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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는 나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말이다

글/후난 대법제자

[밍후이왕]

자비하고 위대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올해 나는 71세고 1996년 12월에 파룬따파를 얻었다.

구사일생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내가 생후 6개월 됐을 때 이상한 병에 걸렸는데 하루 반 동안 숨져 있었다. 온몸은 자색이었지만 가슴에 아직 체온이 좀 남아 있어 매장하지는 않고 한의사 한 분을 불러 나를 보였다. 그 한의사는 약 반쪽을 주고 갔고 어머니는 그 반쪽 약을 손바닥에 놓고 타액으로 비벼서 내 입에 넣으니 내가 살아났다고 했다. 이후로도 자잘한 병을 끊임없이 앓았으며 큰 병에도 자주 걸렸다. 무슨 압축성 황색간 위축, 비장 축소, 내외 류머티즘, 심한 위장병 등으로 크고 작은 병원, 떠돌이 의사, 민간요법, 비방(秘方), 신에 소원을 빌기도 하는 등 모든 방법을 다 써봤고 50여 년 약을 먹었지만 여전히 치료하지 못했다. 집안은 내 병치료 때문에 빚이 산더미처럼 되었다. 나는 우리 지역에서 약을 떠날 수 없는 환자로 이름난 사람이었고 별명이 ‘원장’이었다.

그때는 온몸이 아파서 견딜 수 없었고 아프지 않은 곳이 한 곳도 없었으며 머리카락도 다 빠지고 몇 올 남지 않아 이십여 세에 불과한데도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 6, 70세 나이라고 말하는 걸 듣고는 서러워서 크게 울기도 했다.

1996년 12월 19일은 평생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그날 운 좋게 우주대법을 얻고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의 길에 들어섰으며 또 운 좋게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됐다. 나는 외지에 살고 있는 언니의 집에서 법을 얻었다. 그날 언니는 고향에 한 달 가 있어야 하는데 나보고 집을 좀 봐달라고 했다. 12월 16일 내가 언니 집에 도착하자 언니는 나에게 파룬궁(法輪功)을 연마하라고 권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속으로 ‘누가 날 제자로 삼겠는가?’라고 생각했다. 이전에 어떤 공법을 배우고자 갔으나 나의 신체를 보더니 거절했는데 이는 나에 대한 치명적인 타격이었고 그 후로 기공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언니는 18일 떠나기 전에 “대법은 인연을 중시한다. 인연이 있다면 가서 배워라.”고 말하고는 고향으로 떠났다. 그날 저녁에 꿈을 꿨는데 꿈에서 ‘대법’이란 두 글자를 봤고, 깨어났는데도 눈앞에서 번쩍였다. 속으로 ‘내가 정말 대법과 인연이 있는가?’하고 생각했다. 아침 식사 후 한 동향인이 왔는데 그는 내게 파룬따파는 좋고 병을 없애고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데 신기한 효과가 있다고 홍법(洪法)했다. 그리하여 어제 저녁 꿈을 꿨는데 꿈에서 ‘대법’이란 글자를 봤다고 말했더니 그는 “아이구, 인연이 정말 좋네요.”라고 하고는 즉시 집으로 뛰어가 내게 그 귀한 ‘전법륜(轉法輪)’을 가져다줬다. 19일 당일 책을 봤는데 많은 글을 이해할 수 없어서20일에는 수련생과 함께 연공장으로 갔다. 매우 큰 식당이었고 많은 사람이 연공하고 있었다. 그날부터 나는 매일 수련생과 단체로 법공부하고 연공했다. 모르는 글이 있으면 수련생에게 물었고 수련생들은 내게 글을 가르쳐줬으며 5장 공법도 가르쳐줬다. 나는 50년 동안 많은 병에 시달렸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오랫동안 치료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병이 짧은 한 달 사이에 사라졌다. 이때서야 진정으로 사람이 병이 없는 상태를 체험하게 됐다. 온몸이 가벼워졌고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언니는 28일 후 집으로 돌아왔는데 택시가 문 앞에 도착하자 언니를 마중 나갔다. 언니가 차에서 내리지도 않았는데 나를 보더니 “파룬궁을 연마했냐?”라고 물었다. 나는 “어떻게 알았지?”라고 하자 언니는 “걷는 것을 보니 앞으로 뛰는 것 같고 안색도 좋아진 것을 보고 알았지.”라고 했다. 한 달 후에 나는 귀한 ‘전법륜’, 사부님의 법상, 사부님의 다롄 설법 녹화, 녹음테이프, 사부님의 공법비디오를 가지고 가슴에는 작은 파룬배지를 달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20여년 함께 지냈던 아는 사람을 만났다. 그녀에게 인사했는데 그녀는 “당신 누구세요?”라고 했다. 나는 “저를 못 알아보세요. 후이잉(慧英)이에요.”라고 했다. 그녀는 “언니 집에서 무슨 신기한 약을 먹었기에 사람이 변했죠,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어요.”라고 했다. 나는 가슴에 단 작은 파룬배지를 가리키면서 “파룬궁을 연마했어요.”라고 하자 그녀는 ”파룬궁이 그렇게 좋아요? 나도 연마해야겠어요.”라고 했다. 그날부터 나는 홍법(洪法)하기 시작했다.

원래 온몸에 병이 있어 나는 소문난 환자였는데 파룬궁을 연마해 한 달 만에 온몸의 병이 다 나았다고 하자 또 유명해졌다. 공법을 배우러 오는 사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왔는데 나는 하나하나 인내심을 갖고 가르쳐줬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연공했고 낮에는 하루 종일 신 수련생에게 공법을 가르치고 사부님의 다롄 설법 녹화를 틀어주었다. 또 자신의 월급으로 귀한 ‘전법륜’을 구매하여 무료로 신 수련생에게 주기도 했다. 그 때 더욱 많은 사람이 법을 얻고 더욱 많은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신체가 건강하길 바랐을 뿐이었다. 빠른 시일 내에 몇 십 명이 법을 얻게 되자 우리는 함께 단체로 법공부하며 연공했고 그들도 모두 혜택을 받았다. 입으로 직접 전했는데 단체 법공부하는 연공장이 하나하나 탄생하였고 파룬궁 수련생은 온 향진 마을 곳곳에 퍼졌다.

박해가 발생한 후 우리가 단체 법공부하고 연공하던 것이 법공부팀으로 바뀌게 됐는데 우리 법공부팀은 줄곧 지금까지도 견지해 오고 있으며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단체로 법공부하고 발정념하고 수련체득을 교류했다.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 중 수련생들은 비학비수(比學比修)하고 서로 부축하면서 오늘까지 걸어왔다. 수련생들과 나는 모두 정법시기의 대법제자가 됐다.

박해를 제지하다

1999년 ‘7.20’ 때 장(江)씨 불량배 집단은 파룬궁 수련자에 대해 역사상 전례가 없었던 한차례의 사악한 박해를 시작했고 사당은 모든 선전수단을 전력으로 발동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는데 TV방송에서는 날마다 반복적으로 요언을 날조하였고 온 하늘을 다 가릴 정도로 심했다. 대법을 실증하고 사부님의 청백을 되돌려드리고 대법을 보호하기 위해 걸어 나와 대법을 실증하는 것은 대법제자의 생과 사의 선택이었다.

파출소, 보위과(保衛科)의 사람들은 나에게 책을 내고 인명부를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나는 큰 소리로 “대법수련은 인명부가 없고 인명부가 없을 뿐만 아니라 나는 한 사람의 이름도 알지 못하며 누구나 배우고 싶으면 배우는 것이고 이름을 등록하지 않으며 배우고 싶지 않으면 가고 돈 한 푼도 받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나는 파출소, 지역사회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했다. 내가 신체가 좋다고 하자 그들도 승인했고 나는 그들보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기억하라고 알려줬다. 그들은 좋다면 집에서 연마하고 나가지 말라고 했다.

중공 요원은 빈번히 집에 와서 교란을 했기 때문에 사실 집에서 연마해도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대문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입니다’를 붙여놓았다. 그들이 찢으면 나는 또 붙였는데 나중에는 아예 페인트로 썼고 대법이 세계에 전해진 진상을 붙여놓았다. 한번은 악인이 우리 집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마음대로 드나들며 곳곳에서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 “내 집인데 이렇게 함부로 왔다가면서 사진을 찍어요? 당신들은 가요 안 가요? 고소해야겠어요. 법정에서 봅시다.”라고 했더니 악인들은 놀라서 달아났다.

1999년 11월과 2000년 12월 두 번에 걸쳐 베이징에 가서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고 파룬따파는 정법이라는 것을 실증하다가 두 번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두 번째 납치당했을 때 경찰은 우리를 기차역으로 끌고 가서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우리 둘을 수갑 하나에 채워놓았다. 나와 수련생은 베이징의 서(西) 기차역 앞에서 한 손은 서로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파룬따파는 정법이다’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함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 사부님의 청백을 돌려달라!”고 끊임없이 외쳤다. 소리는 하늘에 울려 퍼져 세인을 진감시켰으며 다른 공간의 사악을 청리했고 많은 세인들은 탄복하는 눈길로 우리를 바라봤는데 어떤 사람은 우리를 보고 웃고 어떤 사람은 머리를 끄덕였다.

소굴에 보내지 못한다

2003년 10월 1일 저녁 7시, 내가 길가에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스티커를 붙이고 있는데 한 무리 경찰들이 오더니 나를 현지 파출소로 끌고 갔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외쳤더니 한 경찰이 구둣발로 세게 나의 허리, 다리, 두 팔을 찼고 다른 한 경찰은 큰 바가지로 찬물을 내 머리에다 부었으며 라이터로 나의 머리카락을 태우며 “만약 휘발유라면 좋겠죠? 스스로 분신자살하게요.”라고 말했다. 이튿날 나는 현지 파출소로 끌려갔다. 경찰은 집을 수색한 후 또 나를 구치소로 납치해갔다. 가는 길 내내 나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 파룬따파는 정법입니다! 파룬따파는 천고 이래 가장 큰 억울함 당한 것입니다!’라고 외쳤다. 구치소에 붙잡혀왔어도 나는 매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외쳤다. 어느 날 구치소에서는 상급에서 검사하러 오니 나보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외치지 말고 진상도 알리지 말라고 특별히 당부했다. 그날 검사요원이 많이 왔고 그들은 우리 방 앞에 오지는 않았는데 내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외치자 많은 사람이 방문 앞으로 몰려왔다. 한 사람이 “이 사람은 여기에서 가장 완고하게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입니다.”라고 했다. 나는 이들에게 “’진선인(眞善忍)’을 믿고 좋은 사람이 되는데도 오히려 박해를 당하고 집안까지 망하게 하는데 어디에 이 같은 하늘의 이치가 있어요? 당신들에게 알려주겠소, 나는 포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파룬궁을 끝까지 연마할 것입니다.”라고 했고 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외쳤다.

구치소에서 2개월 수감된 후 경찰은 나를 집으로 보내준다고 거짓말했다. 한참 달려가다 “우리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라고 하자 경찰은 노동교양소에 보낸다고 했다. 그의 말이 나오자 하늘이 단번에 까맣게 되고 무너질 것 같았다. 나는 “하늘이 나를 위해 억울함을 호소할 것이며 좋은 사람을 박해하면 자연의 이치상 용납될 수 없다.”고 했다. 내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 파룬따파는 정법이다!’를 크게 외치자 경찰은 당황해 머리가 터질 것 같으니 외치지 말라고 했다. 잇따라 그들은 길을 잃었고 금방 길을 봤는데도 차를 출발시키면 또 길을 찾지 못했다. 경찰차가 어디로 가면 그곳의 날이 어두워졌다. 나는 “이것은 자연의 이치상 용납될 수 없는 것이고 하늘이 당신들을 보고 있는 것이며 당신들의 나쁜 점을 다 기록해놓았어요.”라고 했다. 겨우 노동교양소에 도착했는데 노동교양소에서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거절하자 경찰은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검사한 다음 여러 차례 노동교양소에 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노동교양소에서는 단호하게 받지 않는다고 거절했고 쪽지에 글을 써서 구치소로 되돌려 보냈다. 차가 아직 구치소에 도착하지 않았는데 구치소에서 전화가 오더니 거기에서도 받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 때 해는 졌고 경찰은 할 수 없어 현지 파출소로 나를 되돌려 보냈다.

가는 길 내내 나는 끊임없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 파룬따파는 정법이다!’를 크게 외쳤다. 한 경찰은 “좀 쉬면 안 되겠어요? 하루 종일 외쳤는데 안 힘드세요? 우리는 당신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워 힘들어 죽겠어요!”라고 했다. 그러자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주고 ‘선악유보’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늘의 이치고 대법제자가 하는 모든 일은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것임을 알려줬다.

박해 중 나는 사부님을 확고하게 믿고 대법을 확고하게 믿는다는 일념밖에 없었다. 사부님의 보호 하에 그날 저녁에 나는 사위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왔다.

세인을 많이 구하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나는 쓰촨(四川) 고향에 세 번, 남편 고향에 한 번 가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고 사람을 구했다. 쓰촨성에서 파룬궁을 매우 엄중하게 박해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내가 오는 것을 반가워하지 않았다. 내가 박해받았다는 소식이 고향에 전해졌기 때문에 그는 매우 두려워했다. 결과 내가 고향 집에 간 후 남동생이 나를 지키고 밖에 나가지 못하게 했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을 향해 ‘내가 고향으로 돌아와 사람을 구하려고 한 것인데 집에 있으면 어떻게 사람을 구하겠는가, 나가야 한다.’라고 발정념했다. 좀 있더니 남동생은 지키지 않고 산에 일하러 나갔다. 그래서 나는 즉시 가방을 메고 사람을 구하러 나갔다.

섣달 그믐날, 그날 나는 50여년 넘게 만나지 못한 오랜 동창을 만났는데 그는 나를 그의 집으로 초대했다. 그는 기뻐서 “몇 년 동안 자네 소식을 알아보려고 해도 찾을 수 없었고 벌써 죽었다고 소문도 몇 번 있었다. 그런데 지금 신체가 왜 이렇게 좋지?”라고 했다. 사부님께서 배치해주셔서 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온 가족을 구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파룬궁을 연마했다는 것을 알려주자 그는 두려워 즉시 문을 전부 닫아걸고 창문도 다 닫아걸었다. 나는 그에게 파룬궁은 좋은 것이고 톈안먼 분신자살사건은 날조한 것이며 가짜이니 믿지 말라고 했고 내가 연공하여 한 달 만에 온몸의 병이 다 나았고 10여 년 동안 약 한 알 먹지 않았다…… 라고 했다. 이튿날 나는 또 그의 집을 방문했다. 그들은 내가 신체가 이렇게 좋게 변했다는 자체도 ‘파룬따파하오’를 실증했다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에게 진상자료를 보여주고 삼퇴를 권했다. 그들 온 가족이 모두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장, 주임, 서기로서 모두 노 당원이었고 또 두 어린 손자가 소선대원이었는데 16명이 모두 탈퇴했다.

이번에 고향에 갔을 때 98명을 삼퇴시켰다. 2008년 또 고향에 갔는데 또 140명을 삼퇴시켰다. 2010년에는 130명 탈퇴시켰다. 윈난(雲南) 남편 고향에 갔을 때는 지방언어 때문에 언어가 잘 통하지 못해 48명만 탈퇴시켰다.

대면하고 진상을 알리는 외에 나는 장기적으로 진상편지를 보냈다. 수련생들이 편지봉투를 써주면 진상편지를 담은 것을 외지로 가져가 부쳤는데 얼마나 부쳤는지 기억할 수도 없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노심초사하시며 거듭 충고한다는 것을 생각하기만 하면 마음이 찡했다. 사람을 많이 구하고 사부님을 기쁘게 해드리겠다고 소원을 빌었다.

사부님의 은혜는 보답하기 어렵다

다른 사람이 내게 나이가 얼마냐고 물을 때마다 70여세라고 대답하면 다른 사람들은 믿지 않았고 언제나 많아야 5, 60세 되어 보인다고 했다. 내가 “나의 신체가 좋지 않을 20여세 당시에 남들은 나보고 6, 70세 되어 보인다고 했는데 그때부터 계산하면 지금은 백여 세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했다. 10여 년 수련의 길에서 사부님께서는 시시각각 저를 보호해주시고 지켜주시고 계셨다. 사부님이 안 계시고 대법이 없다면 이 목숨은 벌써 없어졌을 것이다. 악인에게 박해를 받을 때마다 나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 파룬따파는 정법이다!’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이것은 나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말이고 어디에 가든 모두 이렇게 세인에게 알려줬다.

내가 모든 언어를 다해 표현한다 해도 사부님의 무한한 은혜에 감사드리기 힘들 것이다. 오직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3가지 일을 잘하고 최후 수련의 길의 한걸음을 잘 걷고 많은 세인을 구해야 만이 사부님 은혜의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을 것이다.

자비하고 위대하신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께 감사드립니다!

허스(合十)

(밍후이왕 제10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3년 11월 1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10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15/281633.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3/11/30/14344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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