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허베이 농촌의 한 노인 대법제자인데 올해에 68세고 대법을 16년 수련했다. 최근 수련의 길에서 겪은 일, 여러가지 사람의 마음을 없앤 수련체득을 써내겠다. 정확하지 않는 곳은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관을 넘기면서 두려움을 없애다
나는 어릴 적부터 담이 작기로 유명했고 뭐든 다 두려워했다. 나이는 많아졌지만 담은 커지지 않았고 주견이 없고 의뢰심이 강했다. 영감 수련생이 사악의 박해를 받아 병업형식으로 세상을 떠난 후 집에 나 밖에 없었고 자식들이 모두 외지에 있었으므로 담이 작은 성격은 내 수련길에서의 큰 난관으로 됐다.
장례식을 치른 후 자식 및 친척들이 다 가자 저녁에 무서워 혼자서 잘 수 없어 시내 한 친척 집에서 묵었다. 저녁에 거기로 갔고 아침 일찍이 집으로 돌아왔다. 최초 며칠은 오후 해가 서쪽으로 지기만 하면 집에 있지 못했고 가방을 들고 나섰다.
이렇게 한동안 견지하다가 이것은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다고 생각했다.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인데 사부님의 설법을 매일 배우기만 하고 해내지 못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일마다 대조하여 해 내어야 수련이로다”[1]. 이 두려워하는 마음은 언제든 없애야 하고 늦게 없애는 것보다 일찍 없애는 것이 낫다. 이렇게 생각하고 친척 집에서 한달 묵고 다시는 가지 않고 혼자 집에 있기로 결정했다. 날이 어두워지자마자 대문을 잠그고 정원, 방안의 등불을 전부 켜 놓았다. 저녁 식사 후 5장 공법을 다 한 후 사부님의 설법을 듣기 시작했고 밤늦게까지 듣고서야 잠 들었다.
우리 집이 외딴 곳에 있기에 서쪽에만 이웃이 살고 있었는데 저녁에 자주 돌아오지 않았다. 저녁은 쥐죽은 듯 조용했고 오직 그 집의 강아지가 가끔 한번 짖었다. 정원에서 조금만 소리가 나도 긴장해 들었고 들을수록 무엇이 있는 것 같아 매우 두려웠다. 밤이 깊어지자 더욱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첫날밤에 사부님의 설법을 들으면서 잠들었다.(이렇게 하면 경사경법(敬師敬法)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당시 정황 하에 용서해달라고 사부님께 빌었다) 깨어나니 이미 제5강 설법이었다. 첫날밤을 이렇게 넘겼다. 아무리 두려워도 남의 집에 가서 묵지 않고 꼭 이 관을 넘기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겠다고 결심했다.
그리하여 나는 법공부를 많이 했고 발정념을 많이 했으며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는 설법도 외웠다. “담이 작은 것은 역시 이 우주 중의 그런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에 당신으로 하여금 두렵게 하는 바 그것을 바로 두려움이라 한다. 당신이 두려워할수록 그것은 더 작용한다. 당신이 의지로써 극복해야 하는바 이것은 당신의 의지 문제이다. 또 수련 중에서 돌파해내야 한다.”[2]. “두려움이 없다면 당신을 두렵게 하는 요소도 존재하지 않는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탄연(坦然)하게 내려놓음으로써 도달하는 것이다.”[3]. 법공부를 착실하게 함에 따라 정념도 강해졌고 두려움도 갈수록 적어졌다. 이렇게 법공부 팀에 가서 법공부도 했고 오전에 예전대로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고 진상자료가 오면 배포했으며 직접 손으로 진상화폐를 썼으며 매개 항목을 지체하지 않았다.
지금 두려움이 없어져 저녁에 나갈 수 있었고 날이 어두울수록 바람이 크게 불수록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스티커도 붙였는데 보통 새벽 3, 4시에 나가서 붙였다.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자 진짜로 사부님이 바로 옆에 있는 것 같았다. 이튿날 아침 일찍 나가겠다고 생각하면 알람을 정하지 않아도 시간이 되면 일어났다. 거리의 전신주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손으로 씀)의 스티커를 붙였고 잘 보이고 쉽게 뜯기지 않는 곳에 붙였다. 성벽의 전신주가 좋은 위치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장기적으로 붙이기로 결정했다.
작년 섣달 28일,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조용히 문을 걸고 스티커를 들고 골목에 있는 전신주에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조리 붙여놓았다. 봐 놓았던 성벽의 두 전신주 옆에 올라갈 계단이 있었다. 첫 번째 전신주는 올라가기 쉬웠다. 다섯 걸음만 올라가고 붙였다. 두 번째는 좀 난이도가 있었다. 먼저 북쪽으로 세 걸음 올라가고 또 동쪽으로 다섯 걸음 올라가야 했는데 매우 가팔랐다. 세 걸음 올라가고 동쪽으로 돌릴 때 주저했다. 어릴 적부터 높은 곳에 감히 오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만두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 일찍 일어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붙이러 왔는데 어떻게 올라가지 않을 수 있겠느냐? 내일이 그믐날인데 꼭 올라가 붙여야겠다’라고 생각을 바꿨다. 나는 허리를 굽히고 손을 바닥에 대고 한 걸음 한 걸음 기어 올라갔다. 전신주 주위는 눈이 쌓여있어 나는 눈을 밟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붙이고 몸을 돌려 아래로 내려다보니 날은 아직 캄캄했다. 속으로 사부님의 보호가 있어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순조롭게 땅에 내려왔고 크게 숨을 내쉬었는데, 하려는 일을 해내자 매우 위로가 됐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의 글은 높은 곳에서 오랫동안 붙어있었다. 없어진 것을 보기만 하면 제때에 또 붙였다.
올해 ‘7.20’의 그날 새벽 3시에 일어나 50장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의 스티커를 들고 다 붙이고 돌아왔는데도 사람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두려움이 조금도 없자 온몸이 가벼워졌다.
압력에 직면하여
영감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친척에게 큰 영향을 줬고 진상을 알리는 난이도가 커졌으며 심지어 사람들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이 압력들은 가족을 잃어버린 고통을 훨씬 초과했다. 그러나 나는 낙심하지 않았고 사부님의 법에 아무런 동요도 생기지 않았다. 누가 무엇을 말하든 수련하려는 마음을 절대 동요하지 않을 것이고 해명할 수 있는 것은 해명해주고 해명할 수 없으면 더 변명하지 않았고, 해야 할 일을 계속 하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한번은 친정집에서 밥을 먹었는데 남동생이 그의 아들이 허리가 매우 아프기에 비싼 약을 먹었는데도 효과가 크지 않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를 읽고 성심이면 효과가 있을 것이고 연공하면 효과가 더욱 좋을 것이라고 했다. 남동생은 듣자마자 얼굴색이 변했다. 이것은 나보고 관을 넘으라고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마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밥그릇을 내려놓고 조용히 “자네는 형부가 병원에 가지 않아서 죽었다고 생각하는가? 그의 맏형도 그와 같은 유전병이 있었는데 많은 병원에 갔는데도 효과가 없어 50세에 세상을 떠났어. 그의 사촌 동생도 이 유전병 때문에 일찍 죽었고 네 형부의 나이를 초과하지 못했다. 그가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10년 전에 벌써 죽었을 것이다. 또 그의 큰 형부도 네 형부와 같은 증상이었는데 병원에서 7일간 혼미상태에 처해있다 깨어나지 못해 돌아가셨다. 삼촌집 매형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아직 모르지? 50세도 안됐는데 같은 증상으로 지방 병원에서 도시 큰 병원으로 옮겼고 3일 만에 4만 위안의 돈을 썼음에도 사람을 살려내지 못했잖니? 너의 팅(亭) 누나(삼촌 집의 큰 딸)도 ‘형부(내 영감을 가리킴)는 1년 넘게 견뎌냈는데 그들은 며칠 사이에 돌아가셨네.’라고 말하지 않았니. 넌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말하지 마라.”라고 하자 남동생은 말하지 않았고 얼굴색도 점차 정상을 회복했다.
나의 양가 친척은 당시 나와 영감이 대법을 수련한 후 병투성이었던 사람이 병이 없어 온몸이 가볍게 된 것을 보고 12명이 대법수련을 시작했다. 영감이 세상을 뜬 후 대다수는 대법을 확고하게 믿었고 수련을 견지했고 소수가 좀 파동이 생겼지만 법리상에서 교류하며 좋지 않는 영향을 없앴고 지금 여전히 수련하고 있다.
정을 없애다 – 처량감 제거
담이 작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차차 제거됐지만 고독하고 적적한 처량감은 가끔 나타났다. 평소 비록 떠들썩한 것을 좋아하지 않고 조용한 것을 좋아하지만 혼자서 길게 살다보면 사람의 마음도 방해할 수 있다. 이전에 출근하는 외에 집안일을 하고 밥을 짓고, 바느질만 했다. 가장 하기 싫었던 것은 시장에 나가 물건을 사는 것이었다. 지금 크고 작은 일, 관혼상제(冠婚喪祭), 인정의 왕래, 사람을 상대하고 물건을 사는 것을 전부 혼자서 해야 했고 바깥에 나가면 문을 걸어야 했고 자전거를 수리하고 공기를 넣는 것까지 신경을 써야 했다. 사상이 법에 있지 않을 때 가슴이 답답하고 이유 없는 처량감이 있다. 어떤 때 다른 사람의 한마디도 사람의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한번은 법공부 팀에 갔는데 우회해서 휴지를 사러갔는데 5분 늦었다. 도착하자 큰형님(수련생)은 “난 좋다. 휴지가 떨어지지 않았는데 며느리가 또 사주고 야채, 고기, 계란이 많아서 다 먹지도 못했는데 또 가져온다.”라고 했다. 그의 셋째 아들이 바로 옆에 있고 효도를 잘해 신경 쓸 일이 하나도 없었다.
여동생 수련생은 아이들에게 “너희들의 둘째 이모는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이 고비를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자주 나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이 모든 것은 이 마음을 겨냥해 온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이 한 법문은 직지인심(直指人心)으로서”[4]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사람의 마음이 나오면 법공부를 해서 차차 없애버렸다. 사부님께서 “이 복잡한 환경 중에서 어떻게 속인으로부터 걸어나올 수 있을 것인가. 속인이 추구하는 것, 속인이 얻으려 하는 것, 속인이 하고 말하며 행하는 것은, 당신으로 말하면, 그것은 모두 수련해서 제거해야할 것들이다.”[5]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암암리 사부님의 말씀대로 하겠다고 결심하고 시간을 다그쳐 법공부를 많이 했고 법을 외웠고 ‘홍음’, ‘홍음2’를 외웠으며 하루의 시간을 빈틈없이 배치했고 밥 먹는 시간을 이용해 션윈CD, 션윈 합창단의 콘서트를 한번 또 한번 봤고 어떤 내레이션(narration)을 듣고 감동을 받으면 외웠다. 예를 들어, ‘진정으로 용감한 자는 강권을 대면하고 진리를 지킨다. 하늘의 애고(愛顧)를 받아 그들은 고독하지 않다’. 매번 여기까지 봤을 때 눈물을 흘렸다. 가수가 노래한 ‘의무반고(義無反顧)’는 볼 때마다 감동을 받았고 한번은 감동되어 눈물을 끊임없이 흘렸다. “정념은 내가 신의 길을 걸음에 돌아보지 않게 한다네”[6], 귓가에 오랫동안 울렸고 사부님의 커다란 자비는 내가 용맹정진하도록 격려해주셨다.
세탁하고 집안일을 할 때 ‘진상 라디오’를 들었는데 어떤 것은 내용을 외우기도 했다. 이것은 대면 진상을 알리는데 기초를 닦아놓았다. 매일 법공부하는 시간(적어도 1강)을 보장했고 견지하여 연공하고 발정념을 했다. 발정념할 때 ‘자신 공간장 내의 방해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고 고독하고 적적하고 처량감을 주는 패배물질을 제거하며 이 마음을 꼭 없애겠다.’라는 일념을 더 추가했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이 소원이 있는 것을 보시고 좋지 않는 물질을 없애주셨다. 저도 모르게 처량함이 없어졌고 고독감이 없어졌으므로 적적할 시간도 없어졌다.
곤경에서 걸어나오고 이 마음을 없애자 기타 방해는 적어졌으므로 있는 힘을 다해 3가지 일을 잘 했다. 내가 한 수련생에게 “매일 할 일(법을 실증하는 일)이 매우 많습니다.”라고 말했다. 큰 시누이 수련생은 “당신은 전업 수련생이 다 되어갑니다”라고 말하자 나는 웃었다.
자료를 만드는 중 사람 마음을 없애다
사부님께서 자료점은 곳곳에 꽃이 피어야 한다고 요구하셨다. 밍후이 교류 문장에서 6, 70세 노인 수련생도 컴퓨터를 배우고 인터넷에 접속하고 자료를 프린트한다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로써 사명감, 책임감이 나를 침묵하지 않고 컴퓨터를 배우고 자료를 만들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해 봄에 심사숙고 한 후 기술을 아는 친척에게 비교적 좋은 컴퓨터, 레이저 프린터, 작은 USB를 사달라 하고, 광대역 인터넷도 설치해달라고 부탁했다. 준비가 다 되자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먼저 ‘0부터 시작하여 자료점을 만들다’의 안내책자를 구해 반복적으로 읽었다. 현대화의 이런 전자제품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사상에서 배척했고 배우지 않으려고 했다. 핸드폰도 잘 사용할 줄 몰랐다. 이런 상태도 사부님의 요구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이 지금 명백해졌다. 사부님께서 지식을 많이 배우고 기술을 많이 장악해야 만이 법을 실증하는 일을 잘 해낼 수 있다고 하셨다. 이번에 자료를 만들고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많이 구하기 위해 배우기 싫어도 배우겠다고 자신을 타일렀다.
컴퓨터를 배운다는 것은 정말로 영부터 시작하는 것이었다. 컴퓨터 켜기에서부터 컴퓨터 끄기까지 한 단계, 한 단계씩 배웠고 어떻게 하는가를 상세하게 공책에 40여개 적었다. 어떻게 인터넷에 접속하고 다운로드하고 프린트하는 것에 관해 비록 기록하긴 했으나 실제적으로 조작하면 여전히 난이도가 매우 컸고 자주 고장이 났고 조그마한 문제가 생겨도 어디를 만져야하는 지 몰랐다. 다른 사람(수련생을 포함)이 자료를 만든다는 것을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기술 문제에 관하여 다른 사람을 찾았고, 다만 그 친척의 큰 도움을 받았다. 2010년 5월 13일 첫번째 ‘명혜주보’를 만들어냈는데 매우 기뻤다.
그러나 이후의 길은 여전히 매우 어려웠다. 두려움이 많은 마음을 제거하자 자료를 배포하고 대면해 진상을 알릴 때 두려움이 없어졌지만, 자료를 만들면 이유 없이 벌벌 떨었고 두려웠다. 심성이 제고되지 못하자 번거로움도 많아졌고 기계도 자주 문제가 생겼다.
원래 부속품의 레이저프린터 토너가 없어지자 어떻게 할 줄을 몰라 나는 용기를 내고 발정념하면서 프린터를 들고 차를 타고 컴퓨터 가게에 갔다. 토너가 없어졌다고 하자 넣어줬다. 나는 어떻게 바깥으로 레이저프린터 토너를 꺼내는 것을 봤다. 토너를 다 넣고 점원이 안으로 넣을 때 어떻게 안으로 넣는가를 물었다. 점원은 “아주머니, 한번 해보세요, 이렇게 천천히 아래로 밀어넣고 ‘찰칵’하는 소리가 나면 됩니다.”라고 했다. 나는 두 번 넣어보고서야 어떻게 레이저프린터 토너를 꺼내고 넣는 것인지를 배워냈다.
매번 토너를 넣는 것도 두려움을 없애는 과정이었다. 먼저 발정념을 하고 소모품 가게 주위 환경 중 모든 방해를 제거하고 갔는데 매번 매우 순조로웠고 한번 넣고 돌아오면 마음이 상쾌해졌고 자료를 만드는데 보장이 있게 됐다.
한번은 겨울이었는데 출력해낸 진상 전단지의 그림이 연하고 희미해 효과가 좋지 않았다. 소모품 가게에 물어봤더니 레이저프린터 토너에 문제가 있다고 해 새로운 것으로 바꿨는데도 좋아지지 않았다. 그들은 아니면 프린터의 문제라고 했다. 속으로 ‘프린터는 새로 산 것이고 얼마 출력도 하지 않았는데 어찌 못쓰게 될 수 있지?’라고 생각하면서도 할 수 없어 또 프린터를 안고 택시를 타고 소모품 가게에 갔는데 들어가자 그들은 “프린터를 가져왔어요. 어떻게 왔어요?”라고 했다. 나는 택시를 타고 왔다고 했다. 그들이 의심하고 많이 물어볼까봐 적게 말했다. 테스트 해보자 문제가 없다고 해서 집으로 가져왔는데 여전히 효과가 좋지 않았다. 후에 또 수입 토너를 바꿔서야 똑똑해졌다. 말하기엔 간단하고 사소한 일이지만 나에 대해서는 한 번 또 한 번 두려움을 제거하는 시험이었다.
한번은 출력할 때 내용을 바꿔 다시 출력하자 기계가 움직이지 않았는데 또 어딜 만져야 할 줄 몰라 멈출 수밖에 없었다. 후에 친척이 컴퓨터와 프린터를 다 끄고 다시 시동하면 된다고 알려줬다. 보기엔 간단한 조작이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상세하게 또 기록해놓았다.
이렇게 조금씩 한걸음씩 배우고 기록하고 시험하면서 했다. 그러나 두려움이 여전히 있었기 때문에 자꾸 기계 소리가 커서 바깥에서 들릴까봐 걱정하여 언제나 창문을 꽁꽁 닫아걸고 밤이거나 아침 일찍 혹은 점심휴식 때 사람이 오지 않아 적합한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출력하곤 했다.
한번은 딸 수련생이 왔는데 오전부터 자료를 출력하기 시작했다. 날씨가 더워 딸은 창문을 닫지 말라고 했다. 나는 안절부절 못하며 마음이 불안했다. 주방에서 방에 들어와 보는데 딸이 “‘그들은 왜 이렇게 두려워하는가’란 큰 글자가 있는 주보를 왜 십여 장 출력했죠.”라고 했다. 내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하자 매우 부끄러워했다. “아마 내 마음이 안정하지 않고 놀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사부님의 점화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또 구세력에 비웃음을 당했구나, 언제 이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앴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그 주보는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다.
한번은 출력하기 전에 ‘명혜 정기간행물’이 저장되어 있는 USB의 플러그를 밀어낼 수 없어 컴퓨터와 연결하지 못해 마음이 조급하지만 해결할 수 없었다. 평소 이런 것들을 조심스레 사용했고 잘 아꼈는데 이번에 어찌 밀어낼 수 없느냐? 이때 수련생이 문장에서 기계에 고장이 생기면 먼저 안을 향해 찾고 바르게 찾으면 기계는 나아진다고 말한 것이 생각났다. 그리하여 먼저 마음을 안정시키고 진상자료를 만드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사악한 요소, 두려움, 조급해하는 마음을 없앤다고 발정념했다. 10분 발정념하고 다시 방에 들어가 USB의 플러그를 밀어내자 바로 나왔고 제시간에 수량대로 진상자료를 다 만들었다.
자료를 만드는 중 매우 심한 의뢰심이 있었고 혼자라서 언제나 고립무원이라고 생각했다. 수련생이 교류문장에서 부부 수련생의 합작 혹은 온 가족 수련생이 분공하고 합작한다고, 기계에 고장이 생기면 남편이 가서 수리하거나 아들이 기술을 장악하고 있다고 쓴 것을 보면 몹시 부러워했고 옆에 도와줄 사람이 있으면 마음이 얼마나 놓겠는가고 생각했다. 이 마음은 줄곧 있었고 이것도 사람의 마음이므로 없애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사람마다 모두 자신을 수련하고 있고, 사람마다 모두 자신의 길을 걸어야 하는 바, 참조가 없다. 다만 한 점이 있는데, 바로 당신이 어떻게 법에 따라 행하는 가이다.”[7]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또 “당신은 정념의 작용 하에서, 당신 신변의 일체와 당신 자신에 모두 변화가 발생할 수 있는데, 당신은 여태껏 해보려고도 하지 않았다.”[8]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의 설법은 나를 확 트이게 했다. 수련 중 바로 자신의 길을 잘 걸어야 하는 것이다. “수련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으므로”[4], 자신이 해야 할 항목을 잘 완성하고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더라도 확고하게 걸어나아가야 한다.
한 수련생의 문장에서 ‘자료점이 완전히 독립하는 것은 안전의 근본보장이다’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을 잘 기억했다. 그리하여 인터넷에 접속하고 다운하고 프린트하고 소모품을 사고 자료를 보내는 일을 모두 혼자서 완성했다.
이렇게 곤두박질하면서 3년 넘게 했다. 주보, 진상 전단지, 소책자 ‘당신의 평안을 기원합니다’, ‘천사홍복(天赐洪福)’ 등과 사부님의 신경문만 만들었다. 우리 지역의 주요 자료내원은 외지에서 보내온 것인데 간격이 비교적 길어 한 달, 두 달에 한번 보내올 수 있었다. 나의 작은 자료점에서 만든 자료가 비록 많지 않지만 우리 지역 자료에 대한 때맞은 공급이었다.
자료를 만드는 중 비록 적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제거했다. 여기에 고생도 있고 위로도 있었지만 부족이 더욱 많았고 아직 요구에 도달하지 못했으나 난관을 돌파하고 좋은 자료를 만들어내고 사람을 많이 구할 신심이 있다.
이상의 경과를 쓴 것은 부족을 찾고 사람의 마음을 폭로하고 사람의 마음을 없애고 사부님의 요구대로 하고 빨리 제고하고 ‘작은 꽃’이 빨리 만발하기를 바라자고 하는 것이다.
층차에 한계가 있으니 부족한 곳은 수련생 여러분이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사부님께 감사 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주:
[1]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홍음-착실한 수련’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스위스법회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2-마지막집착을제거하자(去掉最后的執着)’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5]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10-맨해튼설법’
[6] 리훙쯔 사부님의 시가: ‘홍음3-의무반고(義無反顧)’
[7]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2013년대뉴욕지역법회설법’
[8]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20년 설법’
문장발표: 2013년 11월 1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10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14/281575.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3/12/6/14351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