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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음(忍)을 행할 수 없는 원인

글/ 허베이(河北)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밍후이왕 2014년 2월 4일의 ‘모순 중에서 업력의 전화과정을 직접 깨닫다’라는 문장을 보고 크게 깨우쳤다.

평소 나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부딪힌 좋거나 나쁜 일을 모두 인과응보라 여겼고, 선에는 선한, 악에는 악한 보답이 있으며 업력의 전화(轉化)로 빚어진 것으로 여겼다.

예를 들면, 며칠 전 상사와 업무에 관해 이야기할 때 나는 어떤 일에 대해 불평하면서 이 일은 불합리하고 저 일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으며, 말할 때 조급해하기까지 했다. 퇴근해 집에 돌아왔으나,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속이 불편했고 무언가 죄책감을 느꼈으며, 수구하지 못했음을 후회했다. 이때 수련생이 쓴 문장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것은 나 자신에게 업을 짓고 있는 게 아닌가? 덕을 남에게 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은 또 괴로워하고 있다. 그야말로 너무나 어리석다!

과거에 이런 상황이 나타났을 때를 생각해보았다. 남과 다툰 후에는 이겼든 졌든 마음이 괴로웠고 심지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이치를 지금에야 알게 되었다. 이때 마음도 안정되면서 전신이 금방 가벼워졌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轉法輪)’에서 “우리 대다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心性(씬씽) 마찰 중에서 업력을 전화하는데, 흔히 이 중에서 체현된다.”[1]라고 말씀하셨다. 내 주위 환경에 모순이 많았기에 정념이 부족할 때는 인정(人情) 속에 빠져 남과 심성 마찰이 끊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이 구절의 함의를 이해하게 되었다.

최근 며칠 동안 나는 또 심성 마찰에 부딪혔다. 직장에서 여러 부서의 협력이 필요한 업무가 있었는데, 상사는 우리 부서에서 협력과 최종보고를 책임지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동료들의 각종 반응을 보았다. 여러 가지 구실을 대면서 우리 부서의 문제를 들춰냈는데, 목적은 그들 부서의 사업 관리상의 누락을 숨기려는 것이었다. 여러 부서가 관련된 이 일에서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밖으로 책임을 미루면서 각자의 어려움을 강조했다. 이때 속인의 교활함, 이기적인 표현이 남김없이 드러났다. 전에는 이런 부서와 업무상 접촉할 일이 적었기에 만나면 모두 공손했지만, 이번에는 평소 태도와 판이했다. 업무를 추진하면서 사람 마음이 자주 나와 몇 번이고 ‘이에는 이’로 대하거나, 속인의 교활한 수단을 써서 남에게 미움도 받지 않으면서 그 속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내가 냉정해졌을 때 사부님의 법리가 머릿속에 떠올랐는데, 나는 기억을 더듬어 이 방면의 설법을 찾아냈으며, 사람 마음과 행위를 대법에 비춰 일일이 부정할 수 있었다. 요 며칠간 나는 매일 저녁 나의 참다운 수련 과정을 정리했는데, 대법에 비추어 어떤 집착심을 찾아냈고, 사람 마음을 어떻게 버렸으며, 법리로 자신을 어떻게 바로잡고 정념을 유지했는지가 주된 내용이었다.

나는 이에는 이로 대하지 말아야 함을 인식했다. 그것은 사람의 방법이며 수련인은 사람과 같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누구에게나 진실하게 대해야 하고, 이해와 양해, 관용으로 대해야 하며, 누명이나 억울함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업무는 성실하게 책임져야 한다. 또한 나는 일념을 확고히 했다. 상대방이 진심으로, 솔직하고 성실하게 교류하게 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을 거절하지 말며, 힘든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사람 마음이 계속 올라오면 “참음(忍)은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관건이다.”[2]라고 하신 사부님의 말씀을 생각했다. 참음(忍)은 사람 마음을 억제할 수 있고, 참아야만 냉정하게 사고할 수 있으며, 안으로 찾음으로써 교란을 배제할 수 있다.

며칠 동안 심성이 제고되고 몸이 정화되며 마음도 안정되고 있었으며, 업무도 순조롭게 추진되었다.

나는 참답게 수련하면서, 내가 참아야 할 일에 부닥쳐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을 때 일이 도리어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곤란이 금방 해결되었으며, 주위 환경도 느슨해졌음을 발견했다. 참음(忍)을 행하지 못했을 때는 남에게 대들었고, 남이 한마디 하면 나는 여러 마디로 반박하면서 남의 의견을 부정하고 남의 기분을 헤아리지 않아 분위기를 긴장되게 했다. 이럴 때면 자신이 수련인임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속인의 상태로 돌아가곤 했다. 원래는 심성을 제고할 좋은 기회였지만, 이러다 보니 심성이 제고되기는커녕 반대로 업을 빚게 되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정말 부끄럽다. 사부님께서는 법을 명백하게 말씀하셨으며 제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셨지만, 나는 심성관(心性關)이 왔을 때 상태가 좋았다 나빴다 하면서 잘 넘기지 못했다. 나는 내가 참음(忍)을 행하지 못한 원인은 늘 마음의 평형을 이루지 못하고 질투하고 원망하여 쟁투심을 일으켰기 때문임을 발견했다. 오늘 이 질투심, 원망하는 마음을 폭로하고 버렸다. 사부님께서 “선자(善者)는 늘 자비심이 있어, 원망도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3]라고 말씀하신 법을 실천할 것이다.

이상은 나의 현 단계에서의 인식이니, 맞지 않는 곳이 있다면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무엇이 참음인가’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경지’

문장발표: 2014년 4월 1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4/10/289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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