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에 나는 정체로 협조하는 일을 접촉하게 됐는데 비록 금방 접촉했지만 이 방면의 모순이 예전에 부딪혔던 모순과 매우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많은 일들이 내가 예전에 알고 있었던 것과 같지 않았기에 자신이 법속에서의 인식을 모두 조정해야 했다. 그제야 나는 왜 사부님께서 각 지역 설법에서 큰 편폭으로 일반 수련생과 협조인, 불학회 사이의 모순을 어떻게 대해야 하고, 반복해서 자아를 내려놓고 정체를 협력해야 한다고 언급하셨는지, 왜 안으로 찾는 것이 법보(法寶)라고 반복해 강조하셨는지 깨닫게 됐다.
금방 정체 협조에 참여했을 때 부딪힌 첫 번째 모순은 가장 직접적인 모순이기도 했는데 바로 한 가지 일에 관해 사람마다 인식이 다 같지 않고, 심지어 때로는 정반대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수련생과 반복해 의논하고 토론하면서 아주 많은 심혈을 기울여야 최후에 인식을 하나로 통일하고 협조할 수 있었으며 비로소 일을 잘 할 수 있었다. 나는 반복적으로 이 문제를 사고했다. 무엇 때문에 인식에서 이렇게 차이가 크고 일치하지 못하는가? 모두 동일한 법을 수련하고 동일한 한 가지 일을 하지 않는가? 동일한 목표를 달성하려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비록 동일한 법을 수련하지만 동시에 아주 많은 요소가 존재하기에 대법제자로 하여금 각종 인식을 형성하게 하고 각종 생각을 갖게 한다. 심각할 때는 만약 법으로 자신의 행위를 주도하지 못한다면 심지어 협력하지 않거나 망쳐버리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첫 번째 요소는 대법제자는 예전에 모두 왕이고 주(主)였으므로 개개인의 능력이 아주 크다. “한 왕이 결정한 대로 한다면 수월한데, 와, 이처럼 많은 왕이 한데 모였으니, 의견도 많고, 생각도 많으며, 게다가 모두 아주 강한 독단성을 갖고 있다. 이것이 바로 대법제자가 서로 협력하는 데에서 부딪친 가장 큰 어려움으로서, 이런 저애는 당신들 자신에게서 오는 것이다. 여기는 사람마다 모두 능력이 있으며, 심지어 능력이 아주 커서, 일을 하게 되면 한 사람이 속인 여러 사람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말하면 이는 협력 면에서는 바로 번거로움이다.”[1]
두 번째 요소는 바로 대법제자마다 위치한 층차가 모두 같지 않기에 한 가지 일에 대해 당연히 다른 인식과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 흔히 자신의 인식이 옳고 다른 사람의 인식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부님께서 “만 명 중에서 같은 층차 중에 있는 사람을 찾자면 아마 두 사람 있을 것이다.”[2]라고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들은 모두 자신의 인식이 옳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요소는 구세력의 교란으로서 수련인의 협력을 심각하게 저애하고 있다. “만약 개개인 그들 모두가 자신이 재간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 모두가 자신의 능력이 강하다고 생각하며, 그들 모두가 자신의 말이 옳다고 여기면서 맞서서 양보하지 않으면, 그때 맞서서 양보하지 않는 사람은 실제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의 생각에 자신의 이 방법이 법을 위해 더욱 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는 결코 자신이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구세력은 그가 맞서서 고집을 피우는 이 한 점을 틀어쥐고 끊임없이 그것을 강화한다. ― 당신 것이 맞는다, 당신 것이 맞는다, 당신이 맞게 했다! 그러므로 그럴 때면 정신이 흐리멍덩해진다.”[3] “게다가 구세력은 원만하지 못할수록 좋다고 여기고, 당신이 가서 하라며, 실수투성이를, 누가 그것을 보완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대단한 것이고, 여러 사람들에게 함께 제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 여기는데, 그것은 이렇게 본다.”[4]
네 번째 요소는 사람이 수련하지 신이 수련하는 것이 아니기에 수련인의 각종 집착심이 표현되어 나올 수 있다. 수련인의 마음은 흔히 눈에 보이는 가상에 미혹된다. 사부님께서는 “좋은 그 일면은 이미 격리되어 볼 수 없다. 당신들이 보는 것은 영원히 수련이 잘 안 된 이 일면이다. 하지만 당신들은 자비심을 품지 않아서는 안 되며 고정적으로 사람을 보지 말아야 한다.”[5]라고 말씀하셨다. 즉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영원히 상대방이 수련이 잘 안 된 그 일면이므로 따라서 상대방이 수련을 잘 못했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안으로 찾지 않는다면 자신이 상대방보다 수련을 잘했고 자신의 의견이야말로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감성이 이성을 주도해 상대방의 인식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다섯 번째 요소는 법의 요구이기도 하고 정체 제고의 요구이기도 하다. “만약 이 책임자가 정말 사부님처럼, 또는 문제를 생각하는 게 전면적이고 절대 틀리지 않는다면, 이 지역의 많은 사람은 수련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가 가장 전면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당신은 생각할 것이 없으며, 그가 한 일이 가장 좋으므로 역시 당신이 할 것이 없어진다. 바로 이런 이치가 아닌가?”[6]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는데, 책임자가 이 일을 한 것이 잘했든 못했든 간에 모두 협조하고 협동하여 그것을 더욱 잘해야 한다. 끌어가서 단독으로 하지 말아야 하는바, 누가 했다면 그가 바로 잘못한 것이며 나, 이 사부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7]
정체적으로 협조를 하면서 수련할 때 관련된 요소는 일반 수련인이 만나게 되는 수련 요소보다 훨씬 더 크다. 그러하기에 이 방면에서 생기는 모순은 더욱 첨예하고 더욱 마음을 건드리며 또한 자신의 기점을 파악하고 바르게 놓기가 더욱 어렵다. 하지만 정체로 협조하면서 생긴 모순과 연관된 요소가 더욱 많고 복잡하다 할지라도 해결하는 방법은 일반 수련인이 모순에 부딪쳤을 때의 해결방법과 같은데, 그것은 바로 법학습을 많이 하고 무조건 안으로 자신을 찾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발견했다.
나 자신의 수련에 있어 한동안 나하고 왕래가 가장 빈번했던 두 수련생에게 문제가 있고(그들을 A수련생과 B수련생이라고 하자) 그들의 상태가 아주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협력해서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하려 하면 서로 간에 심성관이 아주 첨예하게 변했다. 그들과 협력할 때 나는 자주 화를 냈고 협력을 잘하지 못해 더욱 큰 범위에서 중생을 구도하지 못했다. 이후에 수련이 제고됨에 따라 나는 수련생의 상태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람 마음을 제거하지 못했기에 수련생과 더욱 잘 협력하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른 한 원인은 구세력이 대법제자의 빈틈을 타서 대법제자가 사람 구하는 일을 못하게 했던 것이다. 그때 나도 자신의 상태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주 오랫동안 자신의 어떠한 마음이 수련생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지 찾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사부님의 ‘2009년 워싱턴 DC국제법회 설법’을 배울 때 그 중에 이러한 한 단락 법이 있는 것을 보았다. “다수는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다른 사람에게 얕보이는 것인바, 이 두 가지에 대한 마음의 반응이 가장 강렬한 것이다.” 나는 홀연히 깨달았다. 원래 나는 줄곧 A 수련생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바로 수련생을 얕본 것인데 늘 그의 수련은 왜 이렇게 엉망이고 왜 수련을 이렇게 잘하지 못하는가 하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는 정말로 수련을 그렇게 못한 것이 아니다. 내가 자신의 사람 마음을 발견한 후 다시 A수련생을 보니 단번에 그가 많은 방면에서 모두 아주 잘 수련됐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후에 자신에게 그에게 화내고 원망하며 억울하고 불평하는 마음이 있음을 발견했다. 두 사람이 늘 함께 협력하는데 그가 마땅히 나를 더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사실 모두 자신의 문제였다. 이리하여 A수련생과 잘 협력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했다. B수련생과의 모순은 더욱 직접적으로 해결됐다. 하루는 우리가 또 함께 협력해 중생을 구도했는데 나는 그를 보자마자 심기가 불편했고 그가 하는 것은 다 틀렸으며 그가 입만 열어도 귀찮아졌다. 나는 속으로 이런 가상에 이끌리지 않았고 구세력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구세력, 너는 또 나를 교란하러 왔구나. 너는 나에게 화내게 하고 수련생과 협력을 잘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중생을 구도하지 못하게 하지? 나는 너를 해체할 것이다.’ 나는 속으로 발정념을 했는데 한 시간 하니 이 한 가닥 기가 없어졌다. 그 후 다시 B수련생을 보니 다시는 그가 어디에 잘못됐다는 느낌이 없어졌고 일체는 정상이 됐다.
수련이 진일보 제고됨에 따라 나는 자신에게 아주 심각한 문제가 하나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바로 이기적인 요소가 아직도 매우 커서 진정으로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예전에 아주 오랫동안 어느 법공부 팀 수련생에게 A수련생이 얼마나 부족한지 원망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꽤 긴 시간을 불평하다가 수련이 제고됨에 따라 어느 날 갑자기 내가 A수련생이 서투르다고 원망할 때 단지 자신의 불만을 터뜨렸을 뿐 수련생에 대해 책임지거나 수련생으로 하여금 제고해 올라오게 하려는 목적으로 수련생의 부족함을 지적한 것이 아님을 발견했다. 게다가 원망만 할 뿐 수련생에게 문제가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어떻게 해야만 수련생이 마난을 지나올 수 있고, 그로 하여금 제고해 올라오게 할 것인지 스스로 물어보지 않았다. 알고 보니 이기적인 각도에 서서 모든 문제를 처리한 것으로 진정한 위타(爲他)의 경지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 후부터 나는 가급적이면 불평하지 않았고 불평하고 싶어지면 자신이 어떻게 해야만 수련생을 도와 마난을 지나올 수 있겠는가 생각했다. 이런 이치는 법리의 각도에서 볼 때 마치 사람마다 다 알고 있고 너무 명백한 것 같지만 실제 수련 속에서 나는 그렇게 긴 시간이 걸려서야 진정으로 제고되고 승화되어 올라왔으며 구체적인 일에 부딪혔을 때 진정으로 사부님께서 설법하신 이 법리가 생각났다. 진정으로 착실하게 수련한다는 것은 아주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평소 착실한 수련가운데서 다진 기초를 가지고 정체 협력과 협조 일에 들어갔을 때 비록 부딪힌 충격이 매우 컸지만 나는 이미 무조건 안으로 찾을 수 있게 됐다. 충격이 아무리 커도 자신을 조정할 줄 알고 자신의 최대 능력을 다해 협력을 잘하며 불만과 불평의 정서가 없어졌고 더 이상 누구를 얕보는 생각이 없어졌다.
수련생과 서로 격려하고자 하는데 부당한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0-따지웬(大紀元)회의 설법’[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3]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설법’[4]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13년 대뉴욕지역법회 설법’[5]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1-무엇이 대법제자인가’[6]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6-아태지역 수련생회의 설법’[7] 리훙쯔 사부님 저작: ‘로스앤젤레스 시 법회 설법’
문장발표: 2014년 9월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9/11/29758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