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사악의 ‘보증서’에 사인하는 문제를 엄중하게 대하자

글/ 지린(吉林) 시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본 시 ‘610’, 공안, 국보(國保: 610 산하의 공안부문), 커뮤니티, 주민센터는 또 한 번 비밀리에 본 시 대법제자 여러 명을 납치하여 사허즈향 샤오광촌 복지원 세뇌반(불법적인 감금 시설)에 보내 세뇌, 전향, 박해했다.

세뇌반에서 돌아온 수련생이 반영한 정황에서 세뇌반에 납치된 수련생은 악한 경찰, 악도들의 협박과 공갈에 모두 수련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두 수련생은 쓰지는 않았지만 구두로 연공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 명은 구치소에 보내져 계속 박해받고 있으며 다른 한 명은 병원에 보냈는데 열흘도 되지 않은 사이에 십여 명 수련생이 경솔하게 사악에 수련하지 않겠다는 보증을 썼다. 정법 수련이 이미 마지막에 들어선 관건적인 시각에 이렇게 자신이 한 일을 대하는 것을 당신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가?

2010년 길림시 ‘610’, 국보(國保), 공안국이 사허즈 샤오광촌 복지원에 꾸린 세뇌반은 지금까지 5년째다. 그동안 몇백 명 대법제자가 세뇌반에 납치되어 세뇌, 구타, 위협, 공갈을 받았다. 처음에 박해 앞에서 생사를 내려놓고 정념정행한 대법제자는 아주 적었다. 마음을 어긴 것이든 혹은 얼떨떨하게 사오한 것이든 관건적인 시각에 사악에 보증서를 쓴 것은 자신의 수련에 엄숙하지 않은 것이고 책임지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소위 ‘전향된 것은 사악이 지속하여 세뇌반을 이용해 현지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원인 중 하나로 되었다.

정법 수련이 이미 막바지에 이른 오늘 사부님의 후기 설법에서 명확하게 밝히셨다. “어떤 환경이든지 사악의 요구, 명령과 지시에 협조하지 말라.” [1], “어찌 사악에 머리를 숙일 수 있겠는가? 어찌 사악에 그 무엇을 보증할 수 있겠는가?” [2], 그러나 박해받으면 무엇이나 다 잊어버리고 집에만 돌아갈 수 있다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집에 돌아간 후 엄정성명을 쓰고 계속 한다. 또 납치되면 또 ‘보증서’를 쓰고 또 엄정성명 하나를 쓰고 또 수련한다. 자신의 수련을 이렇게 책임성이 없이 대하고 후과를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수련 상태는 사악에 박해 구실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것은 사악의 박해를 승인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우린 마땅히 수련의 엄숙성을 알아야 하며 마땅히 성숙한 표현이어야 한다.

우리는 우주 대법을 수련하고 있다. 우리 사존님께서는 우리가 원만할 수 있는 수련 제고를 위해 모든 심혈을 부으셨다. 감당하신 일체는 우리가 하루빨리 사람 마음을 버리고 신으로 가길 바라신 것이다. 자신의 감수, 자신의 몸, 명·리·정(名·利·情)이 손실 받지 않기 위해 사악의 세도에 굴복한 수련생들은 냉정하게 자신의 행위가 옳은지를 생각해 보고 법의 요구에 부합된 것인지 생각해 보라. 우린 정말 우리가 마땅히 넘어야 할 모든 고비와 고난을 거듭 포기하면서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기다림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최근 사부님의 신경문 ‘그래도 미쳐 날뛸 거냐’ 중의 ‘사람이 악하면 귀신같아 풍랑(瘋浪)을 조장하거니 선념(善念)이 없고 양심도 없도다’라는 두 마디 법을 새롭게 이해했다. 위대하고 자비로우신 사부님은 세인의 구도를 위해, 대법제자의 원만을 위해, 모든 사람을 위해 일체를 감당하셔서 ‘검은 머리 희끗희끗 인체가 상했네’ [3], 정도로 감당하고 계시지만 세상 사람이 알고 이해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중공의 거짓말에 세뇌되고 속은 사람은 감사는커녕 오히려 중공을 도와 대법을 파괴하고 신의 길을 걷고 있는 대법제자를 박해하고 했다. 정말 양심을 깡그리 잊은 것이다. 대법을 배반하고 사부님과 수련생을 배반하고 사악에 보증한 수련생들은 ‘풍랑을 조장’한 것이 아닌가? ‘양심도 없는 것’이 아닌가? 우린 사색할 필요가 있다.

본 시 ‘610’, 공안, 국보는 2010년 전 세뇌반을 몇 차례 조직했지만 납치된 수련생이 사악의 모든 ‘전향’에 협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며칠 사이에 세뇌반이 해체됐으며 몇 년 동안 세뇌반을 조직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몇 년 특히 ‘7·20’ 이후에 두려운 마음 때문에 수련을 포기했던 수련생, 뒤늦게야 걸어 나온 수련생이 납치되어 세뇌반에서 박해받은 사례가 좀 많다. 이런 수련생들은 걸어 나온 후 사람 구하는 일을 일부 했지만 두려운 마음과 원만에 집착하는 마음을 가지고 개인 해탈을 집착하면서 자신의 수련을 홀시했다. 시간에 집착하고 결속 등등을 집착하는 근본 집착을 버리지 않아 박해받기만 하면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것을 잊으며 겁주기만 하면 멍해져 아무거나 다 쓰고 아무거나 다 말한다. 이것이 또 다른 원인이 아닌가?

중공은 99년 ‘7·20’부터 대법을 박해하고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하여 감옥, 노동교도소, 구치소, 세뇌반에 보내 박해의 수단과 목적은 바로 파룬궁수련생에게 신앙을 포기하게 하고 수련을 포기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 그것들에 ‘보증’을 쓰게 직접 박해에 참여한 사악한 사람, 경찰, 대법제자를 전향시킨 인원수를 정치 업적으로 여기고 상급의 탁발과 상여금을 받은 인간성이 전혀 없는 인간쓰레기와 불량배들은, 이익의 유혹 때문에 파룬궁수련생을 전향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수련생을 박해하여 보증에 사인하게 한다. 혹형, 고문, 구타, 억울하게 중형을 받고 심지어 생사 앞에서 견정하게 대법을 수호하는 대법제자의 견강함과 굳센 기개는 우주 신들도 부러워하고 탄복한다. 어떤 수련생은 심지어 대법의 존엄을 수호하기 위해 생명의 마지막 순간에도 굴복하지 않아 사악의 간담을 서늘케 했으며 죽어도 영광스러운 것이다! 사부님을 굳게 믿고 대법을 굳게 믿은 진수제자는 경찰마저 탄복한다. 그럼 무슨 ‘보증’에 사인한다는 말이 있을 수 있는가! 비교해보면 우리 격차가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다.

대법 수련은 지름길이 없으며 오직 착실하게 수련하는 수밖에 없다. 대법에 따라 수련하고 해야 하며 모순 속에서 자신을 찾고 고비와 난관 속에서 자신을 찾아야 같지 않은 층차 표준에 도달할 수 있다.

수련 중에 고비, 난관 속에서 모순 앞에서 사람 마음으로 대하고 잔머리를 굴리거나 요행을 바라는 심리 혹은 둘러가려는 마음은 자신을 속이는 것뿐이고 자신을 훼멸하고 중생을 해치는 것이다.

함께 사부님의 법 ‘대각자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나니 의지는 금강으로 만들었구나 생사에 집착이 없나니 정법의 길은 탄탄하여라(大覺不畏苦意志金剛鑄生死無執著坦蕩正法路)’를 배우면서 공동으로 정진하자.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2-대법제자의 정념(正念)은 위력이 있다’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2-대법(大法)은 견고하여 파괴할 수 없다’

[3] 리훙쯔 사부님의 시사: ‘홍음3-환원’

[4] 리훙쯔 사부님의 시사: ‘홍음2-정념정행(正念正行)’

문장발표: 2014년 8월 26일
문장분류: 명혜주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8/26/296486.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