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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심과 조바심을 제거해 버리다

글/ 독일 대법제자

[밍후이왕] 새해 법회에서 발표한 교류문장 중에 한 마디 말이 나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 수련생은 이렇게 말했다. “한번은 션윈 매표소에서 수련생이 나에게 다른 한 수련생은 오기만 하면 표를 판매하는데 그것도 아주 많이 판매했다고 말했어요. 비록 겉으로 나는 아주 잘했다고 말했지만 수련생이 사람을 많이 구한 것을 내심으로 기뻐하지 않았고 그렇게 많은 중생이 구도된 것에 대해 그들을 위해 기뻐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이 션윈티켓을 판매했을 때 나는 내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가?’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지만 자신이 티켓을 판매한 것처럼 기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아주 이치가 없었는데 누가 티켓을 판매했던 모두 사람을 구한 것으로 왜 내가 사람을 구했을 때는 그렇게 기뻐하고 다른 사람이 사람을 구하면 나는 왜 그리 기뻐할 수 없는가?

한번은 한 수련생이 기뻐하면서 말하는 것을 들었다. “오늘 드디어 개시했네.” 이 수련생은 며칠 동안 티켓을 판매하지 못했는데 그날 드디어 한 장 판매하게 됐다. 듣고 나서 나도 꽤나 기뻤지만 나중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나도 언제 티켓을 판매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당시 심태는 ‘전법륜’속에 쓴 그 백 점 맞은 사례와 똑 같았다. 다른 사람이 백 점을 맞은 것을 보고 다른 사람을 위해 기뻐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나도 백 점을 맞은 적이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질투심이다. 질투심이 나로 하여금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뻐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줄곧 자신은 질투심이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이 면에 각별히 주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에야 이 마음이 아주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조금만 있어도 사람을 구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또한 사부님께서는 “사람이 수련 중에서 질투심을 제거하지 못하면 정과(正果)를 얻지 못하는데, 절대로 정과를 얻지 못한다”[1] 고 말씀하셨기에 이 마음은 반드시 제거해 버려야 한다.

며칠 전 주민들에게 자료를 배포하는 과정에서 나는 자신의 조바심을 보았다. 다른 한 수련생과 함께 우리 집의 두 어린이 수련생을 데리고 우편함에 자료를 넣었는데 비교적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이후 날이 어두워져 우편함에 광고를 거절한다는 스티커가 붙어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살짝 조바심이 났고 어린이 수련생이 우편함에 넣는 속도가 조금 느려지자 비록 입으로는 말을 안 했지만 마음이 조급하기 시작했다.

자료를 한 번 다 나누어 주자 우리는 자료를 가지러 차에 돌아왔다. 손에 차키를 들고 있자니 불편하고 주머니에 넣자니 성가셔서 차키를 자료 옆에 놓았다. 자료를 다 챙기고 바로 차문을 닫아 버렸는데 닫는 순간 갑자기 차키가 안에 있다는 생각이 나서 차문을 열려고 하니 열리지 않았다. 알고 보니 내가 미리 원격 조종으로 차문을 잠가놓았던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차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는데, 나는 남편에게 전화해 예비키를 가져오라고 했는데 그가 차를 타고 오기까지 한 시간 넘게 걸렸다.

이렇게 되자 냉정해져 안으로 찾았는데 방금 조급한 마음이 특별히 강했던 것이다. 지금은 어차피 일찍 돌아갈 수 없으니 천천히 배포하자고 하니 즉시 고험이 나타났다. 나와 딸이 한 별장지역까지 갔을 때 네 집의 우편함을 찾기가 아주 어려웠는데 앞뒤로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이번에는 조급해하지 말아야지, 이것이 바로 내가 또 조급해 하는지 고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자세히 관찰해보니 이 몇 집 입구는 의외로 집 옆의 아래로 내려가는 작은 길에 있었고 우편함도 작은 길 옆에 있었다. 이런 수준의 집은 보통 입구를 이렇게 설계하지 않기에 우리는 처음에 이건 다만 지하실로 가는 작은 길인 줄로 알고 그곳에 우편함이 있다는 걸 주의하지 않았다.

이 몇 집과 맞은 편에 있는 두 집은 비교적 달랐는데 비록 한 개 간판에 두 집이 살고 있었지만 보기에는 한 집 같았다. 다 배포하고 앞으로 가려 했으나 나는 어디엔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한 집에 어떻게 문이 두개 있는가 싶어서 돌아가서 자세히 관찰해서야 어둠 속에서 다른 한 우편함을 발견했다. 만약 내가 아까처럼 조급했더라면 아마도 여러 집을 지나쳐 버렸을 것이다.

나는 딸에게는 조급한 마음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아주 자세히 관찰했는데 사실은 처음부터 나에게 거기에 문이 두 개 있으니 가서 자세히 봐야 한다고 일깨워주었다. 하지만 나는 딸의 말을 바로 듣지 않았다. 딸과 함께 자료를 배포한 것은 마치 사부님께서 나의 조바심을 제거하도록 본보기를 보여주신 것 같았다.

이튿날 발생한 한 가지 일은 나의 이해를 더욱 깊게 해주었다. 그날 아들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주 듣기 좋았다. 예전에 그가 피아노를 연주할 때면 늘 조급해 했기에 음악에 긴장감과 불안함이 반영돼 나왔는데 나는 항상 이것을 그의 성격에 귀결시켰다. 하지만 그날 그가 피아노를 연주할 때 갑자기 조금도 조급해 하지 않았고 아주 안정됐는데 이는 지금껏 없었던 현상이다. 나는 문득 이전에 그의 조급해 한 것은 사실 내 마음을 보여주는 거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늘 거울을 비추는 것을 거절했고 안으로 찾지 않았으며 그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금 나에게서 조급한 마음을 제거하자 그에게도 없어졌다.

사부님께서는 “만약 제삼자가 그들 두 사람 사이에 모순이 있는 것을 보았다면 그 제삼자인 당신 역시 우연하게 보게 된 것이 아니므로 당신 또한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왜 내가 그들의 모순을 보게 되는가? 나 자신에게 아직도 부족한 점이 있지는 않은지? 이렇게 되어야만 한다.”[2]고 설법하셨다. 때문에 어떠한 일에 부딪혔든 모두 안에서 찾아보면 자신의 문제를 찾을 수 있는데 정말로 확실히 이러하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미국서부법회설법’

문장발표: 2014년 9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9/3/29683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