고 하자 즉시 “거짓말이 아니에요, 꼭 갈게요”라고 했다. 처음에는 좀 망설였고 함부로 가겠다는 약속한 것도 좀 후회했다. 먼 삼천리 길을 정말로 좀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정말로 내가 가길 원하는 것을 보고 가기로 했다. 거기에 아마 인연 있는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⑦ “정말로 부처 마음씨네”
여동생과 같은 마을에 사는 내 동창의 남편이 암에 걸렸다. 그래서 나는 시간을 짜내 동창을 보러 갔다. 이 동창은 매우 착했는데 어릴 적부터 가정이 가난해 고생을 많이 했다. 결혼 후 많이 좋아졌는데 60세도 안 되는 남편이 암이 걸렸다고 하길래 그들에게 파룬궁 진상과 파룬궁의 아름다움을 알려주며 인연이 되면 그녀 남편의 병도 나아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 집에 갔는데 논밭에 나가고 없어 그녀 남편에게 파룬궁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는 천천히 목에서 무엇인가를 풀러 내게 줬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호신부였다. 외지에서 일할 때 한 대법제자가 준 것이라고 했다. 나는 격동해 “아! 참 좋아요! 구도될 희망이 있네요!”라고 하자 그는 연속 머리를 끄덕이며 “파룬궁은 정말 좋아요, 정말! 매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읽었더니 신체가 다 나아졌고 일도 할 수 있게 됐고 연공도 할 줄 알아요. 아내도 ‘파룬따파하오’를 읽어요”라는 말을 듣자 마음이 놓였고 길게 이야기했다.
당시 여동생은 집안 일에 바빠 나는 그녀의 시아버지와 함께 공산당의 부패에 대해 이야기했고 중공이 파룬궁수련생을 어떻게 살해했는지에 대해 말했다. 동창 남편의 이야기를 말하자 그녀의 시아버지는 말했다. “지금 사람들은 다 위로 기어 올라가려 하고 명성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아부하려들지. 자네는 시내 대학교 교수인데도 일부러 시골에 평범한 동창을 보러 오다니 정말 드물군, 정말로 부처 마음씨네”라고 했다. 이렇게 사소한 일도 어르신께 좋은 인상을 남겨줬다. “전 대법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대로 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상은 모두 비교적 잘했다는 일면이다. 자신을 자랑하는 것은 아니고 인연 있는 사람에게 내 행동을 지도하는 법을 알려주려는 것이고 이 법은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다. 나는 자신의 행동으로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했고 나와 인연 있는 사람이 직접 눈으로 보게 하고 직접 무엇이 ‘진(眞), 선(善), 인(忍)’인지 직접 느끼게 해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를 씨앗처럼 사람들 마음속에 심어주려 한다.
다시 한 번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苦度)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각 지역 설법8-2007년 뉴욕법회설법’
(밍후이왕 제10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3년 11월 1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10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18/281158.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3/12/2/1434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