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우리는 이런 ‘능력’을 연마해야 한다

글/ 옌자오(燕趙) 지역 대법제자

[밍후이왕] 기회가 되어 옌자오(燕趙) 지역 일부 수련생 교류회에 여러 차례 참가했다. 그 과정에서 일부 수련 요소와 우리 모든 수련생에게서 드러난 일부 사람 마음을 느끼게 됐다. 이후 조용히 생각해보니 일부 문제의 근원이 보였기에 수련생들에게 말하려 하는데, 부족한 점은 제때에 법에서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내가 지금 경지에서 체득한 것을 말하자면, 우리 정체가 직면한 문제는 사실 중국대륙, 해외 및 각 수련 단체에서 늘 말하는 화제다. 중국대륙은 당문화(黨文化)의 영향을 받아 이 문제가 더욱 두드러질 수 있는데, 바로 ‘자신의 주견을 주장하고 자신을 실증하며 협력이 잘 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주견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일면은 그다지 명석하지 않을 수 있다. 나 개인을 놓고 말하면 전체가 협력하는 수련에서 곤두박질을 많이 하면서 초기에 마음 닦는 과정을 지나왔다. 다시 말하면 실제로 실천을 많이 했기 때문에 수련생들의 상태는 모두 작은 일(보잘 것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항목을 배치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수련생들의 상태를 중시하지 않았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반드시 진지하고 엄숙하게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체 협력이 잘 되지 않고 모두 자신을 수련하지 않으면 간격이 생길 수 있고 심각할 때는 두 패로 나눠져 서로 무너뜨리려 하는데 결국 사악의 박해를 불러 올 수 있다. 각지에 이런 교훈이 너무 많다. 협조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는 위험은 없었지만 놀랐던 사례가 여러 번 있었다. 지금 정샹싱(鄭祥星)을 구출하는 과정에서도 박해와 교란이 나타나지 않았는가?! 이렇게 되면 얼른 안으로 찾아 마음을 닦아야 한다. “안에서 찾는 이것은 법보(法寶)이다.”[1] 이것은 박해를 해체하고 수련 제고하는 것이며 사람을 구하는 근본적인 보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안으로 찾는 것은 가볍게 말해서 될 일이 아닌데, 여기에는 가슴 아프게 착실히 수련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마치 사부님께서 설법에서 말씀하신 ‘충(忠)’과 ‘의(義)’와 마찬가지로, 한 동안의 과정이 있어야 그 함의가 충실해지며 사람들이 ‘충과 의’를 말하면 무슨 뜻인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 정체 협조 방면에서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가? 사부님께서는 “진정한 제고는 버리는 것”[2]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하려면 사람의 것을 내려놓지 못하는, 자아를 집착하는 문제의 뿌리를 보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쉽게 표면적인 일, 주견, 방법이나 무슨 중요한 이치를 깨달았고 무슨 엄중한 문제를 발견했다는 등등을 지나치게 중하게 본다. 사실 수련에서 이런 표면적인 것을 중하게 여기면 오성이 좋지 않은 것인데 밍후이왕에서는 이런 사례를 몇 가지 실었다. 한 수련생은 사악한 선전 간판을 보고는 방법을 생각해 제거하려 했고 또 생각도 많이 했으며 행동하기 전 두려운 마음을 제거함에 가슴을 도려내는 과정을 겪기도 했다. 결국 정념이 주도가 돼 실행을 준비하려 했는데 현장에 가보니 사악한 선전 간판이 없어졌다.

나에게도 이런 사례가 있다. 내가 한 가지 일에 정말 마음을 들여 심성이 올라오자 하지도 않았는데 그 일이 이미 변화가 발생했고 완성됐다.

때문에 우리가 조사정법하고 세 가지 일을 잘 하려면 마음부터 닦아야 하는데 용량이 있어야 하고 이런 ‘능력’이 있어야 한다. 바로 수련생이나 어떤 사람의 부정적인 표현에 이끌려서는 안 되고, 모든 생명의 좋은 일면을 봐야 하며, 자신에게서 부정적인 사유가 나오면 바로 잡아 그것을 해체해야 한다. 밖으로 보는 것은 사람의 치명적인 약점이며 인품이 낮은 표현이기도 하다. 안으로 찾아 자신을 보고 닦아야만 신이 될 수 있다.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수련에서 몇 가지 ‘능력’은 ‘전례 없는’ 일이다. 예를 들면 진상을 알릴 때 어떤 대법제자는 몇 분 사이에 두 세 마디면 한 사람을 구하고 어떤 대법제자는 일념으로 악한 짓을 하는 나쁜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함으로써 그 사람이 악행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 구도 받게 할 수 있다. 이는 정말 특수한 역사 시기 수련의 특수한 능력이다.

하지만 이런 만질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심성 수련, 안으로 찾는 것’을 수련생들은 흔히 중시하지 않는다. 수련의 진정한 위대함은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그런 부분 – 마음에서 표현된다. 이런 것은 일사일념에 공을 들여야 한다. 정과 사, 선과 악, 좋은 것과 나쁜 것, 사람 생각인지 아니면 신의 생각인지 순간적으로 그것을 잡아내야 하며, 나쁜 일을 거꾸로 좋은 일로 볼 수 있는지, 당신을 해친 사람에게 감사할 수 있는지, 당신의 적을 사랑할 수 있는지 분명하게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법공부를 할 때 고요해질 수 있는 능력, 연공할 때 고요해 질 수 있는 능력,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능력만 중시할 뿐, 안으로 찾아 실제적으로 자신을 수련하는 능력에 대해서는 대부분 소홀히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사람이 신으로 향해 나아가는 통로다! 사실 수련생 사이에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거나 모순이 있는 것은 이런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겠는가?

끝으로 사부님의 설법 한 단락을 복습하면서 우리 서로 격려하자.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법제자가 어떠한 일을 할 때, 어려움이 있어 고려할 필요가 있을 때는 모두 자신 이 방면에서부터 찾아야 하며, 대법제자와 정법이 필요로 하는 환경상태에 순응해야 한다. 문제가 나타나면 자신이 법리와 비틀어진 것이다.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고, 이 비틀어진 것을 풀어주고 정리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식은 바로 어떤 일에 부딪히면, 앞으로 맞받아 내밀거나 앞으로 맞부딪치며 앞으로 쫓아가면서 해결하지 말고, 마음을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서서 해결하는 것이다. (박수) 일만 있으면 당신이 맞는가, 내가 맞는가 하면서, 이것은 당신의 문제이고 이것은 그의 문제이며, 내가 한 것은 어떠어떠하다고 하는데, 보기에는 마치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조금도 해결하지 못한다. 보기에는 아주 이지적이지만 사실 조금도 이지적이지 않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고 문제를 사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냉정하고 온화하게 이 모순 속에서 물러 나와 이 모순을 봐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해결할 수 있다. 어떠한 일에 부딪혀도 모두 이렇게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최소한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앞으로 맞받아 나간다면 해결하려고 할수록 더욱 해결하지 못한다. 사실 당신이 그 마음을 줄곧 내려놓지 못하면서 앞으로 맞부딪치며 기어이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를 가리려 한다면, 설령 자신에게 잘못이 있더라도 또 다른 사람의 잘못을 찾을 텐데, 그러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3]

부족한 점이 있으면 제때에 법에서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9-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2-2002년 미국필라델피아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7-미국수도법회 설법’

문장발표: 2014년 4월 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4/8/289736.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