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사부님께선 우리에게 알려 주셨다. “제자들의 인식 차이로 말미암아, 일부 제자는 늘 한 극단에서 다른 한 극단으로 넘어간다. 매번 내가 쓴 법을 보고 과격하게 행동하여 또 새로운 문제를 초래한다. 내가 당신들에게 사람의 인식을 전변하라는 것은, 당신들에게 사람이 대법(大法)을 인식하는 이런 상태를 고수하라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지(理智)적이지 못하여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하라는 것도 아니며, 당신들에게 대법(大法)을 청성(淸醒)하게 인식하라는 것이다.”[1]
개인의 수련 중에서 늘 취중에 대한 문제를 고려했다. 아래에 약간의 개인 인식을 말해보려 한다.
나 주변의 수련생 중에서 많은 사람은 표현이 극단적이고 어떤 사람은 심지어 극단으로 가기를 좋아한다.
예를 들어 :
1. 세 가지 일하는데 어떤 사람은 진상을 적극적으로 알리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개인 수련에서 늘 자신의 관념에 부딪히면 폭발한다. 일이 발생한 후 비록 후회하지만, 다음에 이런 문제에 부딪히면 또 폭발한다. 어떤 사람은 늘 집에서 자신만을 수련하며 법공부하고 연공한다. 확실히 집에서 표현이 아주 좋다.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다.”[2] 하지만 오히려 걸어 나와 진상을 알리지는 않는다.
2. “우리는, 최대한도로 속인사회의 상태에 부합하여 수련해야 한다.”[3] 고 하셨다. 이에 관한 문제에 대해 사부님께서는 여러 설법에서 담론하셨다. 수련생은 이 문제에 대해 같지 않은 견해가 있는데 일부분 수련생은 이 말을 각 방면에서 속인의 상태에 부합돼야 한다고 이해하고 속인 중에서 과도하게 속인다운 것을 추구하며 속인이 대법제자가 잘못이 있다고 하는 말을 듣기 두려워한다. 예를 들면 집에서 그저 ‘좋은 사람’만 추구하며 모든 가사를 자신이 하는데 심지어 자식의 옷마저도 빨아주며 생활의 각 방면에서 거들어준다. 매일 자식의 아이를 돌보고 심지어 즐거워한다. 물론 이것이 잘못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최종결과는 자신이 수련에서 속인처럼 표현되고 이 때문에 정진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런 수련생은 대부분 정력을 가족을 돌보는 데 쓰다 보니 자기수련의 시간마저 빼앗겼기 때문이다. 만약 수련인이 늘 수련의 기점을 좋은 사람으로 되는 데 놓으면 안 된다. 수련의 최종 목표가 속인 중의 좋은 사람이 되는가? 이런 수련생은 가정에서 수련을 반대할 때 유력하게 이치를 똑바로 알리지 못하고 그저 참고만 있고 가정에서 정정당당하게 수련하는 환경을 개척하지 못했다.
어떤 수련생은 오히려 자신이 일단 수련하면 이것이 인생의 가장 큰일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면 백 분의 백 맞지만, 수련에서 표현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러므로 수련과정 중에서 단지 당신이 상상한 것과 같이 수련을 제외하고 이것이 주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또한, 다른 어떤 일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가정이 중요하지 않고 사회가 중요하지 않고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해선 안 된다. 그러한 관계를 잘 평형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당신이 걸어야 할 길이다. 나는 최대한도로 속인 사회의 형식에 부합하여 수련하라고 말했다.”[4] 어떤 수련생은 수련과 속인 사회 중에서의 수련문제를 바로 잡지 못한다. 집에서 가족에게 무관심하고 심지어 속인 가족 앞에서 마성의 일면이 표현된다. 가족이 받아들이든지 받아들이지 않든지 일상생활의 방면에서 일률로 무관심하고 단지 자신의 수련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가족에게 어떻게 진상을 알려도 저촉하게 된다. 결국에 가서는 자기 수련의 각 방면에서 번거로움을 조성한다. 속인은 단지 수련인의 외면적 표현만을 보기에 심성의 고험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당신 자신이 가장 큰 진상이다. 가족에게 늘 대법이 좋다고 말하면서 표현은 오히려 늘 잘하지 못한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어찌 당신을 믿을 수 있겠는가?
삼계는 ‘상생상극(相生相克)’[5], ‘물극필반(物極必反)’[6]의 이치의 제약을 받기에 물질은 모두 양면성이 있다. 만약 누가 일을 지나치게 하면 이런 이치의 강렬한 제약이 있게 된다. 설령 당신이 보기에 아주 좋은 일이라도 방법상에서 극단으로 가면 역효과를 얻는다. 설령 당신 자신의 어느 방면이 장점이라고 생각되더라도 극단으로 치달으면 또 단점으로 변한다. 오직 이지적으로 온화한 정서를 지니고 하는 일이어야만 비로소 자신이 만족한 결과에 도달하게 한다. 왜냐하면, 이지적이고 온화해야만 비로소 지혜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상은 개인의 옅은 견해이다. 만약 맞지 않는 곳이 있다면 수련생들께서 이지적으로 시정해 주시기를 바란다.
주:
[1]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취중’
[2]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시드니법회설법’
[3]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싱가포르법회설법’
[4]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7-2006년 캐나다법회설법’
[5]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누구를 위해 수련하는가’
[6]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문장발표: 2014년 3월 2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3/24/28908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