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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공적을 훔쳐 자기 것으로 삼는’ 사람 마음과 일부 구체적인 표현에 대해 말하다

글/ 랴오닝 대법제자

[밍후이왕] 주위에서 일부 사람 마음과 현상을 보았기에 오늘 수련생들과 ‘하늘의 공적을 훔쳐 자기 것으로 삼는’ 화제에 대해 교류하고자 한다. 후에 나는 밍후이왕에서 관련 문장을 검색하여 읽고는 너무 송구스럽고 부끄러워 진땀이 났다.

듣고, 보게 되는 것 모두 우연하지 않은 바, 그것은 단지 다른 사람의 것을 보거나 혹은 토론하게만 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진일보로 인식해야 하고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아주 엄숙한 화제라 할 수 있다. 비록 그동안 밍후이에서 이 방면의 문장을 아주 많이 발표했는데도 나 자신과 일부 수련생들은 아직도 똑똑히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 다시 한 번 그 일을 재고해 봄으로써 나 자신과 수련생들의 상황에 반영하여, 밍후이의 관련 문장을 참고하여 서로 토론하고 교류함으로써 함께 제고하고자 한다. 적절하지 못한 곳은 수련생께서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우리는 우선 ‘하늘의 공적을 자기 것으로 삼다’는 고사성어를 풀이해 볼 필요가 있다.

춘추시기, 진문공(晉文公) 중이(重耳)는 한동안 떠돌아다니다 마침내 진나라에 돌아와 국왕이 되었다. 그는 공신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자신을 따라 망명한 사람은 일등공, 도움을 주었던 사람은 이등공, 귀환을 영접한 사람은 삼등공으로 나열하였다. 그는 또 만약 빠뜨린 사람은 스스로 와서 보고하라는 조령(詔令)을 발표하였다.

즈투이(介子推)라는 사람이 빠졌는데, 그는 예전에 진왕이 배가 고파 찬밥 더운밥 가릴 여유가 없을 때, 자신의 다리살을 베어 국을 끓여 진왕의 목숨을 지켜주었다. 이웃 사람들이 그런 즈투이에게 왜 상을 청하러 가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진헌공(晉獻公)에게 아들이 9명 있는데, 오직 주공만이 가장 어질고 재능이 있다. 진나라는 주공에 속하는데 이는 하늘의 뜻으로서, 만약 하늘의 뜻이 그렇지 않다면 또 누가 성공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큰 재능과 공로가 있는 줄 안다.”

“다른 사람의 재산을 훔치는 사람을 도적이라 부른다. 그런데 내가 진후(晉侯)에게 공로가 있다며 상을 바라는 것은, 하늘의 공적을 훔쳐 자신의 공으로 만드는 것으로 더욱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러한데 내가 어찌 하늘의 공적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때문에 나는 평생 짚신을 삼을지언정 이 공을 청하고 싶지 않다.” 후에 즈투이는 어머니와 함께 면산(綿山)에 숨어서 살았다.

즈투이는 짚신을 삼을지언정 하늘의 공적을 탐하지 않았다. 물론 빈곤할 지언정 절개를 지키는 그의 정신도 사람들로 하여금 존경하게 했지만, 경천지명(敬天知命)은 더욱 대단한 것이다.

우리는 수련인으로서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는 것을 더욱 잘 알아야 한다.[1]

수련중의 일체 얻음은 모두 법에서 오고, 사부님의 끝없는 자비 중에서 오는 것이다. 정법 속에서 대법제자들은 대법을 실증하는 각종 항목에 참여하고 있는데, 잘 했을 때 우리 스스로 만족하고 환희하며 과시하는 사람 마음이 있을 수 있다. 이 일체는 모두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1]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 배후에 얼마나 많은 사부님의 심혈과 가호가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감사하게 여기고 겸손해야지 절대 하늘의 공적을 자신의 공적으로 삼으면서 사부님과 법의 힘을 자신의 능력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밍후이왕에서 ‘거만’에 관련된 문장을 읽은 적이 있는데, 거만한 것은 종교 중에서 아주 큰 잘못이라고 한다. 읽을 때 나는 좀 놀랍고 이상했다. ‘거만이 아주 큰 잘못이라니! 왜지?’ 나는 이전에는 거만한 게 다만 사람의 교양방면의 일이라고 이해했는데 의외로 종교에서는 아주 큰 잘못으로 간주하다니……

나는 법 공부와 수련생들의 교류문장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사람은 신이 창조한 것으로 사람의 일체는 신이 장악하고 있다. 사람이 일을 할 때 오직 하늘과 신불(神佛)의 뜻에 부합되어야만 신불은 당신에게 능력과 지혜를 주고, 하늘의 이치에 따라야만 당신을 성공하게끔 도와준다. 만약 신불의 생각에 위배되면 신은 당신을 도와주지 않으며, 최종적으로는 반드시 실패하고 만다.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모략은 사람이 하나, 성공은 하늘에 달렸다’고 하는데 일이 성사되면 하늘이 성사시킨 것으로 신불의 지혜와 안배이고, 일이 실패하면 사람이 하늘의 뜻을 거슬러서 행한 필연적인 결과이다. 말하자면, 신이 당신더러 성공하라면 성공하게 되고, 신이 당신더러 성공하지 못하게 하면 당신은 필히 패한다. 기왕 사람의 일체 성과는 바로 하늘의 뜻이고, 모두 신이 도와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사람의 거만과 자만은 바로 하늘의 공적을 탐내는 것이 아닌가, 신불을 무시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닌가, 자신을 신불 위에 놓은 것이 아닌가? 신불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을 성취시켰는데 사람은 감히 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자신의 공로라 생각하며, 자신을 과시하고, 신불의 존재를 무시하는데, 이는 큰 죄가 아니고 무엇인가!

대법 수련 중에서 이런 사람 마음의 체현은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지, 대법을 실증하는 게 아니다.

나 자신을 돌이켜 보니 어떤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대법과 수련생들을 위해 무엇을 했다고 표현했다. 심지어 득의양양하게 스스로 즐거워하는데, 바로 하늘의 공적을 탐하면서도 자신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정말로 매우 위험하다!

동시에 또 한 가지 문제가 생각났다. 정법 수련이 오늘까지 왔지만, 아직도 정체를 이루지 못하는 장애와 간격이 더욱 많게는 수련인이 자아를 실증하는 사람 마음의 표현과, 또 자아를 내려놓지 못하고 서로 배척하는 것 때문이기도 하다. 아래에 자신의 사람 마음과 일부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현상을 써내어 공동으로 교류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1, 자기 손으로 인터넷에 발표한 문장을 수집한다. (속으로 이 모두 내가 쓰거나 혹은 교정하여 정리한 것들이다. 나는 얼마나 주요한 작용을 일으켰는가) 혹은 자신이 인터넷에 발표한 삼퇴 명단을 기록하면서 속으로 “내”가 그들을 삼퇴 시켰으니 이 중생들은 모두 “내”가 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2. 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대법과 수련생을 위해 어떤 일을 했다고 말하면서, 어떤 프로젝트는 자신이 만든 것이고, 어느 지역 수련생들은 자신이 그들을 ‘끌어 온 것’라고 말한다.

3. 수련생의 상태가 좋아지거나 제고되면, 그들이 늘 자신과 함께 법공부를 하거나 교류한 결과라 생각하고, 상태가 좋지 못해서 일이 생기면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안으로 찾을 줄 모르기’ 때문이라거나 혹은 ‘이들은 모두 나와 별로 교제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4. 잠재의식 중에 자신을 수련생 위에 놓으면서 늘 “내”가 그들을 일깨워주고 있고, 일어나게 하며, 제고되게 하는 등등이다. 예를 들어 “내”가 그들로 하여금 법 공부와 법을 외우는 중요성을 알게 하였고, “내”가 그들로 하여금 어떻게 안으로 찾아야하는지 알게 하였으며, 무엇이 착실하게 수련하는 것인지 알게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언행 중에서도 나타나는데 “이 지역, 이 사람들은 내가 어찌 어찌하였기에 어떠했지, 만약 내가 없었다면…… “라고 말한다.

수련생이 문제를 지적해줄 때는 또 늘 사람 마음으로 덮어 감추면서 해석한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야, 당신들은 상황을 몰라……”

사실 일부 수련생들이 사람 마음으로 “나”를 칭찬할 때가 바로 마땅히 자신을 경계해야 하고, 서로 간의 순정하지 못한 것들을 바로잡아야 할 때이다. 그럼에도 흔히 자기도 모른 채 잘난 척 한다.

5. 반대로, 일부 수련생이 자아를 실증하는 요소를 드러낼 때 또한, 제때에 깨닫거나 안으로 찾지 못하며, 어떤 때는 다른 수련생들을 따라 같이 말하는데, 심지어 어떤 수련생에 대해 사람 마음인 숭배와 의지하는 마음이 생긴다. 확실히 그가 우리를 도와서 제고했다고 생각하고, 그가 우리를 도와 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하며, 그가 우리로 하여금 철저히 알게 하고, 개변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 역시 모두 법에 있지 않는 인식과 표현으로서 역시 다른 형태의 “하늘의 공적을 자신의 공적으로 삼는 것”을 묵인하는 사람 마음과 관념이다. 수련생의 장점을 보았을 때 자신과 대조해 보는 것은 옳은 일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법으로 가늠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생의 어느 한 방면의 장점을 이용하여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부족점을 보게 함으로써 제고해 올라오라고 하는 것일 뿐이다.

어떠한 상황이든 일체는 모두 사부님과 법이 질서 있게 안배한 것으로, 진정하게 작용을 일으킨 것은 사부님과 법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상대방은 다만 수련중의 사람으로서 잘 수련하지 못한 점과 사람 마음이 있으므로, 이런 인식과 행동은 상대방의 사람 마음을 확대시킬 수 있고, 심지어 상대방을 위험의 변두리로 몰아넣을 수 있다.

6. 또 한 가지 똑똑히 인식해야 한다. 예를 들어 수련생이 자신을 실증할 때 이런 말을 한다. “내가 간 후 그들이 모두 변했다” 속으로 ‘어떻게 당신이 개변한 것이지? 이 앞전에 모모 수련생이 몇 번이나 갔고, 모모모 수련생도 그들을 위해 얼마나 많이 애썼으며 또한 그들 자신 역시 노력하고 견정한 것이지. 그리고 모두가 정체로 가지하고 발정념을 하였는데, 마치 떡 일곱 개 이야기처럼 어쩌면 당신이 바로 일곱 번째 떡처럼 당신의 마지막 한 가닥 힘을 빌려 잠시 배를 채웠을 뿐인데, 어찌 당신 혼자의 공로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전에 나는 이런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알게 되었다. 사실 이런 사유도 “하늘의 공적을 탐하는” 것으로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의 관념에서 빠져 뛰쳐나오지 못한 것이며, 모두다 진정으로 사부님과 법을 첫 자리에 배치하지 않은 것이다. 누구의 공로인지 얘기할 필요가 있는가? 여섯 번째 떡, 일곱 번째 떡을 말할 것도 없이, 모든 떡은 모두 사부님과 법이 주신 것으로 만약 사부님과 법이 없다면 떡은 반개도 없을 것이다. 심지어 생명조차 근본적으로 보장받을 수 없는데 무슨 “누구의 공로와 작용”을 얘기한단 말인가? 결국 일체는 모두 사부님과 대법의 위덕과 공로로서 우리가 아무리 잘 했다 하더라도 다만 대법에 동화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응당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며, 우리가 응당히 발휘해야 할 작용을 발휘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잘했으면 본분을 한 것이고, 잘 못하면 실책인 것이다!

어떤 때는 바로 우리의 사람 마음을 제거하지 못해 갇혀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수련생들과 정체에 일정한 교란과 간격을 조성했으며, 사부님께도 많은 시끄러움을 끼쳤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정말 너무 부끄러웠다. 오직 시간을 다그쳐 착실하게 수련해야지 “뽐내고 행세하는” 몇 글자는 감히 생각조차 못하겠다.

때문에 좀 더 겸손하고 착실하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잘 해야 하고, 스스로 자랑하거나 자만하는 사람 마음과 행위를 경계하고 바로잡아야 하며, 시시각각 사부님과 법을 첫 자리에 놓으면서 진정하게 경사경법(敬師敬法)하는 것만이 우리 수련인의 본분이라고 생각한다.

조그마한 깨달음으로서 층차의 제한이 있기에 적절하지 못한 점은 수련생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문장발표: 2014년 6월 1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6/10/29305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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