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하루는 공(公 공안) • 검(檢 검찰) • 법(法 법원) 분야에 근무하는 사람에게 전화로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나는 상대적으로 이성적인 한 직원을 만났다. 우리는 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비교적 진상을 잘 받아들였다.
그와 이야기를 다 끝낸 뒤 그는 이전에도 진상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며 상대방이 말할 기회를 주지 않더라고 했다. 그리고 그가 파룬궁(法輪功)수련생 박해에 참여했다고 단정 짓는 걸 보고 어이없었다며, 억울하고 심지어 분하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하고 교류하면서 진정으로 선의가 느껴졌고 진상도 알았다면서 마지막에 고맙다는 말까지 한 뒤에 통화를 마쳤다.
전화가 끝난 뒤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모두가 혼신의 힘으로 잠시도 쉬지 않고 중생을 구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늘 마음을 조용히 하고 자신이 한 이 일체의 최종 효과가 어떠한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진상을 알린지 여러 해가 되었는데, 진상을 알릴수록 정말이지 지극히 큰 지혜가 필요하며, 대단히 엄숙하게 대해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몇 년 동안 진상을 알리면서 나는 경청하는 법을 배웠다. 어떤 수련생은 속인이 우리를 이끌게 해서는 안 된다면서 우리가 주도적이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만은 않다고 본다. 나는 되도록이면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데(공검법 계통의 악인에게는 당연히 공손하게 하지 않는다) 비록 상대방이 어떤 말을 조금 거칠게 해도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당신과 말할 기회를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비록 당신과 관점이 다른 부분도 있지만, 당신의 말에서 저는 진심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대방도 흔히 온화하게 나온다. 이 말에는 직접적인 진상내용은 없지만 이렇게 말하는 자체가 상대방으로 하여금 파룬궁수련자의 이성과 선의를 보아내게 하는데, 이 또한 진상이 아닌가?
또 한 번, 한 속인은 우리의 진상 알리는 방식에 대해 약간 동의하지 않았다. 수련생은 듣고 나서 좀 안달이 나서 그 속인에게 말했다. “지금 국내에 박해가 매우 심각한데 우리의 진상 알리는 방식을 말하기 보다는 당신은 마땅히 현재 박해의 잔혹성이 어떠한지를 봐야 하지 않나요? 이렇게 왈가불가 하다 보면 쌍방은 마치 논쟁에 빠져든 것 같았다. 나도 유사한 정황에 부딪친 적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나는 먼저 조용히 경청한다. 이 과정 역시 자신의 내심을 평온하게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제출한 의견에 감사드리고, 당신의 솔직함에도 매우 감사드립니다. 제 생각에 당신의 본의는 우리가 진상을 더욱 명백하게, 더 잘 알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렇게 말하면 우리의 교류는 바로 순조롭게 진행된다. 이 몇 년 동안 진상을 알리면서 나는 내가 하는 매 한마디의 말이 모두 진상이라고 시시각각 자신에게 말한다. 진실될수록, 이성적일 수록 더욱 상대방을 감동시킨다. 우선 속인의 극단적인 심리를 온화하게 조절하면 우리는 진상을 알리기가 더욱 쉬워진다.
진상을 알릴 때 우리는 흔히 중심을 ‘알리는(講)’ 글자에 둔다. 비록 진상을 알릴 때 입으로 알리는 것도 아주 관건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우리가 중생 앞에 나타났을 때 우리가 중생에게 보여주는 일체가 모두 진상이다. 우리의 옷차림, 우리의 미소, 우리의 행동거지, 우리의 말투, 우리의 참을성, 우리의 구강 청결 심지어 우리의 헤어스타일도 포함된다. 모든 일체를 중생은 모두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매번 탈당센터에 갈 때 나는 되도록 가장 단정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가며 목욕과 구강청결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중생 앞에 섰을 때 나는 어떤 때는 미소를 지으면서 상대방의 말을 듣는다. 나의 표정에서 상대방은 우리의 정념과 선의를 감수할 수 있고, 아울러 상대방 마음속의 좋지 않은 물질을 용해시킬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교류과정에서 기회를 잘 포착하여 가장 관건적인 부분에서, 가장 적당한 시점에서 중생에게 그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진상을 알려주는데 이러면 효과가 아주 좋다. 중생이 우리의 탈당센터를 지나갈 때, 설사 급급히 지나가면서 우리가 무엇을 말하는지조차 듣지 못했다 해도 우리가 방출해 내는 순정한 에너지와 우리 탈당센터의 단정함과 상서로움, 그리고 매 대법제자의 양호한 풍격과 면모는 반드시 그들의 기억 속에 깊은 인상을 남길 것이다.
국내에서 석사학위 취득을 앞두고 한 친구가 자취방에 놀러 와서 교류하던 중, 그 친구는 다른 사람과 늘 파룬궁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던지 자신은 언제나 파룬궁이 좋은 것임을 믿는다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나를 통해서 대법제자는 일반인을 초월하는 선량함을 가진 것을 보았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내 주위에는 이런 친구나 친척이 아주 많은데, 나의 행동을 보았으므로 바깥에 가면 그렇게 말한다는 것이었다. 친척 중의 한 사람은 사람들을 만나기만 하면 파룬궁에 대해 좋은 점을 말했는데 지금은 아주 큰 복을 받았다.
해외에 여행 나온 많은 중국인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오가면서 많은 것은 알지는 못하더라도 그가 본 것과 받은 감수는 국내에 전달할 것이다. 국내에 돌아가면 우리가 그들에게 준 느낌을 숨김없이 친척 친구에게 말할 것이다. 즉, 한 사람에게 진상을 알릴 때는 그의 배후의 아주 많은 사람과 대응되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로 그를 구했다면 그는 자동적으로 대법의 아름다움을 전달할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더욱 이성적이고 지혜롭게 중생을 구도하는 모든 세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해외에 온지 어언 10년이 되어 가는데 1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중국인에게 진상을 알렸는지 이미 계산하기조차 어렵다. 부동한 사람에 대해서는 교류하는 방식과 내용도 모두 같지 않다. 오직 상대방이 내가 파룬궁 수련자라는 것을 아는 그 순간부터 보여주는 일체가 모두 진상이다. 유학생을 만나면 그들의 학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노인을 만나면 그들의 건강에 관심을 기울이며, 중년을 만나면 그들의 생계압박에 공감을 표했다. 최근 몇 년 간 나는 상대방이 당신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해서 감정적으로 가까워진 후 진상을 알리면 더욱 순조롭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부동한 사람에 대해서는 부동한 각도에서 진상을 알려주는 것을 배웠고, 부동한 속인의 부동한 상황에 따라 조금씩 첨가하거나 빼거나 하였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한 방면이고, 다른 공간에서 우리가 전달하는 바른 에너지, 우리가 진정으로 상대방을 위한 선의, 도리 있고 근거 있으며 다가서고 물러설 줄 아는 우리의 지혜와 이성은 모두 상대방을 깊이 감동시킨다. 그리하여 상대방을 구도하게 되고, 심지어 전달 매체가 되어 우리를 도와 진상을 전달해주며, 심지어 최종적으로는 인연이 되어 법도 얻게 된다.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다른 하나의 명확한 느낌은 바로 엄숙함이다. 내 생각에 아주 많은 경우 우리가 진상을 알린 효과가 긍정적이거나 아니면 부정적이다. 말하자면 수많은 상황에서 만약 우리가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않으면 부정적인 인상을 남기게 될 가능성도 많다. 때문에 우리는 정말로 자신의 일언일행, 일거일동에 매우 주의해야 한다.
한 생명을 청성(清醒)하게 만드는 게 그야말로 쉽지 않지만, 한 생명을 아래로 떨어뜨리는 것은 아주 쉬운 것임을 최근 몇 년간 느끼게 되었다. 특히 우리 중국대륙 사람들은 일체 요소가 모두 그들을 아래로 잡아당기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구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므로, 만약 우리의 행동거지에 문제가 나타나면 이 사람이 구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을 빼앗아 갈 수도 있다.
말이 좀 과장된 것 같지만 이는 내가 몇 년 동안 느낀 솔직한 심정이다. 때문에 나는 시시각각 자신의 정념을 유지하고, 각 방면에서 매우 바른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최선을 다해 끊임없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대법제자의 아름다운 일면을 보여주려 한다. 나는 이성적으로 지혜롭게 말하고, 엄숙하게 이 일체를 대해야만 진상 알림을 착실하게 잘 할 수 있으며, 더욱 많은 중생을 집으로 데리고 갈 수 있다고 믿는다.
문장발표: 2014년 4월 1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4/10/28983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