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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수련생, 나와 우리의 자료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자비하고 위대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벌써 제10회째의 법회이지만 지금까지 법회에 투고한 적이 없었다. 투고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무엇을 쓸까? 갑자기 생각났는데, 나는 거의 매일 우리의 자료-사부님의 경문, 명혜주간, 진상자료와 접촉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비록 양은 적고, 활동하는 범위는 작아서 (다른) 수련생들과 비교해 볼 때 보잘것없지만, 이 일은 내가 십여 년간 정법 노정을 지나오면서 정체에 협력하고 진상을 알린 주요항목이었이다. 그래서 이 일들을 말해보려고 한다.

1. 자료를 가져오고 보내주다

박해가 시작된 후 수련생들은 모두 제때에 밍후이왕 자료를 얻고 싶어 했다.그때 평소 아는 노년 수련생 몇 분이 있었는데 모두 나이가 비교적 연로하여 행동이 불편하였다. 나는 자발적으로 이 몇 분의 노년 수련생들에게 자료를 보내주는 역할을 담당하기로 했다. 매주 한 번씩 저녁 시간을 이용하여 40여 분에서 1시간 넘게 자전거를 타고 약속시간 약속지점으로 가서 자료를 집으로 운반해 오고, 그 자료를 약속한 시간대에 그들 노년 수련생들에게 전해주었다.

보기엔 보잘것없는 일 같았지만, 십여 년을 변함없이 그렇게 했다. 수련생이 변하고 수련생의 주소가 변하기도 했지만, 나의 역할은 변하지 않았다. 자료를 가져오고 보내주는 일을 꼬박 2010년에서 현재까지 계속해 왔다. 그렇게 몇 년 동안을 날씨나 집안일 혹은 개인적으로 자신에게 특별한 일이 있었다고 해도 단 한 번도 자료를 가져오고 보내주는 일을 중단하거나 지체한 적이 거의 없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기억이 있는데, 그날 폭우가 많이 내려 굴다리(地道橋)에 물이 차서 통과할 수 없게 되어, 우회하여 다른 굴다리로 갔으나 역시 같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물이 얕아 신발을 벗고 맨발로 자전거를 지고 건널 수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약속시간을 훨씬 넘긴 후라서 수련생을 만나지 못했다. 아마 좀 기다리다가 오지 않자 그대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 수련생의 집 주소를 잘 알지 못한 관계로 그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으며, 비를 무릅쓰고 이튿날 다시 갔다. 내게 자료를 챙겨주는 수련생은 4명이나 바뀌었는데 모두 6, 70세의 노인들로 집안 형편이 각기 달랐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이 일을 중시했고 매우 열심히 책임졌다. 생각하기만 해도 매우 감동스러웠다.

한번은 북풍이 휘몰아치는 매우 추운 밤이었는데, 내가 자료를 가지러 갔었을 때 70대 노년 수련생은 이미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품속에서자료 한 봉지를 꺼내 내게 전하고, 두어 마디 격려의 말을 하고는 캄캄한 어둠속에서 그의 집과 반대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는 잇따라 진상자료를 배포하러 가는 것이었다. 몹시 춥고 바람 부는 속의 그의 뒷모습을 보고 ‘대법제자는 위대하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저절로 일었다.

사부님의 신경문이 오면 나는 될수록 빨리 수련생 수중으로 보내줬는데 절대 내 손에서 하루를 지체하게 하지 않았다. 인간 세상의 하루는 하늘에서는 매우 긴 시간이므로, 하루 늦게 수련생이 경문을 받았을 때 손실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 한 번은 자료를 받아올 때 수련생이 신경문이 있다고 말해주지 않아 모른 채 집에 돌아와 펼쳐보고 신경문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한 수련생에게 보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즉시 일어나2시간 넘게 길을 달려 전해주었다. 그중 1시간 넘게 걸린 길은 금방 자료를 갖고 올 때 달려온 길로 되짚어 중복으로 그 길을 달려갔다. 또 한 번은 몇 명의 수련생 집을 연속해서 방문하여 전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한밤중이 넘었는데, 힘이 들어 침대에 누웠어도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두 번이나 자동차에 부딪혀 사고를 당한 적이 있는데, 모두 자료를 보내주고 돌아오는 늦은 밤길에서 자동차가 후진하는 바람에 부딪힌 사고였다.다행이 이 방면의 사상기초를 잘 닦았기 때문에 사부님의 보호를 받게 되었고, 결과 아무런 일도 없었다.

어떤 때는 매우 신기했다. 한번은 자료를 가져온 후 아직 배달처로 보내주기 전이었는데, 지금까지 그런 적이 없었는데 영문도 모른 채 두 번이나 넘어졌다. 급하게 식사를 하고 서두는 바람에 차분하게 생각을 하지 못했다. 출발 직전에야 자전거 타이어에 바람이 빠진 걸 발견하고 급하게 대충공기를 주입하고 끌고 갔는데, 얼마 가지 않아서 타이어가 말랑말랑해졌다.그러나 그런 것을 상관할 여지도 없이 속력을 내어 달리면서 약속한 시간 내에 도착하기만을 바랐다. 도착한 후에 타이어는 아직 공기주입상태가 괜찮은 걸 보고 또 다른 수련생 집에 자료를 전해주었는데, 그렇게 오가는 시간은 2시간이 넘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아직도 타이어는 공기주입상태로있었다. 이튿날 아침에 보니 타이어는 주입된 공기가 하나도 없는 걸 발견했다. 자전거를 끌고 자전거 수리점에 맡겼는데, 타이어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몇 년 동안 자료를 가져오고 보내주는 것을 즐기며 피곤한 줄 몰랐다. 좀 번거롭고 힘들었어도 괜찮았다. 의의가 중대하기 때문에! 물론 심성을 연마할 때도 있었다. 예를 들어 2, 30리 길을 걸어서 약속시간에 맞춰 수련생 집에 갔으나, 그 집에 사람이 없을 때는 마음이 불쾌하기도 했고, 어떤 수련생은 장기적으로 정진하지 않아 자료를 보내줄 때마다 교류했는데도 오랫동안변화가 없어 괴로워하기도 했으며, 어떤 수련생은 안전에 주의하지 않아 여러 번 말해줬어도 여전히 제멋대로라 화가 치밀어 어떤 때는 그녀에게 자료를 보내주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진 적도 있었다. 밍후이왕에 자료점 안전에 관한 많은 문장이 그렇게 보도됐는데도 어떤 수련생은 마음에 두지 않아 내가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 외 많은 등등의 일과 마음이 있었다. 매번 사상에 파동이 생길 때 사부님께서 포기하라고 하시지 않는 한 난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매번 바로 잡고 계속 유쾌하게 막힘이 없이 자료를 보내줬고, 수련생들이 정체 제고하고 정체 협조하는 것을 보장하게 했다.

2. 진상자료를 배포하다

세인에게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것도 지금까지 줄곧 견지해왔다. 초기 두려움이 매우 많았다. 기억하건대, 처음 자료를 배포했을 때 완성품이 없어서 손으로 써서 작성한 10여 개를 가방에 넣고 배포하려고 거리에 나갔다. 자전거 바구니에 넣으려고 주위를 살펴보니 지키는 사람이 있어서 넣지 못했는데, 이렇게 1시간 넘게 돌아다녔으나 단 한 장도 배포하지 못했다.

더욱 우스운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저녁에 자전거를 타고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한 PC방을 지나갈 때 신속히 바구니 안에 있는 가방에서 ‘진상자료’한 개를 꺼내 문 앞에 세워 논 자전거 바구니에 던져 넣었다. 그런데 얼른 그곳을 지나간 후 방금 던져 넣은 자료에 대한 손의 감각이 이상하다고 느껴져서 확인해 보니, 금방 받은 월급을 진상자료로 배포했던 것이었다. 1,000위안(약 17만 원)을 종이로 포장했는데 진상자료의 크기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나는 즉시 돌아가 가져왔다.

가장 부끄러웠던 일은, 한 번은 새로 들어선 한 주택단지 정문 입구까지 왔으나, 좀 주저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도 들어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하기로 했다. 경비원이 경비실에서 TV를 보고 있는 것을 보고 직접 걸어 들어갔는데 뜻밖에 이 경비원은 나를 의심하여 손전등을 들고 따라왔다. 이 주택단지는 1개 동이어서 끝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경비원은 즉시 손전등으로 나를 비추며 누구냐고 물었다. 가짜 성함을 하나 말했더니 그런 사람이 없다고 했다. 더 거짓말을 할 줄 몰라 그에게 한바탕 훈계를 받았다.

가장 창피했던 경험도 있다. 한 번은 한 주택단지 문 앞의 전봇대에 스티커를 붙였는데 마침 경비원에게 들켰다. 그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내가 무엇을 붙였는가를 보았다. 나는 당황해서 급한 발걸음으로 길을 건너 후다닥 뛰어서 달아났는데, 감히 뒤도 돌아보지도 못했으며 골목을 돌아 나무숲 뒤에 숨었다. 당시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정정당당한 한 대법제자가 어찌 이런 망측한 꼬락서니가 됐느냐. 정말로 수련인으로서 망신스러웠다.

위험천만이었지만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적도 있다. 2008년 올림픽 기간에 온 거리에는 경찰차가 순회하였고, 사복경찰관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한번은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한 병원 문 앞을 지나가는데, 나의 바지 주머니의 지갑이 불룩해서인지, 아니면 자료를 배포하는 모습이 그들에게 발각됐는지 경찰관이 나를 의심했다. 그들은 사람이 많은 곳에서 나를 검문하기가 번거롭다고 생각해서 경찰차를 2, 30미터 밖으로 몰고 가서 통행인이 한적한 작은 도롯가에서 나를 기다렸다. 그들의 의도를 알아차린 나는 즉시 정거장 표지 뒤에 숨고 앞으로 가지 않았다. 그들은 한참 기다리다가 내가 보이지 않자 할 수 없어 차를 몰고 가버렸다.

물론 진상자료를 배포하면서 가슴이 아픈 때도 있었다. 한번은 내가 금방 배포한 자료를 세인이 보지도 않은 채 길가 나무 아래로 집어던져 지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정말로 큰 자극을 받았다. 즉시 안을 향해 찾아보긴 했지만, 세인이 더욱 가련해 보였다.

이 몇 년 동안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중 찬바람 속에서 대법을 외우면 몸이 바로 따뜻해지고, 큰 눈이 왔을 때 넘어지고 또 넘어지면서 앞으로 걸어갔으며, 큰비가 내려 주택단지에 들어가기가 어려웠으나 그래도 들어갔고, 무더운 날씨에 높은 빌딩계단을 올라갈 때 온몸이 땀으로 푹 젖어 엉망의 모습이 된 적이 있고, 마을에서 배포하다가 사나운 개를 만나 몹시 어려운 상황을 맞은 적도 있고, 또 어떤 주민이 도둑으로 의심하며 쳐다보는 그 눈빛은정말로 사람을 괴롭게 만들었다. 이 몇 년 동안 대략 100여 개 주택단지에 들어가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비록 수량은 많지 않지만 나는 전력을 다했고, 매개 자료를 진지하게 대하며 여태껏 무어라고 부연하지 않았다. 그의 진귀함을 알기 때문이다.

3. 진상자료를 만들다

박해 초기 거짓말에 기만된 속인을 보고 정말로 조급했다! 절박해서 세인에게 파룬궁(法輪功) 진상을 알려주고 싶었으나, 당시 진상자료 내원이 없었기 때문에 시를 쓰고 진상을 써넣으려고 결정했다. 연속해서 몇 편의 시를 써서 종이에 베껴 쓴 다음 퇴근 시간을 이용하여 배포했다. 후에 수련생이 복사한 정규적인 진상자료를 보내와서 수련생이 복사한 진상자료를 배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매주 20여 개밖에 되지 않아, 대량적으로 배포하려는 나의 소원에 도달할 수 없었다.

아마 2004년경이었다. 나는 ‘명혜주간’의 한 편의 체득문장에서 소개한 기종에 따라 렉스마크(Lexmark) 복합기 한 대를 샀다. 매주 진상자료를 가져와 발췌해서 복사했다. 비록 컬러 잉크젯 프린터이었지만 채색복사를 할 수 없었으며 복사한 효과가 좋지 않았다. 복사한 후 색연필로 색깔을 덧칠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렇게 하면 효과가 좀 좋았다. 오전 내내 조마조마해하면서 제작을 했어도 많아야 10개 소책자밖에 만들 수가 없었다. 이런 복사기의 소모품은 가격이 높은데 30ml 작은 한 병에 잉크를 채워 넣어도 30위안(약 5,200원)이 들어야 했다. 후에 잘 말해서 55위안(약 9,600원)에 두 병을 살 수 있었고, 후에 경험이 있게 되어 10위안(약 1,700원)에 한 병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카트리지는 더욱 비싸서 한 통에 200여 위안(약 34,000원)이었는데 몇 번 채워 넣지 않아 망가졌다. 상인이 이 상표를 독점으로 대리점 경영을 해서 소모품 구매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두려움도 있었고 또 번거롭다는 이해로 직접 수련생을 찾아 교류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적고, 느리고, 품질이 좋지 않으며, 비용이 많이 들어갔는데, 이런 식의 자료제작은 2010년까기 계속 지속해왔다. ‘명혜주간’에 발표된, 수련생이 진상자료를 만들려면 꼭 높은 표준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교류 문장을 본 후, 절대로 이런 좋지 않은 품질의 자료를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나도 인터넷에 접속하여 품질 좋은 진상자료를 만들겠다는 단호한 결단을 내렸다.

한동안의 시간을 거쳐 드디어 한 수련생을 만났는데 그가 나를 도와 컴퓨터와 프린터를 사고 설치해줬다. 오래된 소원이 실현됐다. 드디어 작은 꽃이 필 수 있었는데, 몇십 명의 수련생에게 자료를 제공해주기 시작했다. 자료를 만들 때 가장 큰 감동은 수련생의 사심 없는 도움이었다. 이 기간에 컴퓨터, 프린터가 몇 번이나 고장이 나서 아무리 애를 써도 되지 않고 어찌할 바를 몰라 심지어 통곡한 적도 몇 번 있었다. 나는 남에게 부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기계에 고장이 생기면 부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매번 부탁할 때마다 협조인과 기술 수련생은 모두 사심 없이 도와줬다. 정말로그들께 감사한다.

그리고 몇 년 전에 어리석게 굽을 길을 걸었고, 그런 혼자서 하고 안전을 보장하려는 사람의 생각이, 사람을 구하는 시간을 얼마나 낭비했는지 모른다.사람을 구하는 효과도 아마 좋지 않았을 것이라고 깊게 깨달았다. 교훈은 침통했다. 자료를 만들 때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불량품을 출력하는 것이었는데 그 순간은 정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심정이었다. 매번 불량품을 폐기할 때 마음속으로 미안하다고 말하며 그들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기억하라고 했다. 가장 조마조마했던 것은 프린터에 고장이 나서 이상한 소리를 내며 프린터가 연기 속에 휩싸여 막 불이 날 것 같았던 상황이었다. 어떤 때 프린터가 너무 힘들면 파업을 시작하지만 멈출 수 없어서 그가 힘들어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도 계속 일하라고 그를 격려해주고 그를 가지해줬다.

올해이래 밍후이왕은 ‘소책자’를 ‘대책자(大冊子)’로 바꾸고 품질에 대한 요구도 더욱 높았으며, 하는 일의 양도 커졌으나 아무리 힘들어도 즐거웠다. 진상을 알리는 것이 새로운 단계에 이르렀고, 아름다운 표지와 대량의 정보로 변했기 때문에 속인은 잠시도 손에서 놓지 않을 것이다. 매주 나는 더욱 훌륭한 ‘대책자’가 있기를 바라고 있다. 진상자료를 만드는 중 마음가짐이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체득했다. 두려움, 걱정, 긴장, 조급해서는 안 되고 심지어 조금 기뻐하는 생각이 있어도 안 되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효과가 더욱 좋다는 것을 알았다. 만약 사람을 구하는 자비로움을 연마해낼 수 있다면 물론 더욱 좋은 것이다. 마지막에 나의 컴퓨터, 프린터에 대해 더 말하겠다. 이 3년 동안 잇따라 3개 프린터를 사용했는데 그들은 정말로 고생했고 늘 과부하로 돌았다. 나는 정말로 그들에게 매우 감사한다.

몇 년 수련해왔는데 장렬한 일은 없었고 다만 가장 말단의 매우 평범한 대법제자였다. 깨달음이 좋지 않아 제고가 매우 느리고 하는 일도 부족이 많았다. 이상 조금 한 일만을 사부님께 보고 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허스(合十)

(밍후이왕 제10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3년 11월 1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10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14/281656.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3/12/3/1434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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