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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으로 소굴에서 두 번 나오다

글/ 랴오닝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노년 여성 대법제자인데 밍후이왕을 빌어 사존과 수련생들에게 자신이 수련하면서 두 번 납치당했다가 정념으로 뛰쳐나온 경과와 경험을 보고하고자 한다. 합당하지 못한 부분은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첫 번째는 2006년 3월 7일, ‘9평 공산당’(이하 ‘9평’이라 약칭)이 발표된 지 1년 넘었을 때였는데 그때는 ‘9평’을 광범위하게 전하던 초기여서 나는 매일 ‘9평’을 한 가방 가득 메고 이 거리 저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세인들이 가져가기 편한 깨끗한 곳에 놓고는 했다.

이날 내가 마지막 ‘9평’ 한 권을 어느 집 문 옆에 조용히 놓았을 때 마침 여주인이 외출하다가 포장이 아름다운 ‘9평’을 보고 즉시 파룬궁 자료인 것을 알아채고는 금방 얼굴이 어두워졌다. 나를 붙잡고 놓지 않으면서 기어이 파출소에 끌고 갔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 여성은 모 회사의 파룬궁 박해를 주모한 우두머리였다.

파출소에서 나는 이름을 대지 않았고 성도 대지 않았다. 경찰이 나에게 “이름은?”하고 묻자 “대법제자!”라고 답했고, 경찰이 또다시 “당신 이름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나는 “대법제자라고 부릅니다!”라고 답했다. 그 외 기타 일체 질문에는 모두 답하지 않았는데 예를 들면 자료는 어디서 온 것인가, 당신이 아는 수련생 이름을 대라 등등이다. 게다가 그들은 나에게 한 사람 이름만 말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유혹했지만 나는 그것들에 흔들리지 않았다. 대법제자는 사람을 구하기만 할 뿐 세인들이 업을 더 많이 짓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화제를 빌어 진상을 알렸는데 “파룬궁은 잘못이 없고 대법제자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전 세계 백여 개 나라의 민중이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는데 대법은 사람을 제도하는 것이고 인류를 재난에서 구해내는 것입니다. 대법제자가 진상자료를 나누어 주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이고, 재앙을 없애고 재난에서 피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언론 자유, 신앙 자유는 헌법이 국민에게 부여한 권리로서 ‘9평’을 배포하는 것은 법률에 저촉되지 않기에 당신들은 마땅히 나를 놓아줘 집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나는 또 장자석(藏字石)에 대해 말했고, ‘4.25’ 청원은 중난하이(中南海-베이징에 위치한 고위관리 집단 거주지: 역주)를 포위 공격한 것이 아니며,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에는 의문점이 대단히 많다고 말했다. 경찰들은 모두 명백히 알았고 머리를 끄덕이며 묵인했다. 그중 많은 진상들은 그들이 질문해서 알리게 되었는데 진상을 안 경찰들은 나를 아주 정중하게 대했다. “이모, 이모”라고 불렀고 파출소 소장은 나를 감시하는 경찰에게 말했다. “그녀가 물을 마시고 싶다면 물을 드리고, 배고프다면 밥을 사서 드리며, 화장실을 가고 싶다면 동행해 드려라.” 그래서 나는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여러 번 외부에서 일 보러 온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왜냐하면, 외부인원은 줄을 서서 등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밤에 조용해진 후 나는 안으로 찾았다. 무엇이 사악으로 하여금 빈틈을 타게 했는가? 나는 자신에게 일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무엇을 하던 요란하게 하고 빨리하며 많이 하면서 개인 수련과 법을 실증하는 시간 관계를 잘 배치하지 못했다. 항상 법을 실증하는 일을 많이 하고 법공부하는 시간을 줄여 대법제자의 근본적인 큰일을 소홀히 했다. 이것은 얼마나 큰 누락인가! 게다가 진상을 알릴 때 발정념을 하지 않았기에 다른 공간의 생명들이 비로소 세인을 조종하여 악을 행하고 대법제자를 박해하며 세인들로 하여금 업을 짓게 하고 대법에 대해 죄를 짓게 한 것이다. 나의 집착과 누락 때문에 한 생명을 위험한 지경으로 밀어 넣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녀 역시 법을 위해 온 것이다. 대법에 동화되지 않고 나 때문에 대법에 죄를 지었으니 이 생명은 어떻게 되겠는가? 나는 자비심이 나와 발정념하여 박해를 해체하고 고층 공간의 부정적인 생명이 세인들에 대한 통제를 해체했으며, 세인들로 하여금 모두 진상을 듣고 진상을 알며 대법에 동화되어 미래로 걸어갈 수 있게 했다. 이튿날 출근하자 파출소 소장은 아주 친절하게 말했다. “당신은 정말 대단한 할머니입니다, 감히 감시카메라 앞에서 연공하다니.” 그들은 비록 겉으로는 친절하고 정중했지만 그래도 규정대로 나를 구치소에 보내 15일간 구류했다. 왜냐하면, 공산당에 대한 충성심이 인성보다 높기 때문이다.

나는 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제가 잘하지 못해서 사악이 빈틈을 탔습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이 박해를 인정하지 않으시니 저는 박해 받아서는 안 됩니다. 아직도 제가 해야 할 법을 실증할 일들이 많고 많기에 사부님께서 가지해 주십시오. 저는 집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나는 고밀도 발정념을 했고 기회만 있으면 진상을 알렸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는 어느 지역이든 기본적으로 당신들이 바로 그 지역 중생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희망이며, 아울러 유일한 희망이다. 그곳의 중생은 당신들의 복음을 들어야 하고, 당신들이 진상 중에서 그들에게 대법이 무엇인지 인식하도록 알려주는 것을 들어야 하므로 대법제자의 책임은 아주 중대하다.”(2004년 뉴욕국제법회 설법)라고 말씀하셨다.

구치소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모두 마약범, 매음, 절도, 사기로 잡혀 온 여성들이었다. 오늘 내가 온 것은 내가 바로 그녀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희망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명감과 긴박감을 안고 그녀들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대법이 세계에서 널리 전해진 것부터 장쩌민 집단의 무리한 박해까지, ‘4.25’ 청원에서 천안문 분신자살사건에 이르기까지, 장자석에서 우담바라꽃이 핀 것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녀들은 흥미진진하게 들었고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법진상은 그녀들의 선한 일면을 깨우쳐 얼굴에 진심이 나타났고 서로 간에 말하는 톤도 상냥해졌으며 더구나 나에 대해서는 존경했다. 나의 모든 시간을 진상을 알리지 않으면 법을 외우거나 발정념했는데 일사일념이 모두 법에 있으면서 사악이 어떠한 빈틈도 타지 못하게 했다.

이튿날, 딸은 나를 집으로 데려왔는데 납치된 지 이틀 만에 집으로 돌아오게 됐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부님께서 나를 집으로 돌아오게 하신 것이다.

두 번째는 2009년 7월 20일이었다. 나는 진상 CD 29장을 자료를 가져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배포하려 했다.

나는 건물 현관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은 그러한 건물 안에서 16개 계단을 단번에 올라간 후, 천천히 걸으면서 쉴 수 있는 그런 건물을 지나게 됐는데 투명도가 아주 높고 또 대낮이라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는 정중하게 두 번째 CD를 놓았다. 그런데 목덜미 옷깃을 잡혔는데 알고 보니 키가 크고 몸집도 좋은 중년 남성이었다. 아마 잠복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 민감한 날 ‘7.20’, 게다가 2008년 8월 8일 올림픽 개막식이 보름 남았기에 공산당이 사회의 빈둥거리는 사람들을 매수해 잠복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당신이 무엇을 하는 사람이든 사부님께서는 특무도 제도하시기에 당신도 구도 받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보고 손을 놓으라 하고는 그에게 진상을 알렸다. 내가 어떻게 말해도 그는 손을 놓지 않았는데 아마 내가 좀 급해하며 말했기에 어투에 선이 부족하고 공간 마당이 순정하지 않아 그의 악한 일면을 제약하지 못했는지 그는 나를 붙잡고 놓지 않았다.

건물 밖을 보니 흐릿한 날씨에 가랑비가 흐느끼듯이 내리고 있었는데 내 마음은 아주 무거웠다. 우리는 아주 긴 시간 동안 대치했는데 내가 가려 하니 그는 붙잡고 놓지 않아 밀고 당기면서 우리는 거리로 나왔다. 그는 나를 꼭 붙잡고 놓지 않았는데 나는 이때에야 발정념할 생각이 나서 아예 땅에 앉아 결가부좌하고 발정념했다. 하늘에서는 가랑비가 내려 땅은 이미 젖었고, 평평하지 못한 곳은 물이 얕게 고여 있었지만 나는 옷이 젖거나 더러워진다는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때행인 몇 사람이 에워싸고 구경하면서 잇달아 그에게 사람을 놓아 주라고 권했다. “당신은 왜 노인네에게 그러는 거지? 그녀가 물구덩이에 앉았는데 습하고 냉하여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고마운 사람의 말을 들은 후 나는 한 번 느껴 보았는데 찬 느낌이 없었고 온몸은 따뜻했다. 사부님께서 나를 가지해 주신 것이다. 하지만 사악에게 조종당한 그 악인은 어떤 말도 듣지 않았는데 한 손으로 나를 붙잡고 놓지 않고 다른 한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경찰에 신고했다. 휴대폰이 연이어 세, 네 번이나 땅에 떨어졌지만, 그는 깨닫지 못했고 기어이 전화했다, 4, 50 분 족히 걸려서야 경찰차가 왔고 나를 파출소로 데려갔다.

파출소에서 경찰은 나에게 이름이 무엇이고 어디에 사는지 물었지만 나는 협조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나는 대법제자라고 말했다. 그들이 “당신은 그래도 ‘진(眞), 선(善), 인(忍)’을 수련한다고? 진실도 말하지 않으면서”라고 말하자 나는 “나의 사부님은 바로 내 옆에 계십니다. 당신들이 나의 사부님께 여쭈어 보세요. 내가 진실한지 진실하지 않는지, 선한지 선하지 않은지, 참는지 참지 않는지!” 다른 공간의 사령(邪靈)을 두려워 떨게 했기에 경찰은 할 말을 잃었고 어쩔 수 없이내 이름을 대법제자라고 썼다.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일요일이라 그들도 나를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줄곧 나를 지키는 사람이 있었는데 나는 진상을 알리는 것 외에는 발정념하고, 법을 외웠으며 연공했다.

나는 심각하게 자신을 반성해 보았다. 무엇 때문에 또 납치당했는가? 일하는 마음가짐이 바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는 자료를 가져다주려 했는데 오가는 걸음에 진상 자료를 배포하려 했으니. 대륙과 같은 박해가 심각한 형세에서 수련생들은 이미 보안상 이유로 각 항목은 별도로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여기에 대해 공통된 인식을 하게 됐다. 하지만 나는 쉽고, 편리하게 하려 했기에 사악이 빈틈을 타게 됐다. 가방 안에는 아직 배포하지 못한 주간 자료가 몇 세트 있었고 아직 배포하지 못한 CD가 27장 있었다. 만약 몰수당한다면 수련생들이 보는 것을 지체하고 게다가 중생이 업을 짓게 할 것이다.

나는 아주 자책했는데 고밀도 발정념을 하고 자신을 바로 잡으면서 박해를 해체했다. 고요한 밤, 나의 공간장도 천체가 맑고 깨끗하게 순정해졌다. 날이 밝아지자 나는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월요일 아침, 소장은 출근한 후 나보고 말했다. “당신, 이 할머니는 어디서나 다 감히 연공하네!” 내가 그에게 진상을 알리자 그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알고 있어요. 당신은 가방을 갖고 집으로 돌아가세요.” 내가 아주 감격하여 가방에서 진상 CD 한 장을 꺼내 그에게 주려 하자 그는 “당신이 갖고 있어요. 우리는 많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고맙다고 한 후 정정당당하게 파출소를 걸어 나왔다. 나는 중생들이 진상을 알게 된 후 자신을 위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게 되어 기쁘고 안심이 됐다.

원래는 집에 돌아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수련생에게 자료를 가져다주려 했지만, 머리를 숙여 보니 빗물 고인 땅에 앉아 가부좌했던 흰 바지는 마치 금방 씻은 것처럼 깨끗했다. 알다시피 지금은 대기오염이 심해 빗물이 유리에 흘러도 마치 지도를 그린 것과 같다. 나는 마음속에 고마움을 간직하고 자료를 배포하는 길에 올랐는데 대법제자의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두 차례 납치당해 비록 정정당당하게 걸어 나왔지만, 교훈은 심각하다. 나는 나에게 있는 강렬한 사람 마음의 집착, 강렬한 일을 하려는 마음이 구세력에게 약점을 잡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 나는 수련할 줄 알게 됐는데 늘 조용히 앉아 안으로 찾아보았다. 자신에게 어떤 집착이 있는지 보고는 그것을 제거해 바로 잡는다. 나의 가정 자료점은 기능이 온전해 어떤 때는 바빠서 밥도 먹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늘 심성을 수련했고 가끔 집착이 나오면 그것을 수련해 버렸다.

아무리 바빠도 나는 단체 법공부에 참가했고 아무리 힘들어도 지금껏 아침 연공을 지체하지 않았다. 세 가지 일을 다 하면서 정진실수하여 침착하게 정법 수련의 길을 잘 걸자.

문장발표: 2014년 7월 1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7/12/29418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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