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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을 알렸기에 협박당하고 납치당했다’에서 생각한 것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오늘 밍후이 문장을 보다가 한 수련생이 자술한 박해를 당한 문장에서 ‘진상을 알렸기에 협박당하고 납치당했다’란 구절을 보고 나의 약간의 심득을 써내 여러분과 공동으로 교류하고 토론하려 한다.

‘진상을 알렸기에 협박당하고 납치당했다’란 이런 사유방식 및 문장구조를 우리는 사악의 박해를 폭로한 문장에서 비교적 자주 본다. 특히 몇 해 전에 사악의 박해를 폭로한 문장에 흔히 있었고 지금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문장에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 가족은 진상을 알렸기에 사악에게 납치당했다.”, “시아버지는 진상을 알렸기에 악경에게 납치당했다.”, “진상을 알렸기에 불법 노동교양을 당했다.”, “황루푸(黃汝府)는 광산구역에서 진상을 알려 처음으로 노동교양소에 불법 감금된 파룬궁수련생이다” 등등이다.

여기에서 수련생에게 일깨워 주고 싶다. 우리가 ‘진상을 알리는 것과 진상을 똑똑히 알리는 것’은 ‘박해당하는’ 원인이 아니다. 원인은 우리가 진상을 알릴 때의 심태 등 심성적인 원인이 박해를 초래한 것이다. 그러면 ‘진상을 알렸기에 협박당하고 납치당했다’ 이런 유의 사유에서 표현하는 인과 관계는 실제에 부합되지 않은 것이며 일종 부정확한 후천 관념이다. 그러면 우리는 마땅히 그것을 시정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이후의 모든 진상문장에서 이렇게 표현하지 말고 가장 좋기는 문장 구조를 바꿔야 한다. 예를 들면 ‘진상을 알렸기에 협박당하고 납치당했다’라고 쓰면 합당한가? 세인에게 주는 인상과 이해 역시 명확해야 하고 긍정적이어야 한다. 본래 진상을 알리는 것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다. 사람을 구하는 것은 정의로운 일이 아닌가? 그러면 누가 정의로운 일을 저지하면 그것은 박해가 아닌가? ‘진상을 알렸기에 협박당하고 납치당했다’ 식의 사유방식과 표현은 세인에게 부정확한 인도 — ‘진상을 알리면 박해를 당하니 당신들은 집에서 남몰래 연공하면 안 되는가? 왜 나와 진상을 알려 박해를 초래하는가?’란 관념이 쉽게 생기게 한다.

때문에 나는 평소 우리는 진상문장에서 매 한 구절에도 주의하며 정확하지 못한 속인관념에 이끌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땅히 정확한 인도를 가져와 우리 진상문장의 매 한마디, 매 한 단락, 매 편 문장이 모두 속인에게 직접 정념이 생기게 하면 좋다. 당연히 이 일체를 다 하려면 우리가 세 가지 일을 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일사일념을 중시하여 우리 자신을 수련할 것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가 평소 흔한 일사일념을 자세히 연구하면 그 중에서 많은 일사일념의 근원이 속인의 관념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 때문에 박해가 시작된 후 여러 해 동안 우리 수련인 및 우리가 박해를 폭로하는 문장에 빈번하게 ‘진상을 알렸기에 협박당하고 납치당했다’란 논조와 사유방식이 나타났겠는가? 그 원인을 따져보면 그것은 우리 수련인이 보편적으로 박해를 당해 그로 인해 두려운 마음이 장기적으로 존재하는 현상 아니겠는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가? 이 몇 해 동안 우리 많은 수련인은 진상을 알릴 때 박해를 당했기에 자신도 모르게 두려운 마음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두려운 마음의 작용 하에 자신도 모르게 체험 중에서 부정적인 교훈을 섭취하고 잠재의식 중에 자신도 모르게 일종 ‘진상을 알렸기에 협박당하고 납치당했다’란 고정된 사람의 관념이 나타났으며 그리하여 자신도 모르게 우리 진상문장에도 나타났다. 또한 이 몇 년 동안에 박해를 받은 수련생이 많고 아마 여러 수련생도 모두 자신도 모르게 박해를 받는 중에서 형성된 부정적인 관념이 진상문장으로 반영되어 나왔다. 때문에 우리 진상문장에 흔히 있는 이러한 한 가지의 논조가 형성됐다.

또 예를 하나 들겠다. 우리는 평소에 발생한 박해 소식을 들으면 일반적으로 수련생에게 “조심하세요!”라고 주의를 준다. 그러나 이 ‘조심!’을 자세히 생각하면 나는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 그것의 근원도 우리가 박해를 당하는 중에서 형성된 부정적인 관념이다. 때문에 우리는 ‘조심!’이라는 이 단어로 표현하는데 아마 잠재의식 중에 조심하지 않아 박해를 초래했고 조심했다면 박해를 피할 수 있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또 우리 이런 속인 관념을 갖고 주의를 주는 것도 다른 수련생의 속인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여러분 생각해보라. 다른 수련생이 우리에게 ‘조심!’하라고 일깨워 줄 때 보통 어떤 반응이 나오는가? 정념이 강한 수련생은 당연히 정념으로 대하고 사람 마음이 중한 수련생은 박해를 당할 때의 무서운 광경을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는 어느새 긴장감이 생길 것이며(사실 바로 당신의 속인 마음이 다른 사람의 두려운 마음을 이끌었다.) 정말 ‘매우 조심스러운 예방조치’(사실 사람의 방법으로 미지의 박해를 막는다)로 박해를 당하는 것을 방지하고 자발적인 정념으로 박해를 해체하지 않으면 이런 바르지 못한 심태가 정말 박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우리는 평소에 세인을 구도하는 문장에서 주의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일상교류에서 마땅히 우리 수련인 사유 중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미세한 문제의 뿌리를 속인의 관념으로 여겨야 한다. 법에서 우리는 수련인의 일사일념이 모두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조사정법하고 최대한 일체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평소 시시각각 수련 중에서 자신의 속인의 관념을 개변해야 하지 않겠는가? 일사일념 이러한 미세한 곳을 포함해 시시각각 자신의 속인 관념을 개변해야 한다. 속담에 ‘천 리 제방이 개미구멍에 무너진다’란 말이 있고 ‘아름드리나무도 털끝 같은 작은 싹에서 시작되고, 9층 높이 누각도 한줌의 쌓아놓은 흙으로부터 시작되며,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시작된다’란 말이 있다. 이것은 모두 무수하고 무량한 미세한 누적이 함께 형성한 사물의 거대한 변화를 설명한다. 때문에 나는 우리가 세 가지 일을 하는 가운데 끊임 없이 일사일념에서 속인의 관념을 제고하고 서로 일깨워 주는 것을 홀시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중생을 구도하는 효율을 개변할 수 있다.

문장발표: 2014년 4월 3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4/30/2906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