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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 속에서 우크라이나 동남부 제자들이 사존의 보호를 받다

글/ 우크라이나 대법제자

[밍후이왕] 우크라이나 동남부의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두 지역의 전란은 지금까지 진정되지 않고 있다. 대량의 시민들은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 몰라 격렬한 총격전과 폭탄 공격이 일어나는 전쟁 속에서 공포에 시달렸으며 계속해서 잠 못드는 밤을 보냈다. 몇 달 동안 지속된 전쟁에서 수 천 명이 사망했다.

무상한 세상사 가운데 파룬따파를 수련하며 신앙의 힘으로 전쟁에 대한 공포를 극복한 사람도 있었다. 슬라뱐스크(Sloviansk)에 알렉산더라고 부르는 60여 세 사람이 있었는데 물이 없고 전기가 없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는 외부와 연락을 취할 때 늘 고정 장소에 간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상점은 이미 상품배달을 중단했기에 그가 마시는 물은 몇 집 마당에서 퍼올린 우물물이었다. 능력 있고 가정 형편이 좋은 주민들은 모두 피난했지만 그는 경제력이 없는 상황이라 신앙에 의지해 줄곧 참고 버텼다.

그는 말했다. “낮에 날이 밝을 때는 되도록 좀 많이 행동하고 날이 어두워지면 지속적으로 발정념하고 연공했어요. 전쟁으로 많은 상점에서 이미 식품을 팔지 않고 정상적인 영업을 하지 않기에 경제활동은 없어졌어요”라고 말했다. 비록 어려움이 아주 많지만 그는 이것을 수련의 기회로 여기면서 안일한 마음을 닦아 버리고 끊임없이 마음을 수련했다. 그는 사부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다. “수련이란 곧 어려운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든지, 사악이 미친 듯이 박해하든지, 생사에 관계되든지를 막론하고, 당신이 여전히 수련의 이 한 갈래 길을 확고하게 걸어가면서 인류사회 중의 어떠한 일도 수련의 길에서 행보를 교란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1]

한번은 아침에 금방 문을 나서자 군인들이 쌍방에서 미친듯이 사격을 시작했다. 그는 두려움을 신속히 진정시키고 많이 생각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앉아 가부좌했다. 그는 “파룬궁의 제5장 공법을 연마하자 고막을 찢는 듯한 총소리가 점차 멎었어요”라고 말했다. 슬라뱐스크는 줄곧 반군이 강제로 차지했던 곳인데 어려움 속에서 대법 신앙의 도움을 받은 그는 자신의 생사에 대해 그리 많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대법 사부님의 보호를 믿었고 줄곧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이 일대를 수복하기를 기다렸다.

크라마토르스크(Kramatorsk)에 살고 있는 60여 세의 이리나와 다른 한 대법제자 올렉은 군사적 충돌이 일어난 후 피난하지 못했다. 친러시아 군대가 그녀가 주거하고 있는 지역에 대량으로 나타나자 그녀는 전례 없는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전쟁이 벌어질 것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마음속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은 ‘진선인(眞善忍)’을 믿는 대법제자이기에 두려워하지 말자고 반복적으로 일깨웠다. 근거리에서 폭탄이 폭발하는 장면을 몇 번 보았지만 점차 공포를 극복할 수 있게 됐다.

이 도시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반란군이 교전하는 시각은 대부분 저녁 10시에서 새벽 3시 사이였다. 매번 한 밤중에 정부군과 반란군이 맹렬한 전투를 진행하면 피난하지 못한 시민들은 공포 속에서 밤을 지새우기가 일쑤였다. 대법제자 이리나가 거주하고 있는 곳은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곳과 불과 3Km 떨어진 곳에 있었기에 폭격이 시작되면 창문 유리가 흔들렸다. 매번 전투가 끝난 후 이튿날 아침이면 많은 사람들이 트렁크를 들고 급급히 버스 정류소로 가서 이곳을 떠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거리는 텅텅 비었고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때 기차역은 이미 통행이 중단됐다.

정부군이 슬라뱐스크를 수복하기 이틀 전, 그녀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격렬한 총성이 똑똑히 들렸다. 그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이웃 집 한 채가 폭격됐는데 수류탄 하나가 3층 높이로 날아올랐다가 땅에 떨어져 폭발했던 것이다. 또 한번은 수류탄 하나가 그녀 집에서 100미터 떨어진 곳에서 폭발했는데 창문유리가 전부 부서졌다. 어떤 사람은 불행하게도 부상당했고 큰 나무 몇 그루도 폭파하여 부러졌지만 근거리 전쟁 중에서 그녀는 무사히 탈출했다. 3개월 동안 물, 전기와 가스공급이 중단되고 음식물이 부족한 시국에서 그녀는 직접 대법의 보호를 실증했다.

65세의 니나가 살고 있는 지역은 마침 정부군과 반군이 대치하고 있는 경계 지역이었다. 한번은 한 밤중 쌍방 교전으로 남아있는 주민들이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니나는 아주 달콤하게 잤다. 이튿날 깨어난 후 거의 모든 주민들이 밤에 발생한 총격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격렬한 전쟁에 대지도 진동하고 창문도 부서졌으며 심지어 개들도 미친 듯이 짖어댔다. 니나도 아주 놀랐는데 원래는 한밤중 2시에 총성에 놀라 깨어났지만 무엇 때문인지 아주 빨리 잠에 빠져들어 아침까지 깊이 잤다. 밤에 일어난 교전은 조금도 그녀에게 영향주지 않았다. 니나는 몇 번이나 로켓포가 발사돼 그들 마을을 지나가는 것을 보았고 격렬한 총격전도 몇 번 거쳤지만 모두 무사했다. 그녀는 대법사부님께서 보호해주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됐다.

리시찬시크(Lysychansk)시에 살고 있는 70세의 니나도 처음에는 아주 무서웠다. 왜냐하면 이 도시가 차츰 우크라이나와 격리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리 3개가 폭격에 끊어지고 시내로 통하는 길도 폭격됐으며 철도가 폐쇄되고 식품공급도 중단됐다. 전쟁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때 니나는 늘 대법진상자료를 배포하러 나갔고 심지어 현지의 일부 주둔군에게도 주었다. 전쟁이 시작된 후 시민들은 두려움에 거리에 나가지 못했고 거리는 텅텅 비었다.

니나가 살고 있는 작은 읍은 매일 새벽 3시부터 낮 12시까지 교전이 지속됐다. 그녀는 5층에 살고 있었는데 매일 고밀도 발정념을 하는 동시에 사부님께 가지와 보호를 빌었다.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고 동시에 다른 수련생에게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했다. 니나의 5층 거주지는 아무런 손상이 없었고 심지어 유리도 깨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웃집은 한쪽 귀퉁이가 폭격에 무너졌고, 어떤 집은 유리가 전부 부서졌으며, 어떤 집은 지붕이 전부 뒤집혔다. 9층 높이의 한 건물은 완전히 폭탄에 파괴됐다. 처음 전쟁이 시작될 때 니나도 매우 두려웠지만 그녀는 되도록 자신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사부님을 믿고 대법을 믿으면서 되도록 법공부와 발정념을 많이 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이 일대를 수복한 후 니나는 주둔군에게 다시 파룬따파 진상자료를 나누어주었는데 많은 우크라이나 정부군은 기쁨으로 자료를 받았고 대법진상 달력을 각자 군용 차량에 걸어 놓았다. 그 중 한 장교는 니나에게 중국 대법제자가 중국공산당의 박해를 막아낸 인내와 용기를 상세하게 알려달라고 하면서 거듭 칭찬과 감사를 표시했다. 이 장교는 니나를 아주 잘 대해주었고 그녀가 진상을 알리는 것을 지지했다. 이후에 그는 직접 니나에게 감자, 곡물과 기타 일부 식품을 갖다주면서 그녀가 난관을 극복하기를 희망했다.

수련생이 문안 전화를 했을 때 니나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보호해주고 계십니다!“라고 감사의 말을 반복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 – 길(路)’

문장발표: 2014년 9월 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9/1/29660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