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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적으로 세상을 살다가, 현모양처가 되기까지

글/산둥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80년대에 여아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떠들썩하게 싸움이 끊이지 않는 그런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완고한 할아버지, 사리가 불분명한 할머니, 알콜 중독 아버지, 싸움을 시작하면 목숨 걸고 달려드는 언니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양보하지 않았고 사소한 일에도 욕설을 퍼부어 집안에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 하루는 방과 후에 집에 가니 집안이 온통 아수라장인 게 두렵기까지 했다. 후에 아버지와 언니가 또 싸운 것을 알았는데 식칼과 의자 등을 동원해 극렬하게 싸웠다고 했다.

(이렇게 집안싸움이 잦다보니) 집안의 가마, 밥그릇, 컵 등의 집기들을늘 부수고는 또 사고, 또 사서 부수는 바람에, TV만 해도 아버지가 여러 대를 부쉈다. 성실하고 가련한 어머니는 늘 눈물을 흘리며 힘든 나날을 견디셨다. 이러한 가정에서 어린 마음에 상처를 입은 나는 희망 없는 인생이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내앞에서 또 TV를 들어 내동댕이쳐 부쉈다. 절망적이었던 나는 농약병을 들고 방안에서 몰래 마시려다 바로 가족에게 발견되어 빼앗겼다.

타락하다

공포와 불안 속에 성장한 나는 어릴 때부터 거칠고 성격이 사나웠고,인생이 허무하고 이 세상이 싫었다. 16살 되던 해 마침내 집을 떠나 청두에 가서 일을 하면서 심령의 속박에서 해탈된 나는 결국 자유를 얻었다. 드디어 독립적으로 생활을 이끌어 갈 수 있었다.

갓 일을 시작했던 나는 일하는 시간 외에는 먹고, 마시고, 놀고, 오락하는 게 여가 생활의 전부였다. 또 그렇게 생활하는 게 시류에 맞게 자유롭게 사는 것이라 여겼다. 나는 나쁜 습관에 아주 많이 젖어들었다.매사가 제멋대로였고, 돈을 마구 썼으며, 자극을 위해 매일 술 마시고 노래 부르러 다녔다. 나중에는 스케이트장에도 가고 도박까지 했다. “냉소적”이라는 표현으로는 그랬던 내 모습을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깨어나면 ‘인생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그렇게까지 타락했다는 게 크게 후회됐다. 그러나 되돌리려고 해도 돌이키기 어려워서 그렇게 취해서 살아갈 뿐이었다.

악습을 고치고, 절망 속에서 새 삶을 얻다

어느덧 결혼할 나이가 되어 동창생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와 만나면서 그의 부모 모두 파룬궁(法輪功) 수련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시기 사당(中共邪黨) 선전에 독해되었던 나는 파룬궁에 대해 아주 좋지 않게 생각했다. 그래서 결혼하면 반드시 그들을 변화시켜 수련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혼 후, 이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예전의 악습이 겉보기에는 조금 고쳐진 것 같았지만 고쳐지지 못했고, 전혀 완전히 고칠 수 없었다. 조금만 방심해도 ‘옛 병이 도졌다.’ 고질병이 수시로 나를 공격했다. 시어머니가 집을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상황이었는데도 나는 단 번에 몇 만 위안을 전부 다 써버렸다. 나는 친정부모가 우리 시댁이 파룬궁 수련을 한다는 걸 모르게 하기 위해 1년이 넘도록 시댁으로 못 오게 했다.

시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그들이 TV에서 보고신문에서 선전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부지런하고 선량했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선하게 대했다. 그들과 같이 생활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임신했을 때도 시댁의 경제는 여전히 여유롭지 않아 시어머니는 가을바지를 깁고 또 기워 입었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어떻게 해서라도 맛있는 걸 사다주었다. 심지어 해삼을 사서 몸보신을 시켜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들이 나에게 어떻게 잘 대해주어도, 내 머릿속에는 TV에서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에 대해 요귀화한(중공 어용작가들의 선전용어) 선전화면들로 가득해서 그들이 파룬궁에 대한 진상을 알려도 믿지 않았다.

마침 (급성 전염병) 사스가 돌 때, 신문에서는 사스에 감염된 한 임산부가 아이를 낳자마자 죽었다고 보도했다. 당시 우리의 아이도 태어났는데 출산 뒤에 나는 폐렴으로 고열이 내리지 않아 입원하여 치료받고 있었다. 그러나 치료를 받아도 호전되지 않아서 매일 주사를 맞았는데, 나중에는 주사 맞을 곳을 찾기도 힘들 정도였다. 산소통에 의지해 목숨을 간신히 부지하고 있었는데, 갓 태어난 아이를 보면서 죽음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면서 두려웠다.

시어머니는 애처로워하며 나에게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 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경건하게 읽으라고 하면서 신과 부처님의 보호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그때 매우 젊고 청순하게 생긴 간호사가 걸어왔다(후에 그녀가 40대인 것을 알게 됨). 그녀는 얼굴에 미소를 짓고는 부드럽게 말했다.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 하오(眞善忍好)’를 경건하게 외우면 건강을 회복하는데 정말로 도움이 돼요.” 나는 깜짝 놀라서 그 간호사를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왜, 이렇게 말하지. 시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진짜인가. 파룬궁은 불법(佛法)인가. 중공이 파룬궁을 모함한 건가. 왜,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은 혹독한 탄압에도 시종포기하지 않을까. 왜…?”

살고 싶다는 욕망이 간호사의 말을 듣게 했다.나는 마음속으로 경건하게 그 아홉 글자를 외웠다. 그리하여 한번 또 한 번 경건하게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 하오(眞善忍好))!”하고 외우기 시작했다. 오후부터 저녁까지 외웠고 외우면서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나자 신기하게도 몸이 불편하지 않았다. 숨 쉬는 것도 편해졌으며, 위험한 증상이 전부 사라졌다! 나의 건강은 아주 빨리 회복되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큰 감명을 받았고 매우 격동되었다. 원래 시어머니의 말씀 모두 진짜였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곤혹스러웠다. ‘파룬궁이 왜, 이렇게 신기할까?’

나는 파룬궁을 빨리 알고 싶다는 생각에 빨리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가서 즉시 ‘전법륜(轉法輪)’을 들었다. 나는 한마디 한 마디씩 모두 보기 시작했다. 책 속의 그 박대정심한 내포를 처음 접했는데 참으로 좋았다! 이어서 나의 몸속에서 무엇이 도는 게 느껴졌고, 곳곳에서 뭔가가 돌아가는 느낌이 아주 강렬했다. 시어머니가 “사부님께서 너에게 파룬(法輪)을 넣어주셨어.” 이는 너무나 놀라워서 나는 울고 말았다.

몇 년 동안 무신론의 속박에서 대법에 대해 사당이 먹칠하여 선전한 것들이 내 앞에서 스스로 무너졌다. 그리하여 나는 그날부터 진정으로 대법수련에 들어섰다. 사부님께서가르치신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행했고, 예전의 각종 불량한 습관을 없앴다. 인생의 의의를 알았고 생활은 희망으로 가득했으며, 전에 없었던 착실함과 행복을 느꼈다. 친정에 갈 때마다 나는 친정 부모님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려주었고, 그들은 나의 변화를 보고 자연스레 기뻐했다.

나는 자비하시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지옥에서 건져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예전의 나처럼 거짓말에 오염된 세인을 구도하기 위해 나도 진상을 알리는 행렬에 들어섰고, 위대한 정법시기의 대법제자가 되었다.

대법이 우리 가정을 구하다

아이가 두 살이 넘었을 때 우리의 결혼생활에 붉은 등이 켜졌다. 남편이 외도를 한 것이었다. 시어머니가 먼저 알고 난 뒤, 나도 수련자임을 감안해, 나에게 속이지 않고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나는 시부모와 함께 교류했는데 우리는 서로에게 마음을 움직이지 말자고 일깨워주었고, 정을 내려놓고 안을 향해 찾으며, 구세력의 일체 배치를 부정했다.

나는 아주 바쁜 업무 중에도 과일 장사를 잠시 내려놓고 사람을 구하기 위해 용기 내어 진상을 알리고자 했다. 남편과 그 여자를 불러 함께식사를 하면서 나는 대법의 진상을 알렸다. 선악에는 보응이 있으니 개과천선하여 좋은 사람이 되어라고 그들을 설득했는데 누가 알았으랴, 그 여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같이 지옥에 내려갈 거예요.” 나는 그래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계속 안을 향해 찾았다.

남편은 날마다 그 여자와 함께 있었지만 나는 법으로 나 자신을 바로 잡았다. 어느 날 나는 정말로 그녀를 구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한 근에 40여 위안하는대추를 사들고 찾아가서 다시 한 번 속마음을 이야기 했다. 감동한 그녀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좋은 아내를 찾았어요. 당신의 부모님은 너무나 좋은 분들이에요!” 그렇게 말하고는 남편과 단호히 헤어졌다. 그녀는 우리 남편에게 “집에 돌아가서 살아요.”라고 말하고는 더 이상 불명예스러운 역할을 하지 않았다.

우리 5인 가족은 대법 속에서 바로 잡히다!

나는 사존의 은혜에 보답할 길이 없다! 더욱 정진 실수하여 사람을 더 많이 구도하여 사전의 사명을 완성할 것이며, 서약을 실현하여 사존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 드릴 것이다.

문장발표 : 2014223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2/23/2880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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