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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의 길에서의 ‘고’와 ‘낙’

글/ 순정(純淨)

[밍후이왕] “사부님 찾은 지 몇몇 해인가 하루아침에 친히 뵈옵게 되었구나, 법 얻어 되돌아 수련하나니 원만하여 사부님 따라 돌아가리라”[1] 사부님이 안 계시면 내가 없고, 나의 오늘도 없다.

진상을 똑똑히 알리는 것에 관해서 밍후이왕에는 교류(문장)가 아주 많다. 수련생들은 이 방면에서 모두 나보다 잘 해 나는 아주 탄복하고 계발을 받았으며 고무되었다. 내가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할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당신이 보기에 내 나이가 얼마로 보이나요?”라고 묻는데 그럼 “50여 세죠?”라고 답하면 “틀렸어요, 많은 쪽으로 말해 봐요.” “기껏해야 60 이겠죠.” “틀렸어요. 일흔 셋이랍니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 어떻게 보양하신 거예요?” “제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진상을 알리면 거의 다 탈퇴한다. 많이 탈퇴시킨 대법제자와 비교하면 나는 아마 끝자리에도 못 미치겠지만 그래도 일부를 탈퇴시켰다. 그 중에는 중앙문화부의 한 우두머리, 모 성장(省長)의 부인, 모 당교(黨校)의 교장, 모 노동교양소의 교도원, 국내외 일부 유명인사, 전문가와 학자, 친척 친구와 일반인, 또 수련하기 전에 나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준 사람도 탈퇴시켰다. 그들이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때, 그가 대법 책을 보려고 할 때, 나는 마음속으로 매우 기뻤다.

아래 주요하게 나의 수련의 길에서의 ‘고’와 ‘락’을 말하겠다

락중에 락이 있다

나는 1998년에 법을 얻어 수련하였다. 사부님께서는 “그러나 그는 일생 중에서 진리(眞理)와 인생의 참뜻을 추구하고 사색해 왔다. 그가 일단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운 이후에, 그가 인생 중에서 알고자 했고, 또한 해석하지 못했던, 많고 많은 문제를 그는 단번에 알게 되었다. 아마 그의 사상과 함께 승화할 것이며, 그의 심정은 대단히 격동될 것인즉, 이 한 점은 확실하다.”[2]고 말씀하셨듯이 내가 바로 이러하였다. 흥분해 마지않았고, ‘환희심’의 상태가 나타났다.

어릴 적부터 늘 호기심으로 변화무쌍한 하늘을 보기 좋아했고, 마음은 늘 하늘을 날았다. 중학교에 입학한 이튿날, 학교에서 신입생을 위한 영화 상영을 했는데, 이때 함께 상영한 단편 영화의 제목은 ‘우주’였다. 그 후부터 호기심 많은 나의 마음은 우주로 날아갔다. 광대하고 웅장하며 짐작할 수 없는 우주에 대한 나의 의문은 끊이지 않았다. 우주는 어떻게 생긴 것일까? 이 우주 중에서 먼지와 같은 지구는 또 어떻게 생겼을까? 지구상의 인류와 만물은 또 어떻게 생겼을까? 인류가 존재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 지구상에서 개미처럼 보잘것없는 나는 무엇 때문에 살고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 이 단편은 나의 일생에 영향을 주었고, 나로 하여금 생존 중에 이중성을 형성하게 하였다. 사람들 앞에서는 명랑하고 대범하며 다재다능하지만 혼자일 때는 고독하고 슬프며 열등감을 가지게 되었다.

나의 부모는 천주교신도였다. 1994년 어머니가 세상 떠나기 전 병상에서 나에게, 나 역시 천주교 신도라고 알려주면서 태어나자마자 세례를 받았다고 했다. 그 후 1996년 나는 호기심을 갖고 성당으로 가서 천주교신자가 되었는데 그 해 나이가 55세였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고 궁금했던 많고 많은 문제들을 그들에게 물어 보았지만, 그들의 대답은 나를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가톨릭 신학교의 졸업생이 역으로 나에게 물었다. “만약 하느님이만능하시다면, 자신도 움직일 수 없는 큰 돌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러다 보니 나는 금방 성당에 가는 것이 소극적으로 되었다. 같은 해, 남편 친구가 사부님의 ‘전법륜(轉法輪)’을 보내 왔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뒤적여 보고는 내려놓았다. 남편은 다 보고 나서 수련하였지만 나는 2년의 기회와 인연을 놓쳐버렸다.

1998년 11월 30일 베이징에서 대학을 다니는 작은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어머니는 얼마나 순수한 분인데. 어서 책을 보세요.” 목소리는 온화하고 말은 간단했다. 나는 그가 말하는 것이 ‘전법륜(轉法輪)’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수화기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자 신기하게 벽 쪽에 있는 큰 책장에서 유독 ‘전법륜(轉法輪)‘이 밝게 빛을 내며 내 눈에 들어 왔다. 즉시 그 책을 꺼내어 아무 생각 없이 단숨에 다 읽었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식사하는 것마저 잊어버렸다. 그리고 책을 덮고는 남편에게 말했다. “나는 파룬궁을 수련할거예요.” 남편은 놀라고 또 기뻐하며 정말이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당시 정말 흥분됐는데 진정으로 ‘막혔다가 탁 열리는’ 그렇게 훤하게 탁 트이며 꿰뚫는 감각을 느꼈다. 이때부터 나는 대법수련의 길로 나아갔고 내가 알고 싶었던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더욱이 예전에 몰랐던 많고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는데,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은그의 경중(輕重)을 알 것이며, 그는 소중히 해야 함을 알게 될 것이다.”[2] 내가 바로 이러했다. 그때 나는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그날부터 ‘사부님을 따르고 사부님의 말씀을 들으며 사부님께서 안배해 주신 길로 끝까지 나아가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겠다’고 결심을 했다. 나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파룬따파가 좋다’고 말했고, 공원으로 가서연공을 하고, 광장, 정거장에서 홍법을 하였다. 집안의 형제자매들은 모두 나와 함께 연공했고, 같은 직장부서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법륜(轉法輪)’을 한 권씩 주었다. 녹음기를 가지고 가서 그들에게 연공을 가르쳐주겠다고 하면 모두 왔으며, 친척이나 친구, 사람들 속에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말하기만 하면 모두 웃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그때는 참으로 좋았는데 속으로 늘 명, 리, 정을 내려놓고 우주 특성인 ‘진선인(眞善忍)’에 동화하며 누구나 상냥하게 대하고 늘 좋은 일을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변하고 있었고, 승화하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정말 행복했다. 거리에 나서면 오가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보고 웃는 것 같았고, 흐린 날과 어두운 날이 없이 주위는 늘 투명하였다. 정말로 하늘이 변하고, 땅이 변하며, 사람이 변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기뻐서 속으로 웃고 있었고 항상 날아다니는 느낌이었다.

고통을 낙으로 삼다

1999년 초, 우리 연공장에 사복경찰관이 왔지만 수련생들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으며 일체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 ‘4.25’의 소식이 들려오자 나와 많은 수련생들은 함께 기차표를 샀으며,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소식이 금방 들려오자 차표를 환불했다. 결과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형세는 생각 밖으로 점점 나쁘게 변해갔고, 큰 광장에 있던 우리의 연공장도 사라졌다. 단체로 연공할 자리가 없어졌고, 기쁨도 사라졌다. 나는 이 일을 결정한 부서에 찾아가 시비를 가리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많은 수련생들이 성위(省委)에 청원하러 간다는 말을 듣고 나도 갔다. 청원하러 간 사람이 아주 많았고, 구경하는 사람도 아주 많았다. 나는 길옆에 서 있었는데 조금 지나자 경찰차가 오더니 사람을 붙잡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내가 당신들을 찾으려 해도 찾지 못했는데 이번에 당신들은 마침 잘 왔어’라고생각했다. 그런데 우리를 체육관으로 실어간 것을 알고 눈이 휘둥그레졌다.‘이러면 누굴 찾아가서 말을 하나?’ 오후 2, 3시경이 돼서야 거주지 관할파출소로 보내졌는데 파출소장, 국가보안대장, 동사무소장 등과 대면하면서, 대법은 좋다는 것과 내가 어떻게 직접 심신의 도움을 받았는지를 말하고 대법이 정말로 좋은 이유를 들어 말했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틀렸는데 무엇 때문에 틀렸고, 마땅히 어떻게 해야 된다고 알려주었다. 그들은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표현하면서 정중하게 우리를 정문 밖으로 배웅했다.

잇따라 ‘7.20’ 공포의 대 박해가 시작되었다. 직장에서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태도를 표시하라고 사람을 강박하였다. 나는 맨 나중에 태도를 표시하였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차분하게 말했다. “이 몇 해 동안 여러분과 함께일했는데, 여러분은 저에 대해 알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나 자신이 이성적이고 청성(清醒)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나이가 60세가 되어 가는데 여러 차례 운동을 모두 겪으면서 함부로 무엇을 믿거나 혹은 믿지 않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제한되어 있으니 세 가지만 말하겠습니다. 첫째, 저는 계속 연마할 겁니다. 왜냐하면 심신이 좋아졌으니까요. 둘째, 저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을 약속드립니다. 당신들도 알다시피 제가 만약 입당(공산당에 가입)하려면 진작 입당했을 겁니다. 셋째, TV에서는 거짓말을 하고 요언을 날조하고 있습니다. 당신들도 모두 두뇌가 있으니 어찌된 일인지 다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전원이 침묵하고 있을 때 갑자기 진행자가 회의를 끝낸다고 크게 소리쳤다. 눈 깜짝 할 사이에 나 혼자만 남겨 졌는데 정말 텅 빈, 정말로 빈 느낌이 들었다. 그 후 나는 일 년 앞당겨 퇴직을 신청하였는데 그해 나는 59세였다.

사부님께서 “원만은 불과(佛果)를 얻나니 고생을 낙으로 삼노라 몸 고생은 고생이 아니나니 마음 수련이 가장 어렵도다. 고비마다 반드시 넘어야 하는데 곳곳마다 마(魔)로다. 백 가지 고생 한꺼번에 내리거니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겠노라. 세상 고생 겪을 대로 겪나니 세간 벗어나면 부처로다.”[3]라고 말씀하셨다. 법리는 아주 명백하나 늘 “고생을 낙으로 삼노라”를 할 수 없었다. 먹장구름이 하늘을 드리우고, 소나기가 휘몰아치며, 피바람이 불어치는수련의 길에서 ‘고락’을 동반하면서 힘들게 오늘까지 걸어 왔다. 수련의 길에서 정마(情魔)의 교란을 힘들게 돌파하였는데 수련생들이 이끌어주고, 세 가지 일을 하는 과정에서 몇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비로소 이 정을 내려놓았다. 그 후의 수련에서 나는 모순에 부딪쳤을 때, 부딪친 모든 일에서 사부님의 법리 “수련 중에서 당신들이 부딪힌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들이 수련하기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4]를 떠올렸다.

큰 아들은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납치당했고 불법적으로 1년의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정마 중에서, 나는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으로 몸부림쳤다. 국가보안대대와 파출소의 경찰관이 우리 집에 왔을 때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온 이유를 설명한 후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파룬궁을 수련합니까?” 나는 수련한다고 답한 후 그들에게 진상을알리고 삼퇴를 권했다. 그때 마음가짐은 확실히 불안했으며 말이 갈수록 빨라졌고, 입도 말랐다. 나는 안절부절 못하면서 며느리와 함께 아들을 구출하러 갈 것을 의논하였다. 아들이 고생할까봐 걱정하는 모자의 정을 가지고,사악에 대한 증오와 쟁투심을 가지고 파출소로 갔다. 사람의 생각과 신의 생각, 사람의 말과 신의 언어가 함께 뒤섞여 무엇을 말했는지 지금도 생각나지 않는다. 결국 아들도 구출해 내지 못하고, 그 경찰관도 구도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온 후 며칠 동안 먹지도 자지도 않으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은, 모두 사악이 대법제자를 박해한 공포의 것들이었다. 며느리와 함께 법 공부를 하고 나서야 나는 점차적으로 안정이 되었다. 그 후부터 늘 사부님의 설법녹음을 들으면서 점차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하루는 ‘홍음’을 받쳐 들고학습하기 시작했는데 매 글자마다 마음속에 들어왔다. 사부님께서 나를 데리고 하늘로 들어가는 것 같았는데 사람 속에서 수련하고 있는 내가 정마에이끌려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장면을 똑똑히 보았다. 사부님께서는 자비롭게 나에게 알려 주셨다. “육친정(親情)에 집착함은, 기필코 그로 인해 지치고 얽매이며 마에 사로잡히게 됨이라, 그 정의 끈(情絲)을 잡아 쥐고 일생토록 방해받으니, 나이가 들어 후회해도 이미 늦은 것이다.”[5] 나는 평온해 지기 시작했고, 승화하고 있었다. 그 후 세 가지 일을 하는 과정에서 나는 자신이 부단히 승화하고 성숙됨을 느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그 일체는 다만 한 순간뿐이었다.

명을 내려놓은 고와 낙

나는 어릴 적부터 내 주위사람들 가운데서 줄곧 아주 뛰어났고, 직장에서 퇴직 전에는 이미 해당 분야에서 최고학술권위자였다. 커가면서 나는 점차적으로 도도하고 자부심이 강하며, 스스로 훌륭하다고 여기고, 자기를 대견하게 여기는성격을 형성하였다. 게다가 사당(邪黨) 문화의 독해로 인해 나는 항상 자아를 강조하고, 제멋대로여서 수련의 길에서 힘겹게 걸어왔다.

명(名)에 집착하는 마음을 갖고, 일부현상, 사물, 신기함 등을 모두 자신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로 삼았다. 예를 들면, 수련생들이 천목에 대해말하면 “나는 수련하기 전에 천목이 열렸는데 누구나 다 이런 줄 알았어요.”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근기가 좋다고 생각했다. 조상에서 덕을 쌓는 것을 말할 때 나는 곧 “우리 조상은 학자로서 덕이 있어요. 내가 갖고 있는 덕도 필히 아주 많을 거예요.” 수련생이 대법은 지혜를 열어 준다는 화제를 말하면 “나는 다재다능하여 거문고에도 능통하며, 지혜롭고 손재주도 뛰어나서, 여자들이 하는 재봉틀바느질 등도 모두 할 줄 알아요. 마음을 써 연습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특출하게 할 수 있는 출중한 재능이 있어요. 나는 천재로서 일반 보통사람과는 달라요.” 연속 4년 동안 우리 집에서 ‘우담바라 꽃’이 피었는데 나는 또 과시심을 갖고 수련생들에게 말했다. “우리 집은 장이 좋아요. 성결하고 깨끗하지요” 이 과정에서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팽창하고 있었는데, 나의 수련상태 중에서의 표현은 자신을 수련생 위에 놓으면서 늘 장기간 사당문화에 독해된 권위적인 자세로 수련생들을 설복하려하고, 강제로 복종시키려하며, 질책하는 말투로 수련생들과 교류하는 등등이었다.

하루는 병업이 있는 부부 수련생과 교류하였는데, 나는 처음부터 나 자신을그들을 도와주는 위치에 놓았다. 여자 수련생은 아주 얌전하고 말수가 적었는데 이날은 그녀가 자발적으로 나와 교류를 하려고 해서 나는 아주 기뻤다.하지만 남자 수련생이 옆에서 자꾸 말참견을 하면서 태반은 아내를 대신하여 해석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몰라요, 그녀는 바로 이러한데 고생을 두려워하고,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해요. 법리는 다 알고 있어요. 다만 해내지 못해서 그렇지요. 저도 그와 적지 않게 얘기했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어요…” 결국 나는 참을 수가 없어서 “당신은 끝도 없네요. 나는 그녀와 교류하는 것이지 당신과 교류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우리 수련인에게는 모두 매우 큰 에너지가 있는데 당신이 늘 그녀에게 뭐라고 단정을 지으면 그녀를 고정시키는 것이 아닌가요? 당신은 나쁜 일을 하는 거예요. 그녀가 오늘 이렇게 된 데는 당신의 책임이 커요. 당신도 안으로 잘 찾아야 해요 …” 나는 단숨에말을 많이 했고 모두 이치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줄곧 듣고 있다가 갑자기 크게 외쳤다. “당신은 너무 횡포적이군요. 그만 하세요!” 나는 갑자기 깜짝 놀라 얼른 입을 다물고 생각했다. ‘일을 그르쳤구나. 내가 어디가 틀렸지?’ 억지로 냉정한 척하면서 “나에게도 분명 잘못된 부분이 있을 거예요. 나도 잘 생각해 봐야겠네요. 갈게요”라고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떴다.

그 후 아주 오랫동안, “횡포적이군요!” 이 목소리는 나를 따라 다녔을 뿐만 아니라 줄곧 나를 자극하였다. 하루는 가정이 화목하지 못한 수련생에게 법리를 말할 때 “당신의 남편과 이치를 말할 때 반드시 태도에 주의해야 해요.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일처리 중의 어투, 선한 마음, 도리(道理)를 더하면 사람의 마음을 개변시킬 수 있으나 명령은 영원히 할 수 없다!”[6]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여기까지 말 하고 나는 멈췄다. 그 “횡포적이군요!”하는 소리가 나의 귓전에서 울렸고 나는 자신이 또 수련생에게 설교를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선한 마음이 없었고, 어투에는 탓하는 것이 섞여 있었다. 나는 진정 ‘안으로 찾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와 마음을 가라앉히고 지난 일을 생각해 보니 정말 차마 돌이켜 볼 수 없었다. 수련하기 전 형제들에게, 자녀들에게, 학생들에게, 학술계 동료들에게 했던 태도는 모두 사당의 독해 요소로 형성된 마성(魔性)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이 패물(敗物)들은 너무 두텁게 누적되었는데 그야말로 석 자 얼음이 하루 추위에 언 게 아닌 격이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우리에게 정념만 있으면 사부님께서 도와주신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즉시 많고 많은 법리가 나의 머릿속에 나타났고 마지막에 스스로에게 요구를 제기했다. 법 공부가 마음에 와 닿도록 노력하고, 발정념으로제거하며, 교류할 때 적게 말하고 많이 듣자. 자신의 마성을 수련생에게 폭로시켜 수련생들이 감독하게 하였고, 더 이상 여기 저기 다니면서 여러 법 공부 팀에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개 법 공부 팀에만 고정하여 참가하였다. 한 동안 지난 후, 수련생들은 나의 변화가 아주 크다고 말했다.

하루는, 말수가 적은 아들(수련생)이 나에게 말했다. “어머니, 어머니는 착실히 수련하지 않아요.” 나는 잠깐 멍해지면서 속으로 ‘여태껏 아무도 나에게 이렇게 말한 사람이 없어.’라고 생각했다. 후에 아들의 이 말은 늘 나의 귓전에서 맴돌았다. 하루는 ‘홍음’을 받쳐 들고 읽다가 ‘착실한 수련’의 마지막 구절인 “해 내어야 수련이로다.”[7]를 읽을 때 이 몇 글자는 내 앞에 크게 나타났는데 마치 ‘방할(棒喝)’ 같았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너는 착실하게 수련했는가?’ 또 이틀이 지나 내가 한창 법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아들이 또 말했다. “어머니, 어머니는 수업 준비를 하나 보네요.” 그때 나는 아들이 나를 풍자한다고 느꼈다. 마음을 안정시키자 나는 갑자기 사부님께서 아들의 입을 빌려 나를 점화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거 법 공부할 때 늘 이 단락의 법리는 모모 수련생이 그날 나에게 제기한 문제를 인식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어떤 때는 잊어버리거나 혹은 정확하지 않을까봐 기록하여 수련생에게 읽어 주곤 하였다. 수련생을 위해 책임지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스스로 아주 만족해하였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수련을 도와준다면서 자신을 수련하지 않는 상태는 이미 아주 오래 지속되었다. 어떤 때는 다른 사람이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는데 이때에야 비로써 착실하게 수련하는 진정한 내포를 초보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자신이 확실히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반성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轉法輪)’의 맨 마지막 한 단락에서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돌아가서 시간을 다그쳐 착실히 수련하기를 희망한다.”[2] 나는 자비로우신 사부님의 이 한마디 설법의 무게를 깊이 깨닫게 되었다.

주 :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 – 연귀성과(緣歸聖果)’[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 – 마음 고생’[4]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 3 – 시카고 법회’[5]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 – 수련자 금기(修者忌)’[6]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 – 청성(清醒)’[7]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 – 착실한 수련’

문장발표 : 2014년 6월 24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6/24/2934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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