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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후에 다시 불연(佛缘)을 잇다

글/광둥 청년대법제자

[밍후이왕]

불법(佛法)을 듣다

나는 1995년 남방의 한 작은 진에서 태어났으며, 출생한 지 얼마 안 되어아버지는 출장 중에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할 수 있는 기연이 시작되었다.이로부터 아버지의 성격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와서 어머니도 대법을 믿고 연공을 따라 했다.

나와 언니는 바로 이렇게 어릴 때부터 진선인(眞善忍)의 법광 속에서 성장했으므로 그 나날을 되돌아보면 아주 충실했었다. 아버지를 따라 이웃 마을로 가서 사부님의 설법비디오를 보며, 공원에서 오빠, 언니, 형, 아주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함께 가부좌하고 연공을 했다. 그 당시 공원에는 10여 명의 수련생이 있었는데 나와 언니가 가장 어렸다. 그렇지만 가부좌를 견지하는 시간은 가장 길었으므로 어른들은 모두 우리에게, 잘한다는 칭찬을 해주어서 마음속으로 다소 기분이 들뜨기도 했다. 그랬어도 당시는 미처 동공을 배우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정진하는 수련생과 같이 그렇게 엄격하게 자신의 심성을 제약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나 나는 사부님께서 이미 나에 대해 상관하시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나와 어린 사촌오빠는 당시 스포츠를 즐겼다. 한번은 우리가 아주 높은 철봉에 올라갔는데, 거의 꼭대기까지 올라갔을 때 내가 손으로 철봉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몸 전체가 뒤로 넘어갔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어떤 힘이 나를 받쳐주는 느낌을 받았으며 동시에 뒤로 넘어간 몸의 자세도바로 잡아주는 것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바닥에 안전한 상태로 넘어져 있었다. 몸에는 상처도 없었으며, 발에도 별로 충격을 받은 느낌이 없었다. 나는 그 당시 바닥에 앉아서 생각했는데, 이는 반드시 사부님께서 보호해 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이 대법에서 큰 혜택을 받았을 때인 1999년 사당(邪黨)은 파룬궁(法輪功)에 대해 미친 듯이 탄압을 시작했다. 그때 내 나이는 4세였으며 언니는 6세였다. 우리 자매는 아직 철이 없어서 이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이 가하는 박해의 잔혹함에 대해서는 조금도 몰랐다. 어느 날 경찰 복장을 한 사람이 우리 집에 와서 아버지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버지가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아버지는 그들과 타협을 했다고 했다. 그 후로 우리 가족은 몇 년 동안에 걸쳐 점차 대법으로부터 이탈됐으며, 사회의 큰 염색 항아리 속에서 속인과 같아졌다. 과거 공원에서 함께연공했던 수련생들과도 모두 연락이 끊겼다.

11년 후에 다시 불연을 잇다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우리 이런 못난 제자를 포기하지 않으신 것에 대해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내가 갓 고등학교 1학년에 올라갔을 때 ‘진상전파와정의 호소’란 진상 우편물이 우리 집 컴퓨터에 전달됐는데, 내용은 ‘분신자살사건’의 각종 허점을 이야기했고 또 인터넷 봉쇄를 돌파하는 소프트웨어를 다운받는 방법도 있었다. 언니가 먼저 이 서신을 발견하고 소개와 안내에 따라 다운을 받은 후 명혜망에 접속했다. 우리는 11년이 지난 그 날 비로소 다시 대법과 연을 맺을 수 있었으며, 생명이 반본귀진하는 길로 돌아왔다!

내가 11년간 덮었던 ‘전법륜(轉法輪)’을 다시 펼쳤을 때 책표지의 파란색은 여전히 연연했으며, 안의 책장은 새 책처럼 모두 깨끗해서 조금도 누렇게 변색된 부분이 없었다. 사진 속의 사존께서는 여전히 그렇게 자비롭고 위엄이 있으셨는데, 나는 눈물이 쏟아져 시야가 흐려졌다…

더욱 수승한 것은 수련생의 말과 같이 ‘전법륜(轉法輪)’ 뒷장의 연꽃망울이 펼쳐져 피어난 것이다! 어릴 때 나는 계속 의문스러웠는데, 불가의 연꽃은 자주 등장하지만 늘 활짝 핀 연꽃을 보게 되었으므로, 이처럼 연꽃이 봉우리가 진 상태의 모습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에야 비로소 깨달았다.그 속에는 자비하신 사존의 얼마나 많은 노고와 배치가 스며들어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당시는 정말로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듯이 ‘전법륜(轉法輪)’을 보았는데, 세간의 어떤 유혹과 위협에도 더는 사존을 따라가는 발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집착하는 모든 마음은 마치 깃털처럼 가벼워 전부 몸에서 떨어져 나갔어도 전혀 아쉬움이 없었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법공부와 연공을 시작하면서 그동안 항상 나를 괴롭혔던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사라졌다. 약을 먹거나 수술도 받지 않았다. 내가 3년의 고등학교과정을 마칠 때까지 그 증상은 단 한 번도 나타나거나재발하지 않았다. 사존께서 나의 신체를 정화해주셨다! 그 얼마 후 어머니도 나와 언니를 따라 수련을 시작했다. 우리는 아주 빠른 시일 내에 복사기를구입하고, 작은 가정자료점을 설립하여 우리의 진상을 알리는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아버지가 대법수련으로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두려운 마음과 여러 해 동안 속인 사회의 큰 염색 항아리 속에서 생활하며 형성된 관념과 집착이 아버지로 하여금 개인수련과 정법수련의 홍대한 개념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수련을 시작할 때 아버지는 늘 우리의 진상알림을 방해했으므로 여러 차례 쟁론을 벌이기도 했다. 나는, 우리가 법이 요구하는 그렇게 큰 자비에 도달하지 못해 아버지 맘속에 자리 잡고 있는 단단한 얼음을 녹이지 못했음을 알았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원한의마음을 제거하고 진정한 자비의 마음을 수련하여 아버지의 깊은 곳의 진정한 자아를 깨워줄 수 있기를 바란다.

고교 1학년에서 진상을 알리다

나와 언니는 같은 명문학교에 진학했는데, 당시 나는 1학년이었고 언니는 3학년 졸업반이었다. 언니를 따라서 반에서 학생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언니는 학교성적이 좋아 학년에서 항상 1, 2등이었으므로 기본적인 학비는 무료였다. 그러므로 학교의 고위직 관계자까지 모두 언니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언니는 대법으로 다시 돌아온 후 집에서는 공부를 아주 적게 했다. 대부분 여가 시간에는 법 공부를 하고 자료를 만들고 진상을 알렸다. 우리는, 이것은 사존께서 하사하신 복이고 대법이 하사한 지혜임을 알았다. 언니가 학교에서 진상을 알리는 데 유리한 조건을 제공했다. 비록 진상을 알리기 시작할 때 그다지 이지적이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어떠한 위험도 없었다.

언니는 처음 방과 후 학생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한 명 혹은 몇 명에게 알렸는데, 좀 떨어져 있는 학생들이 적게 혹은 많이 언니의 진상을 들을 수는 있었지만 정확한 진상내용은 듣지 못했다. 이런 것이 그들 중 일부에게 오해를 만들었다. 시간이 길어지자 일부는 진상을 알고 3퇴를 하였고, 일부는 반신반의 상태였으며, 또 일부는 진상을 알지 못하고 교장에게 일러바쳤다. 그러나 언니는 그들에게 모두 악의가 없었으며, 그들도 언니에게 정말로 악의가 없음을 알게 되어 모두 언니를 존경했다. 그렇지만 사당의 ‘분신자살’ 등의 거짓말에 기만된 사람들이 걱정되었고, 단지 그들 때문에 언니는안전, 성적, 전도에 영향을 줄까 봐 걱정을 했다. 그래서 언니는 그들에게 편지 한 통을 적어 보냈고, 또 자발적으로 직접 교장실로 찾아가서 진상을 알렸다. 3명의 교감도 함께 모두 언니의 진상을 들었는데 그중 한 명은 일찍이 우편함을 통해 파룬궁의 우편물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들이 어느 정도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모두 언니에게 번거로움을 주지 않았다.

내가 진상을 알릴 때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아주 큰 누락이 있었다. 아주 무거운 사람의 정을 안고 진상을 알렸다. 나는 가장 먼저 나와 친하게 지내는 3명의 중학교 동창생을 속히 구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그들과 만나기로 약속을 정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다지 나의 말을 중시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사당 중앙이 좋다는 그 한 세트의 관념을 안고 있었다. 후에 나 자신의 마음이 순정하지 못해 말에 힘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조종하는 사령의 요소를 해체하지 못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신이 수련하고자 하면 사람의 정은 아래로 내려놓아야 한다.” [1] “대법제자 자신이 잘하지 못하면 중생을 구도할 수 없다.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데 당신이 어떻게 중생을 구도할 수 있겠는가? 당신이 내보낸 염두는 모두 바르지 못한 것인데 당신이 어떻게 그 일을 잘할 수 있겠는가? ” [2]

이번의 체험은 나에게는 정말로 아주 큰 교훈이었다. 그 몇몇 동창은 오늘도 아직까지 진상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지금 나는 비로소 ‘정’이란 물건이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변화무쌍하고 지극히 미혹성이 있다. 사람, 심지어 수련인이 천만 년 윤회하며 구도를 기다렸던 기연을 단번에 끊어버리게 한다. 그러므로 남아 있는 것은 다만 만고의 아쉬움뿐이다. 수련생이 교류문장에서 말한 것과 같이 우리 주변에는 연분이 아주 깊은 사람들이 천담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속세로 내려왔는데 가족연, 동창생연, 부부연, 각종 정연(情緣)을 맺으러 온 것이 아니라, 불연(佛緣), 법연(法緣)을 맺으러 온 것이다!

고교 2학년 정치과수업에서 정정당당하게 법을 실증하다

그녀들은 고등학교 2학년으로 진학하여 문과를 택했고, 다른 한 명은 타교로 전학했는데 연락이 끊긴 상태다. 그녀들에게 진상을 알릴 기회가 갈수록 적어졌다. 나는 이과를 택했다. 문과는 문화의 역사와 정치에서 많은 사당의독소가 충만하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과생도 사당의 독해를 주입 당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다만 문과보다는 조금 덜했다. 사당의 중등교육에는 입시시험 외에 또 수시로 평가시험이 있는데, 이과생도 전문 과제를 시험 보기 때문에 고교 3학년 이전에 누구나 문과 과정을 이수 받아야 한다. 그러나 사당의 고등정치 교과서의 종교정책 중에는, 대법을 비방하는 내용이 필수과목으로 들어 있다. 사당의 의도는 아주 분명한데 모든 학생을 대법에 대해 범죄를 저지르는 심연 속으로 밀어 넣으려는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정치과선생의 수업시간에 대법에 대한 모함의 말을 듣게 되었지만, 그때 나는 일어서서 대법을 수호하지 못한 고통스러웠던 그런 과거가 있었다. 그때 나는 단지 손을 든 채 발언을 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선생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나를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진상을 들은 적 있는 몇몇 주위의 학생들은 낮은 소리로 나에게 맞받아치지 말라고 했으며, 나는 결국 일어서지 못했다. 집에 돌아온 후 베란다에 앉아 눈물을 끊임없이 흘렸다. 스스로 너무 나약한 것이 원망스러웠다. 사존의 제자로서 사존의 거대한 헌신과 자비의 고도를 져버렸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당신들이 자책(自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조금도 쓸모가 없다. 나는 여전히 그 한마디 말이다. 넘어졌다면 엎드려 있지 말고 빨리 일어나라!” [3]“ 대법제자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어떤 일에 부딪히든지 인식했으면 당신은 즉시 고치고, 넘어지면 당신은 일어나 계속 대법제자가 해야 할 것을 해야 한다. 그럼 당신의 그 과실을 당신의 수련과정 중에서 잘 넘지 못한 관으로 쳐주고 다시 걸어서, 기회가 있으면 다시 당신으로 하여금 넘게 하는데, 이러할 뿐이다. 사부는 당신의 수련과정 중의 일을 무엇으로 치지 않는다. 만약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 범한다면 그것은 다르게 논해야 한다. 또한, 잘못했다 해서 또 집착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4]

그러므로 고등학교 2학년 때 정치과 수업에서 사당의 종교정책을 말하기 전에 나는 충분한 준비를 하고 반드시 정정당당하게 법을 실증하려고 생각했다. 먼저 정치 교과서 목록을 대략 한 번 훑어보고 사당의 종교정책이 몇 페이지, 어느 수업의 뒤에 이어지는지를 알고 그 몇 페이지를 찢어버렸다.

여기에서 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평소에 정치와 역사교과서를 전혀 보지 않고 집으로 가져가지도 않았다. 다만 수시평가시험 하루 전에 집으로 가져가서 한 번 훑어보고 사당의 우두머리의 이름 혹은 사진이나 기타 사당의 학생 세뇌 내용을 본 후 라이터로 교과서를 태워버렸다. 사당의 사설, 미혹, 사기, 세뇌, 주입수단 등에 대해 나는 모두 꿰뚫어보았다. 수시평가 시험의 그 배후에 대한 사당의 의도를 잘 알고 있었으며, 어떤 선택의 답안을 규정한 것인지를 거의 잘 알고 있었다. 원칙에 저촉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는 택했고, 원칙에 저촉되고 사당을 분칠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부 택하지 않았다. 그러나 답안과 대립되거나 상반되는 것을 고의적으로 골라서 택하곤 했다. 그 결과 정치학과 성적은 B를 받았다. 그러나 지리와 역사는 모두 A를받았다. 학생들은 모두 그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 일부 동급생은 시험 전에나에게 농담으로, 정치와 역사는 반드시 잘 치를 것이라고 했다. 그들 중 대다수는 시험지를 만들거나 또 신문을 만드는 이들이라 겨우 간신히 몇 개의C 혹은 B를 받았으며 A는 아주 적었다. 나는 평소에 한 문제도 풀지 않았지만, 시험만 보면 그들보다 더 잘 치렀다. 이 중에는 대법의 초상함을 실증했는데 대법의 진상을 알고 사당을 욕해도 어떠한 불이익도 없었다. 그와는 반대로 신과 부처님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을 실증했다!

나는 사당의 종교정책을 수업하는 오후 시간에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학교에 갔다. 수업시간에 끊임없이 발정념을 하며 사부님의 가지를 빌었다. 선생님이 사당이 비방하는 말을 꺼냈을 때 나는 우렁한 목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은 것입니다!)” 라고 말한 후 강연대로 나갔다. 빔프로젝터로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풍우천지행’의 전반 부분을 틀어주었고, 사당이 연출한 ‘분신자살사건’의 거짓을 폭로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나 자신이전에 법을 수호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그나마 보충할 수 있었다. 이 일을 ‘나의 마음속 소리에 귀 기울이다’란 글에서 상세히 이야기했으므로 더는 중복하지 않겠다.

고교 3학년에서 ‘서약카드’를 제지하다

내가 고교 3학년에 진학했을 때 모두 무거운 학업으로 바삐 보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 3퇴를 시키는 횟수가 전보다 적어졌는데, 점차 정진의 의지가 느슨해지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 마음이 확대되어 갔다. 이 정법의 최후가 이미 며칠 남지 않았으므로, 사령의 썩은 귀신들이 다시 살아나서 달려들었다. 사당 관원이 현지의 각 학교에 중생을 독해시키는 ‘서약카드’를 작성하여 발송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그날 마지막 수업은 반별회의시간이였는데, 담임선생이 붉은 종이카드 한 무더기를 갖고 와서 내려놓았을 때 나는 마음은 쥐어짜는 듯이 아팠다. 주위에서 진상을 들은 적이 있는 학급생들이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고개를 돌려 바라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당시 발정념을 하는 것도 잊었다. 이미 3퇴하여 구도 된 사람들이 사악에게 훼멸 될 수 있는 것도 몰랐고, 사악의 공격을 어떻게막아서 이곳 중생을 어떻게 구도해야 할지도 몰랐다…

담임선생은 강단에서 간단하게 몇 마디를 했다. 나는 첫 줄에 앉아 있었으므로 바로 그의 눈 밑에서 ‘서약카드’를 찢어버렸다. 나는 그가 나의 그런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가 나를 불러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면 그때 그에게 진상을 알리자는 것이 나의 속셈이었다. 그러나 그는 마치 나를 보지 못한 것 같았으며, 나를 부르지도 찾지도 않았다.

사악의 ‘서약카드’를 배포한 후 담임은 학생 한 팀을 내보내어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시켰다. 나와 한팀이었지만 운동장으로 나가지 않은 학생 갑에게, 이미 3퇴를 했으니 악당에게 협조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카드 위에 파룬궁을 지목하지 않았고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므로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잇달아 후회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마친 한 팀이 돌아왔는데 그중의 한 학생인 을이 내 옆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와 갑은 이미 이야기를 끝낸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갑이 나에게, 을 학생에게도 말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을 학생이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서 빨리 말하라고 독촉했다. 그 당시 주위에 다른 많은 학생이 있어서 내가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중에 시간을 내서 말하겠다고 했다. 후에 을 학생을 단독으로 만나서 말을 하자 그도 거리낌 없이 인정했다. 그러나 정작 3퇴를 권하자 을 학생은 거절했다. 내가 안을 향해 찾아보았다. 이전에 내가 너무 생각을 많이 하며 주저했던 마음과 수련에서 마땅히도달해야 할 표준에 이르지 못해서 그를 구도하지 못한 것이었다. 사실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말을 잘하지 못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며 여러 번 돌파하고자 했어도 돌파하지 못했다. 나는 이것이 바로 자신의 수련제고는 물론 중생 구도에서도 강대한 장애임을 알고 반드시 돌파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 날 아침 수업시간에 담임선생이 왔다. 나는 그가 나를 찾지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그를 찾아가서 내가 ‘서약카드’를 찢어버렸으며, 찢어버린 이유를 말했다. 그러나 담임은 나와 파룬궁에 대한 내용으로 대화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다만 “시기를 잘 간파할 줄 알아야 걸출한 사람이고’ ‘준수하고 당당한 사람은 굽힐 줄도 알아야 한다.”란 말을 했다. 가능하게 그는 조금이나마 요해한 것 같았다. 아침 수업은 빨리 끝났으며 우리도 대화를 끝냈다.

이어서 나는 또 3퇴를 했던 학생들을 찾아가서, 그들에게 사당의 ‘서약카드’를 어떻게 처리할 예정이냐고 물었다. 물론 대단한 학생들도 있었다. 일부 학생들은 그걸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며 구겨서 던져버렸다고 했고, 일부 학생은 그걸 낙서용 종이로 사용하다가 버렸다고 했다. 사당의 본질에 대해 아주잘 아는 한 학생은 특별했는데 아주 긴 내용을 글로 써서 사이트에 올려 학생들에게 ‘서약카드’를 던져버리게 했다. 그의 소박한 말속의 진실성이 나로 여금 깊은 감동을 받게 했다. 그 학생의 생명본질이 대법을 위해 자신의 힘을 헌신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또 많은 학생이 ‘서약카드’에 서명했는데 그럴 때면 나는 다소 비관적인 마음이 들었다. 비록 일부 노력을 했지만,나중에 보니 아직 힘이 모자랐고 효과도 아주 적은 것이었다. 비로소 자신이 늘 진상을 알릴 적당한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정념으로 환경을 개변하거나 조건을 창조해서 반대로 좋은 쪽으로 되게 해야 했으며, 특히 이번 사당의 ‘서약카드’ 사건을 이용하여 학생들에게 진상을 깊이 있게 알리고 3퇴를 시켰어야 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나쁜 일을 좋은 일로 만들지 못했다. 사실상 바로 자아를 내려놓지 못하고 진정으로 무사무아로 사존의 정법과 중생구도에 협조하지 못한 것이다. 더구나 대다수 학생은 또 내가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실조차 몰랐다. 이는 아주 큰 손실이었다.몸으로 대법을 설득력 있게 실증하지 못하는 바람에 너무 많은 중생을 져버렸다…. 원인을 깊이 파보니, 바로 내가 상처를 입을까 걱정하며, 자신을 수호하는 더러운 사람 마음이 있었다. 뿌리를 더 깊이 파보니 여전히 정이고 여전히 사(私)였다. 이후부터는 더 고달프더라도 반드시 사람의 정을 철저히 끊어 버리고, 구우주의 사를 제거할 것이며, 더는 한 손으로 수련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속인의 것을 잡고 내려놓지 않는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광음은 화살처럼 지나갔다. 나는 곧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한 도시에서대학을 다니게 된다. 고등학교 3년을 다니던 그 나날을 되돌아보면 많은 부족점이 있었고, 시간이 많지 않다는데서 생겨난 사람 마음으로 극단으로 걸어갔으며, 사존께서 “학생이면 당신은 학과를 잘 배우라.” [5]라고 하신 말씀의법을 위배했다. 언니처럼 진상을 알릴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가져오지 못했다. 휴대폰진상 항목을 오랫동안 실행하지 못한 채 한 쪽에 놓고 있었으며, 3시 50분의 전 세계 아침연공도 날마다 견지하지 못했다……

“어느 한 가지 일을 잘하지 못하면 그 일은 바로 실패다.” [6] 나는 지나간 것은 더는 보충할 수 없으며, 오로지 다시 용맹정진하여 미래의 길을 잘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 한 단락 새로운 여정이다. 사존께서는 이렇게말씀하셨다. “대법제자가 수련하는 이 한 갈래 길은 바로 세속을 이탈하지 않고 수련하는 것으로 바로 이러한 길이다. 그렇다면 속인 사회 중에서 수련하면서, 속인 사회에 물드는 것이 아니라 바로 속인이 당신에 의해 개변되는 것인데, 틀림없이 이러하다.” [7]

1999년 이전에 아주 어려서 글을 모를 때 어느 날 사촌 형이 나에게 아주 간단한 글을 몇 자 가르쳐주었다. 나는 지금도 기억하는데 하나는 ‘小’,하나는 ‘水’였다. 그 당시 아주 기뻐서 스스로 글자 하나를 만들었다. 한 필, 한 획씩 자체를 창조해서 글자를 반듯하게 썼다. 아버지가 옆에서 보고 놀라며, 누가 이 글을 가르쳐 주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내가 만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말을 믿지 않으면서 이 글자는 ‘洪’이라고 했다. 사부님의 존함 중의 그 글자였다. 우리 대법제자는 모두 사존과 엄청난 연분이 있다.우리는 모두 사존의 은혜를 입고 서약하여 조사정법하는 것이다!

“진상을 본 그 때서야대법을 찾은 그 때서야 천둥소리 들리는 듯나는 알았노라 내가 누구인지나는 알았노라 신의 길을 힘차게 달려가야 함을.” [8]

고귀한 수련생들이여, 우리 함께 사전의 서약을 완성하고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자!”

(2013년 글을 지음)

주:[1]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전법륜(轉法輪)’[2]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각지 설법8 -‘2007년 뉴욕법회 설법’[3]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4]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각지설법-2003년 캐나다벤쿠버법회 설법’[5]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스위스법회 설법’[6]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각지설법11-2010년뉴욕법회 설법’[7]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2005년 샌프랜시스코법회 설법’[8]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홍음3-나는 누구인가’

문장발표: 2014년 7월 1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7/19/29445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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